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걸 - 일본제국과 여성의 국민화 일본근대 스펙트럼 10
신하경 지음 / 논형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나베 세이코의 에세이 집인 <여자는 허벅지>에는 낳고 번식하라라는 제목의 수필이 있다. 그 수필은 태평양 전쟁 중, 고등학생이던 작가가 전시 중에 난무하는 표어 중에서 낳고 번식하라라는 표어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작가는 나름대로 그런 표어가 나온 이유를 생각한다. 그 이유란 지금은 전쟁 중이고 전쟁 중에는 많은 군인이 필요하고, 군인을 만들기 위해서라면 여성은 더 많은 아이(그중에서 남자아이)를 낳을 필요가 있다. 따라서 낳고 번식하라라는 표어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낳고 번식하라라는 말에서 작가의 분석 말고도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그것은 여성을 그저 아이 낳는 수단(그중에서 남자아이)으로 여기는 이러한 인식은 현대의 관점만이 아니더라도 야만적이라는 데에는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작가가 고등학생이던 시대는 1930년대 후반에서 1940년대 초로 한참 태평양 전쟁이 진행되는 시대였다. <모던걸>은 이러한 시대적 배경보다 이른 1920년대에서 만주사변이 일어나고 일본 전체에 황국 네셔널리즘이 정착하기 시작한 1930년대 중반까지 일본에서 등장한 모던걸이라고 불리는 일본 여성의 형태를 신문, 소설, 영화 등의 대중매체를 통해서 분석한 연구서다. 나로서는 이러한 형태의 연구서를 접한 게 처음이고 낯선 단어가 많이 등장하기에 독해가 쉽지 않은 부분도 있었지만, 그래도 한 사회를 학문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에서 나름의 재미도 느껴졌다.


우선 모던걸이라는 개념 혹은 실체가 탄생한 배경은 꽤 흥미롭다. 1923년 일어난 관동 대지진으로 파괴된 도시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과거의 구시가지를 정리하고 서양을 통해서 들어온 근대적인 양식의 생활이나 지식 들이 더 활발하게 보급된다. 극장을 통해서 적극적으로 서양의 영화들이 수입되고, 그 영화에서 보여주는 서양 여성들의 생활 양식이나 생각을 통해서 모던걸이라는 개념이 성립된다. 이러한 개념은 여성들 스스로가 만들었다기보다는 당시에 광범위하게 보급되기 시작되고 동시에 많은 영향을 끼치던 부인잡지같은 인쇄물의 보급을 통해서 확산되었다. 잡지에 글을 기고하던 당시의 지식인층은 이러한 모던걸이라는 개념을 적극적으로 보급했고 모던걸이라는 개념은 실체가 희미함에도 마치 많은 여성이 모던걸 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는 착시를 만들었다.


일반적으로 모던걸들은 서양식의 단발과 양장을 하는 외형적인 특징을 가지고 내면적으로도 서양식의 사고방식 예를 들자면, 자유연애, 반 가부장제, 남성에 의지하지 않는 주체적인 여성 등의 특징을 가지는 여성을 가리킨다. 이러한 모던 걸 들을 당대 일본인들의 평가는 확 갈리는데, 긍정적으로는 근대적인 생활 양식을 빨리 갖춘 선구자나 혹은 스스로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여성이라는 평가와 부정적으로는 정조관념이 부족한 창녀라는 평가다. 이러한 제각각의 인식으로 인해서 모던걸이라는 개념은 한마디로 규정하기 어렵다. 모던걸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들은 각각의 생각이나 인식을 통해서 그들을 각기 다르게 표현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모던걸 담론의 탄생과 소멸을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서 설명하고 있다. 모던걸의 탄생, 모던걸 개념의 정착과 그에 대한 여러 시각. 그리고 소멸. 이러한 과정은 역사적인 사건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것으로 설명된다.


먼저 탄생부터 설명하자면, 앞에서 말한 것처럼 관동 대지진이 일어나고 그에 의한 파괴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당시의 지식인층은 그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서양의 근대적인지식이나 생활 양식을 수입하기 시작했고, 영화는 그 생활 양식의 중요한 보급처 중 하나였다. 이러한 지식은 잡지와 같은 여성들이 자주 접하는 인쇄물을 통해서 여성들에게 소개되었고, 모던걸이 탄생한다.


점차 거리에는 모던걸이라고 지칭되는 여성들이 등장한다. 이 책에서는 이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 없이 당대의 영화나 소설을 통해서 묘사되는 모던걸에 대해서 서술할 뿐이지만, 영화나 소설에서 모던걸을 표상한 등장인물들이 늘어난 것에는 그만큼 실제 사회에서도 그러한 형태의 여성들이 많이 등장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의 2장에서는 당대 일본의 영화사에서 여배우들을 분류하는 방식을 설명한다. 더 세밀한 분류가 존재하지만 크게 1.아가씨 형 2. 현모양처 형, 3.유녀 형. 4.모던걸 형.이 그것이다. 이러한 분류는 영화사에서 편의적으로 여배우들을 분류하는 방식이지만, 당대의 일반인들도 이러한 영화사의 분류와 유사한 시각을 가졌을 것이라는 추측은 무리가 없어 보인다.

사회에 실체적인 모습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모던걸들을 일본인들은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봤고 많은 사람이 그들에게 가지는 시선은 섹슈얼리티적인 상상력이 가미된 시선이었지만, 동시에 그들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시선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당시의 세계는 미국에서 시작된 대공항으로 인해서 경제적인 대혼란이 발생했고 그건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실업률이 늘어나고 농산물 가격이 크게 폭락해 많은 노동자가 빈민으로 전락했다. 사회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듯이 노동자들의 쟁의와 그들이 일으키는 각종 소요사태가 계속해서 일어났다. 그리고 이러한 불안정한 상황은 사회주의가 퍼지기에 좋은 상황이었고, 각각의 사회주의자들은 새롭게 등장한 모던걸들을 기존의 가부장제를 부정하고 여성해방을 위한 하나의 대안으로서 여겨졌다. 물론 그들 내부에서도 가부장제를 옹호함으로써 페미니즘 운동 자체를 부정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모던걸이라는 하나의 현상을 단순한 유행이 아닌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바라봤다는 점에서 그들의 논의는 의미가 있다. 그리고 1930년대 초부터 국가의 대대적인 탄압으로 일본에서의 사회주의 운동이 완전히 몰락하는 시점에서부터 모던걸에 대한 이러한 논의는 서서히 사라지게 된다.


1931년 만주사변이 시작되고, 사회주의 운동이 완전히 실패하는 시점에서부터 모던걸에 대한 다양한 논의는 점차 황국-내셔널리즘이라고 지칭되는 일본의 국가주의에 완전히 삼켜져 서서히 사라진다. 그 이전까지 모던걸과 같은 다양한 개성을 지니던 일본의 여성들은 국가에서 요구하는 한 가지 형태의 여성형인 현모양처가 되기를 강요당한다. 앞에서 용감한 군인들이 싸우고 뒤에 남은 여성들은 그들이 비운 자리를 채우고, 남성이 자리를 비운 가정을 다정하게 지키는 그런 여성들 말이다.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나며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고 더 극심해지는 광기 속에서 여성들은 낳고 번식하라라는 표어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하나의 인간이 아닌 전쟁을 수행할 군인을 생산하는 수단으로 격하되었고, 이러한 인식은 위안부 문제라는 인류사에서 전무후무한 범죄를 일으키는 하나의 원인이었을 것이다.


모던걸의 탄생에서 소멸까지의 과정을 통해서 당시 일본 사회가 모던걸을 통해서 분출된 다양한 요구들을 철저하게 무시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무시는 후에 일어난 모던걸과 흡사한 현상이 일어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저자는 갈등이 갈등으로 남아있는 한, 역사는 반복되고 비슷한 사건은 계속해서 일어난다고 말한다. 1930년대의 일본의 문화를 연구한 이 책이 과연 우리의 사회와도 무관한 일일까. 우리의 역사 속에서 분출된 수많은 여성의 요구는 이 책에서 서술된 모던걸들의 소멸처럼 무시되다가 요즈음에는 거대한 해일이 되어서 돌아왔다. 우리 사회가 이 해일을 피하기에만 급급하고 결과적으로 더 큰 문제로 커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이 문제에 대한 철저한 자기반성과 성찰 그리고 실질적인 행동이 필요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른 사람 - 제22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강화길 지음 / 한겨레출판 / 201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 2017년 젊은 작가상 수상집에는 좋은 소설들이 많았다. 강화길 작가의 호수-괜찮은 사람도 내가 좋다고 생각한 소설 중 하나였다. 여성의 일상적인 불안을 소재로 추리 소설 적인 플롯을 사용해. 누가누구인지 헷갈리게 하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 소설 뒤의 해설이 내 의견과 비슷해서 흥미롭다는 생각도 들었었다.

 

강화길 작가의 첫 번째 장편 소설인 다른 사람은 한겨레 문학상을 수상한 소설이다. 요즘에는 문학상을 수상한다고 해서 그만큼 책이 잘 팔리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 번 읽을 소설책을 선택하는 기준으로는 나쁘지 않는 기준이다. 크게는 노벨 문학상이든 일본의 문학상이든 문학상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온 책을 읽고 나쁘다는 생각이 든 적은 별로 없었다.

 

아무래도 지난번에 읽었던, 작가의 소설인 호수-괜찮은 사람과도 자연스럽게 비교하면서 읽게 되었는데, 몇 가지 키워드 적인 측면에서 두 소설은 비슷하게 느껴졌다. 그 키워드들은 호수’, ‘생존자’, ‘애매함등이다. 이 외에도 몇몇 문장이나 장면이 앞서 쓰인 호수-괜찮은 사람에서 보았던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다른 사람의 시작은 주인공인 진아가 트위터에서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찾다가 시작된다. 소설이 시작되기 전에 진아는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직장 상사이자 연인에게 폭행당하고 죽을 뻔 하다가 그를 신고하고 인터넷에 그 일을 올리지만,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동료에 의해서 평소 두 사람의 연애에 있었던 일이 폭로당하고, 인터넷에서는 진아를 옹호하는 사람과 비난하는 사람들 사이에 진흙탕 같은 싸움이 일어나고 그 과정에서 회사에 물의를 일으켰다는이유로 회사를 퇴직하게 된다. 오히려 가해자는 계속해서 회사에서 일을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 된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아이러니한 일일까? 작년에 일어난 한샘 여직원 성폭행 사건만 하더라도, 진아가 겪은 일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둘 다 가해자는 피해자의 상사였고, 그 우월적인 지위를 이용해. 사건을 일으켰다. 그 사건이 공론화 되는 과정에서 회사의 대응 또한 비슷하다. 피해자의 행실을 거론하며, 가해자를 두둔한다. 완벽한 인간이 어디에 있는가. 완벽한 피해자는 어디에 있는가. 인간은 누구에게나 단점이 존재하며, 그 사건 자체에서 피해자의 단점은 어떤 점을 미치는가. 자신은 어떤 짓을 하더라도 맞으면 안 되면서. 피해자가 맞을 짓을 했다는 말은 왜 하는가? 진아가 겪은 일은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서 새롭지도 않다.


그러한 과정에서 진아의 정신은 피폐해지고 진아 스스로는 자신에 대해서 말하는 실체 없는 말을 찾아다니면서,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복기한다. 친구하나 없는 서울에서 자신을 도와주는 사람은 없었다. 결국 매일 방에 있으면서 하루하루 삶을 소모하며 지내고 있다가 한 문장을 발견한다. 자신의 이름이 언급된 그 말은 이렇다. ‘김진아는 거짓말쟁이다. 진공청소기 같은 년그 순간 진아는 12년 전 자신의 대학생 시절을 회상한다. 진공청소기는 그녀의 동기 중 하나인 하유리의 별명이었고 그녀는 12년 전에 교통사고로 죽었다. 진아는 그 트위터의 말의 출처를 찾아서 12년 전 대학생활을 한 전라도의 지방 도시인 안진으로 향한다.

 

소설은 그 지점에서부터 죽은 하유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추적하는 추리소설로 변모한다. 물론 이 소설은 추리를 하는 과정을 즐기기 위해서 만들어진 소설이 아니므로 그 추적의 과정은 투박하고 엉성하다. 과거의 여러 사람의 기억이 맞춰지고 진실의 조각이 하나하나 맞춰진다. 그 맞춰지는 과정이 선사하는 긴장감은 이 소설을 읽어 나가는 하나의 재미이기도 하다.

 

전에 읽은 작가의 소설이 그러했듯이 이 소설이 추구하는 바는 페미니즘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진아는 성폭행 피해자이고 소설에 등장하는 꽤나 많은 수의 인물들이 성폭행 피해자들이다. 작가가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는 부분은 준 강간문제로 준 강간이란 성행위를 하는 과정에서 한쪽이 의식이 없거나 상호간의 완벽한 합의가 되지 않았을 때. 한쪽에 의해서 일어나는 경우를 말한다. 앞에서 말한 한샘 여직원 성폭행 사건의 경우에도 이러한 준 강간이란 개념에 의해서 논란이 일어났다. 많은 준 강간사건의 경우. 사건이 일어난 경우에 많은 사람들은 여자들이 왜 적극적으로 의사 표현을 하지 않았는지 비난하고는 한다. 이 소설에서는 그러한 적극적인 의사 표현이 불가능한 상황을 예시로 보여주고 이해하게 해준다.

 

그러나 이 소설이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음에도 그에 그치지 않고 문학적이기도 하다. 그 문학적 인 것의 근원은 바로 이 소설이 추구하는 애매함에 있다. 300페이지가 넘는 이 소설은 각 장에서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진아의 시점에서 다른 등장인물들을 보고 진아의 생각으로 그들을 평가한다. 다른 인물들의 시점에서 진행될 때는 진아는 본인이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다름은 당연히 부정적인 모습이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작가는 성폭행 피해자인 진아에게 몰릴 수 있는 감정적인 집중을 분산시킨다. 소설에서 진아는 누군가에게는 피해자이지만, 동시에 가해자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가해자로서의 모습은 성폭행 생존자가 된 진아가 죄책감을 가지고 사건을 진행시키는 힘이기도 하다.

 

이 소설에서는 많은 성폭행 생존자들이 등장한다.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재앙에 의해서 한 사람의 생이 망가지고 그러고 나서도 소문이 무서워 스스로 쉬쉬하고, 용기를 내서 싸우려고 해도 도와주는 사람은 별로 없다. 경찰이든 회사든, 남자든 여자든, 결국 서로를 돕는 것은 같은 생존자들뿐이다.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많은 충격을 받았지만, 이 소설을 읽고 나서는 더한 충격을 받았다. 개인적은 평가로는 이 소설을 82년생 김지영보다 앞줄에 두고 싶다. 사회를 고발하는 것을 넘어서 문학적인 성취까지 이뤄낸 이 소설을 쓰기 위해서 작가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지 한 문장 한 문장 읽을 때마다 느껴진다. 부디 계속 소설을 써주었으면 좋겠다. 당신의 다음 소설을 읽을 독자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독한 하루 - <만약은 없다> 두번째 이야기
남궁인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친구와 내가 처음으로 소설 창작 수업을 들었을 때다. 처음 무슨 소설을 써야 될지 고민 되었던 친구는 자신을 소재로 한, 즉 처음 소설을 써야하는 문예창작과 학생을 소재로 소설을 썼다. 그 소설을 본 동기들은 너무나도 익숙한 친구의 소설에 혹평을 쏟아냈다. 그러나 그 소설을 본 교수님은 이 소설이 문예창작과를 다니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익숙할 지도 모르겠지만, 일반 독자들의 눈에는 특이한 소설로 느낄 것 이라고 격려해주었고, 교수님의 격려는 친구에게 여태까지 글을 쓰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맥주를 마시면서 들은 친구의 얘기가 생각난 것은 이 책의 저자가 의사이기 때문이다 의사가 이 책을 읽는다면 평범하게 느낄까. 적어도 내게는 이 책은 평범한 책이 아니었다. 많은 것을 알게 해준 책이었고 많은 것을 이해하게 해준 책이다. 단순히 지식을 얻는 것을 넘어 그 이상, 즉 이해를 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좋은 문학의 조건이다. 본문에서 본인을 의술을 행하는 의사라고 소개하는 작가는, 기록의 의미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본인의 의도와는 다르게 하나의 문학을 행했다. 그것은 본인이 겪은 처참한 체험이 만들어낸, 하나의 성취일 것이다. 좋은 문학을 행하는 것을 꿈으로 삼은 나에게 그것은 부러워해야 하는 것일까.

 

이 책은 병원 응급실을 책임지는 의사로서의 경험을 기록한 에세이 집이다. 각 편의 에세이들은 의사로서 환자들을 치료하는 과정과 그 결과를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그 기록은 처참하고 지독하다. 나는 책을 읽다가도 고개를 돌려서 몇 번이나 책을 외면하고 싶었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는 죽음이 가득했다. 그 일관된 죽음의 기록들을 읽으면서 나는 내 뒤로 죽음이 가까이에 있는 듯 한 스산함을 느꼈다.

 

응급실에는 하루에도 수십 명의 환자들이 몰려온다. 사람들은 가벼운 찰과상이나 별것 아닌 이상으로 응급실을 찾아오고는 한다. 그러나 그 중에는 죽어가는 사람들이 찾아오기도 한다. 저자는 의학책에는 죽음을 명확하게 규정한 말이 없다는 말을 한다. 죽음은 존재하지만, 의학은 그 상태를 조금은 늦출 수 있다. 의학적인 처방이 없는 상태에서는 반드시 죽는 사람도 의학적인 처방이 가해진다면, 그 사람은 살수도 있는 것이다. 응급실은 그렇게 죽어가는 사람들의 목숨 줄을 이어서 각 전문의의 수술실에 넣는 역할을 하는 장소다.

 

그리고 사람들은 계속해서 죽어간다. 수술실에 들어가던 들어가지 않던, 의사와 각고의 노력을 행하더라도 사람들은 계속해서 죽어간다. 어떤 사람들은 수술을 받고 살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수술을 받아도 죽는다. 수술실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응급실에서 죽는 사람도 있다. 노인들은 늙고 병들어 죽고, 젊은 사람들은 사고를 당하거나 자살을 해서 죽는다. 어린아이들도 죽는다. 아이들은 장난을 치다가 사고를 당하고, 쓰레기 같은 부모에게 맞아죽고, 태어났을 때부터 가진 희귀한 질병 때문에 죽는다. 죽음의 행진은 계속된다. 우리가 뉴스에서 보는 사고의 결과들이 모이는 곳이 병원이다. 죽음에 얽힌 비극은 이 책속에 너무나도 풍부해서 나는 눈물도 나지 않았다.

 

모든 죽음은 결국에는 원인이 있고 그 원인은 결국에는 사회의 병폐들과도 맞닿아 있다. 불완전한 산업시설 덕분에 살아있는 노동자들이 산채로 태워지고, 무책임한 부모들을 방치한 사회 덕에 아이는 평생 동안 치료되지 않을 장애를 가지게 되었다. 전쟁이 실종된 이 시대에 병원은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전쟁터다. 그리고 응급실은 그 전쟁터의 최전선이다. 그 죽음의 원인은 어떤 것은 죽은 자 스스로의 것이고 어떤 것은 사회의 책임도 존재한다. 그리나 그 책임의 최종적인 책임자는 그들을 살리기 위해서 노력하는 의료진과 구급대원들이다.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실패했을 때. 그들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는다. 그리고 죽음의 원인이 무엇이든 그 결과에 최후의 책임을 지는 그들을 나는 동정한다.

 

이 책을 읽고 나는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책의 저자는 최근에 이국종 교수를 비판한 김종대 의원을 강하게 비판한 적이 있다. 의사 협회는 사퇴까지 하라며 비판했다. 나는 그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김종대 의원은 분명히 얼간이였다. 그를 그 자리까지 가게 만들어준 지식과 신념이 그의 눈을 가리고 그를 대한민국에서 가장 멍청한 사람 중 하나로 만들었다. 나는 많은 의사 지망생들이 성형외과나 치과를 선택한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돈의 문제가 아닌, 한 인간의 목숨을 책임지고 노력한다는 것. 그리고 그 노력이 실패했을 때의 충격과 중압감. 사명감과 소명만이 그것을 감당할 의지를 줄 수 있을까? 나는 자신 할 수 없다.

 

책의 표지 뒤편에 실린 가수 요조의 소개 글은 이 책을 가장 완벽하게 표현한 글이 아닐까 한다. 비극을 목도한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잠시 그것을 외면하는 충동에 시달리고 그러나 잠시 뒤에는 그 비극을 응시할 수밖에 없는 사실에 체념하고 그 비극을 응시한다. 이 책에는 수많은 죽음이 기록되어 있고, 그 죽음은 대게 비극이다. 마음 약한 사람들은 이 책을 읽지 않기를 권하고 싶다. 티비와 영화와 소설 속에서 수많은 죽음을 접하는 우리들이지만, 진실한 죽음의 기록을 눈앞에 두고 슬퍼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언제 들어도 좋은 말 - 이석원 이야기 산문집
이석원 지음 / 그책 / 2015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의 표지에는 많은 정보가 담겨있다. 제목이나 작가의 이름은 이 책이 어떤 책인지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가 담겨있다. 어떤 책의 경우에는 제목과 작가 이름마저 작품의 일부로서 작동하기도 한다. 책표지의 그림에는 작품의 분위기를 대략적으로 보여주면서도 독자들이 이 책을 사고 싶게 만들어야 할 편집자의 고뇌가 담겨있다.

 

작가 이름 옆에 쓰인 소설’, ‘장편소설같은 짧은 단어에도 어느 정도의 정보가 담겨있기 마련이다. 단편집은 지음혹은 소설장편소설은 장편소설이라는 말도 정확하게 전달해야 한다. 나 같은 경우에는 장편소설인줄 알고 골라든 책이 알고 보니 단편집인가 했을 경우, 왠지 모르게 방해 받는다는 기분도 느낀다. 일반적인 방식 말고도 역사소설이나 가상소설’ ‘실화소설같은 말이 붙어있으면, 왜 이런 잡스러운 말을 붙였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 그 책들을 조용히 제자리에 돌려놓는다.

 

최근에 이석원 씨의 책인 보통의 존재언제 들어도 좋은 말을 읽었다. 보통의 존재의 경우 평범하게 이석원 산문이라는 말이 써있지만, 언제 들어도 좋은 말에는 이야기산문이라는 낯선 이름이 적혀있었다. 이야기 산문이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소설까지는 아니고 소설 비슷한 이야기를 풀어놓기는 하지만, 소설까지는 아닌 그런 책이라는 말인가. 대충 이런 생각을 했는데, 그 생각은 그대로 맞았다.

 

보통의 존재는 마흔 살이 다 되가는 음악인 이석원 씨가 과거와 현재에 일어난 사건에 자신의 생각을 묻혀서 쓴, 일기장에 나와 있을 만한 글들을 모아놓은 산문집이다. 길지 않은 결혼생활에 대한 감정들, 자신이 과거에 어떤 연애를 했고, 얼마나 돼먹지 않은 삶을 살아왔는지 같은 것들, 한 권의 책까지 낸 사람이 평소에 책을 한권도 책을 읽지 않고, 읽지도 않으면서 서점에 가면 책을 한바구니 가득 산다는 부러운 말도 한다. 이 책은 이석원이라는 사람을 내밀하게 기록한 글들을 모아놓았기에 이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이석원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알게 된다. 본인은 스스로를 한심하다고 여기는 듯하지만, 이 책을 읽은 한 사람의 독자로서 내린 평가는 이석원이라는 개인 혹은 그의 삶은 꽤나 매력적이라는 것이다.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은 앞에서 말했듯이 이야기 산문이라는 말에 충실한 책이다. 내용은 이석원이라는 이름의 화자와 매력적인 정신과 여의사의 만남과 연애를 다룬 책이다. 작가의 실명을 그대로 사용했기에 이게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 아니면, 작가가 잘 꾸며낸 구라인지 헷갈린다. 소설과 연애 썰 사이에서 교묘하게 줄다리기를 하는데 묘하게 재미있다. 때때로 소설을 읽는 독자는 소설속의 화자가 작가 본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책의 경우에는 그걸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은 겉으로는 사십대 작가와 삼십대 여의사의 연애 스토리 정도로 보이지만, 속으로는 앞의 책인 보통의 존재의 변주로서 비슷한 목소리와 생각을 공유한다. 관계에 대한 고민,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들, 보통의 존재는 2009년에 출판되었고 6년 후,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이 출판되었다. 6년이라는 시간은 한사람의 고민이나 걱정을 해결하기에는 짧은 시간이었나 보다. 아니 어쩌면 더 골치 아팠을 수도 있다. 보통의 존재의 말미에서 글쓰기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 작가는 기뻐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글쓰기가 가져다주는 고통을 진득하게 경험한다. 희망이 있다고 인생이 쉬워지는 건 아닌 모양이다.

 

P.S 처음 보통의 존재라는 제목을 봤을 때. 나는 그 뜻이 연인이 헤어지고,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의 감정이 서서히 무뎌지고 마침내는 매일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일반적인 사람으로 변하는. 그런 의미인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책에서 나오는 의미보다 내가 멋대로 상상한 의미가 더 낭만적으로 느껴진다.

 

P.S 2 이 책들을 읽고 연달아서 허지웅의 에세이집을 읽었다. 의도한건 아닌데 두 작가의 나이는 엇비슷하고 둘 다 이혼을 한 경력이 있다. 그래서인지 두 작가의 글에는 인간은 홀로 살아간다는 고독감과 관계의 끝을 경험한 시니컬함이 묻어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공기 도미노 오늘의 젊은 작가 15
최영건 지음 / 민음사 / 201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번 안했던 일을 다시 하려니 이리저리 핑계만 대다가 읽은 지 한참 되는 오늘에서야 글을 쓴다. 문예지를 구독하지 않는 한 젊은 작가를 접하기는 쉽지가 않다. 그나마 이름이 알려진 작가도 전체 소설가에 비하면 아주 한정된 숫자일 뿐이다. 그렇기에 민음사에서 나오는 젊은 작가전이라는 이름의 소설 시리즈의 취지는 좋다고 생각한다. 나 같은 경우에도 이 시리즈를 접하면서 전에는 모르던 작가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시리즈의 모든 작품을 좋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개중에는 괜찮은 소설도 있었고, 내 생각을 바꾼 소설도 있었으며, 읽고 내가 뭘 읽은 거지 하고 의문스러운 소설도 있었다. 이번에 읽은 <공기 도미노>의 경우에는 읽고 나서 느낀 감정은 앞의 감상 중 세 번째의 것이었다. 책을 읽는 중에 내용이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아서 뒷부분을 다시 읽기도 해서 짧은 분량의 소설임에도 읽는 시간이 꽤나 많이 들여야 했다. 아니 사실은 읽기가 싫었다. 분량이 짧았기에 다 읽을 수 있었을 뿐. 분량이 이것보다 많았다면, 읽는 것을 포기했을 지도 모르겠다.

 

책의 표지에 장편소설이라고 적혀있기는 하지만 사실 그런 말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연작 소설에 가깝다. 여섯 장으로 나눠진 소설은 각 장에 새로 등장하는 인물들이 있고, 소설의 시점 또한 그들의 시점으로 바뀐다. ‘연주라는 등장인물과 멀거나 혹은 가깝게 관련 되어 있는 것을 제외한다면, 각장의 스토리는 서로가 별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1장은 연주가 할머니의 애인을 데리러 갔다가 애인의 가족의 불행한 가정사를 목격하는 내용이고 2장에서는 뜬금없이 연주가 운영하는 카페의 알바생이 카페에서 밀회를 하다 카페를 탈출하는 내용이다. 3장에서는 불륜을 하는 요가 강사를 욕하러 고향의 친구 엄마가 찾아가는 드라마에서 나오는 작위적인 내용이다. 4장은 연주의 할머니가 5장에서는 4장에 나온 연주의 남자친구의 아는 형이다. 6장에서는 1장에서 등장하는 부잣집 사모님이 다시 등장한다. 연주라는 인물의 가정사에 가깝거나 멀게나마 관련된 것이 아니라면, 각각의 장이 미완된 단편 소설이라고 할 정도로 내용들이 상이하고, 소설로서의 유기성이 부족하게 느껴졌다.

 

또 각장이 시작될 때. 몇 문단 정도 장면을 묘사하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그 한 문단 안에 너무 많은 문장이 들어가 있어서 장면을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한다기 보다는 문장의 어색함이 느껴졌다. 특히 3장의 첫 번째 문단이 그렇다. 그중에서 가장 어색한 것은 소설의 관찰자적 시점이 보여주는 전능함이다. 단순히 등장인물들의 생각이나 행동을 넘어서 그들의 삶을 평가하고, ‘이들은 어떤 사람이다라는 것을 적시하는 몇몇 부분은 미숙하게 느껴졌다.

 

200페이지도 안 되는 짧은 소설 안에 열 명이 넘는 등장인물이 등장한다. 독자가 그 인물이 누구라는 것을 인지하기도 전에 작가는 문장을 통해서 그들이 누구인지를 모두 적시한다. 이런 부분이 너무 많은 등장인물이 등장하는 것을 인지하고 작가가 취한 조치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부분 때문인지 나는 이 소설이 무슨 말을 하고 그들의 행동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이해하거나 평가 할 수 없었다. 새로 등장인물이 등장하고 그들이 행동을 하지만,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원래 소설을 읽고 나서는 뒤에 실려 있고는 하는 비평가의 글을 읽지 않는 편이지만, 이 소설 같은 경우에는 소설이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아서 읽어보았다. 그제 서야 이 소설이 무엇을 썼는지 조금 감이 잡혔다. 하지만 비평가의 글을 읽고 서야 이해된다니. 어떤 소설의 비평을 하는 일을 필요는 하지만, 책을 읽는 데는 중요하지 않는 요소로 여기는 나로서는 이 책의 뒤편에 실린 비평이 이 소설의 설명서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가전제품을 사용하기 위해서 설명서를 읽는 것처럼. 비평이 하나의 의견이 아닌 소설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소설. 이런 소설을 나는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는가.

 

어떤 소설이든 그 소설 안에는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이 담겨있다. 그 말은 대놓고 보이기도 하고 배배꼬아나서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될 때도 있다. 이 소설에서 말하는 말은 무엇일까. 한 가족의 비극적인 가족사와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인간군상? 그러나 이 소설에서 연주의 비극은 그렇게 비극적이지도 않고. 주변의 인간들은 작위적인 설정과 상황들로 채워져 있어. 인간을 묘사하는 것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히스테릭한 등장인물과 그에 휘둘리는 등장인물들이 보일 뿐이다. 차라리 이 소설이 미완의 작품이라면 나는 더 나은 평가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완성되었고 책의 형태로 세상에 나왔다. 이 소설에서 하는 말을 듣기위해서 13000원이라는 돈과 책을 읽는 몇 시간의 시간을 들어야 하는가? 이 소설을 읽는 독자로서 나는 아니라고 말한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USUSALON 2017-11-15 08: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설보다 더 재밌는 리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