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하루 - <만약은 없다> 두번째 이야기
남궁인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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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내가 처음으로 소설 창작 수업을 들었을 때다. 처음 무슨 소설을 써야 될지 고민 되었던 친구는 자신을 소재로 한, 즉 처음 소설을 써야하는 문예창작과 학생을 소재로 소설을 썼다. 그 소설을 본 동기들은 너무나도 익숙한 친구의 소설에 혹평을 쏟아냈다. 그러나 그 소설을 본 교수님은 이 소설이 문예창작과를 다니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익숙할 지도 모르겠지만, 일반 독자들의 눈에는 특이한 소설로 느낄 것 이라고 격려해주었고, 교수님의 격려는 친구에게 여태까지 글을 쓰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맥주를 마시면서 들은 친구의 얘기가 생각난 것은 이 책의 저자가 의사이기 때문이다 의사가 이 책을 읽는다면 평범하게 느낄까. 적어도 내게는 이 책은 평범한 책이 아니었다. 많은 것을 알게 해준 책이었고 많은 것을 이해하게 해준 책이다. 단순히 지식을 얻는 것을 넘어 그 이상, 즉 이해를 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좋은 문학의 조건이다. 본문에서 본인을 의술을 행하는 의사라고 소개하는 작가는, 기록의 의미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본인의 의도와는 다르게 하나의 문학을 행했다. 그것은 본인이 겪은 처참한 체험이 만들어낸, 하나의 성취일 것이다. 좋은 문학을 행하는 것을 꿈으로 삼은 나에게 그것은 부러워해야 하는 것일까.

 

이 책은 병원 응급실을 책임지는 의사로서의 경험을 기록한 에세이 집이다. 각 편의 에세이들은 의사로서 환자들을 치료하는 과정과 그 결과를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그 기록은 처참하고 지독하다. 나는 책을 읽다가도 고개를 돌려서 몇 번이나 책을 외면하고 싶었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는 죽음이 가득했다. 그 일관된 죽음의 기록들을 읽으면서 나는 내 뒤로 죽음이 가까이에 있는 듯 한 스산함을 느꼈다.

 

응급실에는 하루에도 수십 명의 환자들이 몰려온다. 사람들은 가벼운 찰과상이나 별것 아닌 이상으로 응급실을 찾아오고는 한다. 그러나 그 중에는 죽어가는 사람들이 찾아오기도 한다. 저자는 의학책에는 죽음을 명확하게 규정한 말이 없다는 말을 한다. 죽음은 존재하지만, 의학은 그 상태를 조금은 늦출 수 있다. 의학적인 처방이 없는 상태에서는 반드시 죽는 사람도 의학적인 처방이 가해진다면, 그 사람은 살수도 있는 것이다. 응급실은 그렇게 죽어가는 사람들의 목숨 줄을 이어서 각 전문의의 수술실에 넣는 역할을 하는 장소다.

 

그리고 사람들은 계속해서 죽어간다. 수술실에 들어가던 들어가지 않던, 의사와 각고의 노력을 행하더라도 사람들은 계속해서 죽어간다. 어떤 사람들은 수술을 받고 살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수술을 받아도 죽는다. 수술실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응급실에서 죽는 사람도 있다. 노인들은 늙고 병들어 죽고, 젊은 사람들은 사고를 당하거나 자살을 해서 죽는다. 어린아이들도 죽는다. 아이들은 장난을 치다가 사고를 당하고, 쓰레기 같은 부모에게 맞아죽고, 태어났을 때부터 가진 희귀한 질병 때문에 죽는다. 죽음의 행진은 계속된다. 우리가 뉴스에서 보는 사고의 결과들이 모이는 곳이 병원이다. 죽음에 얽힌 비극은 이 책속에 너무나도 풍부해서 나는 눈물도 나지 않았다.

 

모든 죽음은 결국에는 원인이 있고 그 원인은 결국에는 사회의 병폐들과도 맞닿아 있다. 불완전한 산업시설 덕분에 살아있는 노동자들이 산채로 태워지고, 무책임한 부모들을 방치한 사회 덕에 아이는 평생 동안 치료되지 않을 장애를 가지게 되었다. 전쟁이 실종된 이 시대에 병원은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전쟁터다. 그리고 응급실은 그 전쟁터의 최전선이다. 그 죽음의 원인은 어떤 것은 죽은 자 스스로의 것이고 어떤 것은 사회의 책임도 존재한다. 그리나 그 책임의 최종적인 책임자는 그들을 살리기 위해서 노력하는 의료진과 구급대원들이다.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실패했을 때. 그들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는다. 그리고 죽음의 원인이 무엇이든 그 결과에 최후의 책임을 지는 그들을 나는 동정한다.

 

이 책을 읽고 나는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책의 저자는 최근에 이국종 교수를 비판한 김종대 의원을 강하게 비판한 적이 있다. 의사 협회는 사퇴까지 하라며 비판했다. 나는 그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김종대 의원은 분명히 얼간이였다. 그를 그 자리까지 가게 만들어준 지식과 신념이 그의 눈을 가리고 그를 대한민국에서 가장 멍청한 사람 중 하나로 만들었다. 나는 많은 의사 지망생들이 성형외과나 치과를 선택한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돈의 문제가 아닌, 한 인간의 목숨을 책임지고 노력한다는 것. 그리고 그 노력이 실패했을 때의 충격과 중압감. 사명감과 소명만이 그것을 감당할 의지를 줄 수 있을까? 나는 자신 할 수 없다.

 

책의 표지 뒤편에 실린 가수 요조의 소개 글은 이 책을 가장 완벽하게 표현한 글이 아닐까 한다. 비극을 목도한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잠시 그것을 외면하는 충동에 시달리고 그러나 잠시 뒤에는 그 비극을 응시할 수밖에 없는 사실에 체념하고 그 비극을 응시한다. 이 책에는 수많은 죽음이 기록되어 있고, 그 죽음은 대게 비극이다. 마음 약한 사람들은 이 책을 읽지 않기를 권하고 싶다. 티비와 영화와 소설 속에서 수많은 죽음을 접하는 우리들이지만, 진실한 죽음의 기록을 눈앞에 두고 슬퍼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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