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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제5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 - 루나 + 블랙박스와의 인터뷰 + 옛날 옛적 판교에서 + 책이 된 남자 + 신께서는 아이들 + 후루룩 쩝접 맛있는
서윤빈 외 지음 / 허블 / 2022년 5월
평점 :
제 5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집
여태까지 5회 진행된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들을 모두 읽어본 결과. 시간이 가면 갈수록 SF소설들의 수준이 높아진다 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지난 회차의 소설들보다 더욱 수준이 높다고 할까? 1,2회까지는 대체적으로 그다지 좋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근 몇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수상작들의 수준이 대체적으로 높아졌다. 기존 SF작가들이 방심하면 새로운 작가들에게 금방 재쳐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상 수상작 ‘루나’는 제주도 해녀의 모습을 우주를 유영하는 해녀라는 이미지로 변화시키는 특이한 소재를 사용하였다. 소설적인 재미는 솔직히 뒤에 있는 가작 수상작들이 더 재미있었지만, 대상작이 지니는 특유의 분위기와 ‘우주 해녀’라는 소재가 더 가산점을 주지 않았나 싶다. 이 소설 중간에는 <솔라리스>라는 SF계의 고전이 언급되는데 대놓고 그 소설을 오마주를 했다. 설명되지 않는 현상, 타인에 대한 설명되지 않는 애착과 같은 소재는 솔라리스라는 소설을 읽은 입장에선 반갑게 다가왔다. 심사위원들은 SF라는 장르를 폭넓게 이해하고 있고 ‘루나’의 서사 저변에 깔린 이런 분위기를 잘 캐치한 것 같다. 만약 이점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 소설은 서사가 불완전한 소설이라고 이해될 여지도 있는 듯하다. 아무튼, <솔라리스>의 오마주로나 우주해녀라는 이미지가 신선한 소설이라고 느꼈다.
우수상인 <블랙박스와의 인터뷰>는 미래 세계의 장애라는 소재를 잘 캐치한 소설로 보인다. 최근 국내 SF는 단순히 소수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거나 이야기하는 대신에 미래 사회에서 벌어질 수 있는 여러 사건들을 매개로 사희의 여러 문제를 재현하는 방향으로 변화하는 것 같다. 이런 점은 미국과 같이 SF가 더욱 발달한 곳에서 보여지는 특징인데 한국도 이를 충실히 따라가는 것 같아서 기뻤다.
<옛날 옛적 판교에서>는 이 소설집에서 정통적인 SF에서 벗어난 소설로 보였다. 분위기가 독특했고 문장이나 소설의 사건이 색다르게 전개되어서 작가의 스킬이 좋구나 생각했다. 사실 대상작이나 우수상 수상작은 소설이 표현하려고 한 여러 이미지나 의견이 좋다고 느껴졌지. 소설로서 읽는 맛이 있다고 생각되진 않았다. 이 소설과 뒤에 있을 여러 소설은 소재도 특이하고 내용도 흥미로워서 읽는 맛이 있는 소설이었다.
<책이 된 남자>는 동로마 시대를 바탕으로 한 SF소설로 우주와 컴퓨터가 등장하지 않지만 그 개념을 바탕으로 쓰인 새로운 SF다. 사실 이 소설이 수상작 중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다. 전뇌화라는 소재를 동로마 시대로 변용해서 만들어진 소설로서 인간적인 등장인물들도 매력적이었다. 이과에서 프로그래밍을 전공한 것인지 글자를 통해 전뇌화하는 과정을 상세하게 묘사해놔서 대단한 하드 SF로 느껴졌다. 그만큼 재미있게 느껴졌다.
<신께서는 아이들을>은 섬으로 가는 아이들이라는 이야기를 통해서 세월호를 은유한 이야기라고 추측했다. 개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하는 이야기가 신과 아이들로 이어지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후루룩 쩝접 맛있는>은 수상한 실험에 참가하다가 요상한 진실을 알게 된다는 이야기로 작가의 후기가 재미있었다. 본인은 동물권이나 비건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지만 소설을 쓰다보니 결과가 다른 이야기가 되었다는 참 재미있고도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많은 작가가 증언하지만 소설이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김영하 작가가 그랬듯이 때로는 작가가 소설을 쓰는 것이 아닌 소설가의 몸을 통해 세상에 나타나기도 한다.
한국 SF의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는 소설집이었다. 특이하고 다양한 소재나 새로운 형식의 이야기가 마음껏 등장해서 정말 즐겁게 읽고 한국 SF의 발전이 이 정도구나 하며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