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 - 제22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강화길 지음 / 한겨레출판 / 201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 2017년 젊은 작가상 수상집에는 좋은 소설들이 많았다. 강화길 작가의 호수-괜찮은 사람도 내가 좋다고 생각한 소설 중 하나였다. 여성의 일상적인 불안을 소재로 추리 소설 적인 플롯을 사용해. 누가누구인지 헷갈리게 하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 소설 뒤의 해설이 내 의견과 비슷해서 흥미롭다는 생각도 들었었다.

 

강화길 작가의 첫 번째 장편 소설인 다른 사람은 한겨레 문학상을 수상한 소설이다. 요즘에는 문학상을 수상한다고 해서 그만큼 책이 잘 팔리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 번 읽을 소설책을 선택하는 기준으로는 나쁘지 않는 기준이다. 크게는 노벨 문학상이든 일본의 문학상이든 문학상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온 책을 읽고 나쁘다는 생각이 든 적은 별로 없었다.

 

아무래도 지난번에 읽었던, 작가의 소설인 호수-괜찮은 사람과도 자연스럽게 비교하면서 읽게 되었는데, 몇 가지 키워드 적인 측면에서 두 소설은 비슷하게 느껴졌다. 그 키워드들은 호수’, ‘생존자’, ‘애매함등이다. 이 외에도 몇몇 문장이나 장면이 앞서 쓰인 호수-괜찮은 사람에서 보았던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다른 사람의 시작은 주인공인 진아가 트위터에서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찾다가 시작된다. 소설이 시작되기 전에 진아는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직장 상사이자 연인에게 폭행당하고 죽을 뻔 하다가 그를 신고하고 인터넷에 그 일을 올리지만,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동료에 의해서 평소 두 사람의 연애에 있었던 일이 폭로당하고, 인터넷에서는 진아를 옹호하는 사람과 비난하는 사람들 사이에 진흙탕 같은 싸움이 일어나고 그 과정에서 회사에 물의를 일으켰다는이유로 회사를 퇴직하게 된다. 오히려 가해자는 계속해서 회사에서 일을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 된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아이러니한 일일까? 작년에 일어난 한샘 여직원 성폭행 사건만 하더라도, 진아가 겪은 일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둘 다 가해자는 피해자의 상사였고, 그 우월적인 지위를 이용해. 사건을 일으켰다. 그 사건이 공론화 되는 과정에서 회사의 대응 또한 비슷하다. 피해자의 행실을 거론하며, 가해자를 두둔한다. 완벽한 인간이 어디에 있는가. 완벽한 피해자는 어디에 있는가. 인간은 누구에게나 단점이 존재하며, 그 사건 자체에서 피해자의 단점은 어떤 점을 미치는가. 자신은 어떤 짓을 하더라도 맞으면 안 되면서. 피해자가 맞을 짓을 했다는 말은 왜 하는가? 진아가 겪은 일은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서 새롭지도 않다.


그러한 과정에서 진아의 정신은 피폐해지고 진아 스스로는 자신에 대해서 말하는 실체 없는 말을 찾아다니면서,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복기한다. 친구하나 없는 서울에서 자신을 도와주는 사람은 없었다. 결국 매일 방에 있으면서 하루하루 삶을 소모하며 지내고 있다가 한 문장을 발견한다. 자신의 이름이 언급된 그 말은 이렇다. ‘김진아는 거짓말쟁이다. 진공청소기 같은 년그 순간 진아는 12년 전 자신의 대학생 시절을 회상한다. 진공청소기는 그녀의 동기 중 하나인 하유리의 별명이었고 그녀는 12년 전에 교통사고로 죽었다. 진아는 그 트위터의 말의 출처를 찾아서 12년 전 대학생활을 한 전라도의 지방 도시인 안진으로 향한다.

 

소설은 그 지점에서부터 죽은 하유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추적하는 추리소설로 변모한다. 물론 이 소설은 추리를 하는 과정을 즐기기 위해서 만들어진 소설이 아니므로 그 추적의 과정은 투박하고 엉성하다. 과거의 여러 사람의 기억이 맞춰지고 진실의 조각이 하나하나 맞춰진다. 그 맞춰지는 과정이 선사하는 긴장감은 이 소설을 읽어 나가는 하나의 재미이기도 하다.

 

전에 읽은 작가의 소설이 그러했듯이 이 소설이 추구하는 바는 페미니즘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진아는 성폭행 피해자이고 소설에 등장하는 꽤나 많은 수의 인물들이 성폭행 피해자들이다. 작가가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는 부분은 준 강간문제로 준 강간이란 성행위를 하는 과정에서 한쪽이 의식이 없거나 상호간의 완벽한 합의가 되지 않았을 때. 한쪽에 의해서 일어나는 경우를 말한다. 앞에서 말한 한샘 여직원 성폭행 사건의 경우에도 이러한 준 강간이란 개념에 의해서 논란이 일어났다. 많은 준 강간사건의 경우. 사건이 일어난 경우에 많은 사람들은 여자들이 왜 적극적으로 의사 표현을 하지 않았는지 비난하고는 한다. 이 소설에서는 그러한 적극적인 의사 표현이 불가능한 상황을 예시로 보여주고 이해하게 해준다.

 

그러나 이 소설이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음에도 그에 그치지 않고 문학적이기도 하다. 그 문학적 인 것의 근원은 바로 이 소설이 추구하는 애매함에 있다. 300페이지가 넘는 이 소설은 각 장에서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진아의 시점에서 다른 등장인물들을 보고 진아의 생각으로 그들을 평가한다. 다른 인물들의 시점에서 진행될 때는 진아는 본인이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다름은 당연히 부정적인 모습이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작가는 성폭행 피해자인 진아에게 몰릴 수 있는 감정적인 집중을 분산시킨다. 소설에서 진아는 누군가에게는 피해자이지만, 동시에 가해자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가해자로서의 모습은 성폭행 생존자가 된 진아가 죄책감을 가지고 사건을 진행시키는 힘이기도 하다.

 

이 소설에서는 많은 성폭행 생존자들이 등장한다.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재앙에 의해서 한 사람의 생이 망가지고 그러고 나서도 소문이 무서워 스스로 쉬쉬하고, 용기를 내서 싸우려고 해도 도와주는 사람은 별로 없다. 경찰이든 회사든, 남자든 여자든, 결국 서로를 돕는 것은 같은 생존자들뿐이다.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많은 충격을 받았지만, 이 소설을 읽고 나서는 더한 충격을 받았다. 개인적은 평가로는 이 소설을 82년생 김지영보다 앞줄에 두고 싶다. 사회를 고발하는 것을 넘어서 문학적인 성취까지 이뤄낸 이 소설을 쓰기 위해서 작가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지 한 문장 한 문장 읽을 때마다 느껴진다. 부디 계속 소설을 써주었으면 좋겠다. 당신의 다음 소설을 읽을 독자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