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미친 바보 - 이덕무 산문집, 개정판
이덕무 지음, 권정원 옮김, 김영진 그림 / 미다스북스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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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看書痴, 看書痴, 看書痴, 看書痴, 看書痴, 看書痴, 看書痴, 看書痴, 看書痴, 看書痴    

책에 미친 바보...

이덕무라는 사람에 대해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학자의 표상이 되었을 이의 모습을 통해 오늘날을 살아가면 '삶'에 대해, '앎'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정신을 기쁘게 하고, 받아들이고, 식견을 넓히는!!

이덕무의 책을 읽는 이유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내게도 책을 읽는 이유이며, 평생 학습 시대라는 요즘의 생활에서 단순히 취업이나 성공만이 아닌 진정한 학습의 이유일 것이다. 자꾸만 잊게 되는 초심에 대해 다시 한번 일깨우는 계기를 던져준 이덕무의 삶...

그는 스스로 달필이 못된다 했지만, 상상을 초월한 그의 독서량이 녹아든 그의 글들은 그 섬세함이 돋보이는 매력을 주었다.

 

용촌 이광지의 독서법 혹은 공부법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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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째로, 서문/ 법례 / 저자 / 교정자 / 권질 수 / 목록 등으로 체제를 구분하고

  둘째로, 시간을 정해서 더도 덜도 말고 진행하여 과정이 여유를 갖고 정신력이 증진되도록 하며

  셋째로, 모르느 바를 찾아 가며 혹은 기록해 찾거나 물어가며 읽고

  넷째로, 책을 읽다 글맛이 없으면 잠시 3~40리를 천천히 산보하며 정신을 가다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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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방법은 이덕무는 물론 나에게도 체계적으로 책을 접하는 방법이 될 것 같아 함께 메모하며 살펴보았다.

이러한 방법을 통해 책을 접하고 알아가는 과정을 밟아 나가면.. 나도 이덕무와 같이 섬세한 필력을 갖출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희망~

 

책 요목조목에서 이덕무는 나름의 학습법을 제시하는데,이런 부분들이 눈이 가는 것은 무언가 배우는 것에 열망하는 내 특성만은 아니리라 믿는다. ^^

논문을 작성하거나 뭔가 보고서를 슬 때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하면... 좋은 점수는 따고 들어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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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째로, 경문을 충분히 외워야 하고

  둘째로, 여러 사람의 학설을 모두 참고하여 같은 점과 다른 점을 구별해서 장/단점을 비교해야 하며

  셋째로, 깊게 생각해서 의심나는 것을 풀이하되 자신감을 갖지 말고(자만하지 말라는 것!)

  넷째로, 사리에 밝게 분별해서 그릇된 것을 버리되, 감히 스스로만 옳다고 여기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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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기본은 예전과 지금이 같다는 것이지~

 

이덕무의 삶을 보면서 돌아가신 조부님이 생각났었다.

천상 학자시던 그분...

언젠가 사촌오빠가 할아버지 머리에는 컴퓨터 한대 분량의 책이 들어있을 것이라 한 적이 있는데...

이덕무는 용량이 얼마나 되려나~하는 잠시 딴 생각도 하고...

 

천상 선비인 그의 삶을 보면서 현대적인 측면과 맞지 않는 부분도 많지만, 이전이나 요즘이나 기본적인 것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의 말씀을 되새겨 듣는 듯 그의 말을 듣자면 다음과 같다.

 

집에서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밖에 나가서는 어른에게 공손하며, 낮에는 밭을 갈고, 밤에는 글을 읽는 일 뿐

이라는 선비의 본분은 비단 이덕무의 시대일 뿐 아니라 요즘의 시대에도 필요한 기본 덕목이 아닐까.

 

또한 어떤 일을 할 때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가의 문제에 있어서도,

억울한 마음을 다스리고ㅡ 욕심을 말고ㅡ 음식을 절제하고ㅡ 말을 조심하면 된다.

마음 다잡기가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며 더욱 힘들게 여겨지는 요즘에 있어 이러한 기본적인 사항들이 오히려 더 와닿는 이유는 이러한 부분들이 돌파구이기 때문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옛 사람들의 말이 지금과 다름이 없다는 것은 이덕무의 자녀관에서도 나타나는데,

일상생활에서는 남과 너무 다르게 할 것도 없지만, 구차하게 속세를 따를 필요도 없으며, 평범한 존재로 간단히 마음을 바로잡으면 된다.

과도하게 자녀교육 열풍에 휩사이거나, 튀는 아이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부모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한마디였다.

내가 후에 아이를 갖게 된다면 이러한 틀 안에서 아이를 양육하고 싶다는 생각이 함께 드는 부분이랄까?

 

 

사실 이덕무의 삶을 보면서 한가지에 미치도록 빠져 살아가는 그의 모습에 몰입의 즐거움을 누리는 그의 모습이 부럽기도 하는 한편, 답답한 면도 있었다.

요즈음의 사상과 그 당시의 사상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부분도 있지만...

그의 말마따라 게으르다 할 수 있을 정도로 생업에 대해 좋게 말하면 청렴이요, 나쁘게 말하면 민폐의 삶을 살아가는 그의 모습이...

내가 그의 가족이나 친구라면 심히 한탄하고 싶어지는 부분이랄까?

 

이러한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그의 看書痴(간서치)로서의 책에 대한 열망과 곧은 마음에 대해서는 가히 본받을만 하다고 생각한다.

 

마음을 밝히지 않으면 쓸데없는 생각이 저절로 가득 차게 되고, 몸을 규제하지 않으면 게으름이 저절로 생각나게 된다.

 

나보다 나은 사람은 존경하고 사모하며, 나와 같은 사람은 서로 아껴주고 격려해주며,

나만 못한 사람은 불쌍히 여겨 가르쳐준다면 이 세상은 자연히 태평해지리라.

 

      看書痴, 看書痴, 看書痴, 看書痴, 看書痴, 看書痴, 看書痴, 看書痴, 看書痴, 看書痴      


또한 이러한 하나의 대표적인 인물을 통해 그 당시의 시대에 대해, 그리고 짧막한 글들을 통해 그의 생활 전반에 대해 해설을 달고 이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통해 알기 쉽게 이를 펼쳐내준 역자, 권정운 선생에 대해서도  감탄하게 된 책이기도 하다.

누군가를 이렇게 열정적으로 탐구하기도 어려운 일이지만, 이를 해박한 지식을 통해 알기 쉽게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런면에서 역자의 이덕무 선생에 대한 사모(?)와 지식에 감탄하며~ 상당부분 함께 정리해 준 원서를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을 달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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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스케치 - MBC 헬기기장과 함께하는 특별한 비행
정갑표 지음 / 제이앤씨커뮤니티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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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 함께 푸른 창공을 마음껏 날아다닌 덕분일까?

잠자기에 관하여라면 누구에게도 빠지지 않고, 잠만보와도 잠자리 친구할 수 있는 내가 오늘 밤은 쉽게 잠이 오질 않는다.

 

하늘 스케치, 높은 창공을 날아다니며 하나하나 장면을 그려나가는 저자 정갑표씨는 군 간부 출신의 MBC 헬기 기장이다.

저자가 책 초반에 밝히고 있는 것처럼 그가 실제로 장면을 구상하고 담아내는 중심부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누구나 자기만의 자리에서 삶의 한 부분 부분을 채워나가듯 그도 그의 자리에서 우리가 무심코 보아 넘기는 TV 속 화면을 하나하나 만들어 내는 이이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방송사 헬기에 대하여 크게 관심도 없었고, 그렇다보니 뚜렷이 무엇이라는 개념 조차 없었다.

하지만 새로운 직업의 한 장르인 하늘을 누비는 그의 이야기를 통해 방송사 헬기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고,

무심코 보아 넘기던 하나하나가 많은 이들이 최상의 장면을 위해 노력하는, 때로는 목숨걸고 만들어내는 장면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인식하게 되었다.

 

직업적 특성으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좁다면 좁고 넓다면 넓은 우리나라 창공을 마음껏 누비고 다니는지라 다른 사람들과 조금은 다른 관점에서 하나하나 자신의 방송사 헬기 기장으로서의 삶을 반추하며 이야기를 풀어내는 그를 통해....

비행사라는 직업상 이를 조금 더 극면하게 느끼게 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큰 무언가 하늘의 테두리 안에서 조금만 더 둥글둥글하게 그러면서도 기본만은 유지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순리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다년간 같은 자리에서 말 그대로 서당개 삼년이 아닌 10년을 있던 자, 기장과

전문가이지만 새로운 분야에서 새롭게 움직이는 헬기 카메라맨 사이의 관계에 대한 그의 자그마한 푸념 아닌 푸념에서 이런 생각을 조금 더 갖게 되었는데,

결국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겸양하고 조화를 이루기 위해 조금씩만 양보하며 함께 한다면....

면지 면지마다 있는 맑은 구름처럼 그런 행복한 편안감에 감싸인 나날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하늘 스케치>를 읽으면서 생각하게 된 또 다른 하나는, 방송과 현상에 관한 부분이다.

특히 시위에 관한 부분에서 이를 느꼈는데, 저자의 말처럼 서로 이용하고 이용당하는 듯한 그런 미묘한 관계에 있어 어떤게 선행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무엇이 우선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닭과 달걀의 관계와 같은 딜레마가 느껴졌다.

방송사라는 특수한 직업적 입장에 의해 강렬하고 자극적인 사실일수록 더욱 가치가 높을 것 같은데, 특히 헬기라는 특수한 분야의 경우 이러한 측면이 더 강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이런 강렬한 사건들은 대부분 부정적인 사건들이기 마련이고,이러한 뉴스거리들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가 혼란의 상태에 빠져드는 것이 아닌가하는... 정작 담고 싶고 많아졌으면 싶은 소소하고 행복한 이야기들은 주말 영상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평온한 이야기들인데 말이다.

요즘 특히나 시끄러운 언론플레이, 앎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부분을 생각할 때...

이 부분은 한번쯤 생각해 봐야할 것이 아닌가 싶다.

 

한가지 예로 이번 일본의 대재앙의 경우 정작 당사국인 일본보다 우리나라에서 더 이슈가 되고 크게 보도가 되었다고 들었는데,

이러한 보도가 결국 혼란을 가중하여 사재기 열풍이 일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정작 재난국인 일본은 보도를 우리나라보다 자세히, 자주 방송하지 않은 것의 영향인지 이러한 모습이 적었다고...

그렇게 보면 언론이 오히려 혼란을 조장하는 폭진기 역할을 한 셈인데,

그렇다고 방송하지 않으면 알 권리에 대한 침해가 되니...

결국 중요한 것은 '적정성'이라는 것인데, 과연 적정선이란 뭘지 조금 고민이 되는 부분이다.

 

전반적으로 책을 보며 아쉬운 점이 몇가지 있었다.

원래 흠집은 큰 것이 아닌 자잘한 것에서 나타난다는 진리와 같은 몇가지 아쉬움!

 

우선, 전반적으로 책의 중간 중간에 과도한 친절(?)이신지 지나치게 쉬운 영단어에도 해설을 달아놓는다던지, 문맥상 명료한 단어들에 영문 해설을 달아놓은 점이다. 물론 헬기, 방송이라는 전문적 특성을 고려한 분야에 있어서의 자세한 기술은 궁금증을 해소해 주지만, 과잉 친절이 오히려 글을 읽는 흐름을 방해해서 조금 아쉬움을 느꼈다.

 

두번째로는 책의 부분부분에 삽입된 삽화의 경우, 저자의 말마따라 요즘처럼 카메라 및 인쇄 기술이 좋은 시점에..

더욱이 방송사에 재직하는 사람의 책인데도 삽입된 장면들이 마치 뉴스화면을 캐쳐한듯한 혹은 오래된 사진을 스캔하여 아무런 편집을 가하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들어 아쉬움이 남았다. 때떄로 이런 사진은 조금 크고 선명하게 삽입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던... 더불어 사진의 삽입 기준과 크기, 위치 등도 조금만 더 관심을 가져 주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욕심이 생기기도 한 책이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직업적 특성을 고려하여 이들 이야기 하나하나를 나름의 편집으로 엮어냈지만,

많은 내용을 제한된 페이지에 축약하기 위함인지, 혹은 원래의 의도가 단순한 나열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들 하나하나 저자만의 시선으로 조금은 특별한 해설이나 인물들에 대한 디테일한 스토리를 풀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이 책의 경우 홍보에 저자가 만난 특별한 사람들에 대한 언급이 왕왕 나타났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런 것에 비해서는 이 부분에 대한 내용이 단순한 한 개인의 경험의 사실 기술에서 종료되어 아쉬움이 있었다.

 

뭐, 이러한 아쉬움들을 뒤로 하더라도...

하나의 새로운 접하지 못하던 분야의 사람의 입으로 엮어지는 이야기를 듣는 새로운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책이었다.

더불어 헬기라는 분야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새록새록 솟아나기도 했고~^^

 

ps. 책에서도 잠시 언급이 되는 우리나라의 하늘길....

     이전에 카이스트라는 드라마를 통해 얼핏 언급되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비행의 고도 제한에 대한 아쉬움 말이다.

     갑자기 이러한 아쉬움과 마구잡이식 개발로 우리나라 하늘에는 얼키고 설킨 고압선 들로 새들이 자꾸만 죽는다는 이야기가 기억이 나버렸다.

      언젠가.. 과학이 많이 발전하고, 우리나라가 조금은 더 살기 좋은 나라가 되면...

      하늘 길도 마음껏 열리고, 푸른 하늘을 가린 얼키고 설킨 선들도 없어질 수 있겠지?

      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이런 나날이 오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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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앨런 글린 지음, 이은선 옮김 / 스크린셀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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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하얀 유혹, MDT48

 이 책을 보는 내내 이 한알의 알약에 대한 유혹을 지울 수가 없었다. 에디를 따라 책 속의 삶을 누비며 수많은 폐해를 보고 이에 대한 부작용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내 앞에 이와 동일한 유혹이 주어진다면, 글쎄... 수많은 고민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아니, 어쩌면 고민조차 없이 난 이 작은 유혹의 손길을 받아들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끝없는 갈망, 인간의 또 다른 본능
 

작품 속의 에디는 그저 평범한 우리의 모습이다.

한번 맛본 금단의 열매를 쉽사리 놀 수 없는 약한 인간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그의 모습은, 금기에 대한 갈망과 동시에 두려움을 느끼는, 그리고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는 인간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더불어 그에 대한 한없는 연민과 점차 그렇게 내몰리는 그리고 스스로를 내몰아가는 어리석음에 대해 한탄하면서도 공감이 되는 것은 나 또한 부족함이 많은 인간이기 때문이리라 애써 위안한다.

차라리 맛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관심과 열정과 천재의 감각 속에서 헤엄치는 그 열기를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맛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을 아주 달디 단, 결코 손을 뗄 수 없는 유혹이었을 것이다.  
 

조금만 더, 아주 조금만 더 가면 닿을 수 있을 것 같은 근접지대에 있는 사람들이 더 위험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단 한 알만 있으면, 100% 뇌를 활용하여 저 손조차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꿈같은 생활이 가능해지는데.. 아주 작은 도약이 아닌, 더 넓고 큰 곳으로 펼쳐질 것 같은 유혹을 이겨낼 수 있을까?

마치 경험에도 없는 어린시절 동네 어귀에서 소리친다는 신비의 묘약에 대한 갈망처럼 말이다.

또한 이러한 사이비 약들이 그러하듯...

일장춘몽에 취한 삶이 얼마나 쉬이 큰 반동을 그리며 돌아오는지 알 수 있음을 또 한번 경고하며 끝나지만...

뇌의 몇%던가... 일정 이상의 뇌를 활성화 할 경우 초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 신비의 약을 무자비하게 임상실험하는 그 정체불명의(아마도 추측은 가능한...) 사람들에 의해 계속적 실험이 이루어져 결함이 사라진다면... 인간은 신의 대열에 들어서는 것일까? 결국 인간이 꿈꾸는 신의 경지란 한계가 사라짐을 의미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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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보이는 것만 믿니?
벤 라이스 지음, 원지인 옮김 / 미래엔아이세움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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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레일리아의 오팔 광산 마을 라이트닝 리지,

다소 괴짜들이 모여사는 것과 같은 이 마을에 사는 순수한 꼬마 아가씨 '켈리앤'과 그녀의 보이지 않는 친구들 '포비'와 '딩언'을 소재로 펼쳐지는 이야기를 켈리앤의 오빠 '애슈몰'의 이야기로 풀어나가는 장편 동화이다.

켈리앤의 보이지 않는 친구들은 실제 존재하는 것마냥 가족과 마을 사람들 속에서 살아간다. 물론 애슈몰처럼 이를 인정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켈리앤은 그저 한심한 왕따일 뿐이다.

사건의 계기는 언제나처럼 일상의 한 부분에서 일어나는 것!

이들의 아빠가 켈리앤의 두 친구들을 광산으로 데리고 갔다 잊어버리는 사건을 계기로 펼쳐지는 이야기들은 친구를 잃고 병들어 버린 여동생을 위한 애슈몰의 재치넘치고 순수한 열정 어린 노력들과 이들을 지지하는 가족과 마을 사람들 속에서 따뜻한 감동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따뜻한 이야기이다.  
 

 

어린시절의 보물, 보이지 않는 친구♥

 

학령 전기의 대략 3~10세 정도의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 상상 속 친구들과의 놀이를 즐기고는 한다. 주로 학령기 초, 중반에 대다수 사라지는 이들은 아이들의 성장에 있어 자연스러운 발달의 한 모습이며 이 시기에 누릴 수 있는 커다란 선물이 아닌가 싶다.

아이들은 켈리앤의 포비와 딩언과 같은 친구들을 통해 안전하게 세상 속으로 나아가고 스스로를 지켜나간다. 어찌보면 켈리앤의 환경은 점차 고립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경제적인 이유와 기타 이유로 소원한 부모님의 관계, 한창 놀이의 관점이 다른 이성의 오빠, 다소 거칠다고도 할 수 있는 또래의 아이들 그리고 이들로부터 왕따 당하는 것은 켈리앤과 같이 아직 여린 아이에게는 어려운 현실이었을 것이다. 

켈리앤은 항상 포비와 딩언의 사이에 있음으로 해서 스스로 고립되지 않고 행복할 수 있었으며,  외부의 조건에 힘으로 대항할 수 없음을 평화주의자 친구를 갖음으로써 합리화할 수 있었으며, 세상의 속도에 맞춰 살아가기 힘듬을 포비의 절름발이로써 자신을 지켜냈다. 물론 켈리앤의 이러한 모습은 엄마와 주변 사람들의 강화로 인해 더 진해졌을 수도 있지만, 그녀의 친구들이 켈리앤에게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이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임은 달리 말하지 않아도 확연할 것이다.

아이들이 이러한 상상 속 친구들을 갖는 것은 안전하게 다양한 시도를 하며 성장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 되는 부분인데, 안타깝게도 한국의 아이들이 이런 상상 속 친구를 갖고 함께하는 확률이나 지속도가 외국의 아이들보다 적다는게 조금 서글픈 현실이다. 또한 이러한 소중한 친구들을 점차 성장하며 잃어 간다는 것도....

 

한동안 '동수'라는 이름으로 우리 사회에서도 다소 비꼬임이 들어갔지만 상상속 친구들에 대한 것이 이슈가 된 것이 있었다. 이들을 통해 우리는 또 다른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는데, 본문에도 나오는 것과 같은 보이지 않는 존재들에 대한 믿음이다.

포비와 딩언을 믿지 않았지만 그들로 인해 공경에 처하고, 그들에게 화를 느끼고, 또 장례식 등 기타 여러 사건들이 있었던 아빠의 대사처럼.... 그들은 보이지 않을 뿐 그들 가족, 그리고 이 마을 사람들에게는 존재하는 아이들이다.

픽션이라는 특성으로 인해 다소 과장된 부분이 존재하지만, 이들은 보이지 않을뿐 그들이 실질적으로 느끼고 체감하며 함께 하는 존재들인 것이다. 마치 신과 같이...

우리는 아무도 신을 보지 못했음에도 신을 존재한다고 믿는다. 아니, 그렇게 확정하고 자연스러운 진리로 받아들이는 이들도 있다. 그렇다면 존재에 대한 부분을 생각해 볼 때, 과연 실질적인 실체를 갖고 있는 것만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까?

비록 그들과 직접적으로 소통하거나 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어떤 존재감이 하나의 구체적 대상에게 어떻게든 영향을 미친다면 그들은 존재하고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짧고 가벼운 이야기 속에 참 많은 다양한 고민거리를 함께 제시해 주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책 속의 모든 이야기를 하나의 삽화로 담아낸 표지 그림도 참 동화 다운 특성을 고스란히 간직해 보여준다는 생각을 갖게 해준달까?

책 속의 이야기를 삽화 속에서 찾아가는 기분이 꼭 월리를 찾아라를 하는 기분이었는데, 이런 묘미는 어째 보너스적인 느낌이어서 더 행복해지게 하는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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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와 명상
임승택 지음 / 민족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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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점차 서양화 되는 동양과는 반대로 서양에서는 동양적인 것, 특히 불교적인 신념에 대한 관심이 높다고 한다. 이는 불교가 같는 사색적인 측면을 높이 산 것이라고 들었는데, 이 책은 그러한 관점에서 현대인들에게 어떠한 방향으로의 삶이 'well-being', 즉 잘 살아가는 방향인지에 대한 가이드를 제시해 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붓다는 불교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는데, 불교에 대한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선적으로 서양과 동양사상에서의 '종교'에 대한 부분의 이해가 선행되어져야 할 부분일 것이다.

종교에 대한 이념은 그 어원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는데, 서양에서의 종교는 'Religio; 즉 '다시 읽다'라는 것에서 유래한 것으로, 신앙을 주로 믿음, 하나님이라는 절대자와의 결합을 맹목적으로 믿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 불교의, 동양적 사상에서의 종교는 'sanskrit' 즉 '궁극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가르침'이라는 것으로 바른 견해에 대한 개인의 탐색을 토대로 이를 수용할 수 있다면, 본인의 믿음을 동요없이 지속해 나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서양과 동양에서 바라보는 종교의 관점의 차이를 토대로 생각할 때, 종교적 색채를 떠나 불교가 갖는 그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토대로 한 不志動의 마음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데 있어 스스로 중심을 잡고 자립해 나가야 한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하는, 필수적인 부분이 아닐까 싶다.

 

불교에서의 명상은 '잘 쉬는 방법'이라고 하는데, 있는 그대로의 수용을 통한 평온이라고 말하고 있다. 스트레스란 스스로에게 달린 것으로 보고 내면의 불편함에서 스스로 자유로워지는 것이라고 하는데, 불교는 어찌보면 인본주의적 상담과 그 맥을 같이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대목이기도 하다. 즉 스스로에 대한 능력의 믿음을 통해 마음속의 먼지를 닦아냄으로서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는 심리적 안정을 중요시하는 불교는 인간의 가능성을 믿고 이에 대해 힘을 실어 스스로 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는 면에서 그 가치를 받아들이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옳다고 생각하는 그것을 위한 투쟁이 아닌, 자신과 타인을 감싸 안을 수 있는 정서적 안정과 공감이 중요한 부분으로 강조되고 있는데, 예전에 존경하는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함께 생각나는 부분이었다. 그분께서는 살아가는 다양한 가족들의 모습, 문화적 특성들을 알게 되면서 이해하게 되고, 화를 낼 일이 없어졌다고 말씀하셨는데, 자신과 타인을 감싸 안을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그들을 알고 인정하며 함께 공감하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즉 특정한 입장에 사로 잡히는 것이 아닌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붓다의 가르침의 궁극적인 목적은 괴로움을 극복하고 즐거움을 얻는 것, 즉 행복하고 기쁘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한다. 인간이란 살아봐야 100년, 정말 운 좋아봐야 200년이라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세월을 살아가는 존재라는 점을 생각할 때, 즐겁고 행복하게 한 세상 살다가기도 바쁜데 과한 스트레스를 받고 불행과 슬픔에 젖아 사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그렇다고 모두 스님들마냥 세속을 떠나 살아갈 수는 없는 나름인데, 붓다는 재가자들을 위해서도 몇가지 교훈적 가르침을 통해 길을 제시해 주었다.

   1. 직업을 가져야 하며 근면하고 원기 왕성하게 일해야 한다.

   2. 땀 흘려 벌어들인 소득을 정당하게 관리하고 보존해야 한다.

   3. 바른길로 인도해 줄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

   4. 소득에 맞게 합리적으로 소비해야 한다.

 

또한 미래의 삶에서 안락함과 행복을 가져 오는 것의 네가지를 제시해 주었는데, 다음과 같다.

   1. 도덕적, 정신적 가치를 믿고 신뢰한다.

   2. 살생하고 훔치고 속이고 거짓말하는 등의 파괴적이고 해로운 생활을 멀리한다.

   3. 재화에 대한 애착과 같은 망상을 내지 말고 관용으로 베푼다.

   4. 번뇌를 없애고 열반의 경지로 이끌어주는 지혜를 닦는다.

 

참 놀랍지 않은가?

그가 살았던 세계는 지금으로부터 한참 전이고, 그에 따른 문화며 생활상이며 모든 것이 상이한 시대이다. 하지만 그가 내세우는 것들, 그리고 전한 가르침들은 지금 사회에 오히려 더 가치가 높아지면 높아지지 하락하지 않는 불변의 사항들을 내포하고 있다.

결국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한 그 무엇의 규칙에 의한 것처럼 똑같다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언제나 똑같이, '나'에 있다는 것이다.

'나'는 '나'일뿐 '너'가 될 수 없고, '너'는 '너'일뿐 '나'가 될 수 없다 .

스스로를 인정하고 감싸 안으며 '너'를 '너'로써, '나'를 '나'로써 감싸 안으며 기본적인 인간으로서의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간다면, 결국 무엇도 어려울 게 없다는 것.. 그것이 아닐까.

 

수행하는 동안 가장 중요한 것은 바른 마음가짐입니다.

집중해서 관찰하지 말고 억제해서 관찰하지 말고

억지로 관찰하지 말고 구속해서 관찰하지 말고

일어나도록 하지 말고 없어지도록 하지 마십시오.

일어나는 대로 없어지는 대로

잊지 말고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일어나도록 할 것 같으면 욕심,

없어지도록 할 것 같으면 분노,

일어나고 없어지는 것을 알지 못하면 어리석음입니다.

관찰하는 마음에 욕심, 분노, 근심 걱정이 없어야만

바르게 관찰하는 것이 됩니다.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수행을 하고 있는가.'라고

다시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바라는 마음이 없어야 하고

원하는 마음이 없어야 하고

염려하는 마음도 없어야 합니다.

그와 같은 조급한 마음들이

보는 마음 안에 도사리고 있을 것 같으면

수행이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마음으로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망상을 하고 있는가.

그것을 알고있는가.

마음이 어디에 가 있는가.

안에 있는가.

밖에 있는가.

알고 있는 마음

보고 있는 마음이

확실하게 알고 있는가.

대강 알고 있는가.

 

수행하는 마음은 차분하고 평화로우며 자유롭고 가벼워야 합니다.

몸과 마음에 편안함이 있어야 합니다.

마음이 긴장해서는 수행을 할 수 없습니다.

마음이 피곤하고 괴로우면 수행에 뭔가 하나가 결여된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피곤하고 괴로워지면 수행하는 것을 다시 점검해 보아야만 합니다.

 

바른 마음가짐이 있는가.

원하는 마음으로 되게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애쓰지 마십시오.

힘든 것만 남을 뿐입니다.

보이는 대상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한 걸음 뒤에 떨어져 머무는 마음, 보고 있는 마음가짐이 더 중요합니다.

보고 있는 마음가짐이 바르면 올바른 관찰 대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이토록 집중해서 보고 있는가.

원하는 마음, 되게 하고자 마음, 없애고자 하는 마음,

그들 중 어느 하나가 들어 있습니다.

 

수행을 한다는 것은 좋든지 싫든지 무엇이 발생하든지 모두 받아들이고 차분하게 지긋이 관찰하는 것일 뿐입니다.

좋은 것만을 원하고 나쁜 것을 멀리하려 한다면 옳지 않습니다.

좋은 것도 보아야 하고 나쁜 것도 보아야 할 뿐입니다.

 

- 본문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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