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 있는 나날 민음사 모던 클래식 34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송은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민음사의 모던 클래식 시리즈가 친근했기 때문이었을까?

일본계 영국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는 나에게 조금 생소했지만 남아있는 나날이란 소설은 제목부터 친근한 느낌에 언젠가 한 번 읽어봤던 소설처럼 데자뷰를 느낀 작품이기도 하다. 인생의 황혼녘에야 깨닫게 된 삶의 가치와 잃어버린 사랑에 대한 허망함을 그려냈다는 소갯말은 알 수 없는 허망함과 슬픔을 느끼게 했고 그래서인지 이 책은 모던 클래식 다른 시리즈보다도 더욱 궁금했던 책이었다.




웅장하고 유서깊은 영국의 대저택. 달링턴 가문이 200년 넘게 소유해 왔던 달링턴 홀을 새 주인 미국 신사 패러데이가 인수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저택을 인수하게 된 패러데이는 전 주인을 지극히 모셔 온 직원들의 높은 명성을 듣고 스티븐스에게 달링턴 홀에 계속 남아 주기를 바라는데 스티븐스는 유머러스하거나 재미가 있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무려 35년간 달링턴 경을 모시며 한 때 열일곱 명의 직원을 거느리며 대저택 안에서 소신있고 책임감있게 집안일을 챙겨왔던 집사였다. 그는 주인님의 품위를 지키는 일에 최선을 다했고 결코 상대에게 불쾌감을 주는 일이 없는 완벽주의자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오로지 최고의 집사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헌신하고 노력해왔던 집사에게 여행이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지만 패러데이의 권유로 6일간의 여행을 떠나게 된다.




스티븐스에게 여행이란 그렇게나 낯선 경험이었을까?
패러데이도 미국으로 떠났고 클레먼츠 부인과 다른 하녀들도 일주일 휴가를 떠났으니 자신마저 여행을 떠난다면 달링턴 홀이 텅 비게 될 것이란 생각이 그를 마지막까지 괴롭혔기 때문에 처음 여행을 권유받았을 때에도 스티븐스는 패러데이의 제안에 대해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았다. 아마도 7년만에 받게 된 켄턴 양의 편지가 그의 마음을 움직였으리라
집사란 직업때문에 그는 평생을 집안일에 갇혀 지낼 수 밖에 없었고 때문에 여행을 거의 해 본적이 없었다. 저택에서 멀어질수록 눈에 익었던 환경을 벗어난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낯선 방향으로 향해 나아갈수록 들뜬 기분과 불편함이 묘하게 뒤섞이면서 어느새 불안감이 스티븐스를 엄습해왔다.

 






여행이 시작되면서 스티븐스는 오랜 시간 모셔왔던 달링턴 경과 평생을 몸담았던 달링턴 홀을 회상하게 된다. 그 기억들 사이로 사랑하는 여인마저 떠나보내야 했던 자신의 아픔을 꺼낼 수 있었고 최고의 집사가 되기 위해 묵묵히 최선을 다해왔던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게 된다. 오로지 최고가 되기 위해 포기해야만 했던 것들에 대한 아련한 기억을 더듬는 스티븐스는 어느새 그동안 삶에서 놓쳐버린 가장 커다란 진실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데...




만날 그렇게 뒤만 돌아보아선 안 됩니다. 우울해지게 마련이거든요.
즐기며 살아야 합니다. 저녁은 하루 중에 가장 좋은 때요.
당신은 하루의 일을 끝냈어요. 이제는 다리를 쭉 뻗고 즐길 수 있어요.
내 생각은 그래요. 아니, 누구를 잡고 물어봐도 그렇게 말할 거요.
하루 중 가장 좋은 때는 저녁이라고.
(300p)




인생은 어느덧 황혼기에 접어들었고 그동안 지나온 나날들은 과연 스티븐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중요한 것은 지나온 나날보다 앞으로 내게 허락된 남아있는 나날을 어떻게 완성해 나가야 할 것인가하는 문제일 것이다. 이제 뒤는 그만 돌아보고 좀 더 적극적인 시선으로 내게 남아있는 나날을 잘 활용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앞으로 내게 남아있는 나날은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모습으로 완성될 것이기 때문이다. 남아있는 시간은 많지 않지만 저녁은 아직 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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