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식과정에 들어갔다. 첫 수업 때 배운 것 중 하나가 이 ‘채소로 속을 채운 훈제연어롤’. 추가된 지 얼마 안 돼 시험에 나올 확률은 낮다고 한다.

슬라이스 한 연어 위에 당근, 샐러리, 무, 피망, 양파 등의 채소를 넣고 말아 3cm 크기로 썰어내는 요리다. 본격적인 식사 전에 입맛을 돋우는 애피타이저인데, 솔직히 이것을 먹고 식욕이 막 살아나리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시험을 앞둔 학생이며 귀한 재료들이 주어졌으니 열심히 만들어봐야 했다.

보통은 고기나 생선보다 채소를 먼저 손질하는 게 순서다. 그러나 이때는 연어부터 썰었다. 언 상태에서 썰어야 원하는 모양과 두께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0.2cm 두께로 얇게 썬 연어 조각들을 비닐 위에 겹치게 놓고 밀대로 자근자근 두드렸다. 조각과 조각을 붙게 하는 과정이었다.

속재료인 채소들은 전부 채를 썰어 준비하고, 색을 구분해 연어 위에 올린 뒤 비닐을 이용하여 말았다. 한식의 어선과 중식의 짜춘권이 떠올랐다. 어선은 생선포 위에 속재료를 올려 말아서 찌는 요리이고, 짜춘권은 달걀지단 위에 속재료를 놓고 말아서 튀기는 요리이다. 둘둘 마는 요리를 할 때면 얼마나 쩔쩔맸던가. 대개는 실패했던 기억이 난다. 김밥 한 줄 말아본 적 없는 내게 ‘마는 요리’란 어려운 것이었다.

다행히 양식의 연어롤은 6개를 무사히(?) 썰어낼 수 있었다. 꾹꾹 눌러가며 말지 못한 탓인지 속이 듬성듬성했다. 남아 있던 채소들을 슬쩍 끼워넣으며 예쁘고 실한 연어롤을 위해서는 첫째로 연어를 얇고 고르게 썰어야 한다는 점, 둘째로 속재료를 올린 뒤 야무지게 말아야 한다는 점을 되새겼다.

특이하게도 소스에는 생크림을 쓴다. 먼저 거품기로 빠르게, 팔이 떨어져라 저어 휘핑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거기에 홀스래디쉬(양고추냉이)와 소금, 후추, 레몬즙을 넣어 섞는다.

만들 때는 요상한 배합이라 여겼고 만든 후에도 소스에 연어롤을 찍어 먹지 않았다. 돌이켜 생각하니 후회된다. 차가운 연어와 부드러운 크림이 잘 어울렸을 법한데. 요즘 <라따뚜이>의 레미처럼 맛을 그려보는 버릇이 생겼다. 분홍빛 연어와 하얀 크림이 어우러진 그림은 제법 그럴 듯하다.

 

곁들인 레몬이 단순한 장식만은 아니다.
훈제연어에 산성의 레몬즙을 뿌려 먹으면 소화에 도움이 된다.

연어류는 ‘귀족 생선’이라고 한다. 그만큼 비싸고 구하기 힘든 것인데, 비교적 싼 값에 살 수 있는 녀석은 자연산이 아닌 양식 연어일 가능성이 높다. 양식 연어는 소금물에 산소를 공급하며 키운 것으로 바다에서 산 적이 없다. 강에서 태어나 바다로 갔다가, 다시 강으로 돌아와 알을 낳는 본디 연어의 일생을 생각하면 몹시 애석한 일이다. 생선으로 살아가는 연어에게도, 그것을 찾아 먹는 인간에게도. 내 접시 위에 올렸던 녀석의 고향은 어디일까?

연어의 여행은 가을에 시작된단다. 강에서 바다로, 다시 강으로. 물을 거슬러 헤엄칠 때 꿈틀거렸을 그들의 아가미와 지느러미와 꼬리를 그려본다. 길고 험한 여정에서 지켜냈을 물기와 소금기와 기름기를 핥아본다. 그것은 짜고 아름답다. 설령 낚시꾼의 그물 속이나 인간의 식탁 위로 귀결된다 하여도, 연어로 태어나 연어로 살고자 치러진 것이기에, 그 여행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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