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푸하 > 김규항 님의 두 글

 

 

느리게    (2006.07.28 Fri )

 

전엔 책을 빨리 읽는 사람이 부럽기도 했는데 언제부턴가 책은 느리게 읽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리는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면 “다 읽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다”가 다 같진 않다. 경주남산을 사흘 만에 “다 봤다”는 사람도 있지만 십년을 하루같이 오르고도 “멀었다”는 사람도 있듯. 김건이 책을 지나치게 빨리 읽는 습관이 있어서 언젠가 고쳐주어야지 싶었는데 며칠 전 날을 잡았다. 미하엘 엔데 동화집을 주면서 맨 앞에 나오는 ‘마법학교’를 읽어보라고 했다. 몸을 뒤틀어가며 꼼짝없이 옆에 앉아 읽긴 읽는데 역시 건성이다. 삼십 페이지가 넘는 동화를 앞에 앉은 제 누나 참견까지 해가면서 칠분 만에 다 읽었다고 내놓으니 기가 차다.


벌써 다 읽었어?

응.

임마, 아빠가 읽어도 한 시간은 걸리겠다.

진짠대. 줄거리 말해볼까?

책은 줄거리를 알려고 읽는 게 아니야. 그래.. 내일 다시 이야기하자.


다음날 저녁 이번엔 팔 페이지짜리 머리말을 읽게 했다. 부러 정색을 하고는 한 문장도 빠트리지 말고 제대로 읽어야 한다고 엄포를 놓았다. 흘끔흘끔 곁눈질로 읽는 품새를 살펴보니 이번엔 제대로 읽는 것 같다. 이십분이 조금 지나 김건은 다 읽었다고 했다. 시험 삼아 몇 가지 질문을 하니 꼬박꼬박 대답이 나온다.


삼십 페이지 넘는 걸 칠분에 읽더니 팔 페이지에 이십분이 더 걸렸구나. 어제는 대충 읽은 것 맞지?

응..

김건, 책이라는 게 뭐지?

어떤 사람의 생각.

책을 왜 읽지?

지혜를 얻으려고.

지혜가 뭐야?

지혜는 음.. 모르는 걸 아는 거.

모르는 걸 아는 게 지혠가? 그럼 아는 것과 깨닫는 건 어떻게 다르지?

아는 건 조금 아는 거고 깨닫는 건 많이 아는 거.

그건 그냥 조금 알고 많이 아는 거지.

그럼 진짜 아는 거.

진짜 아는 거라.. 아빠 생각엔 아는 것은 남의 생각을 받아들인 거고 깨닫는 건 그걸 내 생각으로 만드는 거야.

아.

책을 읽는 건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깨닫기 위해서야.

어른들은 책 읽으면 다 깨달아?

아니. 책은 엄청나게 많이 읽었는데 자기 생각은 없는 어른들도 많아. 그런데 그런 사람들일수록 자기가 많이 안다고 떠들어대지.

그럼 책은 무조건 천천히 읽는 거야?

꼭 그렇진 않아. 대충 읽어도 되는 책도 있지. 아빠가 말하는 건 책다운 책, 좋은 책을 말하는 거야. 좋은 책은 반드시 천천히 읽어야 해. 너무 빨리 읽으면 책을 머리로만 읽게 돼.

그럼 또 뭘로 읽는데?

(김건 가슴을 검지로 짚으며) 마음으로 읽지. 그래야 깨달을 수 있는 거야.

그렇구나.

책 백권을 대충 읽은 사람과 한권을 제대로 읽은 사람 가운데 누구 생각이 더 훌륭해질까?

한권 읽은 사람.

그럼 백권이 아니라 만권이라면?

그래도 한권 읽은 사람.





대화   (2006.07.01 Sat)


"대화엔 두 가지가 있다. 이해하기 위한 대화와 이기기 위한 대화. 이해하기 위한 대화는 아무리 고단한 과정을 거치더라도 반드시 행복한 결과에 이르게 된다. 그것을 믿는 건 우리가 인간임을 믿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기기 위한 대화는 어떤 경우에도 결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 문제는 모든 이기기 위한 대화가 이해하기 위한 대화라 주장되며, 그걸 밝혀낼 방법이 딱히 없다는 것이다."

 

 

김규항 님 블로그에서 http://gyuhang.net

 

 

 

앞의 글은 제대로 책을 읽고 싶은 사람에게 많은 도움을 준다.

아래 글은 대화의 원래 의미를 생각하게 해준다.

두 글을 읽고 세상의 분쟁이 왜 생기는지 그리고 평화의 가능조건은 '최대한 느린대화'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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