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 1
조엘 디케르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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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커스 골드먼은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그의 스승이자 국민 작가로 칭송받는 해리 쿼버트와는 사제지간을 넘어서는 우정을 이어오고 있었다. 마커스는 다음 책을 집필하는 데 스승의 도움을 받고자 해리가 머무는 뉴햄프셔주 오로라에 가게 된다. 그후 몇 달 후 사건이 터진다.

 

해리 쿼버트의 저택 마당에서 33년 전 실종된 놀라 캘러건의 유해와 함께 해리의 책 <악의 기원>의 원고가 발견된다. 해리는 용의자로 지목되어 구치소에 수감 된다.

 

마커스는 해리의 무죄를 주장하며 직접 수사에 착수한다. 당시 34살이었던 해리는 15살인 놀라와 자신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음을 고백해서 충격을 안겨주는데.

 

사건을 조사하면서 마커스는 누군지 모르는 이로부터 계속 협박을 받고, 의외의 인물이 계속 수면 위로 떠오르고 사건은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로 치닫는다.

 

두꺼운 분량임에도 흡입력 있는 전개로 빠르게 읽어나갔다. 책은 기본적인 사건을 중심으로 그것을 둘러싼 인물들의 감춰진 모습을 통해, 혹은 마커스가 속한 출판업계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기도 해서 씁쓸함을 주기도 한다. 해리가 마커스에게 주는 글을 쓰는 작법에 대한 가르침이 나와서 그것만 모아서 읽는 것도 재미 포인트였다. 하나 소개하자면,

 

<낙법의 중요성>

선생님이 저에게 가르쳐준 여러 기술 가운데 평생토록 가장 중요하게 간직하길 바라는 건 무엇입니까?”

나에게 묻지 말고 자네가 답해봐.”

제 생각에는 낙법같습니다.”

빙고! 나도 자네와 생각이 같아. 인생은 기나긴 추락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지. 잘 추락하는 방법을 아는 건 무엇보다 중요해.”

 

책을 덮고 제목에서 진실이라는 단어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내가 아는 것을 진실이라고 믿고 싶은 인간의 기본적인 생각. 자신이 믿고 따르는 이의 무죄를 진심으로 굳게 믿는 마커스. 사건이 진행되면서 언론에 노출된 것에 따라 마을 사람들의 진심은 변하고 진실이라는 것이 희미해져 간다. 이제 진실은 필요 없는 것인가. 누군가 진실을 덮고 거짓으로 포장하는 것은 언젠가 드러난다는 것을 책을 통해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해서 계속 뒤통수를 연타로 맞고 정신을 놓고 빠져서 읽은 책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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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도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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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도는

스스로였든

타의에 의해서였든

외롭고,

고독하고,

내쳐졌고,

갈구했다.

 

왜 사는가.

이것은 원도의 질문이 아니다.

왜 죽지 않았는가.

이것이다.” (p.15)

 

죽음에 대한 원도의 질문은 계속된다.

 

벼려진 날것의 문장이 책장을 쉽게 넘기지 못하게 한다.

 

자유를 주지 않으면서 자유로운 선택을 강요하는 산 아버지.

주어진 선택지 안에서의 선택을 당하며 숨죽이고

삶을 살던 원도.

 

결국, 원도가 원한 것은 사랑.

사랑의 실패가 원도에게 준 것들이 그를 얼음처럼 차가운 여관방에서

피를 토하며 혼자이게 한다.

 

차갑고 어두운 이야기들 속에 원도의 진짜 마음이 있다.

 

모든 순간이 결정적이다. 살아야 할 이유라면 무수히 많다. 살아내는 일분일초, 모든 행위와 생각이 모두 사는 이유다.” (p.235)

 

결국, 끊임없이 죽음을 사유하며 삶을 꿈꾸었던 원도의 이야기.

 

죽지 않고 삶을 살아야 하는 특별한 이유는 없는 것.

살아 있으므로, 삶을 살고 있으므로 우리는 살아간다.

 

무엇하나 쉬운 것이 없었던 그의 삶이 그를 죽음으로 모는 것 같았다.

아니다.

원도는 계속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았던 것이다.

죽어야 할 이유가 아니었다.

 

책 속에 나오는 엄마에 대한 이야기, 죽은 아버지와 산 아버지의 이야기, 여자친구의 이야기들을 읽으며 원도에 가슴에 큰 상처가 있어 아물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 번 후벼파낸 곳을 다치고 또 다치는 원도를 진정으로 안아주는 이는 없었다.

 

다친 마음에 생긴 커다랗고 공허한 구멍을 가진 원도를 바라본다.

공허함을 메워줄 수 있는 손길이 원도를 살릴 것이다.

죽으려는 이에게 살으라고 던지는 누군가의 말 한마디처럼.

 

왜 죽지 않았을까가 아닌

왜 살아야 하는지,

서로를 채우는 온기가 절실해진다.

 

어릴 적 내가 아플 때, 정서적으로 힘들 때 기댈 사람이 있었냐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없었다.

엄마는 아프고 바빴으며 아빠는 본인이 원할 때만 다정했다.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거부당하는 느낌을 나는 내내 받으며 자랐다.

 

지금도 그런 기억이 있지만 원가족에서 받은 상처를 지금 가족에게서 나는 치유중이다.

원도에게 내 모습이 겹쳐 보였다.

 

어린 시절의 나에게 네 잘못이 아니라고, 다 괜찮다고, 너로서 괜찮은 거라고 말하고 싶다. 나도 원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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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얼굴의 여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5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비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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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지식인인 모토로이 하야타는 전쟁 중에 잃어버린 일본인의 마음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국가의 산업과 경제를 지탱해온 탄광에서 일을 하고자 결심한다. 식민지시대에 탄광회사의 노동보도원으로 일했던 아이자토 미노루의 소개로 탄광부로 일하게 된다.

 

아이자토에게 조선의 백성들을 탄광으로 데려와 가혹한 노동을 시키고 전쟁이 끝난 후에는 버려졌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는 중 정남선이라는 이름을 듣게 된다.

 

탄광에는 각양각색의 인간군상들의 집합소이다. 그러던 어느 날 탄광에서 금줄로 목을 매고 죽은 이가 발생한다. 밀실에서 사람이 죽어서 자살이라는 결론이 내려지고 이에 하야타는 의문을 품고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탄광촌에서 연이어 벌어지는 금줄에 목을 맨 사건은 과연 자살인지 타살인지 하야타는 진상을 캐기 시작한다.

낙반사고 발생일 - 오후 1시경 갱내 막장에서 아이자토 미노루가 살해되고, 오후 130분 전후 탄주101호에서 기도가 살해됨.

이틀째 오후 5시를 지났을 무렵 탄주 104호에서 기타다 기헤이가 살해됨.

사흘째 오후 1시 전후에 탄주 105호에서 니와 하타타가 살해됨.

나흘째 다섯 번째 피해자 후보인 스이모리 아쓰오는 살해당하지 않음.

 

탄광이나 광산에서는 오야마쓰미노미코토를 수호신으로 여겼는데, 지명에 여우 자가 들어가는 야코야마 지방 탄광에서는 여우신을 모셨다. 하얀 여우님과 검은 여우님 두 신을 모셨는데 백여우님은 풍요의 신, 흑여우님은 흉작의 신이다. 여기서는 갱내에서의 모든 사고를 의미했다. ”

 

일본 탄광은 미신을 잘 믿는데 갱내가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탄광에는 반드시 신사가 있다. 신사나 사당에는 금줄이라는 특수한 형태의 밧줄이 둘러져 있다. 짚을 꼬아 만든 밧줄을 다시 몇 겹으로 꼬아 만든 제구로, ‘시데라 부르는 독특한 방식으로 잘라 접은 종잇조각이 달려 있다.”

 

사건이 있는 곳에서 검은 얼굴의 여우 가면을 쓴 이를 목격하는 이들이 생기고 시체들의 목에는 신성하게 여겨지는 금줄이 매어져 있어 탄광촌 사람들은 겁에 질리는데...... 과연 인간의 짓인가 여우신의 벌인가.

 

일제 강점기에 강제 징용된 조선인 노동자 이야기를 일본작가인 미쓰다 신조의 소설로 만나게 되어 더 반가웠고 촘촘한 미스테리를 밝혀나가는 과정에 역시나 범인은 못 찾은 나를 오늘도 위로한다. 다음 책에는 꼭 범인을 찾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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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니를 뽑다
제시카 앤드루스 지음, 김희용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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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파리, 바르셀로나를 배경으로 주인공의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 시점을 바꿔가며 여성의 삶이 그려진다. 어린 시절의 주인공은 마른 몸을 동경해 친한 친구와 함께 음식을 제한했고, 사랑받고 싶은 욕구로 원치 않는 이와도 관계를 유지했다. 부모님은 이혼했고, 아버지의 부재를 느끼며 자라게 된다.

 

성년이 되어서 사랑하는 이와 함께 있기 위해 자신의 커리어를 위한 욕구는 누른 채 바르셀로나라는 낯선 도시로 향한다. 선택이라는 것에 자신이 없고 하루하루 살아내기에 허덕이는 주인공은 불안정하다. 책 속에 모르겠다는 말이 많이 나오는데 그것이 마치 예전의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안타까웠다. 어떤 확실한 것이 없는 상태였던 나의 20대를 떠오르게 한다.

 

-살아오면서 확실했던 것이 있었나? 직장도 결혼도 아이도 육아도 지금의 삶도 말이다. 혹시 우리는 스스로 선택했다고 생각하지만 선택당한 것은 아니었나.

 

주인공은 매 순간 흔들리면서 뿌리를 내리려는 노력을 계속한다. 그럴수록 계속 도시들은 그녀를 밀어낸다. 그럼에도 계속 그녀는 발을 내딛는다.

 

자신의 커리어를 쌓고 있는 남자친구의 부름을 받고 그가 있는 바르셀로나까지 가면서도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그 마음이 백번 이해가 갔다. 아이를 낳고 집에 있으면서 경력단절 여성이 되어가는 나와는 다르게 점점 사회에서 자신의 자리를 탄탄하게 만드는 남편을 보면서 느꼈던 그것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계속 뒤처지고 뭔가 하려 하면 발목을 잡히는 상황에 암담했었다.

 

손을 뻗어 내 주변의 모든 아름다움을 붙잡고 싶고, 쾌락을 두려워하지 않고 싶다. 나는 끈끈하고 고통스러우며 욕망이 넘치고 반짝임으로 얼룩덜룩한 사랑을 원한다.” 살짝 후끈해지는!!!

 

결국, 자신의 욕망을 인정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한다. 젖니를 뽑아 이제 성년이 된 것. 응원하게 된다. 마른 몸을 위한 절식이 아닌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쾌락을 추구하며 자신의 질량을 충분히 드러내는 로서 있는 그대로의 사랑을 그릴 테니까. 오랜만에 읽은 짙은 사랑의 성장 이야기 <젖니를 뽑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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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만의 책장 - 여성의 삶을 바꾼 책 50
데버라 펠더 지음, 박희원 옮김 / 신사책방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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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은 목소리들의 세계이다. 당신의 책장은 누구의 목소리로 구성된 세계인가. 누구의 시선으로 작성된 글이 읽히는가. 누구의 시선이 담론을 장악하는가. 다툼이 없는 지식은 스스로 생명력을 가지 못한다.” -이라영 해제 중 발췌.

 

최근 독서모임을 통해 읽은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문학동네>에서 목소리 소설이라는 장르를 알게 됐다. 전쟁터에서 함께 싸운 전우였으나 남성과 여성이 전쟁 후에 받는 처우는 사뭇 달랐다. 이처럼 여성의 역사는 저자의 말대로 문학과 논픽션을 아울러 글이라는 맥락으로 파악 가능하다. 여기 이 책에 소개된 50인의 여성 소설가와 여성 주인공을 다룬 책들을 보며 여성이 과거에서 지금까지 어떻게 여겨졌고 어떤 존재였으며, 또한, 그것을 깨부수고 어떤 모습으로 표현되어 졌는지 알 수 있다. ‘세상과 맞서 싸울 의무를 져온여성 캐릭터들과 작가들의 이야기를 한편씩 읽어 나간다.

 

다른 이의 책장을 궁금해하는 것은 책을 읽는 이들은 다 같은 마음일 것이다. 어떤 책들로 채우고 있는지가 곧 그의 모습이다. 생각을 나누고 확장되는 경험은 책을 매개로 이루어진다. 읽고 고민하고 토론하고 나누고 다시 생각한다.

 

SNS에서 종종 챌린지가 이어진다. 그로 인해 내 책장의 책을 소개하고 다른 이의 책장 또한 볼 수 있다. 다른 이의 책장은 새로운 미지의 영역으로 다가온다. 책장은 그 사람의 의식의 세계가 아닐는지.

 

해제를 쓴 이라영작가는 <여자만의 책장>의 책장은 미국 여자의 책장이고 이는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바라보는 세상이며 참고는 될 수 있으나 모두의 책장이어야 할 필요는 없음을 말한다. 동서양을 아우르는 여자만의 책장이 꼭 나와주길. 책을 함께 읽고 책장을 다시 채우는 작업을 생각해보는 것도 토론의 소재로 좋겠다.

 

<여자만의 책장>50여 권의 책이 소개되어 다양한 책 목록과 함께 생각 거리를 던져줌에는 분명하다. 어떤 책이 좋다가 아닌 이 책이 왜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에 기인한 책들이다. 모든 책에 다 흥미가 가진 않는다. 그러나 50권의 책 속에 분명히 나를 자극하는 책이 있다. 책장을 다시 채우는 시간을 갖고, 무지했던 여성 역사의 변곡점들을 체크 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 이 책이 많이 읽히고 책에서 다뤄지지 않았던 여러 여성의 책도 함께 읽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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