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었던 존재들 - 경찰관 원도가 현장에서 수집한 생애 사전
원도 지음 / 세미콜론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경찰관 속으로>를 읽고 <아무튼, 언니>를 통해 만났던 작가 원도의 컬럼집이다. 저자가 만났던 있었던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는 쉽게 읽어지지 않는다. 과학수사과에서 현장 감식업무를 맞으면서 본 삶의 파편들은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보여준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람들, 고독사 등에서 처참한 부패 현장을 마주친 작가는 그들이 남긴 마지막 말을 전한다.

 

-저를 발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한때는 사람이었습니다.

한때는 사람이라. 사람이었던 자의 가장 예의 바른 마지막 인사. 흔히 자살을 극단적인 선택이라 묘사하지만, 그들의 삶을 조망해온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극단적인 건 언제나 삶이고 빌어먹을 세상이더라. (p.128)

 

인간의 조건, 인간다움을 생각하게 한다. 극단적인 삶으로 몰아붙이는 세상 속에서 나를 지키면서 살아가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상식이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상식적으로 일을 처리해야 하는 경찰관이라는 직업의 부조리함을 작가는 말한다. 우리는 어디쯤 와 있는 걸까. 상식이라는 것은 누가 정하는 것이며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인지 되짚어보게 한다.

 

인간이 가는 가장 마지막 관문 죽음을 지켜보는 이의 글은 처참하고 외롭지만, 생의 가능성을 믿고 글을 통해 사랑을 말한다. 그렇다고 나는 믿고 싶다. 애정이 없이는 이런 글을 쓸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세상이라며 울고불고했지만 그럼에도 세상은 미묘하게 점점 나아지고 있다.’(p.176) 이 글들이 민들레 씨앗처럼 널리 퍼져 우리의 외로움도 날려버리는 그런 날이 오기를.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있는 존재들이니까. 그러기에 함께 손잡고 나아가기를 말하는 책 <있었던 존재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냥이 끝나고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지음, 최호정 옮김 / 키멜리움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신문사의 편집부를 찾아온 카므셰프는 자신이 쓴 소설의 출간을 부탁한다. 그 원고를 읽어나가는 편집장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되는데.

 

젊고 아름다운 올가는 백작의 영지 관리인이자 나이 많은 우르베닌과 결혼을 하여 귀족이 되고 싶어 한다. 또한, 그녀는 소설의 화자이자 예심판사인 지노비예프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그를 사랑한다. 백작 카르예네프 또한 올가를 유혹하여 그녀와의 위험한 줄다리기를 하며 그녀의 허영심을 채워준다. 어느 날 모두 사냥을 함께 나가게 되고 미혼인 줄 알았던 백작의 부인이 도착한다. 그리고 사냥터에서 올가가 처참한 모습으로 발견되고 그녀는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는데...

 

그녀는 과연 누가 죽였을까.

 

지노비예프의 앵무새 이반 데미야늬치는 남편이 아내를 죽였다!”라고 여러번 외친다.

 

강도가 들지 않을까, 혹은 타인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만으로도 우리의 공포는 이미 차고 넘친다고.’(p.16) 초반의 문장이 글의 전반에서 느껴지는 인간들이 하는 행위의 공포를 암시한다. 남의 아내를 취하고 남의 재산을 내 것처럼 쓰는 행위, 온전히 나 자신으로 살고 있는지, 이성을 가진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체호프가 예리한 질문을 던진다.

소설의 초입부터 이미 범인의 추리가 가능해서 오히려 책 속 인물들에 집중할 수 있었다.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인간 내면의 악과 그것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 감추려는 시도 등 양가 적 감정을 가진 인간군상을 그려낸다. 그중에서 허영과 욕망 덩어리로 표현되는 올가를 더 깊이 생각해 본다.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그녀의 이유에 대해서.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기란 어렵다. 그러나 휠씬 더 어려운 것은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다.’(p.152) 그녀도 자신이 왜 이러는지 모르지 않았을까. 최근 읽은 고전들의 공통된 질문에 닿아서 더 생각이 많아지는 소설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편엽서
안느 브레스트 지음, 이수진 옮김 / 사유와공감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가 안느 브레스트는 유대인으로 자신의 가족이 겪은 홀로코스트 역사를 소설로 녹여냈다.

 

어느 날 익명으로 온 엽서 한 장에는 에브라임, 엠마, 노에미, 자크 네 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들은 의 엄마의 할아버지, 할머니, 이모, 삼촌의 이름이었다. 아우슈비츠에서 1842년에 생을 마감한 이들의 이름을 누가 엽서에 적어 보낸 걸까? 이 궁금증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엽서 속 인물들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차마 읽어내기 어려운 아우슈비츠에 당도한다. 참혹함과 먹먹함이 더해진다. 그럼 에도 이들은 작은 실마리라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이름의 주인공들을 찾는 여정 속에서 나의 유대인이라는 뿌리와 나 자신을 인식하게 된다.

 

전쟁이라는 것은 인간을 얼마나 잔인하고 이기적이게 만드는지, 또한 생존자에게는 어떤 상흔을 남기는지 책은 여과 없이 보여준다.

 

그들을 잊어서는 안 돼. 그럼 그들이 존재했다는 걸 기억하는 사람이 한 명도 남지 않게 될 거야.”(p.591) 책 속에 이 문장은 내게 큰 울림을 준다. 많은 사람이 사망한 이태원 참사는 우리에게 어떻게 기억되어야 하며 그들을 어떻게 애도해야 할까. 사회적 참사를 기억하는 방식이 특별법거부로 이어진 것이 안타깝고 화가 난다. 책에서 선량한 시민이었던 이들은 시장이 시키는 대로 끌려가 노역을 하고 결국 가스실에서 죽는다. 답답함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른다. 책 속에 있는 절박한 이들의 울음이, 가족과 헤어져서 그들의 생사를 확인하느라 자식도 내버려 두는 그 심정이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그때나 지금이나 시민을 지켜주지 못하는 정부에 대한 화가 치밀어 오른다. 우리는 어떻게 정부를, 나라를 믿고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질문하게 하는 책이었다. 우리는 그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의 관계를 돌봄이라 부를 때 - 영 케어러와 홈 닥터, 각자도생 사회에서 상호의존의 세계를 상상하다
조기현.홍종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돌봄청년커뮤니티 n인분 대표, <아빠의 아빠가 됐다>, <새파란 돌봄> 등을 썼고, 돌봄으로 연결된 동료들과 돌봄의 새 파란을 일으킬 궁리로 여러 실천을 이어가는 조기현과 방문진료 전문병원 건강의 집 의원을 열어 아픈 이들을 직접 찾아다니고 <처방전 없음> 등을 펴낸 홍종원의 돌봄이 순환하는 세계를 생각해보는 대화를 엮은 책이다.

 

오랜 병환으로 자리에 누워계시다가 돌아가신 엄마를 돌봤던 건 우리 삼 남매이다. 당시에도 돌봄 도우미가 있었지만 실질적인 주 돌봄은 가족의 몫이었다. 사회적 돌봄이 아닌 가족 독박의 돌봄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으므로 책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다. 나 역시도 부모 돌봄과 나의 노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시기이기도 하다. 조기현의 <아빠의 아빠가 됐다> 또한 책 모임으로 토론하고 저자와의 만남도 한 터라 반가움도 컸다.

 

책은 돌봄의 올바른 의미와 지금 우리 사회의 돌봄이 어디까지 왔는지 대화를 통해 알아본다. 저평가되어 있는 돌봄이 여성의 노동으로 전락하여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외주까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단순히 아이 양육과 어르신 돌봄이 돌봄 영역의 다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우리가 일상에서 맺고 있는 모든 관계가 돌봄이라고 말한다. 연결된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서로를 돌보고 돌봄, 사람, 연대 속에 있어야 함을 제시한다. 지금 우리의 관계를 돌봄이라고 부를 때 이것이 선순환되어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지 않을까. 지금 우리가 꼭 나눠야 할 돌봄을 화두로 던지는 책 <우리의 관계를 돌봄이라 부를 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른의 불만 마흔의 불안 - 불확실한 시간을 통과하는 마음
조소현 지음 / 어크로스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아이들을 키우며 돌봄 노동을 했기에 워킹맘의 그 힘듦의 깊이를 충분히 알지는 못했다. 일하면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의 어려움을 글을 통해서 보고 그것이 누군가 또 다른 여성의 노동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에 깊이 공감이 갔다.

 

일하는 여성이 아니더라도 대한민국에서 30~40대를 살아가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들이다. 남녀의 차별적 시선, 사회적으로 바라는 여성의 외양, 생리, 산부인과 병원, 고정적인 성역활, 각방 라이프, 가면 증후군, 새치 염색-여성의 외모, 번 아웃 등

발을 디딘 그곳이 어디이든 불안한 우리는 여성으로서 어떤 이야기들을 나누고 또 목소리 내야 하는지 책은 말한다. 또한, 그것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 이 책을 통해 연대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40대가 되어서 내가 친구들과 나누는 이야기는 미래세대인 아이들의 자립과 현재 우리의 건강, 그리고 안온한 노후이다. 그것들을 준비하려다 보니 미래가 너무 암울하게 느껴져 오히려 지금의 삶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찰나의 작은 행복, 소소한 즐거움, 나이듦을 슬퍼하기보다 책을 더 읽을 수 있는 건강을 만드는 것을 서로 나누고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하고 있다.

저자가 말한 대로 ‘40대에게 친구는 노후 대책이다.’ (p.199) 함께 나이 들어가며 읽는 삶을 꾸려가는 이들이 있어 지금이 외롭지 않다. 우리의 불안이 안온으로 점점 물들어 가기를 독려하는 연대의 글들이 담긴 <서른의 불만 마흔의 불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