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 - 정보라 연작소설집
정보라 지음 / 래빗홀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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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을 배경으로 정보라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첫 SF연작소설이다.

외계 바다 생물인 <문어>,<대게>, <상어>, <개복치>, <해파리>, <고래>라는 소제목으로 만나본다.

 

대학의 시간 강사인 화자와 노조 위원장이 투쟁 중 문어를 만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위원장은 그 문어를 삶아 먹어 버린다.

검은 정장의 사람들이 찾아와 차에 태워져 이동해서 취조를 당하게 된다. 과연 문어는 어디서 나타났을까.

 

우리는 항복하지 않는다. 나와 위원장님은 데모하다 만났고 나는 데모하면서 위원장님을 좋아하게 되었고 그래서 지금도 함께 데모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교육 공공성 확보와 비정규직 철폐와 노동 해방과 지구의 평화를 위해 계속 함께 싸울 것이다. 투쟁. (p.46)

 

말을 하는 대게 예브게니를 만난 화자는 대게가 러시아 정부에 고용되어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 가스관을 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또 검은 정장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예브게니에게 그들은 거절하기 어려운 제안을 하는데...

 

북극해도 발트해도 동해도 모두 오염되고 깨지고 부서졌다. 도망칠 곳은 없다. 인간도 대게도, 어디에도 갈 수 없다. (p.66)

 

비인간 생물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인간이 망쳐버려 살 수 없게 된 바다, 부서진 해저, 죽은 땅과 도망칠 곳 없이 좁아져버린 지구가 한없이 미안했다. (p.84)

 

화자는 남편의 암 재발로 입원한 병원에서 옆자리 환자에게 기적의 치료제를 판매한다는 명함을 받는다.

결국 죽도시장에 있는 치료제 회사에 가게 되는데, 그곳에는 상어, 조개, 대게 등이 수조에 갖혀 있다.

여기서 또 검은 정장의 사람들이 들이닥친다.

소설 속에 그려지는 이야기들이 마침표 없는 긴 문장이 숨 넘어가는 것 같았다.

그만큼 절박한 비정규직의 처지가 느껴졌다.

갑이 부리는 횡포는 변하지 않고 노동자의 노동력착취에 너무나도 화가 나는 현실이다.

 

외계 해양 생물들의 등장과 검은 정장의 사람들의 계속된 출현도 웃음 포인트.

갑자기 터져 나오는 웃음이 있어서 더 재미있는 소설이다.

그러나 재미뿐 아니라 노동, 장애, 기후, 생태까지 다양한 주제들이 녹아져 있어 마냥 가볍지만은 않다.

 

인간 중심적인 사고로 이대로 간다면 곧 재난으로 다가올 것을 경고하는 듯하다.

그러기에 우리는 다음 세대를 위해서라도 저항하고 투쟁해야 한다.

바다는 우리의 것. 우리가 지킨다. 투쟁!!!

 

이제 대게는 예브게니 생각나서 못 먹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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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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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내가 살던 동네는 동대문구였다가 중랑구가 된 상봉동이다. 집 장사가 마음먹고 똑같이 지어놓은 단층 양옥이 쪼르르 골목에 줄지어 있던 그곳을 1년 전쯤 찾아가 봤다. 그때의 모습이 조금은 남아 있을까 싶어 향수를 느끼고 싶었던 거다.

 

태어나서 초등학교 4학년 2학기에 전학을 갔으니 그곳이 내 고향이다. 우리 집에는 이모와 이종사촌 언니 2명도 함께 살았다. 언니들이 빌려온 만화책을 옆에서 같이 보고 떡볶이 해먹을 떡볶이 떡, 어묵, 또 언니들의 스타킹 심부름 등은 항상 내 일거리였다.

 

한동안 내가 빠져 있었던 것은 자전거타기 였는데 아무도 가르쳐주는 이가 없어서 혼자 매일 자전거를 타며 익혔다. 그 당시 화장품 방문판매원이었던 이모가 퇴근하면 그 자전거를 끌고 큰 도로로 나가서 도로의 연석에 한 쪽 발을 올려놓고 높은 안장의 어른 자전거에 앉았던 기억이 난다. 자전거를 혼자 타게 되었을 때의 그 자유로움이란 지금도 잊지 못한다. 땀을 식혀주는 그 시원함, 이른 저녁의 어스름함 속에서 혼자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누비던 그 기억이 생생하다. 그래서 더 내 어릴 적 그 동네에 대한 향수가 진한 걸까. 지금은 내 곁에 없는 이모를 떠올리게 하는 것. 내 어린 날의 이모의 자전거이다.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는 박완서 작가님의 타계 13년 주기를 맞아 기존 산문집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에 미발표 원고를 더하여 리커버되어 출간되었다. 한 편을 읽고 나면 옛 기억에 잠기곤 해서 잠시 헤매이다가 다시 다음 편을 펼치게 된다. 보통의 것들, 우리가 지나쳤던 삶의 작은 조각들을 다시 돌아보고 또 나의 예전의 그 감각을 깨워주는 시간이다. 가슴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꼈던 나, 슬펐던 나, 너무나 자유로웠던 나 그리고 그런 나와 함께 했던 내 주변의 사람들을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글이라 아련함이 오래 남는다.

 

오랜 시간이 지나 읽었는데도 한결같은 다정함으로 나의 마음을 잔잔히 일렁이게 하는 이 책을 20241월에 다시 만나 행복하다. 미발표 된 작품도 수록되어 꼭 읽어야 할 이유가 확실하니 모두 읽어보시길. 따스함을 함께 나누고 싶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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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림트를 해부하다 - 〈키스〉에서 시작하는 인간 발생의 비밀
유임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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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미술사의 거장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에 담긴 생물학적 도식을 연구한 해부학자가 있다. 작품 안에 숨겨진 생물학적 도식인 클림트 코드를 발견하는 과정을 따라가 본다.

 

1부에서는 클림트의 탄생과 당시 오스트리아의 시대 배경, 인간 발생의 고대 역사부터 중세, 근대까지의 과학 이야기, 다윈의 <종의 기원>과 헤켈에 이르기까지 클림트에게 영향을 준 과학을 알아본다. 2부에서는 클림트의 그림들 속 생물학적 도상을 파헤치고, 3부에는 클림트 외에 다른 예술가들의 작품 속 인간의 기원을 찾는 모습들을 찾아본다.

 

클림트의 <키스>는 사람 발생 초기의 내용을 예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남성성을 상징하는 부분은 남성의 옷에 세로로 긴 직사각형으로 남성의 성기 모양의 상징으로, 여자 옷에는 도라지꽃 같은 다각형이 보이는데 자세히 보면 물결치는 듯한 꼬리가 붙어 있는 모습이다. 이는 현미경으로 확대한 정자의 모습이다. 이는 광학 현미경 관찰로 프레드릭 메브스 박사가 정자를 관찰하고 그린 것을 클림트가 참고하여 <키스>에 그려 넣었다고 한다. 또한, 여자의 옷에는 난자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데 황금색 배경으로 파란색 경계가 그려지고 속은 노란색으로 채워진 원이 난자의 형태이다.

 

클림트의 다양한 작품 속에서 인간의 탄생부터 성장, 노화,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생물학적 도식들로 보는 것은 미술을 보는 새로운 눈을 열어주었다. 다양한 과학적 지식까지 함께 수록되어 있어 너무나도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시대적 배경이나 예술가의 삶으로 조명되었던 여러 작품이 당시 과학적 발견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매우 놀라웠다. 클림트 외에도 과학의 영향을 받아 발생학, 진화론, 세포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하는 다양한 작품들을 저자는 소개한다. 에드바르 뭉크의 <마돈나>, 에곤 실레의 <엎드린 소녀>,<다나에>, 프리다 칼로의 <모세> 등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예술을 과학으로 해부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새로운 지식을 쌓는 기쁨으로 다가와 더 의미 있는 책 <클림트를 해부하다>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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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탈로니아 찬가 에디터스 컬렉션 16
조지 오웰 지음, 김승욱 옮김 / 문예출판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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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추레한 군복과 사나우면서도 애처로운 얼굴은 내게 그 당시의 특별한 분위기를 일깨워주는 상징이다. 그는 그 전쟁 시기와 관련된 내 모든 기억과 한데 묶여 있다. 바르셀로나의 붉은 깃발들, 꾀죄죄한 병사들을 잔뜩 태우고 전선으로 기어가던 쓸쓸한 기차, 전쟁에 얻어맞은 회색 마을들, 얼음처럼 춥고 질척거리던 산속 참호. (p.19)

 

1930년대에 있었던 스페인 내전에 전투병으로 참전한 조지 오웰의 이야기이다. 파시즘에 맞서 혁명 세력과 함께 전쟁 중 실제로 겪은 이야기들과 그의 생각을 볼 수 있는 기록 문학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한, 내전 당시의 사진과 오웰의 에세이, 시와 함께 해제까지 있어 깊이 있는 시간을 갖게 해준다.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의용군의 참혹한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하다. 총을 지급 받지 못하고 제대로 군사훈련도 받지 못한 이들이 꾀죄죄한 옷으로 춥고 배고픈 상황이라는 묘사는 전쟁의 참혹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런 그들의 어떤 모습에서 조지 오웰은 찬가라 부르게 했을까.

 

전쟁에 참전하고 있는 이들의 참혹한 실상을 보면서 사람이 희생되는 것은 정치가 배후가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것을 바라보고 행하기엔 목숨을 내놓기 너무 아깝지 않은가 말이다. 누구의 이익으로 움직여지는가를 더 깊이 생각해봐야 할 때이다.

 

기록문학의 고전이라 불리는 이 책을 보면서 왜 지금 이 책을 읽어야 했나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지금 우리는 안전한 잠에 빠져 있다. 오웰은 폭탄의 굉음에 화들짝 놀란 뒤에야 우리는 깨어날 것인가라고 질문한다. 세계 곳곳에 일어나는 폭력적인 일들이 결코 나와 무관하지 않음을 다시금 깨닫게 된 책 <카탈로니아 찬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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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지의 두 여자
강영숙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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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용역업체에서 일하는 민준은 어느 날 버려진 아이를 발견하고 그 아이를 집으로 데려온다. 아이가 숨을 쉬지 않는 것 같아 병원에 데려가고 두려운 마음에 아이를 두고 도망친다.

 

무능하고 게으른 남편을 대신해 생활비를 벌려고 집을 나온 샤오는 10살짜리 딸을 버리고 나왔다는 죄책감을 안고 있다. 돈벌이가 어려워진 때 친구로부터 B도시에서 대리모를 제안받아 거액의 돈을 받기로 하고 임신을 한다. 그러나 출산이 순탄하지 않다.

 

진영의 딸 윤재는 실종 2주 만에 저수지에서 죽은 채 발견된다. 이후 가족의 삶은 망가지고 진영은 아이를 잃은 것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린다. 우연히 B클리닉에서 자원봉사자로 대리모를 자처하게 되고 임신을 한다. 임신 중 유방암이 발견되자 의뢰인은 아이를 원치 않게 된다.

 

버려지는 쓰레기들을 바라보는 민준은 쓰레기를 제대로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두고 언젠가는 반드시 엄청난 대가를 치를 것이라 생각한다. 샤오가 일하던 삼계탕집 농장에서는 조류인플루엔자로 인해 닭을 살처분해서 땅에 묻는다. 진영이 일하던 학교에서는 갑자기 지진이 일어난다.

 

접점이 없어 보이는 세 사람의 이야기가 관통하는 것은 무엇일까. 마치 분지에 갇힌 듯 답답함이 느껴져 눈앞이 뿌옇다. 버려진 아이와 무분별하게 버려지는 쓰레기, 병에 걸려 효용을 잃은 생물의 버려짐. 또한, 불법에 가까운 방법으로 대리모를 통해 아이를 만드는 것까지 인간이 만들고 폐기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덮고 나서 머릿속에 어지러운 질문이 남는 책 <분지의 두 여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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