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비자림 > 미니 서점과 지니 서점

서기 2019년 8월 14일 지니 책방 주인 비자림의 일기

 

날씨가 후덥지근하다. 에어컨을 틀어 놓았지만 아까 잠시 사람을 만나러 찻집을 갔다 왔더니 기분은 참 좋은데도 나이 들어서 그런지 기운이 좀 빠지는 느낌이다. 미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후 J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춤추는 인생'님을 만났었다.  벌써 삼십대 중반인 그녀인데도 여전히 눈부시게 아름다운 모습이 내가 그녀를 처음 보았던 스물셋 때의 그 모습과 다를 바 없어 깜짝 놀랐었다.

오늘은 매상이 얼마나 되나? 오후 매상을 정리해 보다가 나는 한숨이 나왔다. 정년퇴임을 할 걸 그랬어. 역시 선생은 장사할 사람이 못돼.

주변 사람들, 특히 남편의 반대를 무릅쓰고 나는 쉬흔이 되던 해, 직장을 과감히 때려치우고 '지니 서점'문을 열었다. 지금은 활동을 안 하지만 예전 젊었을 적 알라딘 폐인이었던 내 자신을 떠올리며 알라딘의 '지니'를 기억하려고 이름을 붙이고 동네 한 귀퉁이에 작은 서점을 열었다. 마침 상가 건물 주인이 임대료를 싸게 해 주어 힘들지 않게 장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정초에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려고 건물주인집에 잠깐 들렀는데 세상에, 이 건물을 설계한 장본인이자 주인이 '메피스토'님이었다니... 나는 그의 얼굴을 본 적이 없어 알아 볼 수가 없었는데 그가 먼저 아는 체를 해 와서 기절할 뻔 하였다. 참 세상은 넓고도 좁은 곳이야.

기분전환을 할 겸 '인디언 음반'을 꺼내 틀었다. 그리곤 컴퓨터를 켜서 알라딘에 접속해 보았다. 요새 뜨는 서재들이 어디일까? 어머나 세상에 물만두님은 아직도 왕성히 서재활동을 하시누만, 이번 주도 서재 달인 2위에 링크되다니.. 배꽃님도 여전하시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이 올라 있지 않은 분야가 없다니..아니 전호인님은 또 쌍칼을 차셨네. 이 아저씨는 칼이 질리지도 않나.. 음 모교에서 제자를 양성하고 있는 기인님은 뜸하시구만.. 해리포터7님은 요새 활동을 안 하시나? 아  참 나비 이미지를 좋아하다가 나비수집가로 나섰다는 이야기가 있었지. 늦바람이 무서워.. 그래도 놀라운 이야기야.  그래도 육아지침서를 펴서 베스트셀러 작가에 오른 건우와연우님에 비하면 그렇게 놀라운 변신은 아니었어. 한샘님도 사진작가로 데뷔하셨는데 개인전이 9월이던가? 아니 근데 테리우스는 누굴까?  이 사람 닉네임은 캔디를 연상하게 하는데? 

의문에 사로잡힐 때쯤 전화가 때르릉 걸려 왔다. 발마스님이었다. 오 이렇게 고마울 수가. 나는 님이 주문하신 발리바르 책 원서명을 적으며 철자가 틀릴 까봐 식은 땀을 흘렸다. 예나 이제나 공부하는 사람들 앞에서 나는 왜 이렇게 작아지는지. 하하하. '지니책방'을 차려 가장 좋은 것은 알라딘 사람들을 가끔 만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동화작가로 변신하여 왕성한 활동을 하는 배혜경님은 우리 책방 단골 고객이시자 신간서적이 나오면 여기서 가끔 독자들에게 싸인도 해 주는 깜짝 이벤트를 벌여 내게 감동을 주곤 한다. 

그리고, 지난 번에는 쌍둥이 아기 둘을 거느리고 '내이름은김삼순'님이 찾아와 깜짝 놀란 일이 있었다. 나는 알바생에게 책방을 맡겨 놓고 님의 가족들과 함께 식사하러 나갔다 왔다. 처녀 총각이었다가 결혼하여 어엿한 가정을 이룬 이들은 많다. 야클님은 2007년에 돌연 결혼하여 거의 1년을 알라딘에 코빼기도 비추지 않아 알라딘 사람들의 원성을 들었고 그에 질세라 2008년에 결혼한 푸하님은 공부하는 아내를 만나 뒤늦게 공부바람이 불어 지금 영국에 머물고 있다.

"사장님, 저녁 드시러 안 가세요?"

알바생 L이 귀여운 눈웃음을 치며 묻는다. 야간대학을 다니며 낮에는 일하는 저 아이를 만나서 내가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오늘 저녁은 생각이 없어 굶겠다고 하니 알바생 L이 내 건강 걱정을 한다.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며 빨리 먼저 먹고 오라고 안심시키곤 달팽이님이 쓴 '터키의 지붕 아래에서 내려다 본 사람살이 '를 집어 들었다. 1년 전에 가 본 터키의 풍경이 아직도 머릿 속에 그득한 나. 그 순한 사람들의 사람살이가 참 가슴에 다가왔는데 여행기조차도 이렇게 맑고 아름답고 지적인 냄새를 풍기는 달팽이님이 글이 참 아름다웠다.

저녁을 먹고 온 알바생 L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내게 다가왔다.

"사장님, 앞 건물에 큰 서점이 들어선데요. 우리 이제 어쩌지요?"

"그래? 할 수 없지. 큰 서점은 큰 서점대로 살고 작은 서점은 작은 서점대로 사는거야."

말은 이렇게 했지만 나도 불안감을 감추기가 어려웠다.

아니나다를까. 다음 날 앞 건물에 "미니 서점" 간판이 들어서는데 이름에 비해 말도 안 되는 규모였다. 1,2,3층 건물을 다 아우르는 서점이 무슨 미니 서점이란 말인가?

이제 내 외도도 끝나야 하는가? 그저 욕심내지 말고 어린이도서관이나 지을 걸 그랬나? 근데 어린이도서관도 자본이 원체 많이 들어서 감행하기가 어려웠었다.

에고 이제 슬슬 서점 문을 닫고 다른 길을 모색해야겠다 한숨을 쉬며 돌아서는 순간,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얼굴이 야구모자를 쓰고 간판을 올려다 보고 있는 것이었다. 아니 마태우스님!

아는 체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내 마음 속에 오락가락 줄다리기하는 두 사람이 보였다.

나는 마태우스님의 글과 사진을 2006년부터 20015년까지 알라딘에서 줄창 봐온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나를 모른다. 아니 비자림이라고 하면 혹시 기억은 할른지 모르지.

나는 아줌마들 특유의 뻔뻔스러움으로 마태우스님께 다가가 아는 체를 하였다. 내 눈 사이즈와 비슷한 님의 눈이 돌연 크게 떠지는 것이었다. 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눈도 동시에 커졌다.

세상에, '미니서점'주인이 마태우스님이라니...

나는 마태우스님을 내 가게로 모시고 와서 커피 한 잔을 대접했다. 그리곤 요새 알라딘에 뜨는 테리우스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다.  요새 비엔나소시지가 달리듯이 댓글이 주르르 달리는, 뜨고 있는 '테리우스'에 관해.

그리고 농담처럼 마태우스님께 선전을 바란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마태우스님의 이야기,

"아, 테리우스도 제 친구이지요. 저보다 조금 젊다고나 할까."

허걱.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던 나는 웃음을 터뜨리게 되었다.

무더위를 날리는 한 방이었다.

 

 

*이러한 허접한 페이퍼를 안 올리려고 하였으나 저의 언어중독이 극심하여 그냥 올리옵나이당

이름 올라가신 분들, 그냥 한 번 웃어나 주시옵소서.

이름 안 올라가신 분들, 다음 번을 기대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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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17 0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건우와 연우 2006-08-17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두요...^^
가을을 숨겨놓느라 힘겨운걸까요. 곧 태풍이 올지 모른다네요..^^
며칠 지나면 가을이 오겠지요...^^

또또유스또 2006-08-19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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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다녀 오시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