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주체성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6
탁석산 지음 / 책세상 / 200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 어디에서나 자주 보이는 광고가 있다. G20 서울 정상회의를 알리는 홍보. 경제를 깊게 공부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G20회의 주관이 우리나라에게 어느 정도의 이익을 가져다 준다는 뉴스가 그다지 와닿지는 않는다. 다만 방송에서는 우리나라가 이 회의를 주관하는 것을 세계적인 선진국이 되었다는 의미로 홍보하는듯하다.   

선진국이 대체 무엇인지는 생각하지 않겠다. 다만 선진국이라는 말 속에 한 속성을 포함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선진국이라면 모름지기 '주체적'이어야 할 것이다.  

10년 전에 출판된 이 책은 '주체성'을 다룬다.. 관념적이라거나 윤리적, 혹은 교훈적 내용의 주체성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우리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주체성을 다룬다. 

전작 한국의 정체성과 마찬가지로 아주 깔끔한 논리전개가 일품이다. 본문은 (책이 쓰여질 당시의) 현실적인 대한민국의 미래상 다섯 가지를 제시하며 시작한다. 이어 주체성의 정의를 내린 후 (약소국인) 대한민국이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서 주체적 자세의 내면화, 핵무장, 실질적인 내용으로서의 세계화 제시한다. 다음으로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자세로서 한글 전용 표기, 국가 기반시설 보호, 환경 오염 등 세계적 문제들에 대해 우리의 시각과 목소리를 갖자는 주장을 펼친다.  

아무래도 가장 논란거리가 많은 부분은 핵무장이라 생각한다. 글을 읽고 내용을 제대로 요약, 전달하는 능력이 부족하기에 본문을 그대로 옮겨본다.

(65쪽) 과연 핵무기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평화주의자인가? 핵무기가 없다면 평화의 가능성이 더 높아지는가? 나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선 핵무기가 평화를 위협한다는 주장을 분석해보자. 이 명제에는 수식어가 생략되어 있다. 즉 (미국을 위시한 강대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가 보유한) 핵무기는 평화를 위협한다는 것이다. 이 명제의 '핵무기'가 핵무기 일반을 지칭한다면 당연히 미국이 보유한 핵무기도 평화를 위협한다. 프랑스가 보유한 핵무기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미국의 핵무기는 아무런 제제 없이 이동 배치되고 있다. 세계평화에 그토록 위협적인 핵무기도 미국의 손아귀에 있으면 안전하고 평화를 위해 상요된다는 보장이라도 있단 말인가? 핵 확산 금지 조약이 체결된 후에도 프랑스는 여전히 핵 실험을 강행했다. 그런데 왜 북한이나 이라크는 안 되나? 
(68쪽) 미국의 핵은 세계평화를 보장하고 북한이나 일본 그리고 한국의 핵은 세계평화를 위협할 것이라는 주장이 어떻게 옳을 수 있는가?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말이 있다. 힘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한반도는 언제라도 전쟁에 휘말릴 수 있다. 몇 년 전 북한의 핵 개발 정보를 접했을 때 미국은 공습과 같은 군사적 제재를 공식적으로 검토했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동의 없이, 아니 우리와는 아무런 상의도 없이 한반도에서 전쟁을 하려고 했던 것이다. 만약 미국이 실행에 옮겼다면, 우리는 우리의 의사나 결정과 관계없이 또다시 전쟁에 휘말릴 뻔했다. 이것이 주권이 있는 국가의 운명이란 말인가? 우리가 만약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었다면 미국이 우리를 배제한 채 그런 검토를 할 수 있었을까? 사태가 이토록 심각한데도 핵은 인류의 적이라는 미국의 구호를 앵무새처럼 외치는 것이 과연 이 땅의 지식인이 할 일인가?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진지한 논의로써 핵무장을 주장한 글은 처음이다. 읽은 지 한 달이 넘게 지난 지금 다시 정리를 하고 있는데, 여전히 납득하기 힘든 주장이다. 그만큼 내가 (글쓴이에 따르면) 강대국의 논리에 젖어있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핵무기가 확산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큰 정당성이 없어보이기는 하다. 인류의 목숨을 위협하는 무기는 핵무기 말고도 얼마든지 존재하는 상황이며, 최첨단 무기의 보고인 미국은 이라크 전쟁에서 미사일 폭격으로 당시 이라크군을 무참히 살상했으며 이라크 주요 시설을 폐허로 만들어버렸다. 과연 핵무기가 금지되어야 하는 정확한 근거는 무엇일까? 글쓴이의 말대로 단지 강대국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나고 있는 형국이라면 우리는 핵무장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것이 정당한 행위인지 판단하지 못하겠다.  

 

핵무장 주장이 워낙 강한 인상을 주는 의견인지라 그에 대해서만 길게 언급했지만, 전체적으로 분명히 올바른 말을 하고 있는 책이다. 출판된 지 10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의 주체성은 어떻게 확보되고 있을까. G20 회의를 주최한다고 해서 선진국이며 그만큼 주체적인 나라가 된 것일까?  

집 앞 어린이 영어학원에서 광고현수막을 걸었다. "이 땅의 모든 어린이가 영어가 되어야 합니다!" 국내 최대 영어학원 중 하나인 A학원의 차량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영어 수다쟁이가 되는 그날까지'. 우리 나라의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과 30분간 통화를 한 것이 자랑스럽다는 듯 뉴스에 보도되고 있다.(바로가기

아직은 멀었다고 생각한다. 분명 대한민국은 경제규모상 다른 나라들이 무시못할 위치에 올라섰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서양 특히 미국에 대한 짝사랑과 추종심은 떨쳐내지 못했다고 본다. 다른 사례로는 각종 음원사이트 인기순위에 올라온 가수들의 이름과 노래 제목들, 백화점 의류매장 점포들의 이름들을 생각해볼 수 도 있겠다.  

그래도 나는 희망을 간직하고 살아가려고 한다. 오늘 낮 허성도 교수의 강연 녹취록을 읽어봤다.(바로가기) 읽는 내내 전율을 느꼈다. 부끄럽게만 생각했던 조선왕조 말기의 무능함과 멸망이 아니라, 세계사적으로 유래가 없는 500년이라는 긴 세월의 단일왕조와 그들의 과학적 우수함을 볼 수가 있었다. 물론 조선이 위대한 나라였다고 무작정 주장하고싶지는 않다. 

지금 우리 상황이 마음에 안들지라도 대한민국은 분명 경제적으로는 엄청난 발전을 이루어냈다. 이제는 앞으로 더 좋은 방향으로 변화해갈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싶다.  

열흘 앞으로 다가온 G20 정상회담도 성공적으로 마무리짓기를 바라고, 우리 사회 우리 공동체가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더 따뜻한 마음을 가지는 나라가 되기도 바라며,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 앞에 주체적으로 설 수 있는 나라가 되기도 바란다.  

우리나라가 세계 앞에 주체적으로 설 수 있다고 자평할 수 있는 그날까지 이 책의 가치는 결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읽은 기간 : 2010년 9월 23 ~ 9월 24일 

정리 날짜 : 2010년 11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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