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육아 - 나를 덜어 나를 채우는 삶에 대하여
정지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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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사소한 날들이지만, 이런 날들이 나를 살린다는 걸 기억하고 싶어서 적어둔다. 사람을 살리는 건 이런 아주 작은 것들이 전부가 되는 순간들이라는 걸 기억하고자 이 날들을 남겨둔다. 놀이터의 밧줄에 매달려 웃고 있는 아이의 모습, 아내랑 침대에 누워 옛날 동영상을 보는 순간, 늦은 밤 혼자 책이나 만화를 보다 글을 쓰는 시간, 날씨가 좋은 날의 하늘이나 나뭇잎의 색깔, 하루를 가득 채우는 아이와의 시시껄렁한 장난, 아내와 주고받는 별거 아닌 농담이나 어리광, 결국 그런 것들 때문에 살게 된다는 걸 매번, 다시 또 배운다. (p.127)

 

23일을 계획한 강원도 여행. 여행 전날 미리 아이들에게 각자의 짐을 싸놓으라고 하고 우리 부부는 나가서 맥주를 한잔하고 왔다. 다음날 일어나보니 거실에는 캐리어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출발 당일. 작은 차에 캐리어 두 개를 실으려니 잘 안 들어갔다. 왜 이렇게 애들이 짐을 많이 쌌을까 생각했다. 하나를 빼서 좌석 사이에 세워서 결국 짐을 싣고 출발해서 숙소에 도착했다. 23일 동안 두 캐리어 중 하나는 열려 있는데 하나는 계속 거실에 세워두고 열어보지 않는 것이다. 이상해서 열어보니 그 안에는 커튼이 들어 있었다! 집에서 아이들이 그냥 꺼내 놓은 걸 당연히 아이들 짐인 줄 알고 차에 실어온 것. 처음엔 화가 나서 아이들에게 이건 짐을 안싼거라고 말을 하지 그랬냐 했는데, 생각해보니 서로 오해가 있었다. 아이들은 우리 짐이라고 생각했던 것. 넷이서 배꼽 빠지게 웃었다. 커튼이 든 캐리어를 낑낑대고 강원도까지 데리고 올 줄이야. 돌아오는 차 안에서 집에 와서도 이번 여행은 아주 기억에 남았다고 입을 모았다.

 

매번 가는 여행이지만 이번이 더 기억에 남을 것이다. 자칫 안 좋을 수도 있었는데 서로 오해였다는 것을 이해하고 웃을 수 있었기에. 지금의 모든 것들이 그리움으로 남는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이 간다. 매일의 기억을 함께했던 이들과 나눌 것이 점점 줄어가는 것이 아쉬워 손을 뻗어 보지만 그것조차 오늘의 소중한 기쁨이기에.

 

힘들었던 독박육아를 벗어나 이제 아이들은 19, 16살이다. 오랜만에 그때의 힘들었던 기억, 아이들과 웃었던 시간들, 남편과 즐거웠던 시간. 꼭 육아가 아닌 내 삶의 조각을 더 세심하게 들여다보게 된다. 가슴이 뭉클해지는 문장에 오래 머문다.

 

파스타를 해달라는 큰 아이의 말에 오늘은 특별히 새우를 듬뿍 넣어 본다. 엄지 척 들어 올려 나를 요리사 대접해주는 아이와 함께해서 감사한 오늘이다.

 

-아이를 계획 중이거나 혹은 결혼을 계획 중인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꼭 선물하고 싶다.

-‘세상의 모든 서재구독 중인데 그것도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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