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색깔을 묻는다 - 불안의 시대를 건너는 청춘들에게
손석춘 지음 / 우리교육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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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리뷰를 쓴다. 지금와서 돌아보면, 그리고 한 발짝 떨어져서 생각해보면 별 일 아니었던 문제들때문에 9월부터 최근까지 많이 힘들었고 방황했다. 11월 말부터 다시 일어서겠다고 다짐했지만,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잉여력'이 잔존하고있다. 이 리뷰를 쓰면서 얼마 안 남은 그 기운을 떨쳐낼 수 있다면 좋겠다. 

이런 책을 들여다볼 만한 독자들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겠지만, 우리나라는 해방 이래 흑백논리와 색깔공세로 점철된 역사를 자랑(?)한다. 그러나 1945년 해방정국 시기부터 시작된 흑백과 빨강의 협공은 차차 줄어들었으며, 1987년에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우리에게 양보했다. 

하지만.. 너무나 강렬했던 소망이 '표면적으로' 한순간에 이루어진 탓일까? 그 후 민주주의 논의는 왠지모르게 낡아빠진 인상을 풍기는 논의가 되어버렸고,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지키고 가꾸어가는 것에 대해 무관심해지기 시작했다. 민주주의가 어떻게 되든 사람들이 크게 신경쓰지 않으며 시간을 보냈고, 2008년 보수정권이 정권을 다시 잡게 되었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그동안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민주주의가 사실은 표면적으로만 보장되어왔다는 점을 깨닫기 시작한 것 같다. 

바로 그런 흐름을 따라 2008년부터 민주주의를 다루며 고민하는 많은 책들이 쏟아져나왔고, 지금 다루고 있는 이 책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한다. 

전체적으로 참 읽기 쉽게 쓰여졌다. 머리말에 명확하게 밝히고 있듯이 10대가 읽을 수도 있도록 쉽게 쓰여졌다. 그러나 다행히도 쉬운 와중에 명확한 문제의식을 놓치지 않았다. 특히 칭찬하고 싶은 점은 '여는 글'이 사람들의 시선을 확 끌어모을 만큼 잘 썼다는 점이다. 자기계발 서적의 대부라고 할 만한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을 간접적으로 언급하며 시작하는데, 그 책에서 제시한 '원칙'을 정립하고 그에 따라 살기 위해 노력했던 나로서는 눈에 확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꼭 해당 책을 언급했기 때문에 눈에 들어온다는 것은 아니다. 넘쳐나는 자기계발 메세지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흥미를 느낄 만한 '여는 글'이다.

이어지는 본문은 모두 7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앞서 언급한 '7가지 습관'에도 대응되며, 또 닫는 글에서 마무리하듯 '무지개'를 상징하기도 한다.  

각 장은 민주주의가 얼마나 우리 삶에 직접&간접적으로 연관되고 있으며, 또 그러한 민주주의를 지켜나가는 것이 힘들지만 가치있는 일이라는 주제를 인생, 싸움, 대화, 정치, 경제, 주권, 사랑이라는 소재를 통해 풀어나간다.  

특히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5장 '민주주의는 경제다'와 이어지는 6장 '민주주의는 주권이다'였다. 

   
 

(168쪽)정치와 경제를 나눠서 대학에서 전혀 별개로 가르치고 서로 연관성이 없는 듯 사고하게끔 만드는 것은 누군가의 치밀한 노림수입니다. 누구일까요? 현재의 경제 질서가 흡족한 사람들입니다. 바로 그렇기에 우리는 민주주의가 정치인 동시에 경제임을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 누구를 위한 정치 경제 체제인가를 꼼꼼히 살펴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10대들이나 분별력이 부족한 일부 독자들이 자칫 심각한 음모론으로 독해할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꼭 틀린 말도 아닌것 같다. 실제로 고전경제학을 집대성했다고 평가받은 밀의 역작은 제목이 '정치경제학 원리'였다(원저명 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188쪽)노동자는 여러 직업으로 나누어지지만 분명히 짚어 둘 게 있습니다. 국민 대다수가 노동자로 살아간다는 사실이지요. 일터에 나가 일(노동)을 하고 월급(임금)을 받는 사람, 바로 그 사람이 '노동자'이니까요. 흔히 '노가다'로 불리는 "가난하고 불쌍한" 일용직 노동자만 노동자가 아니죠.  
   

 

얼마전 친구들과 얘기하다가 나온 말인데, 우리나라 보수층의 교육 정책과 교육 내용 장악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마음에 드는 내용은 아니지만, 그들 입장에서 본다면 참 대단한 성공 아닌가? 사회복지의 개념과 유형, 그리고 시장과 국가의 관계에 대해 제대로 배우지는 않지만 학생들은 딱 한 단어로 복지 축소가 올바른 정책이라는 인상을 받게 된다. '복지병'. 
교실에 앉아있는 30여 명의 학생들 중 절대다수가 노동자의 삶을 살아갈 것이지만, 노동자라는 단어에 어느샌가 부정적이고 힘든 일생을 살다가는 그런 인상을 성공적으로 입혀놨다. 노동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노가다'와 '막일'을 떠올리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본문에도 언급되는 내용인데, '대학 가서 미팅할래, 공장 가서 미싱할래'라는 급훈을 듣고 공부하는 아이들은 생각이 어떻게 될 지는 깊이 생각해보지 않아도 될 듯하다.
 
누구에게나 추천할 만한 책이다. 진보와 개혁을 바라는 나같은 독자는 즐거운 마음으로 편히 읽을 수 있는 책이며, 자신을 중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약간 불편하지만 큰 무리 없이 읽으며 자신의 시각을 조정하 수 있는 책이며, 스스로 우파 혹은 보수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좀 더 불편하겠지만 화나지 않을 정도로 '그들'의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있는 책이다. 누가 읽더라도 마지막 장까지 읽고 나면 민주주의에는 적어도 일곱 빛깔이 있다는 사실을, 그동안 흑백과 빨강이 얼마나 우리 삶과 민주주의를 옥죄어 왔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 전문을 아우르는 이 책의 또다른 특징이 있는데, 바로 순우리말의 적극적인 사용이다. 이 책을 한 번 정독한다면 전에 알지 못했던 순우리말을 적어도 두 단어 정도는 알게 될 것이다. 

 

읽은 기간 : 2010년 12월 20일 ~ 2010년 12월 25일  

정리 날짜 : 2010년 12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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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집권플랜 - 오연호가 묻고 조국이 답하다
조국.오연호 지음 / 오마이북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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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책의 주인공 두 명을 보고 곧바로 예약주문했던 책이다. 이틀에 걸쳐 읽었는데, 읽는 동안 '아 조국 교수님 생각 정말 괜찮다'라는 느낌을 한두번 느낀 게 아니었다.  

그런데 다 읽고나니 막상 머리속에 무언가가 정리되는 느낌은 없다. 

두번 째 읽으면서 느낀건데, 이 책은 일종의 사전처럼 활용하면 좋을듯하다. 

각종 진보적 정책에 관해 조국 교수가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를 알고 싶을 때, 혹은 자신만의 주관이 뚜렷하지 않은 경우에 다른 의견을 참고하고 싶을 때 이 책의 해당 부분을 펼쳐들면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 

아래에 리뷰를 쓰신 분도 지적하셨지만, 워낙 다양한 분야를 다루기 때문인지 각 부분별로 심도있는 논의가 진행되지 못한 느낌이다. 내 생각에는 아마 실제 대화에서는 훨씬 깊은곳까지 대화가 진행되었겠지만, 글로 옮겨지고 한 권의 책으로 편집되는 과정에서 많이 누락되지 않았을까싶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한 가지 일관된 논조가 있다면, 진보 세력이 대중의 마음을 열 수 있는 '그 무언가'를 창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뉴타운 공약으로 강북 주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한나라당의 경우와 무상급식 논의로 지난 선거를 휘어잡은 야당연합세력의 경우을 같이 생각해본다면 알 수 있을것이다. 대중이 스스로 마음을 열 수 있는 '그 무언가'를 진보세력은 반드시 개발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87년 6월 항쟁도 시민들의 참여가 없었다면 이루어지지 못했을 사건이고 촛불시위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과연 대중의 마음을 열 수 있는 참신한 '그 무언가'는 언제쯤 등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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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기엔 좀 애매한 사계절 만화가 열전 1
최규석 글.그림 / 사계절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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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라면 모두 19살이 될 수 있지만, 대한민국에만 존재하는 19살이 있다. 고3. 

대한민국에서만 만날 수 있는 고3, 그중에서도 만화로 대학을 가기 위해 미대입시학원을 다니는 학생들이 만화의 주인공이다.  

주인공 찌질한 루저 원빈, 제 실력으로 대학교에 합격했지만 등록금 낼 돈이 없어 재수를 하고 있는 은수, 고3시절을 같이 보내며 은수와 미묘한 감정을 키웠던 미진, 만화애니반의 분위기를 시끌시끌하게 유지해주는 여고생 3인방, 부자집 딸 지현, 분명 무언가 생각을 품고 있지만 자기도 별 힘이 없어 고개숙일 수밖에 없는 태섭쌤.. 그리고 

학생들 앞에선 위해주는 척 했지만 결국 돈때문에 모두의 희망을 꺾어버린 김종화, 자본주의에 휩쓸리지 않는 의식있는 어른인 척 했지만 사실은 서점 이사를 위해 원빈을 이용하려했던 서점주인... 

모두 우리 주변에서 충분히 만날법한 인물상들이다.  

그런데 나는 위에 적은 주요인물들보다도 겨우 세 쪽 하고 한 컷에만 나오는 은수의 동생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  

집안이 넉넉치 못하기에 알바를 하고, 또 지방 출신이라 자취까지 하는 은수의 재수생활은 팍팍하기 그지없다. 다행히 먼저 대학생이 된 미진이 여름방학에 미술학원 아르바이트강사로 오게 되면서 재수생활에 희망 하나가 더해진다. 그런데 바로 그날, 동생이 자취방에 찾아온다. 집에서 일어난 사정을 말해주고 자기는 바로 취업을 하려한다는 동생의 말. 그리고 다음 한 마디가 내 마음을 울렸다. 

"나한테 꿈이 없는 게 참 다행스럽달까……."  

얼마 전 읽은 김예슬 선언에서도 인상깊은 구절이 꿈에 대한 말이었는데, 이번에도 꿈에 관한 말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스무 살이 되어서도 꿈을 찾는 게 꿈이어서 억울하다는 대학생과, 바로 취직하려는데 꿈이 없어서 마음에 고민이 없는게 다행이라는 고등학생…

만화책 하나 읽고 너무 심각하게 생각한다고 보일 수도 있겠지만, 분명 우리 대다수의 모습이기에 참 가슴이 답답하다. 그리고 사실 이 책은 흔히 생각하는 그냥 만화책은 아니니까.. 

최규석 작가에게 점점 더 호감이 생긴다. 100℃를 얼마전에 구입했는데, 전에 읽을때도 그랬고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도 가슴을 울리는 무언가가 느껴진다.  

지금의 청소년들이, 그리고 미래의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우리 사회가 어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읽은 기간 : 2010년 11월 8일 

정리 날짜 : 2010년 11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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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개인주의 외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40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정훈 옮김 / 책세상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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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중 교수의 『생각하는 힘』을 읽고 소세키에게 관심이 생겼다. 도서관에서 나쓰메 소세키를 검색했는데, 예상치 못했던 책 한 권을 발견했다. 원래 문학작품보다 비문학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당연히 이 책에 흥미를 느꼈고, 소세키의 소설 『문』과 함께 이 책을 빌렸다.  

옮긴이는 이 번역작업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국내 독자가 소세키의 작품을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고 한다.(15쪽) 나는 소세키의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다. 그래도 이 책을 읽었을 때 분명 무언가 느껴지는 바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읽기 시작했고, 많은 것을 얻었다. 

소세키는 메이지 유신 1년 전인 1867년 태어나 1차대전이 한창이던 1916년 생을 마감했다. 당시를 살았던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설명이지만, 소세키는 근대 일본이 형성되었던 의미있는 시기를 살다 갔다. 그래도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개화가 진행될수록 경쟁이 점점 격렬해져 생활은 마침내 곤란해지리라는 느낌을 가졌다는 것이다.(93쪽) 

일본인 절대다수가 동아시아 최후진국이었던 일본이 근대화에 성공해 서구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상황을 자축하기만 하던 당시, 소세키는 일본의 개화가 내부의 힘으로 이루어진 서양의 개화와 분명히 다르다는 점을 인식했고, 그러한 자신들의 상황을 공허감,불만,불안의 상념을 품지 않을 수 없다고 표현했다.(103쪽) 

특히 자본주의가 발전하며 욕망에 사로잡혀가는 사회를 정확히 바라보았던 소세키는, 국산 담배와 수입 담배의 예를 들며 불필요한 경쟁심에 사로잡히며 사치스러워지는 인간을 바라본다. 스마트폰이 세상을 완전히 바꿀 것처럼 모두가 말하고 있는 지금, 이 부분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전체를 인용한다. 

적극적 활력의 발현 편에서 보더라도 이 파동은 동일한 형태로, 요컨데 지금까지는 시키시마인지 뭔지를 피우며 참고 있었는데 이웃 남자가 맛 좋은 듯 이집트 담배를 피우고 있으면 역시 그쪽을 피우고 싶어집니다. 게다가 피워보면 분명 그쪽의 맛이 좋습니다. 결국 시키시마 따위를 피우는 사람은 인간 축에 끼지 못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 아무래도 이집트 담배로 옮겨 피워야 한다는 경쟁심이 일어납니다. 통속적으로 말하면 인간이 사치스러워집니다. 도학자는 윤리적 입장에서 항상 사치를 경고하고 있습니다. 좋은 이야기임에는 틀림없는데 자연의 대세에 반한 훈계이므로 언제나 실패로 끝나리라는 점은 옛날부터 지금까지 인간이 어느 정도 사치스러워졌는지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내용입니다. (...) 이 정도로 노력을 절감할 수 있는 시대에 태어나도 그 고마움이 수긍되지 않고 이 정도로 오락의 종류와 범위가 확대되어도 전혀 감사함을 느끼지 못하는 이상, 고통 위에 '대단한'이라는 문자를 부가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것이 개화가 낳은 일대 패러독스라고 나느 생각합니다.(94~95쪽)

나는 정치나 사회적으로는 진보적이라 자처하지만, 첨단기술의 수용에서는 보수적이다. PMP가 보급되기 시작할 때도, DMB기술이 상용화에 돌입했을 때도, 그리고 지금 스마트폰이 시장을 넓혀가는 이 상황에도... 사람이 대체 어디까지 기술에 의존해서 생활을 해나가야 하는 것인지 나는 확신이 잘 서지 않는다. 스마트폰을 쓰느 사람들이 얼마나 그 기계의 혜택을 누리는지 알고 있지만, 동시에 그 기계에 얼마나 종속되어가는지도 심심찮게 바라보게 된다. 그러나 언젠가 결국 나도 스마트폰 사용자가 될 것이다. 컴퓨터 혹은 PC가 이렇게나 우리 삶에 파고들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은 아주 소수를 제외하면 거의 없었을 것이다. 물론 '자연의 대세에 반한' 훈계는 오래 가지 못할 테지만.. 그래도 나는 가능한 한 오래 스마트폰 사용자로 가지 않으련다. 

요즘 우리 모습을 생각나게 하는 부분인지라 잠시 다른 얘기를 했다.

여섯 편의 글이 실려있는 책이지만 '나의 개인주의'를 제목으로 택하고 있는만큼, 「나의 개인주의」가 가장 중요하고 또 의미있는 글이라 생각한다.  

현재 우리 사회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바로 개인주의라 생각한다. 이기주의와 구분되는 개인주의말이다. 이기주의가 타인을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이득과 욕구,욕망만을 추구하는 태도라면, 개인주의는 뿌리 없는 개구리밥처럼 아무렇게나 방황하던 태도(51쪽)를 버리고 미세한 물방울이나 안개 때문에 번민하는 한이 있더라도, 어떠한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여기다'하고 파낼 수 있는 곳까지 도달한(57쪽) 태도를 말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자기 개성의 발전을 완수하고자 한다면 동시에 타인의 개성도 존중해야 하며, 자신의 권력을 사용하고자 할 때 수반되는 의무를 생각해야 하며, 금력을 휘두르고자 할 때도 따라오는 책임을 중히 여겨야 한다.(64쪽) 쉽게 말해 타인을 존경함과 동시에 자신의 존재를 존경한다는 것(68쪽)이다. 

주변을 둘러보자. 과연 자기 자신의 주관을 뚜렷하게 세우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확실하게 인식하며, 광고와 유행에 휘둘리는 개성이 아니라 진정 자신이 바라는 것에 기초한 개성을 발휘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자기 자신에게서 발생하는 확고부동한 자존감이 없기에 사람들은 유행하는 옷에, 값비싼 명품에, 최신 전자기기에, 인맥에, 학벌에 의존해 자신을 내세운다. 그런 와중에 타인의 개성을 배려할 줄 안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상황이 썩 좋지만은 않아보인다. 진정 자기 자신을 근거로 하여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에야 우리는 다른 사람의 가치를 알아보고 인정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개인의 주체성, 타자와의 개방적 관계를 항상 추구하는 나에겐 참 읽기 좋은 책이었다. 이를 발판으로 소세키의 문학 작품으로도 진출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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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주체성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6
탁석산 지음 / 책세상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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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디에서나 자주 보이는 광고가 있다. G20 서울 정상회의를 알리는 홍보. 경제를 깊게 공부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G20회의 주관이 우리나라에게 어느 정도의 이익을 가져다 준다는 뉴스가 그다지 와닿지는 않는다. 다만 방송에서는 우리나라가 이 회의를 주관하는 것을 세계적인 선진국이 되었다는 의미로 홍보하는듯하다.   

선진국이 대체 무엇인지는 생각하지 않겠다. 다만 선진국이라는 말 속에 한 속성을 포함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선진국이라면 모름지기 '주체적'이어야 할 것이다.  

10년 전에 출판된 이 책은 '주체성'을 다룬다.. 관념적이라거나 윤리적, 혹은 교훈적 내용의 주체성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우리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주체성을 다룬다. 

전작 한국의 정체성과 마찬가지로 아주 깔끔한 논리전개가 일품이다. 본문은 (책이 쓰여질 당시의) 현실적인 대한민국의 미래상 다섯 가지를 제시하며 시작한다. 이어 주체성의 정의를 내린 후 (약소국인) 대한민국이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서 주체적 자세의 내면화, 핵무장, 실질적인 내용으로서의 세계화 제시한다. 다음으로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자세로서 한글 전용 표기, 국가 기반시설 보호, 환경 오염 등 세계적 문제들에 대해 우리의 시각과 목소리를 갖자는 주장을 펼친다.  

아무래도 가장 논란거리가 많은 부분은 핵무장이라 생각한다. 글을 읽고 내용을 제대로 요약, 전달하는 능력이 부족하기에 본문을 그대로 옮겨본다.

(65쪽) 과연 핵무기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평화주의자인가? 핵무기가 없다면 평화의 가능성이 더 높아지는가? 나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선 핵무기가 평화를 위협한다는 주장을 분석해보자. 이 명제에는 수식어가 생략되어 있다. 즉 (미국을 위시한 강대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가 보유한) 핵무기는 평화를 위협한다는 것이다. 이 명제의 '핵무기'가 핵무기 일반을 지칭한다면 당연히 미국이 보유한 핵무기도 평화를 위협한다. 프랑스가 보유한 핵무기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미국의 핵무기는 아무런 제제 없이 이동 배치되고 있다. 세계평화에 그토록 위협적인 핵무기도 미국의 손아귀에 있으면 안전하고 평화를 위해 상요된다는 보장이라도 있단 말인가? 핵 확산 금지 조약이 체결된 후에도 프랑스는 여전히 핵 실험을 강행했다. 그런데 왜 북한이나 이라크는 안 되나? 
(68쪽) 미국의 핵은 세계평화를 보장하고 북한이나 일본 그리고 한국의 핵은 세계평화를 위협할 것이라는 주장이 어떻게 옳을 수 있는가?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말이 있다. 힘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한반도는 언제라도 전쟁에 휘말릴 수 있다. 몇 년 전 북한의 핵 개발 정보를 접했을 때 미국은 공습과 같은 군사적 제재를 공식적으로 검토했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동의 없이, 아니 우리와는 아무런 상의도 없이 한반도에서 전쟁을 하려고 했던 것이다. 만약 미국이 실행에 옮겼다면, 우리는 우리의 의사나 결정과 관계없이 또다시 전쟁에 휘말릴 뻔했다. 이것이 주권이 있는 국가의 운명이란 말인가? 우리가 만약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었다면 미국이 우리를 배제한 채 그런 검토를 할 수 있었을까? 사태가 이토록 심각한데도 핵은 인류의 적이라는 미국의 구호를 앵무새처럼 외치는 것이 과연 이 땅의 지식인이 할 일인가?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진지한 논의로써 핵무장을 주장한 글은 처음이다. 읽은 지 한 달이 넘게 지난 지금 다시 정리를 하고 있는데, 여전히 납득하기 힘든 주장이다. 그만큼 내가 (글쓴이에 따르면) 강대국의 논리에 젖어있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핵무기가 확산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큰 정당성이 없어보이기는 하다. 인류의 목숨을 위협하는 무기는 핵무기 말고도 얼마든지 존재하는 상황이며, 최첨단 무기의 보고인 미국은 이라크 전쟁에서 미사일 폭격으로 당시 이라크군을 무참히 살상했으며 이라크 주요 시설을 폐허로 만들어버렸다. 과연 핵무기가 금지되어야 하는 정확한 근거는 무엇일까? 글쓴이의 말대로 단지 강대국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나고 있는 형국이라면 우리는 핵무장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것이 정당한 행위인지 판단하지 못하겠다.  

 

핵무장 주장이 워낙 강한 인상을 주는 의견인지라 그에 대해서만 길게 언급했지만, 전체적으로 분명히 올바른 말을 하고 있는 책이다. 출판된 지 10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의 주체성은 어떻게 확보되고 있을까. G20 회의를 주최한다고 해서 선진국이며 그만큼 주체적인 나라가 된 것일까?  

집 앞 어린이 영어학원에서 광고현수막을 걸었다. "이 땅의 모든 어린이가 영어가 되어야 합니다!" 국내 최대 영어학원 중 하나인 A학원의 차량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영어 수다쟁이가 되는 그날까지'. 우리 나라의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과 30분간 통화를 한 것이 자랑스럽다는 듯 뉴스에 보도되고 있다.(바로가기

아직은 멀었다고 생각한다. 분명 대한민국은 경제규모상 다른 나라들이 무시못할 위치에 올라섰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서양 특히 미국에 대한 짝사랑과 추종심은 떨쳐내지 못했다고 본다. 다른 사례로는 각종 음원사이트 인기순위에 올라온 가수들의 이름과 노래 제목들, 백화점 의류매장 점포들의 이름들을 생각해볼 수 도 있겠다.  

그래도 나는 희망을 간직하고 살아가려고 한다. 오늘 낮 허성도 교수의 강연 녹취록을 읽어봤다.(바로가기) 읽는 내내 전율을 느꼈다. 부끄럽게만 생각했던 조선왕조 말기의 무능함과 멸망이 아니라, 세계사적으로 유래가 없는 500년이라는 긴 세월의 단일왕조와 그들의 과학적 우수함을 볼 수가 있었다. 물론 조선이 위대한 나라였다고 무작정 주장하고싶지는 않다. 

지금 우리 상황이 마음에 안들지라도 대한민국은 분명 경제적으로는 엄청난 발전을 이루어냈다. 이제는 앞으로 더 좋은 방향으로 변화해갈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싶다.  

열흘 앞으로 다가온 G20 정상회담도 성공적으로 마무리짓기를 바라고, 우리 사회 우리 공동체가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더 따뜻한 마음을 가지는 나라가 되기도 바라며,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 앞에 주체적으로 설 수 있는 나라가 되기도 바란다.  

우리나라가 세계 앞에 주체적으로 설 수 있다고 자평할 수 있는 그날까지 이 책의 가치는 결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읽은 기간 : 2010년 9월 23 ~ 9월 24일 

정리 날짜 : 2010년 11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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