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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 제153회 나오키상 수상작
히가시야마 아키라 지음, 민경욱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2년 6월
평점 :
이 책의 저자는 히가시야마 아키라는 대만계 일본인이라는 특이한 이력을 가진 작가이다. 또한, 2015년 나오키상 수상 작가이기도 한데, 심사위원장인 히가시노 게이고가 나오키상이 제정된 이래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는 말로 이 소설을 극찬한 바 있다. 솔직히 말에서 책을 홍보하기 위한 문구는 항상 거창해서 어떤 소설은 삼국지를 뛰어넘기도 하고, 자유를 정의하기도 하는 등. 이 책을 읽으면 인생 하나 바꿀 것처럼 군다. 하지만 이 소설 <류>를 읽어본바. 히가시노 게이고가 이 책에 바친 헌사는 과장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개인적인 취향이 반영되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훌륭한 작품이기도 했다.
소설은 주인공이 10대 소년이던 1970년대의 타이베이에서 시작된다. 당시 대만은 한국 못지 않은 반공 국가였고, 중국 본토에서 중국인들을 몰고 대만을 점거한 장제스는 30년 넘게 계엄령을 선포해 대만인의 자유를 억압했다. 소설의 시작은 장제스의 죽음과 함께 주인공의 할아버지가 누군가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으로 시작된다. 생전에 항일 투쟁과 국공내전을 겪으면서 두려울 것 없이 살아간 할아버지는 ‘반세기의 청구서’를 받은 듯 무참히 살해당하고 하필이면 주인공이 그 광경을 목격한다. 이 사건은 주인공에게 전환점이 되는데 그전까지는 성실한 학생으로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게 목표였던 주인공은 점차 미끄러져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폭력이 횡횡하던 3류 고등학교로 전학 가게 된다. 싸움에 휘말려 다치고, 입시에는 실패하며, 첫사랑은 자신을 버리고 떠난다. 독자는 그 과정을 따라간다.
이 소설은 추리소설로 분류되었고 주인공은 한순간도 할아버지의 죽음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기에 범인이 누구인지를 상상하지만, 독재국가의 경찰이 그러하듯이 경찰은 무능하고 범인을 잡을 의욕을 가지지 않는다. 결국, 범인은 오래 잡히지 않고, 할아버지의 죽음은 한이 되어 주인공의 가슴에 남는다. 정석적인 추리소설의 형식을 포기하는 대신에 이 소설이 선택하는 것은 하나의 드라마이다. 소설은 1970~80년대의 대만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는데 그 시절 변화하는 대만거리의 냄새가 느껴질 정도다. 경제성장의 풍경으로 도시는 발달했지만, 그 때문에 하늘은 스모그로 가득하고 비참한 하류 인생들은 서로에게 폭력을 헤친다. 무협소설 마냥 의형제를 맺은 남자애들이 칼을 들고 설치고, 귀신에 대한 믿음으로 가득하다. 이 모든 것이 유머 가득한 문장으로 그려져 있다. 나는 유머 가득한 이야기를 좋아해서 정말 즐겁게 이 소설을 읽어나갔다.
그 모든 것을 재료로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타인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개개인의 깊은 한이나 슬픔 같은 것이다. ‘나는 물고기여서 당신은 내 눈물을 볼 수 없을 것이다.’ 라는 문장은 이 소설을 관통하는 소설이다.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며 그렇기에 비극은 완성되는 것이다. 그 서글픔에 온몸이 떨리듯이 감동했다.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작가는 한국에 잘 소개되지 않는 편이었는데 이 소설을 계기로 작가의 작품이 번역, 출판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