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생활 습관의 문제야.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나면 별도 정성스럽게 단장을 해 줘야 해. 장미와 바오밥나무를 구분할 수 있게 되면 그 즉시 뽑아야 해. 바오밥나무는 어렸을 때는 장미와 아주 비슷하게 생겼거든. 이건 아주 귀찮은 일이긴 하지만 그렇게 어렵지는 않아.”

-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중에서 

《어린 왕자》에 나오는 바오밥나무는 나쁜 나무다. 바오밥나무 씨앗은 무시무시한 씨앗이다. 그 뿌리가 별에 구멍을 뚫고 파고들기 때문이다. 어린 왕자의 별은 작은데, 그 작은 곳에 덩치 큰 바오밥나무가 자라면 별은 산산조각 나게 된다. 그래서 어린 왕자는 매일 아침 고사리 같은 손으로 바오밥나무 싹을 뽑았다.

동생은 내가 만든 밤식빵을 보더니 바오밥나무가 떠오른다고 했다. 토핑 위에 뿌린 해바라기 씨 덕분이었다. 바오밥나무를 실제로 본 적이 없어 맞는지 모르겠지만, 연둣빛을 띤 해바라기 씨가 나뭇잎과 비슷해 보이긴 했다. 동생은 바오밥나무를 귀엽고 희망이 깃든 소재로 기억하는 것 같았다.

원래 밤식빵 토핑 위에는 슬라이스 아몬드를 뿌려야 한다. 그러나 집에는 아몬드가 없었다. 아몬드를 대신할 만한 재료를 찾아보니 해바라기 씨가 있었다.

   
  재료
생지:
강력분 200g, 중력분 50g, 인스턴트 드라이 이스트 6g, 설탕 35g, 소금 4g, 달걀 1개, 무염버터 30g, 물 100g, 밤조림 80g
토핑: 중력분 60g, 설탕 50g, 달걀 1개, 무염버터 60g, 우유 1큰술, 해바라기 씨
 
   

먼저 제빵기 오븐에 강력분, 중력분, 이스트, 설탕, 소금, 달걀, 물을 넣고 반죽을 시작한다. 5분쯤 지나 모든 재료가 한 덩어리로 뭉쳐지고 오븐 속 벽면이 깨끗해질 즈음 버터를 넣는다. 그 다음엔 완료되었다는 소리가 울릴 때까지 토핑을 준비한다. 제빵기를 이용하면 반죽이 한결 차지고 1차 발효까지 되어 아주 편하다.

토핑을 만들고 짜는 데는 큼직한 볼, 거품기, 짤주머니와 톱니형 깍지가 필요하다. 우선 버터를 볼에 넣고 녹여 준다. 이때 물이 아닌 마요네즈 같은 상태가 되도록 신경 쓴다. 거품기로 볼 안쪽 벽면을 치며 버터를 풀어 주다 설탕, 달걀 흰자, 달걀 노른자, 중력분, 우유 순으로 넣어 크림 상태가 되도록 섞는다. 완성된 것을 짤주머니에 채워 넣으면 토핑 준비 끝. 

나는 스프링 거품기와 별형 깍지를 썼다. 양식을 배울 때 사 둔 녀석들이다. 스프링 거품기는 일반 거품기보다 거품을 훨씬 잘 낸다는 이야기를 듣고 골랐는데, 밤식빵 토핑을 만들 때 역시 재료들을 잘 섞어 줬다. 제빵실기시험을 볼 때 갖고 갈 생각으로 선생님께 여쭈어 보니, 갖고 가도 되긴 하지만 시험 볼 땐 많은 양을 만들어야 하기에 일반 거품기 큰 것을 써야 한다고 하신다. 에고, 커다란 스프링 거품기는 구할 수 없으려나?

다 된 반죽은 둥글리기 한 뒤 볼에 넣어 비닐을 덮고 20분간 중간발효 시킨다. 이때 식빵틀에 기름칠을 해 둔다. 중간발효가 끝나면 빵 성형을 시작한다. 밤식빵은 ‘한 덩이형’이다. 손바닥으로 반죽을 눌러 공기를 뺀 뒤 밀대를 이용해 큰 타원형으로 밀어 주고, 뒤집어서 밤조림을 올린다. 완성된 빵을 잘랐을 때 밤이 한쪽에 쏠려 있으면 안 되므로 골고루 잘 올려야 한다. 밤이 튀어나오지 않게 반죽을 잘 말아서 끝을 여미고 틀에 담는다.

자, 이제 2차 발효를 시킬 때다. 오븐을 이용하면 좋다. 가장 낮은 온도(40도)로 맞춰 반죽이 틀 아래 0.5cm 높이로 올라올 때까지 두면 된다. 2차 발효가 끝나면 반죽을 꺼내 짤주머니에 든 토핑을 올리고 해바라기 씨를 뿌린 뒤 다시 오븐에 넣어 굽는다. 집에서 쓰는 미니오븐은 학원에 있는 데크오븐과 달라 온도를 낮추고 시간도 짧게 잡아야 한다. 컨벡스 미니오븐 160도에서 25분 구우니 알맞은 듯했다.

듬뿍 짜 넣은 토핑이 조금 흘러넘치긴 했지만, 완성된 밤식빵은 소담하고 노릇하여 보기 좋았다. 맛을 본 식구들도 모두 흐뭇해 했다. 오븐에서 나오자마자 뭉텅뭉텅 베여 사라졌으니 괜찮게 만든 것 같았다. 접시가 비었을 때에야 생각이 났다. 어린 왕자, 그 고사리 같은 손으로 바오밥나무 싹을 뽑던 아이와 나눠 먹을걸.

며칠 전 미용실에 갔을 때 처음으로 미용사의 손을 보았다. 내 머리를 감겨 주었던 훤칠한 남자 미용사의 손, 내게 요리잡지 <쿠켄>을 건네주었던 어여쁜 여자 미용사의 손 모두 많이 상해 있었다. 매일 독한 약을 다루다 보니 붉어지고 거칠어질 수밖에 없겠지. 그런데 난 왜 이제야 그들의 손을 보게 된 걸까. 하마터면 그 손들 위에 내 손을 포개고 “아파 보여요” 할 뻔했지 뭔가.

여자 미용사는 요리를 좋아한다고 했다. 전에 일했던 미용실의 단골 가운데 유명한 쉐프가 있었는데, 그분이 열정만 있다면 함께 일해 보자고 제안했단다. 갈등하다 결국 지금 미용실로 왔지만 아직도 생각이 난다는 걸 보니 퍽 아쉬운 모양이었다.

“드라마 ‘파스타’ 보세요? 정말 그렇게 힘들까요? 그러고 보면 요리랑 미용은 비슷한 것 같아요.” “엄마는 말씀하세요. 요리는 결혼하면 네 남편한테만 해 주라고.” 그렇게 말하며 웃던 미용사가 내 손등을 만져 본다. “아유, 이 손으로 요리를 하신다는 거죠? 계속 재미있게 하시면 좋겠어요.” 

어린 왕자는 장미를 사랑했다. 그리고 별을 지키기 위해 바오밥나무 싹을 뽑았다. 습관처럼, 귀찮지만 어렵지 않다고 여기면서. 문득 요리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해바라기 씨를 토핑한 밤식빵을 나누어 먹고 싶다. 우리의 습관은 뭔지, 삶을 지키기 위해 하는 일은 뭔지, 뽑아내는 것과 뽑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것은 뭔지… 달콤한 밤과 바삭바삭한 토핑, 쫄깃한 빵을 느끼며 이야기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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