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우 없는 세계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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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소설을 읽고 굉장한 충격을 받을 때의 기분을 좋아한다. 사실 지금은 잘 느끼지 못하는 감각이기는 하다. 많은 책을 읽어왔고 그런 만큼 이야기를 받아들일 때마다 심드렁해지는 모습은 성장이기도 하지만, 독서의 즐거움이 감퇴되었다는 걸 의미하기도 하다.

 

백온유 작가는 이전 작품인 <유원>이나 <페퍼민트>를 읽어왔기에 기억에 남았다. 둘 다 좋은 작품이었다. 청소년 소설임에도 꽤 무거운 주제를 다뤄서 특히 기억에 남았다. <페퍼민트>는 청소년이 병든 부모를 간병하는 정말 무거운 소재를 선택해서 어려운 이야기를 선택하다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랑 나는 동갑인데 이런 작품을 쓰는 사람이 있구나 생각했었다.

 

그런 이전의 경험이 있기에 작가의 신작인<경우 없는 세계>도 별 고민 없이 구매할 수 있었다. 믿고 읽는 작가라는 말이 진부하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그 말이 틀린 경험도 많이 해봤기에 그 말 자체는 동의하지 않지만. 이번에는 그 말이 맞았다. 이 소설은 백온유 작가의 이전 작품과 마찬가지로 청소년들의 무거운 현실을 그려나간다. 이번에는 가출 청소년이 주인공인 소설이다.

 

뉴스만 보면 청소년들의 무시무시한 범죄가 보도되는 시대에 이 소설은 그 뉴스 이면에 감춰진 가출 청소년들이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니깐 그들이 왜 도둑질을 하며, 범죄를 저지르며 살게 되었는지 말이다.

 

주인공 인수는 성인이 되어서도 괴로운 10대의 기억에 괴로워한다. 인수의 10대는 지옥이었다. 부모는 인수와 불화했다. 특히 아버지는 남들보다 생각이 느린 인수를 자신의 수치로 여겼고 답답해했다.

 

흔히 가출 청소년들이 왜 멀쩡한 집을 놔두고 가출을 하냐는 물음을 할 때가 있다. 그 답은 간단한데 그건 집이 지옥이기 때문이다. 인수가 가출하고 보니 가출하는 아이들은 정말 가출할 이유밖에 없었다. 가출한 인수는 화장실에서 자기도 하고 돈이 있을 때는 피시방에서 밤을 새우기도 하며 노숙자들 옆에서 밥을 얻어먹는다.

 

작중 인수는 상식과 동떨어진 결정을 하고 남들에게서 멍청하다는 평가를 자주 듣는다. 책을 읽기 전에 경계선 지능 장애에 대한 개념을 알고 있기에 인수라는 인물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넘어서 너무나도 잘 이해하게 되었다. 남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상식적인 행동과 결정을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대한민국 사회의 문제는 그들의 실제적인 어려움을 그 사람의 탓으로 돌린다는 것이다. 인수는 매일 경계선에서 아슬아슬하게 살아간다. 그를 도와주고 그나마 이해 비슷하게 해주는 건 어른들이 아니라 같은 가출한 아이들이다.

 

백온유 작가는 이전에 청소년 소설을 쓰는 작가로 알려졌는데 이번 < 경우 없는 세계>는 가출 청소년의 세계, 범죄와 악의 경계에서 위태롭게 살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왜 청소년 소설로 나오지 않았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오히려 그렇기에 이 소설을 탄생할 수 있었다.

 

요즘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작가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는데 그들의 작품을 읽고 이번 소설을 읽어보니 백온유 작가가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찬사를 보내는 게 민망하지만, 주인공인 인수가 성인이 되어서 도달하게 된 모습과 이 제목의 의미를 이해하는 순간의 묵직한 감동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이 까탈스러운 독자가 당신은 최고라는 찬사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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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나지 않음, 형사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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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한 중국 문학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들의 대표적인 작가라고 할 수 있는 모옌이나 위화같은 작가의 소설을 읽어 본적이 없다. 대신에 감명 깊게 읽은 것은 김용의 신조협려같은 무협소설이나 류츠신의 삼체라는 SF소설이다. 전자의 경우에는 너무 유명하니 따로 할 말이 없지만, 우리에게는 거의 불모지인 중국의 SF소설을 읽는 것은 꽤나 특이한 경험이었다. 그러나 중국의 SF시장은 꽤나 커서 다수의 팬이 존재하며 그들을 위해서 소설을 쓰는 작가도 많다. 삼체도 그러한 소설 중 하나로 중국내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단위로 인정받는 소설이기도 하다. SF소설이 수상할 수 있는 상중 가장 명망 높은 상인 휴고상을 수상했다.


중국 SF에 이어서 중국 추리 소설이라니 특이했다. 국내에 소개된 외국 추리 소설이라면 일본의 추리 소설이 대표적이고 나도 일본 소설을 읽어왔다. 일본 추리소설 속에서 중국 추리소설이 덩그러니 놓여있었기에 이 책을 산 걸지도 모르겠다. 휴일의 여유로운 일정 덕에 하루 만에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만족스러운 독서였다. 전날에 적게 잠을 자서 피곤했음에도 한번 책에 몰입하자 쉴 틈 없이 책을 읽어 나갈 수 있었다.


이 소설은 기억에 관한 소설이다. 주인공인 쉬유이는 홍콩의 형사로 둥청아파트에서 일어난 잔인한 살인사건을 수사하고 있다가 불연 듯 차안에서 깨어난다. 머리에 심한 두통을 겪는 와중에도 쉬유이는 경찰서를 찾아가고, 그곳에서 묘한 기시감을 느끼다. 둥청아파트 살인사건이 일어난 시점에서 6년이 지났음을 깨닫는다. 시간을 뛰어 넘은 것은 아니다. 쉬유이 자신이 지난 6년 동안의 기억을 잃어버린 것이다. 당장 병원에 달려가야 될 상황에도 불구하고 쉬유이는 자신의 시점으로 지난주에 일어난 둥청아파트 살인사건을 조사하기로 한다.


이렇게 줄거리를 써가면서 다시 이 소설에 대해서 생각해보니 개연성이 다소 부족하다는 느낌도 든다. 자세히 얘기하자면 치명적인 스포를 하는 것이니 말할 수는 없지만, 범인의 동기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고 느껴졌다. 과연 그러한 이유가 살인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소설의 완성도가 높다 보니 이정도 흠 정도는 너그럽게 넘어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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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보다 Vol. 1 얼음 SF 보다 1
곽재식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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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지성사에서 발간하는 보다시리즈는 <소설 보다>에서 시작해서 <시 보다>까지 꾸준히 챙겨 읽는 시리즈다. 출판 시장에서 SF라는 장르의 위상이 커지는 만큼 좋은 SF단편을 수집하려는 모양이구나! 하고 좋아했다. SF는 고정적으로 발표할 만한 지면이 그리 많지 않아서 이런 창구가 생긴다면 참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망해 버렸다.

 

이 소설집에 참여한 작가들의 면면을 보면 SF팬으로서 너무나도 익숙한 이름들이다. 곽재식, 구병모, 남유하, 박문영, 연여름, 천선란, 문지혁, 심완선 등이다. 한국 SF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들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이 중에서 문지혁 작가와 심완선 평론가는 책 앞 부분의 발취 문이나 책 뒤편의 해석 등을 담당했다.

 

소설집의 소재는 얼음인데, 작가들은 이 소재를 바탕으로 얼음에 뒤덮인 디스토피아나 움직임이 멈추는 정지의 상태를 보여주기도 했다.

 

첫 번째 곽재식 작가의 소설인 <얼어붙은 이야기>의 화자는 곽재식이다. 그러니깐 메타 소설인 건데... 곽재식 작가의 소설 중에 이런 유의 이야기를 좀 많이 봐 왔어서 응? 싶었다. 무엇보다도 너무 많은 출판을 하는 작가고 나도 시중에 출판된 그의 책을 여러 번 읽은 경험이 있어서 그의 문체를 아는데, 그런 책의 문체와 너무나도 비슷했다. 내가 중학생 때 곽재식 작가의 소설을 처음 읽고 받은 충격은 어디에 갔단 말인가... 요즘 작가의 인지도가 상승하면서 곽재식 속도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활발하게 글을 쓰는 건 좋지만 개인적으로 소설마저도 새롭지 않은 건 큰 문제인 것 같다. 이전 작가의 작법서를 읽었을 때는 작가로서의 기회 없음을 진지하게 성찰하고 고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기회가 온 지금에 와서는 작가로서 너무 비슷비슷한 작품을 써나가는 모습이 안타깝다.

 

구병모, 남유하 작가는 얼음이라는 키워드를 시작적으로 보여주는 얼음이 가득한 세계를 그려나간다. 구병모 작가는 애초에 취향이 아니었고, 남유하 작가의 작품은 상당히 잔혹해서 기억에 남았다. 박문영 작가의 <귓가의 세입자>는 얼음이라는 키워드를 가장 독특하게 해석했는데 이탈리아로 워크숍을 갔다가 대한민국이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현장에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그런 흥분에 동참하고 싶지 않아한다. 한국 축구가 월드컵에서 우승이라니 내가 SF가 아니라 판타지 소설을 읽는 듯했다. 키워드에서 가장 멀지만 그렇기에 가장 독특하고 재미있던 소설이었다.


이상하게 연여름 작가이 소설과 천선란 작가의 소설은 잘 기억에 남지 않았다. 아마 무난하게 좋아서 그랬을 것이다. 독자에게 기억에 남는 소설은 나쁘거나 아니면 좋은 경우이다. 이 까칠한 독자의 말에 귀 기울이지 마시기를, 내게 무난하다고 다른 독자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한 감상의 차이가 독서의 근원적인 속성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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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미술관 - 풍속화와 궁중기록화로 만나는 문화 절정기 조선의 특별한 순간들
탁현규 지음 / 블랙피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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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관련 책은 가끔 읽는 편인데, 어떤 특정 시대의 화가의 삶과 그의 그림을 동시에 다루는 형식일 때가 많다. 거기에 보통 서양 쪽 화가를 다룬 책을 보기에 마련인데, 조선의 여러 그림을 소재로 한 책은 처음 읽는 듯하다.

 

이 책은 제목인 <조선 미술관>이라는 말에 어울리듯이 조선 시대의 여러 그림을 보여주고 그에 관한 설명을 큐레이팅하듯이 들려주는 이야기다. 그림의 내용에 관한 큐레이터의 독자적인 해석과 더불어서 화가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 역사적인 사실까지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서 즐거우면서도 전문적인 지식이 가득 담긴 훌륭한 책이었다.

 

그림은 아예 낯선 화가가 아닌 우리에게도 친숙한 여러 화가를 다룬다. 김홍도나 정선, 신윤복 등을 다룬다. 나도 이름은 들어왔고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그림을 보아왔지만, 이 책에서는 유명한 화가의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그림을 주로 소개하고 있었다. 그를 통해서 나는 김홍도가 동물 그림을 정말 귀엽게 잘 그린다는 사실을, (강아지나 사슴이 정말 귀여웠다.) 신윤복 여성 설이 나도는 이유가 당대 화가들이 잘 그리지 않은 여성을 그림의 주체로 세웠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또 신윤복이 음흉한 스님을 그렇게 잘 그린다는 것도. 그 스님들이 좀 징그럽기는 했다.

 

조선 시대는 유독 기록을 남기는 것을 중시하던 시대였고 궁중의 그림도 예술이라기보다는 그런 기록을 보조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그럼에도 그 그림은 당시의 상황을 충실하게 재현함으로써 후대의 인물들에게 그림 속 인물들의 마음이나 감정 등을 알 수 있게 도와준다. 말미에는 미술관이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여러 화려하고 시각적이고 청각적인 전시를 늘려나가는 것이 아쉽다고 말한다. 미술관이 그림을 감상하는 곳이 아닌 하나의 체험을 위한 공간으로 변화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런 상황에서 책이 본래의 방식으로 그림을 감상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나는 거기에서 이 책의 저자가 가진 철학을 엿본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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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어떻게 읽는가 - 조지 손더스의 쓰기를 위한 읽기 수업
조지 손더스 지음, 정영목 옮김 / 어크로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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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작법서인줄 알았는데 읽어보니 문학을 읽는 다는 것의 즐거움을 깨우쳐주는 책에 더 가까웠다. 문학 오타쿠와 수다를 떠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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