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증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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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전작을 워낙 재미있게 읽었기에 이번 작품 역시 기대되고 궁금했다. 이번 작품은 아예 대놓고 살인범의 정체를 처음부터 밝히고 시작한다. 새로 이사를 한 곳의 옆집에 초대를 받은 주인공 '헨'이 집구경을 하다가 '펜싱 트로피'를 발견했고, 그로 인해 그집 남자가 살인범이라는 사실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펜싱 트로피' 하나로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느냐 하겠지만, 하필이면 헨이 펜싱 트로피의 진짜 주인의 사건에 집착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단번에 눈치챌 수 있었던 것이다. 자, 그렇다면 여기서 또 그녀는 왜 그 사건에 집착을 했느냐가 의문일 것이다. 사실 그녀도 정상이 아니다. 과대망상에 조울증, 조증을 오고가며 망상에 사로잡힌 과도한 집착 때문에 대학생 때 사건이 터진적이 있었다. 입원 치료를 통해 나아지는가 싶었으나 남편 로이드를 만나 결혼을 한 후, 동네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에 다시 집착하게 되었고 그 사건이 바로 펜싱 트로피 사건이었던 것이다. 여러가지 우연이 겹쳐 결국 헨은 그때 그 사건의 살인범을 눈앞에 두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기막힌 상황인가.



하지만, 더 기가막힌 것은 경찰에서 그녀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드디어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는 제보를 경찰에선 왜 믿지 않았을까? 당연히 그녀의 과거 병력과 사건 때문이다. 아마 경찰에선 '이 여자가 또 다시 망상에 사로잡혀 엄한 사람을 잡는구나' 했을거다. 누구도 믿어주지 않는 상황에 혼자 살인범의 정체를 알게 되었는데 그 살인범이 자신의 정체를 그녀가 눈치챘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도대체 이 일은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 걸까. 안그래도 어이없는 상황인데, 더 일을 딱 벌어지게 만드는 일이 벌어졌다. 살인범이 그녀를 찾아와 자신의 범죄를 시인한 것이다. 자신의 범행을 이실직고 하는 살인범이라니.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 이 상황. 헨의 입장에서는 가슴을 칠 일이었다. 살인범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으나 스스로 정의한 정의를 실현한 일을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고, 그 이야기를 듣는 헨은 모든 것을 알면서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으니 이런 이상한 관계가 또 어디 있을까.


이렇게 두 사람이 심리 게임을 하는 사이, 밖에선 또 다른 사건이 벌어진다. 이게 또 반전이라면 반전. 여기에 마지막에 또 한번의 진짜 반전을 선사한다. 역시 이번 이야기에서도 느꼈지만, 많은 범죄자들의 성장 배경에는 언제나 좋지 못한 가정사가 있다. 폭력적인 아버지와 그 폭력에 노출되어 힘없이 당하기만 하는 어머니. 알코올 중독, 외도.. 이런 환경에서 자라면서 비뚤어진 시각을 갖게 되고, 그것이 결국 범죄로 이어지고 만다. 살인범 또한 마찬가지였다. 잘못된 부모를 보고 자라서인지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살인을 저지른다. 살인대상은 남자로 그 남자는 여성을 향해 잘못을 저지른 나쁜 인간이어야 한다. 물론, 아무리 나쁜 남자라 하더라도 살인이 정당화 될 수는 없다. 살인범은 그냥 살인범일 뿐이다. 내 남편이, 옆집 남자가 살인범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어마무시할 그 충격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생각만해도 소름 끼치는 설정이다. 흥미롭게 읽기는 했으나, 전작에 비해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다.



*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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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집 청소
김완 지음 / 김영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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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해지면 필연적으로 더 고독해지는가? 빈궁해진 자에게는 가족조차 연락을 끊나보다. 옆집에서 풍기는 이상한 냄새를 의아하게 여긴 이웃의 신고로 주검은 뒤늦게 발견되고 경찰은 그제야 사망의 원인을 규명하고 유족을 찾아 나선다. 혼자 죽은 채 방치되는 사건이 늘어나 일찍이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던 고독사 선진국 일본. 그 나라의 행정가들은 '고독'이라는 감정 판단이 들어간 어휘인 '고독사' 대신 '고립사'라는 표현을 공식 용어로 쓴다. 죽은 이가 처한 '고립'이라는 사회적 상황에 더 주목한 것이다. 고독사를 고립사로 바꿔 부른다고 해서 죽은 이의 고독이 솜털만큼이라도 덜해지진 않는다. 냉정히 말해서, 죽은 이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자 편에서 마음의 무게와 부담감을 덜어보자는 시도이다. 나 같은 일을 하면서 유족이 시신 수습을 거부하는 상황을 보는 일은 별스럽지 않다. 진작 인연이 끊긴 가족과 생면부지의 먼 친척이 느닷없는 부음을 듣고는 "네, 제가 장례를 치르고 집을 정리하는 데 드는 모든 비용을 책임지겠습니다" 하고 선뜻 나서는 경우는 좀처럼 없다. '혹시 빚을 떠안지 않을까' 하며 빛의 속도로 재산 포기 각서를 쓴다.  - P. 42~43


남은 음식을 치우는 일은 가볍고 쉬운 것, 죽은 사람이 남긴 육체 조각과 혈흔을 없애고 냄새나는 살림을 치우는 일은 무겁고 엄숙한 것이라고 누가 선을 그을 수 있는가. 특수청소를 하는 것은 남다른 일, 특별하고 어려운 행위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일상적이지 않은 상황에 대한 처치일 뿐 그일 자체가 특별하지 않다. 누구라도 해야 할 일을 누군가가 대신하는 것뿐. 그래서 세무서가 발행한 사업자등록증엔 이 사업의 업태를 '서비스'라고 표기한다.  - P. 134


'특수'라는 수식어를 앞세우지만, 여전히 우리 업종은 사람들 앞에서 모습을 드러낼 수 없는 유령작업 같다. 이런 직업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이가 많다. 특수청소업은 우리나라 세법에서 '사업 종목'으로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일반청소업'의 거대한 카테고리에 종속된 채 숨어 있다.  - P. 135


죽은 자의 집을 제집처럼 드나드는 직업이라지만 자살에 쓰인 도구를 발견할 때면 고요했던 내 마음에 한순간 파도가 일렁인다. 또 그것이 죽은 이의 직업과 연관된 것이라는 점을 깨달으면 심란해지고, 양가적인 감정이 동시에 밀려온다. 그런 자살 도구는 죽은 이가 맞닥뜨려온 하루하루의 일상과 생계를 밝히는 수단인 동시에, 죽음에 이른 과정을 드러내는 직접적인 증거이기 때문이다.  - P. 236



반드시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일이지만, 어떤 이도 쉬이 그 누군가가 되고 싶어하지 않는 일이 바로 '특수청소'가 아닐까? 죽은 자의 집을 청소하고, 산더미 같은 쓰레기가 쌓여있는 집을 청소하는 일. 나로서는 생각도 못할 일이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이리저리 요동을 치는 것 같았다. 고독사, 자살, 살인사건.. 뉴스로 접하는 것은 일부에 불과할거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그가 전하는 이야기를 보면 생각보다 더 많은 일이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걱정인건 이러한 일들이 앞으로 더 많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고독사가 사회적 문제가 된지 오래인 일본처럼 우리나라 역시 갈수록 고독사가 늘어나고 있고, 너무 많은 스트레스와 억압되어 있는 감정들 사이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삶의 끈을 놓아버리는 이들 또한 늘어나고 있으니 말이다. 이외에도 결코 줄어들지 않는 돈, 치정 등의 문제에 의한 살인사건들.. 이렇게 놓고보면 그의 일이 줄어들수록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이 조금은 나아지고 있는거라 생각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고로 그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의 일이 줄어들고 줄어들었으면 좋겠다.


저런 정말 특수한 현장의 청소 외에 그의 '특수청소'에는 쓰레기집 청소도 포함되어 있다. 어디선가 우연히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쓰레기집은 생각보다 많고 그런 쓰레기집 청소를 전문으로 하는 업체가 있다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런 쓰레기집의 주인은 예상외로 굉장히 멀쩡한 사람들이 많았다. 대기업을 다니거나 의료계 종사자이거나 일반 회사원이거나. 정말 그냥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만나는 그런 평범한 사람들이 정작 집은 그렇게 해놓았다는 사실이 경악스러울 따름이었다. 물론 우울증 등의 정신적인 질병을 가진 사람들도 있기는 했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 않겠나. 집은 그렇게 만들어놓고 외출할 때는 깔끔하고 멀쩡하게 나갔을거라 생각하면.. 그저 기가 막힐 뿐이다. 뭐 그런 사람들의 평상시의 모습을 알 수는 없지만. 암튼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가 청소했다는 한 고시원의 이야기는 충격 그 자체였다. 나도 모르게 상상을 해버려서 한동안 속이 좋지 않았을 정도다. 도대체 사람이 어떻게 살면 네 평 남짓한 공간을 그정도의 쓰레기와 오물로 가득 채워놓을 수 있을까? 특히 화장실은...


변기는 그냥 막힌 정도가 아니라 똥을 비롯한 오물로 정상까지 가득 차 있었다. 얼핏 본 영상, 그 두루뭉술한 피라미드 같은 형태로 짐작해보면 똥과 휴지로 이미 변기가 막힌 상태에서, 그 위에 싸고, 또 싸서 겨우 넘치지 않을 만큼 차오른 채로 굳어버린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나버린 탓에 냄새가 정점을 찍고 반감기를 지나 오히려 미미해졌다는 점이다. 배관공의 조상을 초빙해도 이 심각한 변기 앞에서 고개를 가로젓고 뒷걸음질 칠 것 같다. 결국 이 사태를 해결할 자는 판도라의 상자를 처음 연, 무모한 짓을 저지른 사람이다.  - P. 218


그녀라 지칭을 했으니 이런 사태를 만든건 여자라는 얘기. 이것을 모조리 치워낸 그의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면, 속이 불편해지면서 의뢰인이라는 그 여자의 평소 모습이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남자들에게 경고하고 싶을 지경이다. 이런 여자 만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오줌을 채운 패트병을 집안 가득 채운 이야기는 이 이야기에 비하면 가볍게 느껴지긴 했으나, 이 이야기 또한 황당할 따름이었다.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가려서 받을 수 있을까. 집주인으로서는 최악의 입주자고 골칫거리인 셈이다. 세상에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다지만, 왜 이런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는 걸까. 혹시 내 주변에도 이런 사람이 있는데 내가 모르는걸까? 아니겠지만, 생각만해도 소름이다. 이런 문제를 사회적인 문제로 다루어야 하는 때가 오게 될까? 어쨌든 고개가 절로 저어지는 일들이다. 이런 일을 해내는 그가 대단해 보일 뿐이다. 되도록 많은 이들이 읽어봤으면 싶은 책이다. 특수한 직업에 대해 조금은 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 어쩌면 우리가 알면서도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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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사이드 클럽 스토리콜렉터 83
레이철 헹 지음, 김은영 옮김 / 북로드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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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명이 늘어난다는건 축복일까? 그 수명이 300년 혹은 그 이상.. 혹은 영원이 지속된다면? 길어지는 수명과 더불어 발전한 의료 기술로 완벽한 두뇌와 외모를 유지할 수 있다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생각할땐 그다지 큰 축복처럼 여겨지지는 않는다. 길어지는 수명만큼 살아갈수록 삶이 지루하고 따분해질 가능성이 높고, 단지 잠깐의 즐거움 혹은 재미로 사회적 문제가 만들어질 가능성 또한 높을 것이다. 누구나 똑같이 누릴 수 있는 긴 수명이라도 문제가 많을건데, 태어나면서부터 타고난 유전자에 의해 수명의 길고 짧음이 정해지고 그에 따라 누릴 수 있는 사회적 혜택 또한 달라진다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 사회 곳곳에 숨어있다해도 이상한 일이 아닐거다. 삶을 포기할 권리를 주장하는 '수이사이드 클럽'이 생긴 것처럼 말이다. 여기 긴 수명을 사는 라이퍼와 일반 수명을 사는 비라이퍼로 나뉜 세상이 있다. 100세는 기본, 200세를 사는 것은 당연시 되었고 곧 300세의 삶을 누릴 수 있게 된다. 물론 이것은 라이퍼들만 가능한 생명 연장이다. 때맞춰 피부이식, 신체기관 교체에 피부와 근육을 위한 주사를 정기적으로 맞고 관리한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수명을 줄일 수 있는 일들이나 음식은 일절 배제한 삶을 살아간다. 이들에게 건강과 수명은 삶을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늘어나는 수명에 비해 인구는 계속 감소하고 있었다. 길어진 수명만큼 아이도 많이 낳을 법한데 말이다. 뭐 자신들의 삶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라이퍼의 삶을 생각해보면 육아 스트레스가 원인이 아닐까? '격렬한 운동'에 대한 부정적인 연구 발표로 인해 대부분의 라이퍼들이 '달리기'를 그만둔 것처럼 말이다. 음식과 음료 또한 맛보다 건강이 우선인 요리 위주였으니 어쩌면 라이퍼들의 삶은 긴 수명에 집착한 나머지 삶의 즐거움이 될 수 있는 요소들을 스스로 하나둘씩 포기해 나가는 과정의 연속이지 싶다. 그럼에도 이런 라이퍼의 삶에 자부심을 가지며 300세를 향한 '제 3의 물결'에 가장 먼저 포함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에 부풀어 있는 주인공 레아는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라이퍼 중 하나였다. 100세 전에 임원자리에 오른 첫 라이퍼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랬던 그녀의 삶은 정말 한순간에 바뀌고 만다. 88년만에 발견한 아버지 때문이었다. 길건너에서 발견한 아버지의 등을 보고 급히 따라가려다 차에 치여 자살하려던 것으로 오해를 샀고, 이로 인해 정부의 감시를 받게 된 것이다. 체제 반역자의 꼬리표를 달고 있는 아버지를 발견해 따라가려다 사고가 났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기에 아무리 오해라고 해도 정부는 그녀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그렇게 레아는 정부 감시자들로 인해 회사 눈 밖에 났고, 몰래 아버지의 뒤를 따라갔다가 '수이사이드 클럽'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그렇게 조금씩 승승장구하던 레아의 삶은 무너지기 시작했고, 그와 더불어 라이퍼로서의 삶과 정부의 방침에 대해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아이였을 때 자신이 벌였던 일을 어머니가 어떻게 수습을 했었는지, 아버지의 반응은 어땠는지.. 자신의 가족에게 벌어졌던 일들과 함께 자신의 삶을 되짚어 보며 생각에 잠기던 레아는 마음을 다잡고 수이사이드 클럽의 정보를 정부에 넘기고 자신의 빛나던 삶을 다시 되찾으리라 마음 먹는다. 하지만 일은 그녀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세상 일이란 원래 그런게 아니던가. 독특한 세계관 덕분에 흥미롭게 읽어 나갔다. 그런데 레아의 어린시절의 일은 경악스러웠다. 그런 일이 있었음에도 부모가 일처리를 그렇게 했다니?! 사이코패스 성향을 참 잘 누르고 살았구나 싶었다. 굳이 이런 일을 포함시켜야 했나 싶기도 하고. 또 비라이퍼들의 삶과 라이퍼의 삶에 대한 차이에 설명이 부족하게 느껴져 그 부분이 아쉬웠다. 비라이퍼들의 이야기도 좀더 포함되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재미있게 읽기는 했으나 그만큼 아쉬움도 남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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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냐도르의 전설 에냐도르 시리즈 1
미라 발렌틴 지음, 한윤진 옮김 / 글루온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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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프, 드래곤이 등장하는 판타지 소설은 정말 오랫만이다. 그래서일까.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술술 풀려나가는 이야기와 독특한 세계관이 내내 흥미로웠다. 독일 작품은 주로 추리, 스릴러 분야로 많이 만났어서 어떨까 했었는데, 흡입력이 상당한 이야기였다. <에냐도르의 전설>은 <에냐도르의 파수꾼>, <에냐도르의 화염>, <에냐도르의 패권>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첫 시작으로 에냐도르 대륙의 네 종족 엘프, 드래곤, 데몬, 인간들에게 오래전부터 전해내려오는 예언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진짜 이야기의 시작이라 할 수 있을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다. 영화로 만들어져도 너무 재미있을 것 같다. 지금 코로나 여파로 영화 제작이 된다해도 한참 뒤에나 가능하게 될 것 같기는 하지만, 영화로도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잘 만들어진다면 볼거리가 많은 영화가 될 것 같다.


에냐도르 대륙은 본래 인간들이 통치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먼 옛날의 이야기일뿐. 욕심이 많은 인간들이 결국 일을 만들어냈으니 말이다. 네 개의 나라가 있었던 그 옛날, 각 통치자는 왕위 계승자를 슈트름 산맥의 대마법사에게 보내 가장 강한 민족이 되어 다른 나라를 무릎 꿇게 만들기를 원했다. 대마법사는 자신을 찾아온 왕위 계승자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빼앗고 힘을 주었다. 불굴의 의지를 빼앗긴 동부의 왕자는 드래곤이 되어 화염을 다루는 능력을 지니게 되었고, 미모를 빼앗긴 북부의 왕자는 추악한 데몬이 되어 드래곤의 화염과 인간의 칼도 뚫지 못하는 단단한 피부와 바라보기만 해도 치명타를 입힐 수 있는 눈빛을 지니게 되었고, 감정을 빼앗긴 서부의 왕자는 아름답지만 도도하고 쌀쌀맞은 엘프가 되어 어떠한 것도 베어낼 수 있는 강철검을 만들 수 있는 능력과 데몬의 눈빛에 저항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되었다.


마지막 남부의 왕자는 다른 왕자들과 달리 가장 좋은 재능이 사라지면 결국 파멸의 나락으로 떨어져 버리는 이치를 깨닫고 에냐도르 민족들에게 건 모든 마법을 거두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큰소리를 친다. 하지만 대마법사에게 대항하기에 그의 힘은 부족했다. 죽음을 맞이하게 되리라 생각했던 찰나, 뜻밖에도 대마법사는 그에게 마력의 일부를 넘겨주며 살려준다. 이 싸움에 지칠 때 다시 자신을 찾아오라며... 그렇게 네 종족의 끊임없는 전쟁이 시작되었다. 드래곤은 엘프를, 엘프는 데몬을, 데몬은 드래곤을 공격하는 전쟁의 연속이었다. 그러다가 데몬은 드래곤을 굴복시켜 전쟁에 이용했고, 엘프는 인간을 노예로 삼아 전쟁의 도구로 이용했다. 데몬과 엘프가 최강자의 자리를 놓고 싸우는 형국이었다. 이런 상황에 이야기는 엘프의 노예부대로 17세의 트리스탄이 징집되면서 시작된다.


트리스탄의 의형제 카이와 아그네스까지. 비록 친남매는 아니지만, 세 남매의 끈끈한 결속이 이야기를 이끌어가게 된다. 이 남매들의 활약으로 오래전부터 내려오던 예언이 시작되고 말았으니 말이다. 마지막 파수꾼까지 모이게 되면, 이야기는 어떻게 흘러가게 될까? 또 이들은 단번에 평화를 이뤄낼 수 있을까? 다음 이야기의 줄거리를 살펴보니 트리스탄과 엘프 공주 이조라의 사랑이 평화의 걸림돌이 된다고 한다. 인간종족 내부에선 분열도 일어나고. 인간종족의 욕심이 또 다시 전쟁을 불러오는 걸까? 다음 이야기가 무척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이들의 운명이 어디로 흘러가게 될지, 트리스탄은 진짜 사랑과 마법의 약에 의한 사랑. 어떤 사랑을 선택하게 될지도 궁금하다. 한번 읽기 시작하니 빠져들어 후루룩 읽을 수밖에 없었던 판타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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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없어진 날 단비어린이 문학
조영서 지음, 이여희 그림 / 단비어린이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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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참 많이 달라졌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해도 우리나라에서 남자의 육아는 생각도 하지 못하는 일이었다. 남자는 일해서 돈을 벌고, 여자는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때였다. 아무리 여자가 맞벌이로 돈을 벌고 있어도 가사와 육아 역시 함께 책임져야 했다. 물론 지금도 그런 경우가 태반이지만 그래도 예전에 비해 많이 나아졌다고 느끼고 그렇게 알고 있다. 어쨌든 그래서일까. 보통 아이에게는 아빠보다 엄마가 더 가까운 보호자다. 전에 인터넷상에 떠돌던 이야기 중 한 초등학생이 아빠는 돈을 벌어오는 사람이라고 답했다는 글이 씁쓸한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아빠였지만, 정작 아이들에게는 먼 존재일 뿐이었던 것이다. 아침에 눈 뜨기 전에 출근해서 자고 있으면 퇴근하는 아빠. 주말조차 제대로 놀아주지 못하는 아빠. 그런 아빠의 존재가 아이들에게 어떤 존재였겠나. 성장해서 똑같이 아빠의 입장이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아빠가 짊어졌을 가장의 무게를 이해하게 된다. 놀아주고 싶어도 아이의 간절한 눈빛을 외면한채 일을 해야했을 아빠의 심정을 뒤늦게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때 성인이 된 아이와 아빠의 관계를 다시 재정립하기엔 서로 참 어색하고 힘들다. 물론 매우 가까운 관계도 있지만, 대부분 아빠와의 관계에 거리감을 느낀다.


자신의 아이에게는 자신이 보고 자랐던, 느꼈던 아빠의 모습보다 더 나은 모습의 아빠가 되기 위해 요즘의 아빠들은 육아동참에 적극적이다.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 책은 이런 아빠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4가지 이야기에 등장하는 아빠는 참 다양한 모습이었다. 새아빠, 하늘나라로 떠난 아빠, 이별하는 아빠, 폭력적인 아빠. 4명의 아빠들을 통해 아이들은 각자 자신의 아빠는 어떤 아빠인지 생각해 볼 수 있다. 나에게는 오래전 하늘나라로 떠났지만 우리 자매들을 너무나 사랑해서 시간날 때마다 놀아주고 챙겨주던 아빠가 있었다. 딸 바보였던 아빠가 우리 자매들에게는 참 큰 존재였고 보호자였다. 첫번째와 두번째 이야기를 읽다보니 우리 아빠가 생각이 났다. 아마 아이들도 읽으면서 나처럼 자신에게 아빠의 존재는 어떤 존재인지 자연스럽게 생각해보게 될거라 생각된다. 지금은 '아빠 = 돈 벌어오는 사람'이라 생각하는 아이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좀더 가까운 존재이자 든든한 보호자로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만큼 아빠들이 노력을 해야겠지만 말이다. 이야기들을 통해 어른들 역시 자신이 아이에게 어떤 보호자인지 생각해보는 시간이 될 것 같다. 내 아이들에게 나는 어떤 보호자이고 어떤 부모라 느끼고 생각될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너무 어린 아가들이라 물어볼 수 없다는게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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