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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 힐링에서 스탠딩으로!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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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물 한 살 이후부터 지식소매상 유시민의 애독자였으며 정치인 유시민의 지지자였다. 정확한 첫 만남은 중학교 3학년때 책을 통해서였다. 학교 도서관에서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꺼내 읽었다. 당시에는 지은이 이름이 참 신기하다는 생각만 했다. 끝까지 읽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내가 고등학생이 된 후, 유시민은 국회에서 소위 '빽바지 사건'의 주인공이 되었다. 당시 사회 선생님이 매 수업시간마다 일간지를 가져와 우리에게 1면 기사를 소개해주셨었는데, 어느 신문인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빽바지' 사진이 큼지막하게 실려있었던 것이 어렴풋하게 기억난다.


하지만 그 이후, 당분간 유시민이라는 이름은 내 삶에서 멀어졌다. 고등학교 3년, 대학교 1학년의 시간동안 정치는 나에게 전혀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그리고 정확히 그 시기에 유시민은 참여정부의 핵심 인물로서 가장 맹렬하게 정치 인생을 살고 있었다.


그러나 2008년 여름의 촛불정국을 지나며 나는 사회와 정치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정치가 왜 중요한지, 우리 사회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동시에 이명박 정부의 답답한 분위기를 인식했으며, 그에 맞물려 정치인 노무현의 지나온 날을 제대로 찾아보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유시민에 대한 관심 또한 높아졌다. 정치인 유시민이『거꾸로 읽는 세계사』의 저자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지한게 이때였던 것 같다. 그렇게 정치 분야에 관심을 기울이던 중, 2009년 5월의 23일 아침이 밝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국민장이 치러지는 그 기간동안, 유시민의 눈물에 깊게 감정이입을 했다. 솔직히 인정하건데, 그 순간부터 나는 유시민의 인간적인 팬이 되었다. 세간에 떠돌았던 다소 부정적인 어감의 '유빠'가 되었다. 맹목적인 10대들의 연예인에 대한 팬덤과 마찬가지로, 나는 정치인 노무현과 정치인 유시민의 이상을 지지하게 되었다.


그 다음에 찾아온 일들은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리라 생각한다. 
말 그대로 '다사다난'했던 정치 행로을 마무리지으며, 유시민은 다시 지식소매상으로 돌아왔다.
그 사이 나도 한때 품었던 정치인의 꿈을 접고, 문필과 학문 사이 어딘가의 삶을 꿈꾸기 시작했다. 그의 행보에서 굳이 동질감을 찾아내려고 하는걸 보면 아직도 '유빠' 근성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것 같다.

『어떻게 살 것인가』는 이전의 책들과 많이 닮았으면서도 참 다르다. 광범위한 배경지식과 조사를 바탕으로 적절한 사례를 제시하는 능력은 탁월한 저술가 유시민의 여전히 돋보이는 재주이다. 그러나, 이번 책은 하나의 주제를 둘러싼 소재들의 구심력이 다소 약해진듯 하다. 많은 이야기들이 '어떻게 살 것인가. 혹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중심으로 꿰어져 있으나, 이야기 소재가 너무 다양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에 대해 두 가지 생각을 했다. 어쨌든 자연인 유시민의 팬인 나로서는, 그의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는 기회였기에 아주 좋았다. 이전의 강연이나 책, 인터뷰에서는 볼 수 없었던 그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는 기회였다. 

다음으로 든 생각은, 그 어느때보다 '독기'가 빠졌구나 하는 생각이다. 위에서 말한 '이야기의 소재가 많다'는 점은, 달리 해석하자면 글의 특징보다도 말의 특징을 많이 담았다고 볼 수 있다. 분석과 논증의 글은 다양한 이야기를 마음껏 펼치지 못한다. 그러나 편안한 마음으로 자신의 인생에 대해 회고하고, 다가올 날을 희망하는 이야기를 풀어놓기 위해서라면, 논증적 글쓰기보다는 대화하는 듯한 글쓰기가 자연스러운 선택이라고 본다. 그런 점에서 이번 책은 진정 자유인 유시민의 저작이다. 『청춘의 독서』도 이런 감이 없지는 않았으나, 이번 책이야말로 '한 명의 자유인' 유시민이 하고 싶은 말을 편안하게 풀어낸 책이다. 10대 독자에겐 맞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20대를 넘어서며, 어떠한 방향으로든 인생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겐 모두 읽어 볼만한 책이라 권하고 싶다.

몰랐던 사실들과 감동적인 부분이 쓰여있는 페이지 수와 간단한 내용을 메모하는 것만으로도 A4 크기의 노트 한 면이 꽉 채워졌다. 한 때 뉴스와 투표를 통해서나마 그와 똑같은 정치적 꿈을 꾸었다는것이 아직도 나에게는 즐거운 기억이다. 앞으로는 이렇게 책을 통해서, 저자와 독자의 관계를 계속 이어나가고 싶다. 


독서 기간 2013년 2월 28일 - 2013년 3월 6일
재독서 기간 2013년 4월 12일
기록 날짜 2013년 4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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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델 교수의 하버드 특강 "정의" (6disc)
마이클 샌델 / EBS미디어센터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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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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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년, 각 분야별로 베스트셀러는 나오게 마련이다. 2010년을 대표하는 베스트셀러를 꼽는다면, 5월 출판 이후부터 계속해서 화제가 되었던 책을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바로 이 책 『정의란 무엇인가』. 2010년 대한민국에서 사회과학서적이 종합 1위를 하는 현상을 보여준 '신기한' 책이다. 사람들은 왜 정의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했을까? 그리고 어떤 정의를 바라는 것일까? 

전체 10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정의에 관한 세 가지 입장을 소개하고 각각의 정의론들이 서로 싸우도록 유도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사람들의 '행복'이 정의의 척도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첫 번째 입장은 제레미 벤담과 존 스튜어트 밀이 대표하는 공리주의 진영이다. 두 번째로 개개인의 '자유'가 정의의 척도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진영은 칸트와 롤스가 대표하는 자유주의 진영이다. 마지막으로 '도덕'을 기반으로 사회적 정의를 찾아나가야 한다는 세 번째 진영은 아리스토텔레스와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가 이끈다.   

저자가 생각하는 답은 정해져있다. 그의 논의를 따라가보자.  

벤담과 밀의 공리주의는 많은 사람들에게 핵심적인 두 문장으로 아주 잘 알려져 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그리고 '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 행복, 즉 공리의 질적 차등성을 무시한 벤담의 무차별적이며 계량에만 의존하는 공리주의와, 행복(공리)들 사이의 질적 차등성을 인정하며 더 나은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는 밀의 공리주의.  

아버지의 영향이었는지 밀은 공리주의를 끝까지 지켜내려고 했다. 그러나 밀이 공리주의의 천박함을 옹호하기 위해 꺼내든 카드였던 '질적 차등성의 인정'은, 되려 공리주의의 기반을 흔드는 꼴이 되어버렸다. 지나가는 사람 100 명을 세워놓고, 'MBC 음악중심' 방청권과 예술의전당에서 현재 공연중인 '강남심포니 2011 신년음악회' 입장권 중 무엇이 갖고 싶냐고 물어본다면, 대부분은 음악중심 방청권을 받겠다고 할 것이다. 이 점을 생각한다면, 욕구는 더이상 무엇이 고상하고 무엇이 저급인지를 판단하는 유일한 기준이 못 된다. 그 기준은 우리의 바람이나 욕구와는 무관한 인간의 존엄성이나 이상적 판단으로 옮겨간다. 밀은 어떻게든 공리주의의 천박함이라는 혐의를 벗기려 애썼지만, 되려 공리와는 무관한 인간의 존엄성이나 개성이라는 도덕적 이상을 강조한 꼴이 되어버렸다. 

다음으로 칸트와 롤스의 자유주의적 입장은 어떨까. 얼핏 생각해보면 칸트의 철학과 롤스의 정의론을 한 데 모아서 서술하기에 그들의 이야기는 동떨어져 보인다. 그러나 공통점은 있다. 바로 도덕적 행위자를 특정한 목적이나 애착에 구속되지 않는 사람으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칸트의 도덕법을 따르거나 롤스의 정의의 원칙을 선택한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우리의 위치를 정하고 지금의 우리를 만든 역할이나 정체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어느 누구의 강요도 받지 않고 자기 스스로 자신에게 내리는 도덕적 정언 명령을 따르라는 칸트의 윤리학은, '강요 없는 완벽한 자율'이라는 점에서 자유주의에 맞닿는다. 또한 사회적 체제의 원리와 특성은 물론 신체적 특징이나 성격 등 자기 자신의 상태까지 아무 것도 모른다고 가정하는 무지의 장막 실험을 기반으로 하는 롤스의 정의론은, '지금', 그리고 '여기'의 정의를 말하기에는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정의를 추구해야 하는 것일까. 여기서 고대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현대의 매킨타이어와 동행한다. 정부가 특정한 가치에 대해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유주의 진영에 맞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국가의 의무 중 하나인 교육을 '시민교육'의 차원으로 설명하는 주장을 펼친다. 국가가 적극적으로 시민들의 삶에 개입해 올바른 것에 대해 논의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여기에서 매킨타이어의 '서사적 인간' 개념이 등장한다. 

   
 
(311쪽) 우리는 누구나 특정한 사회적 정체성을 지닌 사람으로서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이해한다. 나는 누군가의 아들이거나 딸, 또는 사촌이거나 삼촌이다. 나는 이 도시나 저 도시의 시민이며, 이 조합 아니면 저 조합의 회원이다. 나는 이 친족, 저 부족, 이 나라에 속한다. 따라서 내게 이로운 것은 그러한 역할과 관련된 사람들에게도 이로워야 한다. 이처럼 나는 내 가족, 내 도시, 내 부족, 내 나라의 과거에서 다양한 빚, 유산, 적절한 기대와 의무를 물려받는다. 이는 내 삶에서 기정사실이며 도덕의 출발점이다. 또한 내 삶에 도덕적 특수성을 부여하는 것이기도 하다. 


(312쪽) 자아를 서사적으로 보는 관점과 명확히 대조되는 입장이다. 내 삶의 이야기는 언제나 내 정체성이 형성된 공동체의 이야기에 속하기 때문이다. 나는 과거를 안고 태어나는데, 개인주의자처럼 나를 과거와 분리하려는 시도는 내가 맺은 현재의 관계를 변형하려는 시도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수많은 것들을 만나며 성장한다. 가장 원초적으로 우리는 부모를 선택할 수 없다. 당연히 부모의 경제적 배경도 선택할 수 없다. 그리고 태어난 지역을 선택할 수도 없다. 따라서 경제와 복지, 주변 시설을 선택할 수 없다. 이렇듯 수많은 것들을 안고 태어나는 우리가, 정의관을 구축할 때 과연 전적으로 순수하게 '자유'로운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공동체에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공동체의 자산과 부채를 동시에 받고 태어날 수밖에 없으며, 그것을 부정한다면 자신의 정체성을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는 꼴이 되어버릴 뿐이다. 

마지막에 다다르면, 저자는 자신의 입장을 솔직하고 명확하게 밝힌다.   

   
 
(361쪽) 나는 세 번째 방식을 좋아한다. (...) 정의로운 사회는 단순히 공리를 극대화하거나 선택의 자유를 확보하는 것만으로는 만들 수 없다. 좋은 삶의 의미를 함께 고민하고, 으레 생기기 마련인 이견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문화를 가꾸어야 한다. 
 
   
 
다수의 행복을 중시하는 공리주의는 정의와 권리를 원칙이 아닌 계산의 문제로 만들어버리고 인간 행위의 다양한 가치를 무시한다. 자유에 기초한 이론들은 공리주의의 첫 번째 문제를 해결하지만 두 번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개인들의 취향과 욕구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그것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들의 정의론은 우리가 추구하는 도덕적 가치, 삶의 의미와 중요성, 삶에 대한 신념 등을 포함하지 못한다. 정의로운 사회라면 무릇 우리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이며,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다 같이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사회여야 할 것이다.

 

글을 처음 쓰면서는 간단한 감상문을 쓰려고 했는데, 쓰다 보니 전체적인 내용 요약이 되어버렸다. 내가 글을 쓰지 않더라도, 이 책은 이미 베스트셀러라는 명성을 획득했기에 많은 사람들이 읽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이 더 많은 사람들을 정의에 관한 토론 현장으로 안내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상대에 대한 존중과 자기 본위에 기반하는 개인주의도 확보하지 못한 우리 사회는 자유주의의 탈을 쓴 이기주의자들이 넘쳐난다. 공동선을 말하기에 우리 사회는 너무나 힘든 현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그들의 생각 변화를 유도한다면, 공동선을 향한 정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언젠가는 다수의 목소리가 될 날도 올 것이다.

 


읽은기간 : 2010 12 30 ~ 2011 01 02

1차 독후감 : 2011 01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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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개인주의 외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40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정훈 옮김 / 책세상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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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중 교수의 『생각하는 힘』을 읽고 소세키에게 관심이 생겼다. 도서관에서 나쓰메 소세키를 검색했는데, 예상치 못했던 책 한 권을 발견했다. 원래 문학작품보다 비문학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당연히 이 책에 흥미를 느꼈고, 소세키의 소설 『문』과 함께 이 책을 빌렸다.  

옮긴이는 이 번역작업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국내 독자가 소세키의 작품을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고 한다.(15쪽) 나는 소세키의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다. 그래도 이 책을 읽었을 때 분명 무언가 느껴지는 바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읽기 시작했고, 많은 것을 얻었다. 

소세키는 메이지 유신 1년 전인 1867년 태어나 1차대전이 한창이던 1916년 생을 마감했다. 당시를 살았던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설명이지만, 소세키는 근대 일본이 형성되었던 의미있는 시기를 살다 갔다. 그래도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개화가 진행될수록 경쟁이 점점 격렬해져 생활은 마침내 곤란해지리라는 느낌을 가졌다는 것이다.(93쪽) 

일본인 절대다수가 동아시아 최후진국이었던 일본이 근대화에 성공해 서구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상황을 자축하기만 하던 당시, 소세키는 일본의 개화가 내부의 힘으로 이루어진 서양의 개화와 분명히 다르다는 점을 인식했고, 그러한 자신들의 상황을 공허감,불만,불안의 상념을 품지 않을 수 없다고 표현했다.(103쪽) 

특히 자본주의가 발전하며 욕망에 사로잡혀가는 사회를 정확히 바라보았던 소세키는, 국산 담배와 수입 담배의 예를 들며 불필요한 경쟁심에 사로잡히며 사치스러워지는 인간을 바라본다. 스마트폰이 세상을 완전히 바꿀 것처럼 모두가 말하고 있는 지금, 이 부분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전체를 인용한다. 

적극적 활력의 발현 편에서 보더라도 이 파동은 동일한 형태로, 요컨데 지금까지는 시키시마인지 뭔지를 피우며 참고 있었는데 이웃 남자가 맛 좋은 듯 이집트 담배를 피우고 있으면 역시 그쪽을 피우고 싶어집니다. 게다가 피워보면 분명 그쪽의 맛이 좋습니다. 결국 시키시마 따위를 피우는 사람은 인간 축에 끼지 못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 아무래도 이집트 담배로 옮겨 피워야 한다는 경쟁심이 일어납니다. 통속적으로 말하면 인간이 사치스러워집니다. 도학자는 윤리적 입장에서 항상 사치를 경고하고 있습니다. 좋은 이야기임에는 틀림없는데 자연의 대세에 반한 훈계이므로 언제나 실패로 끝나리라는 점은 옛날부터 지금까지 인간이 어느 정도 사치스러워졌는지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내용입니다. (...) 이 정도로 노력을 절감할 수 있는 시대에 태어나도 그 고마움이 수긍되지 않고 이 정도로 오락의 종류와 범위가 확대되어도 전혀 감사함을 느끼지 못하는 이상, 고통 위에 '대단한'이라는 문자를 부가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것이 개화가 낳은 일대 패러독스라고 나느 생각합니다.(94~95쪽)

나는 정치나 사회적으로는 진보적이라 자처하지만, 첨단기술의 수용에서는 보수적이다. PMP가 보급되기 시작할 때도, DMB기술이 상용화에 돌입했을 때도, 그리고 지금 스마트폰이 시장을 넓혀가는 이 상황에도... 사람이 대체 어디까지 기술에 의존해서 생활을 해나가야 하는 것인지 나는 확신이 잘 서지 않는다. 스마트폰을 쓰느 사람들이 얼마나 그 기계의 혜택을 누리는지 알고 있지만, 동시에 그 기계에 얼마나 종속되어가는지도 심심찮게 바라보게 된다. 그러나 언젠가 결국 나도 스마트폰 사용자가 될 것이다. 컴퓨터 혹은 PC가 이렇게나 우리 삶에 파고들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은 아주 소수를 제외하면 거의 없었을 것이다. 물론 '자연의 대세에 반한' 훈계는 오래 가지 못할 테지만.. 그래도 나는 가능한 한 오래 스마트폰 사용자로 가지 않으련다. 

요즘 우리 모습을 생각나게 하는 부분인지라 잠시 다른 얘기를 했다.

여섯 편의 글이 실려있는 책이지만 '나의 개인주의'를 제목으로 택하고 있는만큼, 「나의 개인주의」가 가장 중요하고 또 의미있는 글이라 생각한다.  

현재 우리 사회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바로 개인주의라 생각한다. 이기주의와 구분되는 개인주의말이다. 이기주의가 타인을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이득과 욕구,욕망만을 추구하는 태도라면, 개인주의는 뿌리 없는 개구리밥처럼 아무렇게나 방황하던 태도(51쪽)를 버리고 미세한 물방울이나 안개 때문에 번민하는 한이 있더라도, 어떠한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여기다'하고 파낼 수 있는 곳까지 도달한(57쪽) 태도를 말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자기 개성의 발전을 완수하고자 한다면 동시에 타인의 개성도 존중해야 하며, 자신의 권력을 사용하고자 할 때 수반되는 의무를 생각해야 하며, 금력을 휘두르고자 할 때도 따라오는 책임을 중히 여겨야 한다.(64쪽) 쉽게 말해 타인을 존경함과 동시에 자신의 존재를 존경한다는 것(68쪽)이다. 

주변을 둘러보자. 과연 자기 자신의 주관을 뚜렷하게 세우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확실하게 인식하며, 광고와 유행에 휘둘리는 개성이 아니라 진정 자신이 바라는 것에 기초한 개성을 발휘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자기 자신에게서 발생하는 확고부동한 자존감이 없기에 사람들은 유행하는 옷에, 값비싼 명품에, 최신 전자기기에, 인맥에, 학벌에 의존해 자신을 내세운다. 그런 와중에 타인의 개성을 배려할 줄 안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상황이 썩 좋지만은 않아보인다. 진정 자기 자신을 근거로 하여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에야 우리는 다른 사람의 가치를 알아보고 인정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개인의 주체성, 타자와의 개방적 관계를 항상 추구하는 나에겐 참 읽기 좋은 책이었다. 이를 발판으로 소세키의 문학 작품으로도 진출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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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주체성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6
탁석산 지음 / 책세상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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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디에서나 자주 보이는 광고가 있다. G20 서울 정상회의를 알리는 홍보. 경제를 깊게 공부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G20회의 주관이 우리나라에게 어느 정도의 이익을 가져다 준다는 뉴스가 그다지 와닿지는 않는다. 다만 방송에서는 우리나라가 이 회의를 주관하는 것을 세계적인 선진국이 되었다는 의미로 홍보하는듯하다.   

선진국이 대체 무엇인지는 생각하지 않겠다. 다만 선진국이라는 말 속에 한 속성을 포함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선진국이라면 모름지기 '주체적'이어야 할 것이다.  

10년 전에 출판된 이 책은 '주체성'을 다룬다.. 관념적이라거나 윤리적, 혹은 교훈적 내용의 주체성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우리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주체성을 다룬다. 

전작 한국의 정체성과 마찬가지로 아주 깔끔한 논리전개가 일품이다. 본문은 (책이 쓰여질 당시의) 현실적인 대한민국의 미래상 다섯 가지를 제시하며 시작한다. 이어 주체성의 정의를 내린 후 (약소국인) 대한민국이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서 주체적 자세의 내면화, 핵무장, 실질적인 내용으로서의 세계화 제시한다. 다음으로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자세로서 한글 전용 표기, 국가 기반시설 보호, 환경 오염 등 세계적 문제들에 대해 우리의 시각과 목소리를 갖자는 주장을 펼친다.  

아무래도 가장 논란거리가 많은 부분은 핵무장이라 생각한다. 글을 읽고 내용을 제대로 요약, 전달하는 능력이 부족하기에 본문을 그대로 옮겨본다.

(65쪽) 과연 핵무기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평화주의자인가? 핵무기가 없다면 평화의 가능성이 더 높아지는가? 나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선 핵무기가 평화를 위협한다는 주장을 분석해보자. 이 명제에는 수식어가 생략되어 있다. 즉 (미국을 위시한 강대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가 보유한) 핵무기는 평화를 위협한다는 것이다. 이 명제의 '핵무기'가 핵무기 일반을 지칭한다면 당연히 미국이 보유한 핵무기도 평화를 위협한다. 프랑스가 보유한 핵무기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미국의 핵무기는 아무런 제제 없이 이동 배치되고 있다. 세계평화에 그토록 위협적인 핵무기도 미국의 손아귀에 있으면 안전하고 평화를 위해 상요된다는 보장이라도 있단 말인가? 핵 확산 금지 조약이 체결된 후에도 프랑스는 여전히 핵 실험을 강행했다. 그런데 왜 북한이나 이라크는 안 되나? 
(68쪽) 미국의 핵은 세계평화를 보장하고 북한이나 일본 그리고 한국의 핵은 세계평화를 위협할 것이라는 주장이 어떻게 옳을 수 있는가?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말이 있다. 힘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한반도는 언제라도 전쟁에 휘말릴 수 있다. 몇 년 전 북한의 핵 개발 정보를 접했을 때 미국은 공습과 같은 군사적 제재를 공식적으로 검토했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동의 없이, 아니 우리와는 아무런 상의도 없이 한반도에서 전쟁을 하려고 했던 것이다. 만약 미국이 실행에 옮겼다면, 우리는 우리의 의사나 결정과 관계없이 또다시 전쟁에 휘말릴 뻔했다. 이것이 주권이 있는 국가의 운명이란 말인가? 우리가 만약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었다면 미국이 우리를 배제한 채 그런 검토를 할 수 있었을까? 사태가 이토록 심각한데도 핵은 인류의 적이라는 미국의 구호를 앵무새처럼 외치는 것이 과연 이 땅의 지식인이 할 일인가?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진지한 논의로써 핵무장을 주장한 글은 처음이다. 읽은 지 한 달이 넘게 지난 지금 다시 정리를 하고 있는데, 여전히 납득하기 힘든 주장이다. 그만큼 내가 (글쓴이에 따르면) 강대국의 논리에 젖어있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핵무기가 확산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큰 정당성이 없어보이기는 하다. 인류의 목숨을 위협하는 무기는 핵무기 말고도 얼마든지 존재하는 상황이며, 최첨단 무기의 보고인 미국은 이라크 전쟁에서 미사일 폭격으로 당시 이라크군을 무참히 살상했으며 이라크 주요 시설을 폐허로 만들어버렸다. 과연 핵무기가 금지되어야 하는 정확한 근거는 무엇일까? 글쓴이의 말대로 단지 강대국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나고 있는 형국이라면 우리는 핵무장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것이 정당한 행위인지 판단하지 못하겠다.  

 

핵무장 주장이 워낙 강한 인상을 주는 의견인지라 그에 대해서만 길게 언급했지만, 전체적으로 분명히 올바른 말을 하고 있는 책이다. 출판된 지 10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의 주체성은 어떻게 확보되고 있을까. G20 회의를 주최한다고 해서 선진국이며 그만큼 주체적인 나라가 된 것일까?  

집 앞 어린이 영어학원에서 광고현수막을 걸었다. "이 땅의 모든 어린이가 영어가 되어야 합니다!" 국내 최대 영어학원 중 하나인 A학원의 차량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영어 수다쟁이가 되는 그날까지'. 우리 나라의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과 30분간 통화를 한 것이 자랑스럽다는 듯 뉴스에 보도되고 있다.(바로가기

아직은 멀었다고 생각한다. 분명 대한민국은 경제규모상 다른 나라들이 무시못할 위치에 올라섰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서양 특히 미국에 대한 짝사랑과 추종심은 떨쳐내지 못했다고 본다. 다른 사례로는 각종 음원사이트 인기순위에 올라온 가수들의 이름과 노래 제목들, 백화점 의류매장 점포들의 이름들을 생각해볼 수 도 있겠다.  

그래도 나는 희망을 간직하고 살아가려고 한다. 오늘 낮 허성도 교수의 강연 녹취록을 읽어봤다.(바로가기) 읽는 내내 전율을 느꼈다. 부끄럽게만 생각했던 조선왕조 말기의 무능함과 멸망이 아니라, 세계사적으로 유래가 없는 500년이라는 긴 세월의 단일왕조와 그들의 과학적 우수함을 볼 수가 있었다. 물론 조선이 위대한 나라였다고 무작정 주장하고싶지는 않다. 

지금 우리 상황이 마음에 안들지라도 대한민국은 분명 경제적으로는 엄청난 발전을 이루어냈다. 이제는 앞으로 더 좋은 방향으로 변화해갈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싶다.  

열흘 앞으로 다가온 G20 정상회담도 성공적으로 마무리짓기를 바라고, 우리 사회 우리 공동체가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더 따뜻한 마음을 가지는 나라가 되기도 바라며,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 앞에 주체적으로 설 수 있는 나라가 되기도 바란다.  

우리나라가 세계 앞에 주체적으로 설 수 있다고 자평할 수 있는 그날까지 이 책의 가치는 결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읽은 기간 : 2010년 9월 23 ~ 9월 24일 

정리 날짜 : 2010년 11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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