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 딕 - 전면 개역판
허먼 멜빌 지음, 김석희 옮김 / 작가정신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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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위험하고 긴 항해가 끝난다는 것은 두 번째 항해가 시작된다는 뜻이니, 두 번째가 끝나면 세 번째가 시작되고, 그렇게 영원히 계속된다. 그렇게 끝없이 이어지는 것, 그것이 바로 견딜 수 없는 세상의 노고인 것이다.” (p.120)

 

드디어 모비 딕을 읽는다!

 

화자 이스마엘이 배를 타게 되는 과정부터 시작해서 선원들을 하나하나의 입체적인 인물로 그려내어 앞부분은 술술 읽힌다. 또한, 고래에 대한 방대한 지식은 책을 읽는 내내 놀라웠다. 마치 해양과학책을 읽는 듯했다. 한숨에 읽어 내려가기 어려운 책이라는 것임에는 분명하지만 읽은 것에 나 자신을 칭찬하게 된다.

 

모비 딕에 집착하는 에이해브 선장, 화자이자 유일한 생존자인 이슈메일, 냉정하고 유능한 일등항해사 스타벅, 유능하고 낙천적이며 항상 담배를 사랑하는 스터브, 이슈메일과 진한 우정을 나눈 형제 같은 친구이자 남태평양의 섬의 추장의 아들이자 고귀한 인물 퀴퀘그가 나온다. 읽는 내내 가장 끌리는 인물은 퀴퀘그! 매력 넘친다.

 

이슈메일은 포경선인 피쿼드호를 타고 에이해브 선장의 복수의 대상인 향유고래 모비 딕을 찾아 태평양까지 항해한다. 결국, 모비 딕을 찾고 치열한 결투를 하다가 배는 침몰하고 승선한 이는 모두 사망한다. 에이해브 선장의 욕심으로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된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존자인 이슈메일을 통해 우리는 이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에이해브 선장을 보며 지도자의 자질과 역량을 생각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현재의 모습과 닮아 있어서일까. ‘모비 딕 추격이라는 광기에 휩싸여 선원들을 공포스럽게 대하는 모습에서 선원들은 모비 딕보다 선장을 더 무서워하게 된다. 미친 독재자 아닌가! 피쿼드호는 망망대해에 떠 있는 배이고 선원들은 선장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고 그를 믿어야 하는 상황이니. 그러나 선장은 자신의 분노와 욕망을 다스리지 못하고 모두를 죽음으로 몰고 간다. 결국, 파멸한다.

 

피쿼드호는 피쿼트라는 인디언 부족의 이름에서 유래했고 그 배에 미국인 선장과 다양한 나라의 선원들이 타고 모비 딕을 잡으러 간다. 이슈메일의 이름 또한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인물에서 빌려왔다. 향유고래의 기름이라는 값진 것을 얻기 위해 고래를 무자비하게 포획하는 자본주의의 세계의 비판도 보인다. 비판적인 시선을 가진 작가에게 존경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책을 읽으며 망망대해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느낌이 오롯이 느껴졌다. 끝없이 펼쳐지는 푸른 바다에 갇혀있는 느낌이었다. 문장들로 나는 잠시 바다를 떠도는 기분을 느꼈던 것. 경이로운 소설임이 틀림없다.

 

다양한 인간군상의 모습을 통해 지금의 삶을 더 깊이 바라보게 된다. 단순히 고래를 잡으러 가는 이야기가 아닌 당시 사회의 단면을 볼 수 있어서 더 의미있는 독서이다. 거대한 우주 안에서 티끌 같은 존재인 인간이 가진 욕망의 끝을 보여 주는 이야기 <모비 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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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공간에서 너를 그린다 - 세월호참사 10년, 약속의 자리를 지킨 피해자와 연대자 이야기
세월호참사 10주기 위원회 기획, 박내현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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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노란 리본을 수천 개, 수만 개를 만들지만, 리본을 가져간 사람에게 그 리본은 유일한 하나의 리본이니까요. 자신의 리본을 하나 가지게 되는 거니까요. 거기에 초점을 맞추고 일을 하는 거예요. 잊지 말아 달라고 하는 게 제일 커요. 리본을 보면서 옛날에 세월호참사가 있었지하는게 아니라 , 아직 해결이 안 됐는데 잊지 말아야지하고 생각하기를 바라요. ”(p.154)

 

이 책은 세월호참사 10주기 사업으로 <오마이뉴스>202312월부터 20242월 중순까지 세월호참사 10년의 사람들이란 제목으로 두 달 보름간 연재한 글을 묶고 다듬은 것이다.

 

세월호참사 이후 피해자들과 함께 전국의 기억공간과 기억장소들에 여러 시민의 발자취가 녹아져 있다. 책 속에 소개된 기억공간과 기억장소는 모두 10. 평범했던 시민들이 활동가가 되어 지금도 그곳을 지키고 계속 기억되도록 힘쓰고 있다.

 

기억은 힘이 셉니다.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면 세상은 더 위험해질 것입니다. 10년 뒤에는 우리가 지닌 기억의 힘으로 세상은 더 안전해졌다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것은 모두 하나다. 더 이상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로 안전한 사회를 건설하자는 것이다. 세월호참사 이후에도 계속되는 참사들로 위험 속에 국민을 나 몰라라 하는 국가에 두려움마저 든다. 어떻게 이 땅에서 발을 딛고 안전하다는 느낌으로 살 수 있을까.

 

아직도 세월호냐고 묻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승객이 다섯이 있는데 진상규명도, 책임자 처벌도 제대로 처리된 것이 없냐고 우리는 물어야 한다. 우리는 계속 기억하고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연대는 그것이니까.

 

혼자서는 바꿀 수 없는 문제잖아요. 포기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많이 느꼈어요. 그래서 사람들도 같이 했으면 좋겠어요.”

 

사회는 타인의 고통에 기꺼이 우리가 되기를 선택해야 한다. 절대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는 참사 피해자들과 함께 모두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우리는 세월호참사 10주기를 맞아 해결하지 못한 과제를 공통의 과제로 삼아, 진상규명과 생명안전사회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전체를 잃을 것이다. 기적을 만들어낼 공감과 연대의 힘은 우리 안에 응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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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육아 - 나를 덜어 나를 채우는 삶에 대하여
정지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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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사소한 날들이지만, 이런 날들이 나를 살린다는 걸 기억하고 싶어서 적어둔다. 사람을 살리는 건 이런 아주 작은 것들이 전부가 되는 순간들이라는 걸 기억하고자 이 날들을 남겨둔다. 놀이터의 밧줄에 매달려 웃고 있는 아이의 모습, 아내랑 침대에 누워 옛날 동영상을 보는 순간, 늦은 밤 혼자 책이나 만화를 보다 글을 쓰는 시간, 날씨가 좋은 날의 하늘이나 나뭇잎의 색깔, 하루를 가득 채우는 아이와의 시시껄렁한 장난, 아내와 주고받는 별거 아닌 농담이나 어리광, 결국 그런 것들 때문에 살게 된다는 걸 매번, 다시 또 배운다. (p.127)

 

23일을 계획한 강원도 여행. 여행 전날 미리 아이들에게 각자의 짐을 싸놓으라고 하고 우리 부부는 나가서 맥주를 한잔하고 왔다. 다음날 일어나보니 거실에는 캐리어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출발 당일. 작은 차에 캐리어 두 개를 실으려니 잘 안 들어갔다. 왜 이렇게 애들이 짐을 많이 쌌을까 생각했다. 하나를 빼서 좌석 사이에 세워서 결국 짐을 싣고 출발해서 숙소에 도착했다. 23일 동안 두 캐리어 중 하나는 열려 있는데 하나는 계속 거실에 세워두고 열어보지 않는 것이다. 이상해서 열어보니 그 안에는 커튼이 들어 있었다! 집에서 아이들이 그냥 꺼내 놓은 걸 당연히 아이들 짐인 줄 알고 차에 실어온 것. 처음엔 화가 나서 아이들에게 이건 짐을 안싼거라고 말을 하지 그랬냐 했는데, 생각해보니 서로 오해가 있었다. 아이들은 우리 짐이라고 생각했던 것. 넷이서 배꼽 빠지게 웃었다. 커튼이 든 캐리어를 낑낑대고 강원도까지 데리고 올 줄이야. 돌아오는 차 안에서 집에 와서도 이번 여행은 아주 기억에 남았다고 입을 모았다.

 

매번 가는 여행이지만 이번이 더 기억에 남을 것이다. 자칫 안 좋을 수도 있었는데 서로 오해였다는 것을 이해하고 웃을 수 있었기에. 지금의 모든 것들이 그리움으로 남는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이 간다. 매일의 기억을 함께했던 이들과 나눌 것이 점점 줄어가는 것이 아쉬워 손을 뻗어 보지만 그것조차 오늘의 소중한 기쁨이기에.

 

힘들었던 독박육아를 벗어나 이제 아이들은 19, 16살이다. 오랜만에 그때의 힘들었던 기억, 아이들과 웃었던 시간들, 남편과 즐거웠던 시간. 꼭 육아가 아닌 내 삶의 조각을 더 세심하게 들여다보게 된다. 가슴이 뭉클해지는 문장에 오래 머문다.

 

파스타를 해달라는 큰 아이의 말에 오늘은 특별히 새우를 듬뿍 넣어 본다. 엄지 척 들어 올려 나를 요리사 대접해주는 아이와 함께해서 감사한 오늘이다.

 

-아이를 계획 중이거나 혹은 결혼을 계획 중인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꼭 선물하고 싶다.

-‘세상의 모든 서재구독 중인데 그것도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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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 1
조엘 디케르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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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커스 골드먼은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그의 스승이자 국민 작가로 칭송받는 해리 쿼버트와는 사제지간을 넘어서는 우정을 이어오고 있었다. 마커스는 다음 책을 집필하는 데 스승의 도움을 받고자 해리가 머무는 뉴햄프셔주 오로라에 가게 된다. 그후 몇 달 후 사건이 터진다.

 

해리 쿼버트의 저택 마당에서 33년 전 실종된 놀라 캘러건의 유해와 함께 해리의 책 <악의 기원>의 원고가 발견된다. 해리는 용의자로 지목되어 구치소에 수감 된다.

 

마커스는 해리의 무죄를 주장하며 직접 수사에 착수한다. 당시 34살이었던 해리는 15살인 놀라와 자신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음을 고백해서 충격을 안겨주는데.

 

사건을 조사하면서 마커스는 누군지 모르는 이로부터 계속 협박을 받고, 의외의 인물이 계속 수면 위로 떠오르고 사건은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로 치닫는다.

 

두꺼운 분량임에도 흡입력 있는 전개로 빠르게 읽어나갔다. 책은 기본적인 사건을 중심으로 그것을 둘러싼 인물들의 감춰진 모습을 통해, 혹은 마커스가 속한 출판업계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기도 해서 씁쓸함을 주기도 한다. 해리가 마커스에게 주는 글을 쓰는 작법에 대한 가르침이 나와서 그것만 모아서 읽는 것도 재미 포인트였다. 하나 소개하자면,

 

<낙법의 중요성>

선생님이 저에게 가르쳐준 여러 기술 가운데 평생토록 가장 중요하게 간직하길 바라는 건 무엇입니까?”

나에게 묻지 말고 자네가 답해봐.”

제 생각에는 낙법같습니다.”

빙고! 나도 자네와 생각이 같아. 인생은 기나긴 추락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지. 잘 추락하는 방법을 아는 건 무엇보다 중요해.”

 

책을 덮고 제목에서 진실이라는 단어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내가 아는 것을 진실이라고 믿고 싶은 인간의 기본적인 생각. 자신이 믿고 따르는 이의 무죄를 진심으로 굳게 믿는 마커스. 사건이 진행되면서 언론에 노출된 것에 따라 마을 사람들의 진심은 변하고 진실이라는 것이 희미해져 간다. 이제 진실은 필요 없는 것인가. 누군가 진실을 덮고 거짓으로 포장하는 것은 언젠가 드러난다는 것을 책을 통해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해서 계속 뒤통수를 연타로 맞고 정신을 놓고 빠져서 읽은 책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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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도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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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도는

스스로였든

타의에 의해서였든

외롭고,

고독하고,

내쳐졌고,

갈구했다.

 

왜 사는가.

이것은 원도의 질문이 아니다.

왜 죽지 않았는가.

이것이다.” (p.15)

 

죽음에 대한 원도의 질문은 계속된다.

 

벼려진 날것의 문장이 책장을 쉽게 넘기지 못하게 한다.

 

자유를 주지 않으면서 자유로운 선택을 강요하는 산 아버지.

주어진 선택지 안에서의 선택을 당하며 숨죽이고

삶을 살던 원도.

 

결국, 원도가 원한 것은 사랑.

사랑의 실패가 원도에게 준 것들이 그를 얼음처럼 차가운 여관방에서

피를 토하며 혼자이게 한다.

 

차갑고 어두운 이야기들 속에 원도의 진짜 마음이 있다.

 

모든 순간이 결정적이다. 살아야 할 이유라면 무수히 많다. 살아내는 일분일초, 모든 행위와 생각이 모두 사는 이유다.” (p.235)

 

결국, 끊임없이 죽음을 사유하며 삶을 꿈꾸었던 원도의 이야기.

 

죽지 않고 삶을 살아야 하는 특별한 이유는 없는 것.

살아 있으므로, 삶을 살고 있으므로 우리는 살아간다.

 

무엇하나 쉬운 것이 없었던 그의 삶이 그를 죽음으로 모는 것 같았다.

아니다.

원도는 계속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았던 것이다.

죽어야 할 이유가 아니었다.

 

책 속에 나오는 엄마에 대한 이야기, 죽은 아버지와 산 아버지의 이야기, 여자친구의 이야기들을 읽으며 원도에 가슴에 큰 상처가 있어 아물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 번 후벼파낸 곳을 다치고 또 다치는 원도를 진정으로 안아주는 이는 없었다.

 

다친 마음에 생긴 커다랗고 공허한 구멍을 가진 원도를 바라본다.

공허함을 메워줄 수 있는 손길이 원도를 살릴 것이다.

죽으려는 이에게 살으라고 던지는 누군가의 말 한마디처럼.

 

왜 죽지 않았을까가 아닌

왜 살아야 하는지,

서로를 채우는 온기가 절실해진다.

 

어릴 적 내가 아플 때, 정서적으로 힘들 때 기댈 사람이 있었냐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없었다.

엄마는 아프고 바빴으며 아빠는 본인이 원할 때만 다정했다.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거부당하는 느낌을 나는 내내 받으며 자랐다.

 

지금도 그런 기억이 있지만 원가족에서 받은 상처를 지금 가족에게서 나는 치유중이다.

원도에게 내 모습이 겹쳐 보였다.

 

어린 시절의 나에게 네 잘못이 아니라고, 다 괜찮다고, 너로서 괜찮은 거라고 말하고 싶다. 나도 원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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