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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올로지 - 몸이 말하는, 말하지 못한, 말할 수 없는 것
이유진 지음 / 디플롯 / 2025년 4월
평점 :

#도서협찬 #바디올로지 #이유진 #디플롯
“가장 사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라는 페미니즘 구호처럼 각자의 몸 이야기를 개인적인 것이라고 치부하는 데서 비극이 발생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우리 몸이 얼마나 오랫동안 정교하게 쌓아 올린 담론장 속에 놓이게 되는지, 몸은 어떻게 저항하면서 탈주하는지, 21세기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몸이 어디쯤 있으며 어디로 향하는지 질문하면서이 이 책을 썼다.” 고 저자는 서문에서 밝힌다.
가슴, 엉덩이, 머리카락, 섹스와 출산, 얼굴, 성형, 털, 포르노와 성폭력, 피부,냄새, 혀, 땀, 이빨, 숨과 호흡, 항문, 단식 등을 통해 몸의 기억들과 주저하고 증언하는 몸의 이야기, 소멸하는 신체와 그 이후의 세계까지 몸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담론을 빼곡히 담았다.
숏 커트에 주로 검은색 옷을 즐겨 입는 딸아이는 가끔 여성 화장실에서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이들이 있다고 한다. 들어왔다가 자신을 보고 다시 나가는 사람도 있다고. 주변의 시선에서 남자인가? 하는 눈빛을 느꼈다고 한다. 우리는 아직 남자는 짧은 머리, 여자는 긴 머리라는 공식이 익숙하다. 남자아이가 머리를 기르면 미술 하냐, 음악 하냐? 여자 아이가 머리가 짧고 스포티한 의상을 즐겨 입으면 운동 하냐는 질문을 받는다. 고정된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생각들이 사회적으로 정상, 비정상을 가르고 억압하는 도구가 되어 내 몸을 담론화하고 있다.
“때로 여성의 긴 머리는 유혹적이고 짧은 머리는 도전적이다. 남성의 긴 머리는 퇴폐적이고 지나치게 짧은 머리는 폭력적이다. 그렇다면 두발은 과연 어떠해야 ‘정상’인가?”
근대 이후 한반도에서 두발만큼 사회적 규제가 강력하고 촘촘하게 작동하는 신체 부위는 없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남성들의 단발령으로 상투를 잘랐고 여성들은 대개 자발적으로 단발 유행을 따랐다. 1920년대에 근대는 ‘모단’으로 일컬어졌다. 신여성은 ‘모단걸’ ‘단발랑’으로 불렸는데 이 호칭엔 성적으로 문란하고 사치와 방종이 심하다는 편견이 들씌워졌다. 저항의 의미로 잘랐던 여성의 단발은 뜨거운 논란거리였고 남자들은 가부장제와 남성성에 대한 도전으로 이를 비난했다. 소설가 염상섭, 아동문학가 방정환 등 모던 보이 다수가 여자의 단발은 허영심에서 비롯된 것이라 비판했고, ‘여자 단발 가부 토론’까지 열렸었다고!
2022년 이란의 반히잡 시위 이후엔 여성의 히잡을 인권 탄압으로 보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지만 여성의 머리카락은 자본과 정치권력이 작동하는 신체 구성물이라는 데는 아직 변함이 없다.
또한 인류학자들은 긴 머리카락을 절제되지 않는 섹슈얼리티, 통제되지 않는 생식력에 비유한다고! 왕자를 홀리는 라푼젤, 정성스레 빗질하며 어부들을 유혹하는 로렐라이, 아폴론이 애태우던 다프네의 빛나는 머리카락도 여성성의 표상이 된다. 갑작스레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면 “실연했냐”고 묻는 것은 머리카락 자르기가 여성성의 훼손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저항을 위해 삭발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던지겠다는 각오를 다진다. 이때 머리카락은 신념의 표현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내가 내 머리를 깍을 것인가, 남이 내 머리를 깍을 것인가. 머리카락은 권력의 표현이라고. 남의 머리카락을 마음대로 하는 권력자고, 자기 머리카락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가 바로 힘이 있는 자라고 저자는 말한다.
내 몸이 만들어진 것이 나만의 것으로만 이뤄진 것이 아니었음을, 사회적으로 부여된 내 몸과 진짜 내가 생각하는 내 몸을 떠올려보면서 과연 내 생각이었던 것일까 라는 질문이 들었다. 권력과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내 몸이 되는 것의 첫 번째로 이 책을 일독하기를 권한다. 내 몸을 더 사랑하는 계기가 되는 시간이기도.
#이키다서평단 으로 디플롯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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