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파스타’를 본다. 요리를 주된 소재로 삼아서 좋고 뜨거운 주방 풍경을 생생하게 보여주어 좋다. 쉐프와 초보 요리사 사이에서 무르익어 가는 사랑, 그것을 지켜보는 맛도 고소하다.

쉐프가 눈을 가린 상태에서 음식 맛만 보고 요리사를 뽑는 블라인드 테스트, 매출이 떨어진 레스토랑을 살릴 목적으로 펼쳐진 신메뉴 개발 콘테스트 같은 소재도 신선했다. 듣자하니 일본 드라마나 일본 만화에서는 쓸 만큼 쓴 이야깃거리라던데, 그쪽에 발을 깊이 담가 보지 않은 내게는 제법 새로웠다.

한 가지 더, ‘알리오 올리오’란 파스타를 알게 되었다. 별다른 소스 없이 올리브유로 마늘과 면을 볶아 내는 이 파스타를 맛본 적은 있다. 프랜차이즈 스파게티집에서 ‘마늘오일스파게티’란 이름을 보고 골랐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그때 입맛에 안 맞았던지 또 찾아 먹은 기억은 없다. 스파게티 맛은 토마토소스 아니면 크림소스에 있지 하고 줄곧 토마토소스 스파게티나 까르보나라를 주문했던 것 같다. 그래서 드라마 속 쉐프가 ‘숟가락으로 받쳐야 될 만큼 소스 흥건한 파스타는 정통 파스타가 아니다’라며 버럭버럭 소리를 지를 때, 괜스레 부끄러웠다.

알리오 올리오는 드라마 초반에 꽤 비중 있게 다뤄진 소재다. 주인공 초보 요리사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눈물과 함께 먹었던 파스타이고, 또 그가 주방에서 쫓겨난 뒤 복귀하고자 참가한 블라인드 테스트 때 선보였던 파스타이다. 누구보다 울상이 잘 어울리는 초보 요리사가 몇 번을 삶고 볶고 맛보고 버리며 눈물과 애증으로 완성한 알리오 올리오를 나도 만들어 보고 싶었다.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이미 많은 조리법이 올라와 있었다. ‘드라마 파스타에 나온’, ‘공효진 따라잡기’ 같은 제목들로 말이다. 여러 개를 살펴본 뒤 면, 마른 고추, 파슬리, 올리브유, 파마산치즈 가루를 사 왔다. 마늘은 냉장고에 넉넉히 있었다.

먼저 마늘을 얇게 저미고 마른 고추는 잘게 썰었다. 파슬리 잎은 다져서 준비했다. 재료 손질을 마친 뒤 올리브유와 굵은소금을 넣은 물(면 삶기용)을 올렸다. 프라이팬에 올리브유 두 큰술을 두르고 마늘과 마른 고추를 볶았는데, 이때 마늘을 태우고 말았다. 연갈색으로 익어 버린 마늘 조각들 앞에서 혀를 차며 일단 불을 껐다. 면을 삶아야 할 차례였다. 면을 미리 삶아 놓으면 불고 맛이 떨어지니 마늘을 볶은 다음에 하라는 지시를 봐 둔 터였다.

내가 쓴 면은 납작하게 나온 ‘바베떼’였는데, 8분 가까이 삶아도 잘 익은 것 같지 않았다. 면 한 가닥을 끊어 보았을 때 속에 샤프심 같은 심이 생겼으면 다 익은 것이다. 그러나 샤프심을 확인하고서도 마음이 놓이지 않을 만큼 바베떼란 녀석이 주는 식감은 낯설었다.

여하튼 그렇게 삶아 낸 면을 프라이팬에 넣어 마늘, 마른 고추와 함께 볶았다. 면 삶은 물 세 큰술을 넣고 소금, 파슬리 가루, 파마산치즈 가루도 넣었다. ‘파스타’ 속 쉐프와 초보 요리사가 했던 것처럼 프라이팬을 흔들고 나무주걱도 휘둘렀다. 용쓰는 나를 지켜보시던 어머니가 한마디 건네셨다. “이건… 썩 맛있어 보이진 않네.”

어쩜, 내가 봐도 그랬다. 맛을 보니 과연 그러했다. 올리브유를 적게 쓴 모양이었다. 기름이 면에 찰싹 달라붙어 있어 풍미를 느끼기 어려웠다. 간도 못 맞춘 데다 태운 마늘은 씁쓸했다. 이 녀석을 만들기 전에 일부러 성신여대 앞 ‘마늘과 올리브’에 가서 먹었던 ‘마레 알리오 올리오’와는 심히 동떨어진 맛이었다. 기대하고 있던 동생이 포크질을 몇 번 하더니 알 수 없는 맛이라며 못 먹겠다고 했다. 간만의(?) 실패작이었다.

'마늘과 올리브'에서 먹었던 '마레 알리오 올리오'.
오징어, 홍합, 새우 등 해산물이 들어 있다.
   

드라마에서 초보 요리사가 얼굴을 찌푸린 채 싱크대에 쏟아 버린 파스타도 이런 맛이었을까? 재료를 적게 쓰는 만큼 맛을 내기 어려운, 소스가 없어 요리 결과가 훤히 드러나는 알리오 올리오가 퍽 까다로운 녀석임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실패한 알리오 올리오와 상관없이 ‘파스타’는 계속 보고 있다. 쥐치 간 푸아그라, 피쉬볼 파스타 같은 새로운 요리와 함께 요리사들은 매회 애정의 다양한 얼굴을 드러낸다. 그러고 보니 알리오 올리오는 사랑에 서툴고 용감한 초보 요리사를 쏙 빼닮았다. 좋으면 좋다고, 싫으면 싫다고 속내를 얼굴에 생중계하는 그. 부족하면 부족하다고, 실패작이면 실패작이라고 맛을 접시 위에 재현해 내는 파스타.

문득 이런 생각이 솟는다. 사랑하는 이에게 맛있는 알리오 올리오 같은 사람이 되어 주자는. 담백하고 감칠맛 나서 맛볼수록 끌리고, 속을 가리는 소스 따위가 없는 까닭에 더욱 좋아지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려면 알리오 올리오 만드는 연습도 더 해야겠지? 재료는 충분히 남아 있다. 연습은 아무리 해도 넘치지 않는다. 노력은 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스승이다. 나는 요리에서도, 사랑에서도 천재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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