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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에 대하여
김화진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평점 :
짝사랑에 대한 알싸한 추억은 모두가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고백하지 못한 사랑이 마음속에서 고여와 결국 나 자신도 감당하지 못하는 크기가 되면서 나는 사랑하는 이 앞에서 더욱 작아지고 소극적으로 변한다. 그럴 때는 그 사랑은 실패한 것이다. 김화진 작가의 <나주에 대하여>를 읽으면서 미숙했던 그때의 생각이 났다.
소설집 <나주에 대하여>는 김화진 작가의 첫 소설집이다. 이 소설집을 읽고 나서 검색한 것이지만, 등단작인 <나주에 대하여>가 화제작으로 소문이 나서 소설을 읽는 독자들 사이에서는 기대주로 소문이 많이 났다고 한다. 나는 그런 소문을 들으면 껌뻑 넘어갈 정도로 귀가 얇은 편이라 소설집을 바로 구입했다. 책을 다 읽은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요즘 젊은 여성 작가가 문단에서 활약하는 일이 많은데 김화진 작가도 그런 작가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이 소설집의 키워드라고 할만한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바로 짝사랑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일하는 사람이라는 키워드다. 현대 사회에서 일한다는 것은 중요한 것이며, 그만큼 중요한 것은 바로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사랑은 대부분 실패한다.
소설 중에서 재미있게 느껴진 건 <새 이야기>, <나주에 대하여>, <적출기>, <쉬운 마음> 등등. 소설의 내용이 가물가물하여 다시 책을 뒤적이니 대부분의 단편이 좋았다는 감상이 따라온다. 그것도 참 쉽지 않은 일인데.
첫 작품인 <새 이야기>는 말 그대로 새 이야기다. 주인공이 좋아하는 남자에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여기까지만 하겠다. 읽으면서 이유리 작가나 임선우 작가의 소설이 생각났다. 한 장을 읽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면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내용이 나온다. 그 때문에 다음 내용이 뭘까 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이 소설도 짝사랑하는 내용인데 두 인물의 마음이 엇갈리다가 마지막에 겹치는 것이 좋았다. 아마 한쪽이 시한부인가 했던 거로 기억한다. 파. 오리, 포켓몬을 보시면서 소설을 쓰셨나.
<나주에 대하여>는 주인공 ‘나’가 헤어진 연인의 새 연인이었던 ‘나주’를 지켜보면서 써나가는 소설이다. 뭔가 요즘 잘 나가는 작가들의 등단작을 살펴보면 항상 느끼는 거지만, 좀 무섭다. 인물 구도가 좋으면서 그를 그려나가는 섬세한 묘사가 돋보이는 소설이었다. 나주에 대해서 말하지만, 결론적으로는 헤어진 ‘너’를 말하는 방식도 좀 놀라웠다. 작가가 어떤 식으로 소설을 쓰는지는 모르겠으나 이거 다 쓰고 좀 뿌듯해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쉬운 마음>은 퀴어를 소재로 한 소설이다. 주인공이 같이 일하는 연하의 직원을 짝사랑한다. 거의 마지막에 수록된 소설이고 여태까지 읽어온 패턴에 따르면 찬란하게 사랑이 망하려나 싶었는데 내 예상이 틀려서 그것도 좋았다. 주의 깊게 읽으면 복선이 보이기는 한다. <적출기>에서도 이런 복선이 나오는데 그런 점도 하나둘 찾으면서 읽으시기를. 대부분의 사랑이 실패한다는 점에서 현실주의자 같았던 작가도 이번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너무 불쌍했는지 다른 엔딩을 준비해놓으셨다. 하긴 소설을 읽으며 현실적인 걸 따지는 것도 웃긴 일이기는 하다.
<나주에 대하여>에 실린 소설들은 섬세한 묘사로 인간이 맺는 다양한 관계를 묘사했다는 점이 가장 좋았던 책이다.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