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yone can cook.”
“누구든지 요리를 할 수 있다.” 영화 <라따뚜이>에 나온 말이다.

주인공은 절대후각을 지닌 생쥐 ‘레미’. 다른 쥐들이 쓰레기통을 뒤져 상한 음식을 먹고 있을 때 이 녀석은 버섯에 치즈와 로즈마리를 얹어 굽는 실험을 한다. 뿐만 아니다. 프랑스 최고의 요리사 ‘구스토’가 출연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그가 펴낸 요리책을 넘기며 맛에 대한 꿈을 키워간다. 겉모습은 사람들의 비명을 자아내는 혐오동물이지만, 그 영혼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프로요리사다.

‘누구든지 요리를 할 수 있다’는 말은 무한정 관대한 듯하다. 그러나 영화를 따라 속뜻을 헤아리다보면 결코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요리를 하는 데 당신의 과거는 중요하지 않다. 학연, 지연, 경력… 그런 것 없이도 얼마든지 요리를 할 수 있다. 단, 요리가 반드시 필요로 하는 것은 따로 있다. 당신의 체력, 열정, 그리고 상상력. 요리사라면 부산스럽고 후텁지근한 주방에서 종일 버틸 수 있어야 한다. 식재료를 맛보고 만지는 일에 오감이 열려 있어야 하며, 남들은 생각지도 못한 재료를 써서 새로운 요리를 창작할 수 있어야 한다.

<라따뚜이>의 메시지에 고무되어 학원에서 배운 중식 몇 가지를 만들어봤다. 뼈 발라낸 닭을 두 번 튀겨 간장소스에 버무리는 깐풍기, 옥수수반죽을 공 모양으로 빚어 튀기고 시럽을 묻혀내는 옥수수탕, 고추기름과 두반장으로 매콤한 소스를 끓여 두부를 섞는 마파두부, 이렇게 세 가지였다.

 

깐풍기는 어려운 요리가 아니지만 닭이 작아서 뼈 바르는 데 애를 먹었다. 뼈를 바르든 포를 뜨든 채를 썰든 다른 동물의 살을 손질할 땐 어쩔 수 없이 미안한 마음이 든다. 능숙하기라도 하면 나을 텐데 낑낑거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마음은 더 착잡해진다. 닭다리뿐만 아니라 가슴살도 쓰고, 대파와 생강 등의 향채도 듬뿍 넣어서 맛은 괜찮았다. 

옥수수탕엔 옥수수 통조림이 아닌 삶은 옥수수를 이용했다. 그러다보니 반죽이 뻑뻑해서 동그랗게 빚어지질 않았다. 통조림으로 만든 것보다 딱딱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위적인 단맛이 줄어서 훨씬 나았다. 어떤 요리를 하든 방부제덩어리에 유전자변형가능성이 있는 통조림은 가급적 사용하지 마시길. 음식의 격이 떨어져 보이는 건 둘째 문제다. 무엇보다 먹는 이들의 건강을 위해 돌아볼 일인 것이다.

마파두부의 키포인트는 두반장인데 자주 가는 마트에 없어서 준비하지 못했다. 두반장 대신 고추장을, 간장 대신 굴소스를 넣어 감칠맛을 맞춰봤다. 3인분을 하느라 설탕 계량에 헷갈려 너무 달게 된 것이 흠이었다. 그래도 이열치열하기에 적합한 요리였다고 생각한다.

마파두부를 만들며 떠올린 사람이 있다. 얼마 전에 만난 그는 정신적으로 많이 지쳐 있었다. 가학적인 연애, 사랑도 아닌 사랑으로 고생하던 그. 헤어지자는 말과 다름없는 상대의 언동들 속에서 지푸라기라도 잡고자 몸 달아 있던 그. 나는 그가 버리지 못하는 분홍색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어쩌면 저렇게까지 상대에 대해 터무니없는 환상을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말을 잃었다. 아니, 헤어지기 전에 할 말을 다 하고야 말았다.

그 사람이 얼마나 치졸한지, 폭력적인지, 주제파악을 못하는지 있는 그대로 봐요. 그리고 밀어내요. 단 몇 퍼센트라도 갖고 싶다구요? 다른 여자들을 만나고 다녀도 좋다구요? 사랑이 완벽한 백퍼센트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하지만 사랑이 하나인 건 맞아요. 둘이고 셋인 게 어떻게 사랑인가요. 소설이나 영화 속에선 그럴 수 있겠죠. 그러나 생활인의 사랑은 단순할 수밖에 없어요. 그 사랑이 진짜라면, 그처럼 여러 개의 거울을 동시에 필요로 하진 않아요. 그 사람이 죽는 걸 상상만 해도 모든 게 용서된다구요? 잘못한 사람이 구할 때 해주는 게 용서지, 구할 생각도 없는 사람한테 혼자 주는 건 용서가 아니에요.

그를 위한 마파두부에는 홍고추를 아낌없이 넣어야 할 것이다. 눈물, 콧물을 흘리며 매콤한 요리를 먹다보면 후들후들한 마음에 어떤 각성이 스미게 될까. 그렇다. 하나마나한 말을 하느니 차라리 마파두부를 권하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중식의 조리과정은 한식의 그것보다 간단한 편이다. 가짓수도 21가지로 훨씬 적고, 각 문제마다 주어진 시간도 짧다. 그럼에도 더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왜인지. 닭을 만질 때 살아있는 닭이 떠올라서? 튀김요리가 많아서? 기름냄새가 지독해서? 전부 그럴듯하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중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요리를 배우기 전까지 자장면, 짬뽕 외에 알았던 게 뭔가. 탕수육, 깐쇼새우 이상으로 알았던 게 뭔가. 꼽을 만한 게 없다. 고로 당연한 일이다. 중국인이 왜 볶고 튀기는 요리를 많이 먹는지, 강한 맛과 향을 선호하는지, 그 드넓은 대륙에 사는 모든 사람의 입맛이 그러한지 모르는 것은. 내가 배우는 나라음식의 문화에 대해 공부할 필요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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