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밤 세계문학의 숲 4
바진 지음, 김하림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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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허망함을 느끼며 세상에는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우치게 해주었던 마지막 황제란 영화가 떠오른다. 바진의 차가운 밤을 모두 읽고 난 지금의 허탈한 심정이 오래 전 그 영화를 보고 난 뒤의 씁쓸함과 비슷하게 닮아있는 것은 어떤 이유때문일까?
그 때도 영화를 보고 난 후 한참이나 마지막 황제 푸이의 비참함과 허망함이 오랫동안 가슴 아픈 기억으로 남았었다. 어쩌면 한 인간으로서 차가운 밤의 왕원쉬안은 더욱 비참하고 가여운 운명을 살다간 인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어떤 희망과 이상도 꿈꾸지 못한 채 그저 삶의 커다란 소용돌이 속에서 무작정 끌려가야만 했던 왕원쉬안의 고달픈 인생이 가슴 한 켠을 오래토록 시리게 한다.

모름지기 밤이란 가장 편안하고 따뜻해야 할 시간이다. 하지만 차가운 밤이란 제목은 이미 안락하고 평화로운, 조용한 시간과는 거리가 먼 느낌을 주며 무엇인가 불안하고 추운 느낌을 갖게 했는데 처음 만나는 바진의 소설이란 이유말고도 제목이 주는 의미가 무엇일지 궁금한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루쉰, 라오서와 함께 중국의 3대 문호로 꼽히는 바진.
차가운 밤은 바진 최후의 장편소설이자 패배감과 무력감으로 물들었던 중국의 격동기를 그대로 담아낸 소설이기도 하다.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책 한 가득 허무주의적 요소가 강렬하고 전쟁으로 인해 피폐해진 인물간의 심리를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주인공의 갈등이나 모든 행동은 그들의 본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며 곧 붕괴할 구사회와 구제도, 구세력이 뒤에서 그들을 지휘하고 있다. 그들은 반항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 희생자가 되고 만 것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기본적인 안정과 안락한 삶이란 가난하고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곧 삶의 목표이자 꿈이 될 수도 있는 문제이다. 시도 때도없이 울려대는 긴급 경계경보와 언제 정전이 될지도 모르는 생활은 등장인물들을 한층 더 불안하게 하는 배경이 되었고 피난과 퇴직으로 인한 인물들의 갈등은 더욱 폐쇄적으로 보이게 하고 있다.

 




 

전쟁이 한창이던 1940년대
홀어머니와 아들, 아내 수성과 함께 사는 왕원쉬안은 도서와 문구를 관리하는 회사에서 교정쇄를 손보는 일을 하며 근근이 살아간다. 언제 일본군이 쳐들어올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에서 어머니와 아내의 불화도 무기력한 그를 더욱 힘겹게 하는 원인이었고 샤오쉬안의 학비를 마련하기도 빠듯한 살림에 처량한 가장의 모습이 그저 애처롭게만 보였다. 전쟁으로 인해 그에게는 이제 어떤 꿈도, 희망도 없었고 그저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이 그에게는 삶이자 희망이었다. 가혹한 삶은 마지막까지도 그에게 마음 편히 잠시라도 쉴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은행을 다니던 수성이 인사발령을 이유로 그의 곁을 떠나게 되고 그 일을 계기로 원쉬안은 그만 쓰러지고 만다.




주인공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까
전쟁과 가난은 삶의 모든 것을 앗아가버렸다.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속에서 한 때 그 어떤 작은 희망이라도 만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을 가지기도 했지만 삶 자체가 고통이었던 사람들에게는 그마저도 사치였다. 마침내 일본의 패전 소식이 들리고 전쟁은 끝이 났지만 원쉬안은 마지막 순간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93, 승리를 축하하는 그 날 거리에는 징소리와 북소리가 하늘을 찌르고 축포와 용등으로 가득했지만 원쉬안은 극심한 고통속에 최후의 순간에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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