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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실격 외 ㅣ 세계문학의 숲 5
다자이 오사무 지음, 양윤옥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바라만 봐도 흐뭇한 책장 가득 꽂혀있는 책들을 둘러보면서 특별히 가장 좋아하는 장르의 인문서나 에세이, 소설보다도 어쩌면 평생 두고 읽을만한 소장가치로 충분한 책들은 고전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가져본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작가나 작품들을 모으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 된 일이었지만 상대적으로 일본이나 중국 등 아시아작가의 고전은 아직 익숙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었다. 그래서인지 이번에 시공사에서 출간된 여러 고전 가운데서도 가장 눈에 띄었던 책들은 바진의 차가운 밤과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이었는데 특히나 인간 실격은 이미 책제목만으로도 워낙 유명한 책이었고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다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 작가의 특별한 삶 때문에 더욱 흥미로운 책이기도 했다.
다자이 오사무는 다양한 작품을 쓰면서 몇 번의 자살시도와 좌익운동 등으로 불안정한 시기를 보내다가 결혼과 동시에 안정된 집필활동을 할 때도 있었지만 인간실격과 앵두 등을 집필한 후 끝내 강에 뛰어들어 39세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아직 다자이 오사무란 작가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어봐야 할 책이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인간 실격이야말로 일본 문학사의 놀라운 기적으로 20세기 대표작이라 불리는 작품이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다자이 오사무란 작가를 알게 되면서 인간 실격을 통해 어쩌면 이제껏 그 어떤 책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감정의 본질을 만날 수 있게 되지는 않을까 싶었다. 39세의 젊은 작가가 느끼고 경험했던 인간에 대한 혐오심과 공포는 무엇이었을지 그의 최고 작품이라 손꼽히는 인간 실격에 대한 기대감은 이루 말 할 수 없을만큼 굉장한 것이었다.
부끄러운 일이 많은 생애를 보내왔습니다.
나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무엇 하나 남부럽지 않은 가정에서 자란 요조는 가족간의 사랑과 행복, 기쁨보다도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혼자 느끼는 두려움과 어색함에 더 친근한 아이였다. 부잣집 아들, 공부 잘 하는 아이로 전 학년의 존경을 받는 요조였지만 정작 요조 본인은 자신 스스로도 자신을 알지 못하는 데 주변사람들이 느끼는 고통의 질이나 정도에 대해서는 당연히 짐작도 못 하는 것이 삶이라 생각하게 된다. 또한 느닷없이 드러나는 인간의 분노는 인간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본성이라 느끼며 자연스레 자신과 인간의 본질에 대해 조금씩 절망해 가고 있었다. 인간에 대한 두려움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었지만 주윗사람들의 눈에 거슬리지 않기 위해서 요조는 말도 안 되는 장난으로 사람들을 웃기며 광대짓을 시작하게 되고 어느새 장난꾸러기로 자신을 위장하는 데 성공한다.

서글픈 광대 짓으로 부모님과 친구들을 웃기며 아무 문제없이 잘 자라는 것처럼 보였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 봐서는 전혀 상상할 수 없을만큼 요조의 인간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은 점점 커져만 간다. 어쩌면 요조는 너무 하얀 도화지같은 아이였기 때문에 자신을 포함한 타인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더욱 힘겨웠던 것은 아니었을까?
어느덧 학교를 졸업학고 어느 미술학도로부터 배우게 된 술과 담배, 매춘부와 전당포, 좌익사상은 요조에게 있어서 인간에 대한 공포를 잠시나마 달랠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되주었고 급기야 마약에까지 손을 대기에 이른다. 약에 중독되고 추악한 관계를 서슴지 않게 된 요조를 보며 지옥이 있다면 아마도 요조의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벗어나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깊이 빠져드는 무시무시한 늪처럼...
죽고 싶다. 아예 죽어버리고 싶다.
아제는 어떻게도 내 인생을 돌이킬 수 없다.
어떤 짓을 해봐도, 무슨 짓을 해봐도 나는 점점 더 나빠질 뿐이다.
부끄럽고 또 부끄러운 짓을 쌓아갈 뿐이다.
나는 바랄 자격도 없다. 그저 더러운 죄에 한심한 죄가 더해지고 고뇌는 커져가고 강렬해져 갈 뿐이다. 죽고 싶다.
죽어야 한다. 살아 있는 게 죄의 씨앗이다.
인간 실격은 존재와 죽음. 그 사이에서 홀로 외로운 싸움으로 처절하게 버틴 한 영혼의 가장 적나라한 실체를 드러내 보이는 소설이었다. 인간사회의 이방인으로 설정되었던 주인공 요조는 타인에게서, 혹은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당한 삶을 살았지만 이 작품을 통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그 힘겨운 싸움을 벌이면서도 요조는 가장 인간다운 인간이 되고 싶어했다는 점일 것이다. 인간으로서의 완벽한 자격이 무엇일지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찾아 헤매었던 요조를 보며 결국은 스스로를 인간이라 용납할 수 없었던 그 역시 불완전한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하나의 단면이 아니었을까 생각할 수 있었다.
존재의 의미와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욕망이며 본질이다.
우리는 그 어떤 절망속에서도 삶에 대한 저항을 결코 멈출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