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사중주
김재준 외 지음 / 박영사 / 2004년 7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언어에 대한 나의 생각을 많은 부분 변화시켰다. 언어란 단순히 읽고 쓰고 말하는 기능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며, 언어를 잘 한다는 것은 단순히 국어를 잘 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 책은 언어를 매개로 읽고 쓰고 생각하는 연습을 하게 한다.

이 책은 서울대학교 동문인 4명의 교수들이 모여 언어와 창의성을 주제로 하여 쓴 것이다. 획일적인 문화를 싫어하고 말과 글, 생각의 중요성에 대해 자각하고 있던 이들은 진짜 공부는 생각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말한다. 있는 지식을 먼저, 많이 얻는 것이 공부가 아니라, 잘 모르는 문제라도 스스로 생각하여 해답을 찾아가는 방법을 익히는 것, 즉 지식을 스스로 ‘만드는’ 법을 익혀야 한다는 것이다.

먼저 ‘읽기’ 편에서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오이디프스』, 『춘향전』, 『공산당 선언』 등의 고전을 예로 들면서 텍스트 이면의 것을 보라고 말한다. 책을 통해 인생이란 무엇이며, 시대를 초월한 인간의 근본 문제는 무엇인지 인식하게 되고, 또 그 시대를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언어를 통해 언어를 넘어선 것을 보라는 말인데, 문제의 정답을 찾기에 급급한 우리의 교육 현실에서 내가 생각하는 것이 곧 답인, 정답이 없는 문제는 그 어떤 문제보다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답이 없는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일은 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도 진정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영어교실’ 편에서는 언어라는 것이 본디 문화의 산물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영어를 배울 때도 그 나라의 문화에 입각해 생각하는 연습부터 해야 한다고 말한다. 수학은 또 어떤가?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복잡한 수학공식에 몸서리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나로서는 수학, 하면 그저 복잡한 수식들의 나열로만 여겨지는데, ‘생각하기’ 편에서는 수학을 통해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연습을 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글짓기‘ 편에서는 글이 어떻게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으며, 좋은 글이란 무엇이고, 또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기에서 ’선녀와 나무꾼‘ 방법을 소개하는데, 나무꾼 혹은 선녀, 혹은 나무꾼의 어머니 등 다양한 사람들의 입장이 되어 이야기를 전개해보게 한다. 이런 훈련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게 되고 타인을 고려하게 되며 그들을 내 편으로 만드는 방법도 배우게 되는 것이다.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공부라고 하면 으레 책을 펴들고 달달 외우는 것이 전부였고, 국어공부조차 선생님이 설명을 해주시면 밑줄을 쭉 긋고 그대로 따라적고서 달달 외우는 식이었으니, 보이는 것을 보기에만도 급급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습관은 내 생활 전반에도 영향을 미쳤다. 대학을 가서나 사회에 나와서도 마찬가지다. 보이는 것만 보기, 밑줄 긋고 달달 외우기는 여전하다. 도무지 “왜”라는 질문을 할 줄 모른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고기를 잡아주는 것이 아니라 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는, 언어를 매개로 생각하는 법을 알려준다. “좋은 질문이 가장 위대한 대답보다 더 훌륭하다”고 한다. 그리고 ‘좋은 질문’은 생각 없이는 나올 수 없다.


이 책은 고등학생을 주독자로 삼고 있다고 한다. 사실 어렵게 쓰기로 작정한다면 더없이 어려울 수 있는 내용이지만, 선생님이 학생에게 이야기하는 대화 형식을 빌어서 학생의 입장에서 의문나는 점은 묻고 간간이 유머도 섞어가며 쉽게 풀어 쓰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고등학생들이 읽어도 좋겠지만, 대학생에게도 좋을 것 같다. 사실 대학에 처음 받을 디디면 갑작스럽게 주어지는 많은 자유가 좋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당혹스럽기도 하다. 수업을 듣거나 공부를 하면서도 방향을 잡지 못해 고민하기도 한다. 그런 때 이 책이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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