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죽은 자의 집 청소
김완 지음 / 김영사 / 2020년 5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난해지면 필연적으로 더 고독해지는가? 빈궁해진 자에게는 가족조차 연락을 끊나보다. 옆집에서 풍기는 이상한 냄새를 의아하게 여긴 이웃의 신고로 주검은 뒤늦게 발견되고 경찰은 그제야 사망의 원인을 규명하고 유족을 찾아 나선다. 혼자 죽은 채 방치되는 사건이 늘어나 일찍이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던 고독사 선진국 일본. 그 나라의 행정가들은 '고독'이라는 감정 판단이 들어간 어휘인 '고독사' 대신 '고립사'라는 표현을 공식 용어로 쓴다. 죽은 이가 처한 '고립'이라는 사회적 상황에 더 주목한 것이다. 고독사를 고립사로 바꿔 부른다고 해서 죽은 이의 고독이 솜털만큼이라도 덜해지진 않는다. 냉정히 말해서, 죽은 이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자 편에서 마음의 무게와 부담감을 덜어보자는 시도이다. 나 같은 일을 하면서 유족이 시신 수습을 거부하는 상황을 보는 일은 별스럽지 않다. 진작 인연이 끊긴 가족과 생면부지의 먼 친척이 느닷없는 부음을 듣고는 "네, 제가 장례를 치르고 집을 정리하는 데 드는 모든 비용을 책임지겠습니다" 하고 선뜻 나서는 경우는 좀처럼 없다. '혹시 빚을 떠안지 않을까' 하며 빛의 속도로 재산 포기 각서를 쓴다. - P. 42~43
남은 음식을 치우는 일은 가볍고 쉬운 것, 죽은 사람이 남긴 육체 조각과 혈흔을 없애고 냄새나는 살림을 치우는 일은 무겁고 엄숙한 것이라고 누가 선을 그을 수 있는가. 특수청소를 하는 것은 남다른 일, 특별하고 어려운 행위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일상적이지 않은 상황에 대한 처치일 뿐 그일 자체가 특별하지 않다. 누구라도 해야 할 일을 누군가가 대신하는 것뿐. 그래서 세무서가 발행한 사업자등록증엔 이 사업의 업태를 '서비스'라고 표기한다. - P. 134
'특수'라는 수식어를 앞세우지만, 여전히 우리 업종은 사람들 앞에서 모습을 드러낼 수 없는 유령작업 같다. 이런 직업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이가 많다. 특수청소업은 우리나라 세법에서 '사업 종목'으로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일반청소업'의 거대한 카테고리에 종속된 채 숨어 있다. - P. 135
죽은 자의 집을 제집처럼 드나드는 직업이라지만 자살에 쓰인 도구를 발견할 때면 고요했던 내 마음에 한순간 파도가 일렁인다. 또 그것이 죽은 이의 직업과 연관된 것이라는 점을 깨달으면 심란해지고, 양가적인 감정이 동시에 밀려온다. 그런 자살 도구는 죽은 이가 맞닥뜨려온 하루하루의 일상과 생계를 밝히는 수단인 동시에, 죽음에 이른 과정을 드러내는 직접적인 증거이기 때문이다. - P. 236
반드시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일이지만, 어떤 이도 쉬이 그 누군가가 되고 싶어하지 않는 일이 바로 '특수청소'가 아닐까? 죽은 자의 집을 청소하고, 산더미 같은 쓰레기가 쌓여있는 집을 청소하는 일. 나로서는 생각도 못할 일이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이리저리 요동을 치는 것 같았다. 고독사, 자살, 살인사건.. 뉴스로 접하는 것은 일부에 불과할거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그가 전하는 이야기를 보면 생각보다 더 많은 일이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걱정인건 이러한 일들이 앞으로 더 많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고독사가 사회적 문제가 된지 오래인 일본처럼 우리나라 역시 갈수록 고독사가 늘어나고 있고, 너무 많은 스트레스와 억압되어 있는 감정들 사이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삶의 끈을 놓아버리는 이들 또한 늘어나고 있으니 말이다. 이외에도 결코 줄어들지 않는 돈, 치정 등의 문제에 의한 살인사건들.. 이렇게 놓고보면 그의 일이 줄어들수록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이 조금은 나아지고 있는거라 생각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고로 그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의 일이 줄어들고 줄어들었으면 좋겠다.
저런 정말 특수한 현장의 청소 외에 그의 '특수청소'에는 쓰레기집 청소도 포함되어 있다. 어디선가 우연히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쓰레기집은 생각보다 많고 그런 쓰레기집 청소를 전문으로 하는 업체가 있다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런 쓰레기집의 주인은 예상외로 굉장히 멀쩡한 사람들이 많았다. 대기업을 다니거나 의료계 종사자이거나 일반 회사원이거나. 정말 그냥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만나는 그런 평범한 사람들이 정작 집은 그렇게 해놓았다는 사실이 경악스러울 따름이었다. 물론 우울증 등의 정신적인 질병을 가진 사람들도 있기는 했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 않겠나. 집은 그렇게 만들어놓고 외출할 때는 깔끔하고 멀쩡하게 나갔을거라 생각하면.. 그저 기가 막힐 뿐이다. 뭐 그런 사람들의 평상시의 모습을 알 수는 없지만. 암튼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가 청소했다는 한 고시원의 이야기는 충격 그 자체였다. 나도 모르게 상상을 해버려서 한동안 속이 좋지 않았을 정도다. 도대체 사람이 어떻게 살면 네 평 남짓한 공간을 그정도의 쓰레기와 오물로 가득 채워놓을 수 있을까? 특히 화장실은...
변기는 그냥 막힌 정도가 아니라 똥을 비롯한 오물로 정상까지 가득 차 있었다. 얼핏 본 영상, 그 두루뭉술한 피라미드 같은 형태로 짐작해보면 똥과 휴지로 이미 변기가 막힌 상태에서, 그 위에 싸고, 또 싸서 겨우 넘치지 않을 만큼 차오른 채로 굳어버린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나버린 탓에 냄새가 정점을 찍고 반감기를 지나 오히려 미미해졌다는 점이다. 배관공의 조상을 초빙해도 이 심각한 변기 앞에서 고개를 가로젓고 뒷걸음질 칠 것 같다. 결국 이 사태를 해결할 자는 판도라의 상자를 처음 연, 무모한 짓을 저지른 사람이다. - P. 218
그녀라 지칭을 했으니 이런 사태를 만든건 여자라는 얘기. 이것을 모조리 치워낸 그의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면, 속이 불편해지면서 의뢰인이라는 그 여자의 평소 모습이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남자들에게 경고하고 싶을 지경이다. 이런 여자 만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오줌을 채운 패트병을 집안 가득 채운 이야기는 이 이야기에 비하면 가볍게 느껴지긴 했으나, 이 이야기 또한 황당할 따름이었다.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가려서 받을 수 있을까. 집주인으로서는 최악의 입주자고 골칫거리인 셈이다. 세상에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다지만, 왜 이런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는 걸까. 혹시 내 주변에도 이런 사람이 있는데 내가 모르는걸까? 아니겠지만, 생각만해도 소름이다. 이런 문제를 사회적인 문제로 다루어야 하는 때가 오게 될까? 어쨌든 고개가 절로 저어지는 일들이다. 이런 일을 해내는 그가 대단해 보일 뿐이다. 되도록 많은 이들이 읽어봤으면 싶은 책이다. 특수한 직업에 대해 조금은 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 어쩌면 우리가 알면서도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