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의 흑역사 - 인간은 믿고 싶은 이야기만 듣는다
톰 필립스.존 엘리지 지음, 홍한결 옮김 / 윌북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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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론의 황금기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언론은 통제되고 걸러진 뉴스만 방송되고 있다. 반면 유튜브와 각종 개인 방송 채널들로는 정체 모를 뉴스들이 끊임없이 생성되고 있지 않은가. 누군가 방송하는 말들 과연 그냥 믿어도 될지 의심하던 중에 만난 <썰의 흑역사>이다.

 

오래전부터 인류는 음모를 만들고 퍼뜨렸다. 책 속에서 소개되는 음모론들 중에 사실이라고 믿었던 것도 있어서 더 놀라웠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믿는 이가 있다는 것에도 놀라움. 그게 나라는 것도.

 

-음모론은 보통 대중이 지배계층을 바라보는 관점이라는 통념이 있다. 힘없는 자들이 힘 있는 자들에 반발하는 차원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럴 때도 있지만, 음모론은 지배계층이 만들어 퍼뜨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음모론이 소외층이나 교육 수준 낮고 정보에 어두운 이들의 전유물이라는 안이한 관점은 사실과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

 

-음모론 신봉자 가운데는 군주와 정치 지도자, 법률가와 사업가, 수학자와 화학자, 저명한 물리학자와 선구적인 발명가도 있다. 군장교도 수두룩 성직자도 있다. 노벨상 수상자에 20세기 최고의 지성으로 꼽히는 사람도 한 명 있다.

 

음모론은 개인적일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해악을 끼친다. 음모론을 웃어 넘길 수 없는 이유는 진짜 문제가 주목받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진짜 문제를 보지 못하게 우리의 시야를 가리기 때문. 안개가 낀 날 같은 흐릿한 시야 정도가 아니라 아예 다른 것을 보게 만드는 것이 음모론이다.

 

가짜 패턴에 속지 말고 진짜 패턴을 세심히 밝혀냄으로써 음모론을 인지하고 그것을 가려낼 수 있어야 함을 저자는 주장한다. 그러기 위해 매사를 예민하게 매의 눈으로 봐야 하니 더 피곤해질 것이 뻔하지만 그동안 그러지 못해서 어떻게 되었는지 생각해보면 그것도 부족하다고 느낀다. 흘러가는 대로 두지 말고 왜 그리로 흘러가는지 한 번쯤은 되짚어 생각해보자.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배운 게 있다면, 그 같은 관점을 의문시하는 자세일 것이다.” 라는 핵심문장이 남는다. 어떤 것이든 의문시하는 자세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지금! 지적 흥미를 채워주는 책 <썰의 흑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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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시아나로 가는 길
로버트 바이런 지음, 민태혜 옮김 / 생각의힘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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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비평가이자 역사학자인 저자 로버트 바이런은 10개월의 여행을 여행기로 남긴다. 1933년에 베네치아를 시작으로 키프로스, 팔레스타인, 시리아, 이라크를 거쳐 페르시아와 아프가니스탄을 여행하는 여정이다. 분쟁지역만 골라서 가는 걸까? 지금도 쉽지 않은 위험한 일정이다. 게다가 당시는 세계 1차 대전이 끝나고 암울한 시기였고 지금보다 더 안전하지 않았음이다.

 

당시 벌어지고 있는 여러 정치적 사건들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선이 느껴져 당시 역사를 찾아보게 한다. 또한, 이슬람 건축물을 묘사하는 글을 읽으면 당장 그곳으로 날아가고 싶은 충동이 느껴질 정도이다. 사진이 실려있어 궁금증을 해소해주기도.

 

여행지가 만만한 곳이 아니다 보니 일종의 모험기이다. 항상 긴장해야 하는 일이 생기고 돌발상황이 발생한다. 그럼에도 유쾌함을 잃지 않고 계속 나아가는 저자의 배짱에 놀라웠다. 몽골여행도 고사하고 있는 나는 어떤가. 입에 모래가 씹힌다는 말만 듣고 두려워했다.

 

-지구상에서 이 장소를 매력적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이게도 바로 이곳으로 오는 우리의 험난한 여정 그 자체였다.

 

정치적 견해를 밝힐 때는 날카롭게, 건축물이나 자연을 말할 때는 아름답게 표현하여 여행 에세이를 읽는 듯하다. 또한, 여행하는 지역의 문화와 삶을 당시의 시선으로 볼 수 있어 흥미롭기도. 가디언이 꼽은 20세기 최고의 여행서 <옥시아나로 가는 길>을 통해 이슬람, 이란, 아시아를 여행하는 저자와 동행해 볼 수 있는 행운(?)을 누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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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 딕 - 전면 개역판
허먼 멜빌 지음, 김석희 옮김 / 작가정신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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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위험하고 긴 항해가 끝난다는 것은 두 번째 항해가 시작된다는 뜻이니, 두 번째가 끝나면 세 번째가 시작되고, 그렇게 영원히 계속된다. 그렇게 끝없이 이어지는 것, 그것이 바로 견딜 수 없는 세상의 노고인 것이다.” (p.120)

 

드디어 모비 딕을 읽는다!

 

화자 이스마엘이 배를 타게 되는 과정부터 시작해서 선원들을 하나하나의 입체적인 인물로 그려내어 앞부분은 술술 읽힌다. 또한, 고래에 대한 방대한 지식은 책을 읽는 내내 놀라웠다. 마치 해양과학책을 읽는 듯했다. 한숨에 읽어 내려가기 어려운 책이라는 것임에는 분명하지만 읽은 것에 나 자신을 칭찬하게 된다.

 

모비 딕에 집착하는 에이해브 선장, 화자이자 유일한 생존자인 이슈메일, 냉정하고 유능한 일등항해사 스타벅, 유능하고 낙천적이며 항상 담배를 사랑하는 스터브, 이슈메일과 진한 우정을 나눈 형제 같은 친구이자 남태평양의 섬의 추장의 아들이자 고귀한 인물 퀴퀘그가 나온다. 읽는 내내 가장 끌리는 인물은 퀴퀘그! 매력 넘친다.

 

이슈메일은 포경선인 피쿼드호를 타고 에이해브 선장의 복수의 대상인 향유고래 모비 딕을 찾아 태평양까지 항해한다. 결국, 모비 딕을 찾고 치열한 결투를 하다가 배는 침몰하고 승선한 이는 모두 사망한다. 에이해브 선장의 욕심으로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된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존자인 이슈메일을 통해 우리는 이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에이해브 선장을 보며 지도자의 자질과 역량을 생각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현재의 모습과 닮아 있어서일까. ‘모비 딕 추격이라는 광기에 휩싸여 선원들을 공포스럽게 대하는 모습에서 선원들은 모비 딕보다 선장을 더 무서워하게 된다. 미친 독재자 아닌가! 피쿼드호는 망망대해에 떠 있는 배이고 선원들은 선장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고 그를 믿어야 하는 상황이니. 그러나 선장은 자신의 분노와 욕망을 다스리지 못하고 모두를 죽음으로 몰고 간다. 결국, 파멸한다.

 

피쿼드호는 피쿼트라는 인디언 부족의 이름에서 유래했고 그 배에 미국인 선장과 다양한 나라의 선원들이 타고 모비 딕을 잡으러 간다. 이슈메일의 이름 또한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인물에서 빌려왔다. 향유고래의 기름이라는 값진 것을 얻기 위해 고래를 무자비하게 포획하는 자본주의의 세계의 비판도 보인다. 비판적인 시선을 가진 작가에게 존경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책을 읽으며 망망대해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느낌이 오롯이 느껴졌다. 끝없이 펼쳐지는 푸른 바다에 갇혀있는 느낌이었다. 문장들로 나는 잠시 바다를 떠도는 기분을 느꼈던 것. 경이로운 소설임이 틀림없다.

 

다양한 인간군상의 모습을 통해 지금의 삶을 더 깊이 바라보게 된다. 단순히 고래를 잡으러 가는 이야기가 아닌 당시 사회의 단면을 볼 수 있어서 더 의미있는 독서이다. 거대한 우주 안에서 티끌 같은 존재인 인간이 가진 욕망의 끝을 보여 주는 이야기 <모비 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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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공간에서 너를 그린다 - 세월호참사 10년, 약속의 자리를 지킨 피해자와 연대자 이야기
세월호참사 10주기 위원회 기획, 박내현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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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노란 리본을 수천 개, 수만 개를 만들지만, 리본을 가져간 사람에게 그 리본은 유일한 하나의 리본이니까요. 자신의 리본을 하나 가지게 되는 거니까요. 거기에 초점을 맞추고 일을 하는 거예요. 잊지 말아 달라고 하는 게 제일 커요. 리본을 보면서 옛날에 세월호참사가 있었지하는게 아니라 , 아직 해결이 안 됐는데 잊지 말아야지하고 생각하기를 바라요. ”(p.154)

 

이 책은 세월호참사 10주기 사업으로 <오마이뉴스>202312월부터 20242월 중순까지 세월호참사 10년의 사람들이란 제목으로 두 달 보름간 연재한 글을 묶고 다듬은 것이다.

 

세월호참사 이후 피해자들과 함께 전국의 기억공간과 기억장소들에 여러 시민의 발자취가 녹아져 있다. 책 속에 소개된 기억공간과 기억장소는 모두 10. 평범했던 시민들이 활동가가 되어 지금도 그곳을 지키고 계속 기억되도록 힘쓰고 있다.

 

기억은 힘이 셉니다.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면 세상은 더 위험해질 것입니다. 10년 뒤에는 우리가 지닌 기억의 힘으로 세상은 더 안전해졌다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것은 모두 하나다. 더 이상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로 안전한 사회를 건설하자는 것이다. 세월호참사 이후에도 계속되는 참사들로 위험 속에 국민을 나 몰라라 하는 국가에 두려움마저 든다. 어떻게 이 땅에서 발을 딛고 안전하다는 느낌으로 살 수 있을까.

 

아직도 세월호냐고 묻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승객이 다섯이 있는데 진상규명도, 책임자 처벌도 제대로 처리된 것이 없냐고 우리는 물어야 한다. 우리는 계속 기억하고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연대는 그것이니까.

 

혼자서는 바꿀 수 없는 문제잖아요. 포기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많이 느꼈어요. 그래서 사람들도 같이 했으면 좋겠어요.”

 

사회는 타인의 고통에 기꺼이 우리가 되기를 선택해야 한다. 절대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는 참사 피해자들과 함께 모두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우리는 세월호참사 10주기를 맞아 해결하지 못한 과제를 공통의 과제로 삼아, 진상규명과 생명안전사회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전체를 잃을 것이다. 기적을 만들어낼 공감과 연대의 힘은 우리 안에 응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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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육아 - 나를 덜어 나를 채우는 삶에 대하여
정지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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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사소한 날들이지만, 이런 날들이 나를 살린다는 걸 기억하고 싶어서 적어둔다. 사람을 살리는 건 이런 아주 작은 것들이 전부가 되는 순간들이라는 걸 기억하고자 이 날들을 남겨둔다. 놀이터의 밧줄에 매달려 웃고 있는 아이의 모습, 아내랑 침대에 누워 옛날 동영상을 보는 순간, 늦은 밤 혼자 책이나 만화를 보다 글을 쓰는 시간, 날씨가 좋은 날의 하늘이나 나뭇잎의 색깔, 하루를 가득 채우는 아이와의 시시껄렁한 장난, 아내와 주고받는 별거 아닌 농담이나 어리광, 결국 그런 것들 때문에 살게 된다는 걸 매번, 다시 또 배운다. (p.127)

 

23일을 계획한 강원도 여행. 여행 전날 미리 아이들에게 각자의 짐을 싸놓으라고 하고 우리 부부는 나가서 맥주를 한잔하고 왔다. 다음날 일어나보니 거실에는 캐리어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출발 당일. 작은 차에 캐리어 두 개를 실으려니 잘 안 들어갔다. 왜 이렇게 애들이 짐을 많이 쌌을까 생각했다. 하나를 빼서 좌석 사이에 세워서 결국 짐을 싣고 출발해서 숙소에 도착했다. 23일 동안 두 캐리어 중 하나는 열려 있는데 하나는 계속 거실에 세워두고 열어보지 않는 것이다. 이상해서 열어보니 그 안에는 커튼이 들어 있었다! 집에서 아이들이 그냥 꺼내 놓은 걸 당연히 아이들 짐인 줄 알고 차에 실어온 것. 처음엔 화가 나서 아이들에게 이건 짐을 안싼거라고 말을 하지 그랬냐 했는데, 생각해보니 서로 오해가 있었다. 아이들은 우리 짐이라고 생각했던 것. 넷이서 배꼽 빠지게 웃었다. 커튼이 든 캐리어를 낑낑대고 강원도까지 데리고 올 줄이야. 돌아오는 차 안에서 집에 와서도 이번 여행은 아주 기억에 남았다고 입을 모았다.

 

매번 가는 여행이지만 이번이 더 기억에 남을 것이다. 자칫 안 좋을 수도 있었는데 서로 오해였다는 것을 이해하고 웃을 수 있었기에. 지금의 모든 것들이 그리움으로 남는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이 간다. 매일의 기억을 함께했던 이들과 나눌 것이 점점 줄어가는 것이 아쉬워 손을 뻗어 보지만 그것조차 오늘의 소중한 기쁨이기에.

 

힘들었던 독박육아를 벗어나 이제 아이들은 19, 16살이다. 오랜만에 그때의 힘들었던 기억, 아이들과 웃었던 시간들, 남편과 즐거웠던 시간. 꼭 육아가 아닌 내 삶의 조각을 더 세심하게 들여다보게 된다. 가슴이 뭉클해지는 문장에 오래 머문다.

 

파스타를 해달라는 큰 아이의 말에 오늘은 특별히 새우를 듬뿍 넣어 본다. 엄지 척 들어 올려 나를 요리사 대접해주는 아이와 함께해서 감사한 오늘이다.

 

-아이를 계획 중이거나 혹은 결혼을 계획 중인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꼭 선물하고 싶다.

-‘세상의 모든 서재구독 중인데 그것도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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