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혼자서 종이우산을 쓰고 가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9월
평점 :
‘전작들과 사뭇 다른 새로운 분위기의 신간’이라는 책 소개 글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분위기의 소설이다. 에쿠니 가오리 특유의 담백한 문체와 매력은 여전했지만 소개 글에 영향을 받은 탓인지 충격적인 시작과 함께 뭔가 다른 분위기를 감지하게 한다.
매년 같은 장소에 모여 세밑을 보내는 세 노인 시노다 간지, 시게모리 츠토무, 미야시타 치사코. 암으로 여명이 얼마 남지 않은 간지, 무슨 이유에서인지 가족이 아닌 지인 쥰이치에게 마지막을 부탁한 츠토무, 딸과 손자들의 반목을 지켜봐야 했던 치사코까지 평범한 듯 보이지만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있던 세 노인은 섣달그믐 밤 함께 모여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에 이른다. 이후, 이어지는 이야기는 세 노인과 남겨진 이들의 교차된 시선으로 평범한 세 노인과 남겨진 이들이 삶에서 느끼고 있던 공허함을 각자의 마음으로 담담히 풀어내간다.
세 노인의 극단적 선택을 계기로 한자리에 모이게 된 사람들. 책장을 넘기면서 계속 생각하게 되는 지점이 이었지만 이들이 한 날 한 시에 세상을 등진 이유는 어쩌면 자신들보다는 남겨진 이들을 위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한다. 반목하던 가족이 다시 마주하고, 세상과 떨어져 외로이 지내던 누군가가 이들을 계기로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하고,,, ‘낯섦의 순간이 파고든다’고 설명했던 문장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갖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보고 싶은 사람도 하나 없는 무료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 늘상 인생을 분주하다고 여기지만 사실을 마음 한자락 편히 둘 곳 없는 삶이 비단 섣달 그뭄날 밤 한자리에 모여 ‘자살’이라는 선택을 한 노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현실이 씁쓸하기만하다.
무슨 이유로 함께 죽음을 선택했는지 알 수 없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세 노인의 선택은 남은 이들의 일상을 조심스레 흔들어 놓는다. 외로움을 깨닫기 시작하고, 외로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움직임을 시작한다고 해야 할까,,,
세 노인의 죽음으로부터 출발하지만 삶 속의 다양한 인연을 설명하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고 저마다의 외로움을 풀어놓는 듯한 대화들이 외롭지 않은 것처럼 의연하게 살고 있지만 사실은 저마다 나름의 공허함을 지니고 있음을 마음껏 들어낸다. 혼자서, 종이우산을 쓰고 어두운 빗속을 걷고 있는 외로움이 눈앞으로 스쳐 지나가는 기분이 든다. 마지막 장을 넘기며 다시금 여운을 곱씹게 되는, 에쿠니 가오리 특유의 담담함이 듬뿍 묻어나는 소설이었다,
"장례식 다음은 결혼식인가. 가와이 쥰이치는 신랑 신부를 바라보면서 정말이지 인생이란 분주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p.101)
[ 네이버카페 소담북스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후기입니다. ]
#에쿠니가오리 #에쿠니가오리신간 #소담출판사 #꼼꼼꼼평가단12기 #추천신간 #추천도서 #혼자서종이우산을쓰고가다 #공허함 #외로움 #신유희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