이토록 시적인 과학, 당신을 위한 최소한의 우주
우주플리즈 지음 / 모티브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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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이와 태양계 행성의 이름들이 어떻게 붙어졌는지를 이야기 나누었다. 그때 왜 저 별은 우라노스라 이름이 붙은 걸까, 크로노스는 어떻고 또 결국 영원히 지하 세계에 사는 하데스와 플루토의 운명 역시 너무도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서로 했다. 어느덧 자라서 아이는 그리스 로마신화를 어렴풋이 알고 이를 함께 나눌 기회가 생긴 것이다, 마치 우리도 시처럼 이들을 읽었던 것 같다.




어느 페이지 하나도 쉬이 넘길 수가 없었다. 사진과 그에 대한 최소한의 이야기들 사이 기억하고 남기고 싶은 장면이 참 많았다. 광화문의 축구공으로 시작된 태양계 행성들의 이야기도 눈길을 끌었고, 이들이 어떻게 생성되었는지 왜 그런 환경을 지니게 되었는지를 저자의 시선으로 정리한 것들도 너무나 흥미로웠다. 토성의 얼음 고리 이야기는 특히 기억에 남는다.


아주 오래전, 토성의 곁을 돌던 불운한 위성 하나가 있었다. 어떤 이유로 이 위성이 토성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가자, 무시무시한 비극이 시작되었다.

토성의 맹렬한 중력은 위성의 앞부분을 강하게 쥐어뜯고, 뒷부분은 약하게 당겼다. 이 끔찍한 중력의 차이를 견디지 못한 위성은 결국 비명을 지르며 우주 공간에서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책을 덮고도 우주를 이해하면 순간, 삶이 비로소 가벼워진다는 말은 사실 완벽하게 이해할 수가 없다. 내가 몸담고 있는 우리 은하의 이 한 점에서 어떻게 수많은 사람은 우주에 가설을 세우기 작했을까. 지금이야 고도의 과학기술이 발견돼 이 모든 것을 계산해낼 수 있는 시스템이 돕는다손 쳐도 사실, 이 결과를 우리의 눈으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은 게 맞다. 그런데 1610년 1월 7일, 갈릴레이는 어떻게 목성의 위성을 발견한 걸까. 지구가 돌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저들이 그곳에 함께 있다는 것을 발견해 함께 이름을 붙이며 하늘을 즐길 풍류는 어디에서 나온 거지?


결국 사람은 바로 서게 되었다. 내가 발 딛고 선 이곳을 제대로 알고 싶어서, 우리의 시작을 궁금해하고 앞으로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궁금해져 하늘을 올려다보며 고민을 한다. 이에 대한 우리의 깊은 사유들은 결국 하늘에 지도를 그리고 이들을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채 두 발로 서기 전에도 우리는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고 울부짖으며 그곳은 어떻냐고 물어왔을 것이다. 어쩌면 이를 이해하고 싶어 그 어두운 심연의 물속에서부터 땅을 꿈꾸며 육지로 올라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우주에서 다시 물의 흔적을 찾아 그곳에서 시작해 한 번 더 서고 싶어 하는 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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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직업 - 세 편의 에세이와 일곱 편의 단편소설
버지니아 울프 지음, 정미현 옮김 / 이소노미아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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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여성에게 방이 필요한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그녀에게는 방이 있었던가를 떠올린다. 최소한의 필요에 대한 이야기, 이는 다시 말하면 기본값을 말한다. 많은 이가 그녀에게 요청한다. 글을 써달라고,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앞에 나와 무언가를 일깨워 달라고. 그녀는 되묻는다, 그렇다면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알려달라고...


그 장면이 마음속에 고이 남았습니다.


깨진 유리조각은 최근들어 세공의 의미로, 리사이클의 의미로, 예술적 의미로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 중요한 건, 누구도 각 행동을 강요하지 않는다. 파도에 부서지는 돌들 사이, 하얗게 바짝이는 모래 사이, 그도 아니면 물이 빠져나간 축축한 바닷가 어디에서나 우리는 그것들을 만난다. 자연스러운 것들 사이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앉아 있는 이들을 보면, 한, 두번 눈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서 의심을 거둘 수가 없다. 정녕 보석이 아니라니.






우리 생각이란 게 얼마나 쉽게 새로운 대상으로 우르르 몰려 가는지.


하고 싶은 이야기와 들려줘야 하는 이야기 사이에 괴리가 생기는 순간, 우리는 입을 다물게 된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누구도 듣는 이 없게 유령이 되는 게 낫지 싶다. 내가 기억하는 곳, 나의 장소에 자유롭게 걷듯 날듯 닿아 우리끼리 속삭이며 깔깔 웃는 것이다. 부담없이 우리는 즐거울 것이다. 마음껏 내뱉을 수 있다. 우리의 추억을, 또 그 때의 행복을.




여기서 제일 아름다운 여자야!



편집자가 책을 디자인할 때의 마음을 떠올려 보았다. 무난하면서도 편하고, 또 질리지 않으면서 멋이 느껴지는 특유의 무언가를 떠올리지 않았을까. 변치 않은 명품의 가치 같기도. 작은 책 한 권을 손에 쥐고 이른 여름의 날씨에, 입김이 나오는 스케이트장에서 빠져 읽는다. 소설을 읽으면 예상치 못한 그녀의 멋드러짐이, 수필을 읽으면서는 티나지 않은 그녀만의 마음이 읽힌다.


그래, 나는 단순한 사람 축에 들어. 뭐 구닥다리일 수도 있지만 당당하게 인정해. 나 같은 인류를 사랑한다고.




작게 모인 글들을 읽고 나니 비로소 그녀가 바닥에 남긴 갈색 얼룩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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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공작새 사이그림책장
헤르만 헤세 지음, 오승민 그림, 엄혜숙 옮김 / 가나출판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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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를 꺼내, 하나씩 손가락으로 짓이겨 가루로 만들어 버렸어."



어릴 적에도 조금 더 자란 청소년기에도, 또 중장년이 된 지금도 나는 삶에 미숙하다. 매번 겪어보지 못한 상황과 경험에 두려워하며, 현명한 대처를 하지 못한다. 그리고 후회한다. 조금만 더 자연스럽게, 사려 깊게 행동했었더라면.


내 어린 날의 모습 가운데는 하인리히와 닮은 모습이 꽤 많다. 굳이 기억을 떠올리려 애쓰지 않아도, 그때 내가 가졌던 마음들은 나비처럼 폴폴 날아 내 곁을 맴돈다. 굳이 나의 잘못이 아니었을거다. 아니, 나만 나쁜 마음을 가졌던 것은 아니었나 보다. 헤르만 헤세도 나와 같았겠지, 그때 내 친구도 같은 마음이었겠지.





우리는 동물이기에 본능이 있고, 사람이기에 욕망이 있다. 그 본능과 욕망을 다스릴 수 있다면 그야말로 성인(聖人)일 것이다. 하지만, 꼭 그렇게 살 필요는 없다. 사실 재밌으면 그만이지 않은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잘 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주변인들과 나를 항상 비교한다. (안 그러고 싶지만 마음대로 안된다!) 결국 욕심과 시기와 질투는 결국 사달을 내고 만다. 남을 순수하게 오롯이 좋은 마음으로 존중할 수는 없을까. 헤르만 헤세는 성장하는 우리들을 연민으로 바라본다. 다만, 그 본능적인 시기와 질투로 인해 기인한 잘못된 결과를 스스로 반성하는 것은 용기이고, 스스로를 향한 용서라고 말이다.





밤의 공작새라는 아름다운 나방의 학명으로 한 책 제목은 주인공이 가진 욕망, 소중함, 아름다움, 사랑, 후회, 양심 등을 표현해 주는 가장 적합하고 아름다운 제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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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깨어라 - 헤르만 헤세 청춘소설 3부작, 『수레바퀴 아래서』 『데미안』 『싯다르타』
헤르만 헤세 지음, 송동윤 옮김 / 스타북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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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세계문학 전집이 집에 있었다. 먹고살기 바빴던 시대였고, 부모님은 당신들이 직접 교육을 할 역량이 없으셨다. 더구나 어떻게 교육을 해야 될지 모르셨기에 남들 하는 것들을 하셨을 거다. 그래도 책의 중요성을 아셨나 보다. 그래서 세계문학 전집을 사 놓으셨다. 출판사는 기억나지 않지만 비취색에 약 15권 정도의 전집으로 기억한다. 그때부터 나는 소설을 좋아했나 보다.


몇 가지 유명한 소설들이 있지만 그중에 데미안도 있다. 데미안, 헤르만 헤세. 마치 어린왕자-생택쥐베리, 노인과 바다-헤밍웨이 같은 느낌, 고유명사와 그 설명 같은. 왜 청소년기에 데미안이 추천도서가 됐을까를 그때는 몰랐다.





30년이 지나, 헤르만 헤세의 청춘 3부작이라고 명명된 [스스로 깨어라]를 읽었다. 이 책은 헤르만 헤세의 문학 세계 중 청춘의 고통과 성장을 담아낸 [수레바퀴 아래서], [데미안], [싯다르타]를 한 권으로 묶어 발행한 책이다. 중년의 나이에 다시 읽게 된 청년의 이야기라니, 타임슬립을 한 것처럼 나의 그 시절로 그대로 돌아간 느낌이다. 나도 그때로 다시 돌아가면, 이렇게 생각이 많을까. 아주 작은 이벤트로 앞으로의 삶과 인생이 바뀔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과거의 나를 돌아보며, 앞으로의 나를 고민하게 되는 청춘 3부작이었다.


"한스야. 너 기계공이 되어 볼래? 아니면 서기라도..."


[수레바퀴 아래서]는 제도 안에서의 엘리트의 삶이 얼마나 개인의 노력과 책임, 희생을 강요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결국 한스(주인공)는 그 끈(라인)을 놓는다. 하지만 패배자나 실패자가 아니다. 그것 역시 그의 삶으로 존중해야 하는 것이다. 왜 우리는 그토록 타인의 인생을 우리에 맞게 강요해야 하는가.




"그럼 우리는 어떻게 돼"


[데미안]에서의 '데미안'은 마치 주인공 싱클레어의 또 다른 자아 같다. 정답이 없는 삶을 살고 싶지만, 그렇지 못하기에 싱클레어에게 데미안은 해방구가 된다. 한편,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되기도 한다. 왜 데미안에 대한 내외적 연결성이 지속되고 있는지 알 수 없기에. 다시 한번 청춘의 요소들을 깨워주는 이야기다.


"'아!' 그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


누구도 대신 깨달아 줄 수 없고, 누구의 문장도 내 삶을 통째로 구원해 주지 않는다. 깨달음과 통찰은 스스로의 노력이 필요하며, 자기 내면과의 싸움에서 무언가를 이겨내야 하는 고통이 따른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깨달음은 다른 누군가의 평가에 의해 인정된다. 따르지 않도록 노력해야 따르게 된다는 것. 스스로의 깨달음이 순수한 깨달음이 되는 것.





이 책은 젊은 사람만 읽는 청춘소설이 아니다. 오히려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읽을수록 더 선명해진다. 어른이 된 독자는 한스의 무력함을 미숙으로만 보지 않고, 한 시절의 구조적 폭력을 읽어 낸다. 싱클레어의 혼란은 사춘기의 과장으로 축소되지 않고, 인간이 자기 삶을 사는 데 필요한 통증으로 다가온다. 싯다르타의 긴 우회는 실패가 아니라 성장과 성숙의 과정으로 보인다. - prologue 中 -


고전이 왜 고전인지를 알게 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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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덜덜 곤충 수리공 책읽는 어린이 노랑잎 11
나스타시아 루가니 지음, 샤를린 콜레트 그림, 김영신 옮김 / 해와나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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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 수리공이라는 직업이 있다고?

호기심 많은 작가가 그려낸 알록달록한 꽃과 곤충들의 이야기를 만났다.

아픈 곤충을 치료하는 은빛 바늘, 이것을 쥔 사람만이 곤충 수리공으로서 인정을 받게 되는데 과연 루카는 곤충 수리공이 될 수 있을까?




대대로 내려오는 직업이면서 특별히 아들만이 곤충을 치료할 수 있다. 하지만 루카는 여동생보다 키도 작고 겁도 많다. 곤충을 무서워하는 것을 넘어 혐오한다. 자신은 수리공이 되고 싶지 않지만 선임이던 아버지는 아랑곳 않고 루카에게 직업을 물려준다. 아버지의 인생에서 토끼는 꽃꽂이선생님이 될 수 없으며 암소 역시 사서가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 왜냐하면, 그건 그렇기 때문이다. 이유가 없다.





해와 나무 출판사에서 펴낸 노랑잎 시리즈는 저학년, 이제 막 혼자 글 읽기를 시작하는 친구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대부분의 주인공은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이 없다. 이들이 성장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노랑잎 시리즈의 목표다. 주인공 루카는 겁이 많다. 그리고 아버지는 루카의 마음을 알아주기보다는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만이 진실한 것이라고 아이들을 교육한다.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해내야만 하는 것들은 사실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루카에게는 하지 않을 권리가 있고, 여동생 루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들을 보호해야 할 아버지가 그들에게 힘이 되어주지 못하니 이들은 스스로 깨고 나와야 한다.





슈슈는 사랑스럽다. 아이들에게 위로가 필요할 때 쏜살같이 나타나 이들의 마음을 들어준다. 특별히 조언을 하지 않아도, 그저 들어주는 것만으로 루카는 슈슈 덕에 조금씩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렇게 아이들은 필요한 것들을 찾아 나서고 만들어 나가며 성장한다.





책을 읽으며 치과의사 드소토 선생님이 떠올랐다. 동물이면서 동물을 치료하는 드소토 선생님도 얼마나 용기를 내야 했던가. 자신보다 큰 동물 앞에 마음을 다잡는 일이 여러 번이다. 루카 역시 작은 몸으로 울퉁불퉁하게 생긴 그들에게 손이 닿아야 하며, 이는 심호흡으로도 해결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을 고쳐줄 수 있는 것은 직접적인 몸과 몸의 접촉뿐이 아니라 얼마든 다른 방법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길을 찾는다. 책을 읽은 아이들이 그림의 곳곳을 살피며 호기심을 키우고 상상을 펼치다 끝에는 결국 루카와 루나의 밝은 얼굴을 마주할 수 있게 돼 어른으로서 참 다행이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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