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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 댄서
조조 모예스 지음, 이정민 옮김 / 살림 / 2020년 2월
평점 :
절판
기다리고 기대했던 조조 모예스의 신작 <호스 댄서>를 만났다. <미 비포 유>를 만난 이후 그녀의 작품은 매번 기다려지고 기대하게 된다. 이번엔 어떤 감동을 선사해줄까 하고 말이다. 도착한 책을 받아든 순간의 그 묵직함. 아.. 이번에도 벽돌책이구나 했다. 살펴보니 700 페이지 가까이 되는 분량이었다. 요즘은 시간적으로 여유가 많지 않다보니 책을 단번에 읽지 못하고 끊어 읽는 일이 대부분이라 조금 걱정을 했다. 끊어읽다보면 아무래도 감정의 흐름도 방해를 받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책을 읽을 기회를 기다렸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후루룩 지나가 버렸다. 이놈의 코로나19.. 정말 나에겐 최악의 바이러스다. 방콕만 하다보니 도대체 아이들 체력이 방전이 안되서 잠을 너무 늦게 잔다. 그러다보니 나도 같이 잠들기 일쑤. 또 한 일주일 정도는 몸살을 동반한 장염에 위염까지 겹쳐셔 몸 컨디션이 최악인 상태로 아이들 케어도 했더니 밤만 되면 기절 모드였다. 덕분에 그제서야 겨우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단번에 읽지 못할거라 예상했었지만 다행히(?) 새벽시간을 이용해 한번에 읽을 수 있었다. 중간에 끊을 수 없었기도 했지만. 역시 기다렸던 보람이 있는 작품이었다. 감동 또 감동. 후반부에선 눈물이 주르륵..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번 작품에는 말이 등장한다. 말과 아이의 특별한 교감. 그리고 그 아이 덕분에 끊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던 관계를 회복 시킬 수 있었던 부부. 저릿한 감동과 함께 지루할 틈 없는 이들의 특별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작가는 이야기에 감동과 재미만 넣어둔 것이 아니다. 사회적 문제점 또한 담아내었다.
너태샤는 거의 매일 그런 애들을 보았다. 난민을 비롯해 문제아들, 쫓겨나거나 방치된 청소년, 칭찬이나 지지, 포용 같은 단어를 알 길이 없는 십 대들. 그런 아이들의 얼굴은 너무 일찍 철면피가 되었고, 그들의 마음은 철저히 생존 본능에 따라 움직이도록 굳어져 있었다. 너태샤는 거짓말하는 아이들에게 설명하고 설득할 수 있다고 믿었다. 예를 들면 부모가 자신을 학대하는 것은 집에서 함께 살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여자애들, 성년이 될 무렵에 자라는 까칠하고 덥수룩한 수염이 훤히 드러나 보이는데도 열한 살이나 열두 살이라고 우기는 망명 신청자들. 하지만 진정성 없는 뉘우침과 비행이 끊임없이 되풀이 되는 구조 속에서 그 애들이 범죄에 빠지기란 어렵지 않았다. - P. 49
"실제로 어려움에 처한 아이들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는데, 위탁 부모 수는 절대적으로 부족하거든요." - P. 311
"사라를 실망시키는 건 시스템이야. 사라와 같은 아이들을 보호해줄 자원과 유연성이 부족한 시스템이 원인이지 우리 잘못은 아니야." - P. 320
요즘 사회적 뉴스를 보면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은 너무 많은데, 사회적 시스템이 뒷받침 되어주질 못하다보니 많은 아이들이 도움을 기다리다 나쁜 길로 빠지거나 최악의 경우 죽임을 당하기도 한다. 이건 아마 어느 나라든 똑같이 가지고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너무나 많은 아이들이 이기적이고 나쁜 어른들 때문에 고통 속에서 자라고 있다. 우리 모두가 함께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하는 이유다.
런던에서 변호사로 바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너태샤 매컬리. 자신의 커리어를 차근차근 쌓아가며 사회적 성공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그녀지만, 실패에 가까운 개인사로 인해 워커홀릭이 되어 행복과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다. 1년째 별거 중인 전남편에 가까운 맥과의 사이에서 세번의 유산을 겪은 후 부부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나중엔 다툼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결국 별거로 이어졌고 현재는 서류 정리만 안했을 뿐 각자 애인을 두고 각자의 삶을 살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너태샤는 이혼남이자 두 아이의 아빠이며 동료인 코너와의 연애도 순탄치가 않다. 맥 역시 가벼운 관계로만 만나고 있을 뿐이다. 그러던 중 맥은 느닷없이 나타나 집 절반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그녀의 삶에 발을 들인다. 집이 매매 되기 전까지 둘은 불편한 동거를 이어가게 되었고, 이번 기회에 둘 사이도 확실히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필 이런 시점에 열네살 소녀 사라가 부부의 삶에 끼어들게 된다. 갑작스레 맥의 등장에 이어 십대 소녀를 책임지게 된 너태샤는 자신의 상황이 혼란스럽기만 하다.
너태샤도 맥도 함께보다 각자 자신이 더 먼저였던 것 같다. 결혼으로 인해 포기해야 하는 것들과 상대방에 대한 배려나 존중을 너무나 쉽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랬기에 한번 금이 가기 시작한 관계가 깨지기 직전의 위태로운 상황에까지 도달했던 거다. 하지만 둘 다 사실은 자신들의 관계를 이렇게 끝내고 싶지 않았기에 별거는 딱 좋은 핑계가 되어 주었다. 그놈의 자존심이 뭔지. 둘다 진짜 자신의 속마음은 감춘채 서로의 주변을 겉돌기만 하는 모습이 답답하기만 했다. 그냥 딱부러지게 자신의 마음을 얘기하면 되는 것을.. 이래서 대화가 중요한 거다. 부부 사이라면 더더욱. 때문에 현재 두 사람에겐 사라의 보호자 역할이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이고, 찬스일지도 모른다. 이건 사라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일터. 십대 아이의 위탁 부모나 입양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일지 짐작이 간다. 타인으로 지내왔던 시간 간격을 좁히려면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할테고 그만큼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노력을 해야할 것이다. 하지만 세 사람의 첫 단추는 그리 잘 끼워지지 못했다. 삐걱대며 아슬아슬 유지하는 균형은 언제 깨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사라는 아주 어려서부터 할아버지로부터 말을 타는 법과 말을 다루는 법 등 기마술을 배우고 익혔다. 매일 아침 일찍 말을 돌보고 기마술을 연습하고 학교에 다녀오는 일상이 사라의 하루 일과다. 이번 열 네번째 생일엔 할아버지에게 특별한 선물을 받았다. 처음으로 할아버지와 해외여행을 떠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 자신이 배우고 익히고 있는 기마술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몇달 기다려야 하지만 충분히 기다릴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할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쓰러지기 전까지는. 병원에 입원한 할아버지가 언제 집으로 돌아올지 기약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사라는 점점 벼랑 끝으로 내몰리게 된다. 말을 돌보기 위한 비용과 생활비가 가장 큰 문제였다. 그러다 너태샤와 맥 부부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말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덕분에 사라는 갈수록 더 궁지에 몰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사라가 학교 수업을 빠지고 거짓말을 하고 집에서 돈이 자꾸 사라지자 그녀의 뒤를 몰래 따라갔던 맥에 의해 사라의 비밀이 밝혀진다. 하지만 여전히 사라에게는 말하지 못한 비밀들이 있었고, 그 비밀은 더 큰 사건을 몰고 오게 된다.
열 네살 밖에 되지 않은 아이를, 절박하게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아이를 이용하는 나쁜 인간들. 진짜 소름이 돋았다. 도대체 저런 나쁜 인간들은 대체 왜 끊임없이 등장한단 말인가. 눈앞에 있다면 몽둥이로 패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아이와 말이 교감하는 장면들은.. 정말 아름답다는 말이 절로 나올만큼 감동이었다. 역시 이래서 아이와 동물의 조합은.. 무조건 찬성이다. 말이라는 동물에 대해 조금은 알 수 있는 이야기기도 했다. 봄이 찾아오려는 이 시기에 딱 어울리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