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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전트
김도경 지음 / 퍼플북스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거대한 스케일의 액션영화를 한 편 본 듯한 기분이다.
에이전트는 오랫만에 읽게 된 첩보액션 소설이지만 그동안 읽어왔던 책들과 조금 다르게 느껴졌던 것은 바로 현재 우리의 이야기라는 점에 주목해서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위기 가운데 거대한 중국대륙에서 이어지는 죽음의 상황들, 그리고 한국과 중국, 일본과 미국을 넘나들며 벌어지는 숨막히는 특수요원들의 삶과 그들의 아픔이 너무나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묘사되었기 때문에 에이전트를 읽는 동안 잠시도 긴장을 멈출 수가 없었다.
김일성의 사망 소식이 대한민국을 비롯해 미국과 중국, 일본 등 아시아의 모든 주변국가들의 긴장감을 최고조에 이르게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얼마 전 뉴스를 통해 접했던 김정일의 병세가 악화되었다는 소식은 다시 한 번 그에 못지 않은 불안과 긴장감을 가져다 주었고, 많은 사람들은 모를테지만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각국의 다양한 대비책도 눈에 선하게 그려지는 것만 같다. 에이전트의 사건과 배경은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김정일은 병세가 악화되면서 삼남 김정운을 후계자로 지목하게 되고, 이에 따라 김정일의 장남인 김정남과 그의 측근들에게 묘한 기운이 감돌게 된다. 여기에 한반도의 긴장감은 최고조에 이르고, 남한과 중국, 미국에서도 북한의 정권교체에 대한 비밀수사가 시작된다.
자신의 뜻보다는 운명에 이끌려 특수요원의 삶을 살게 된 남측의 비밀요원 혜주는 특히나 책을 읽는 동안 가장 가슴 아프게 다가왔던 인물이기도 하다. 임무가 주어지고 그녀는 같은 임무를 맡게 된 종찬과 주성, 미경을 팀원으로 구성해 중국을 향하고, 비슷한 시기 북측의 특수요원 선미와 석표도 중국에서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남측의 스파이라 보여졌던 황주하의 첫 등장은 책을 읽는 나의 심기도 심히 불편하게 했던 인물이다. 여지껏 소설에서 만나왔던 인물 가운데 가장 간사스럽고, 음흉한 인물이 바로 황주하가 아닐까하는 생각에 몸서리를 치며 읽었던 것도 같다.
특수요원으로 살아가는 그들에게 개인적이란 단어는 절대 어울리지 않았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오직 국가를 위해 복종하며 급기야 권력이란 이름앞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가는 삶. 그들의 삶에서 평범함이나, 소박한 꿈, 진실은 통하지 않는 것이었고, 로봇이나 인간병기를 대신하며 살아가는 인생이 얼마나 비참하고, 무서운 것인가에 대해 쉽게 짐작해 볼 수 도 있었다. 에이전트를 읽는 동안 소설의 배경이 현재 대한민국과 그 모습이 너무 많이 닮아있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실제로 발전할 가능성은 조금도 없는 것일까에 대한 생각을 깊이 해볼수도 있었다. 위태로운 남과 북의 아슬아슬한 관계속에서 인간으로서가 아닌 오직 국가와 조직의 명령에 의해 복종하며 살아가는 특수 요원들, 주인공들의 어긋난 사랑과 살아남아야 하는 아픔, 권력에 대한 잔인한 욕망,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배신과 음모...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비슷한 배경의 드라마가 묘하게 오버랩 되었기 때문일까?
처절한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지금도 실제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 이야기가 실화였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것 같다. 다행스러운 것은 여자로서의 평범한 삶을 알게 된 혜주와 그녀 곁에는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끝내 살아서 함께 해 준 종찬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에이전트는 흥미와 재미 위주로 쉽게 읽을 수 있는 일반적인 가십거리의 소설이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우리의 이야기가 우리 소설로 꽤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가지고 나타났다는 사실은 앞으로 우리 소설에 대한 관심도를 더욱 높여줄 것이란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