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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너에게로 이어지는 길
지미 라이 지음, 이지은 옮김 / 모모 / 2025년 5월
평점 :
잔잔하면서 아름다운 첫사랑의 기억을 담은 소설을 만났다. 찾아보니 작년 5월에 영화로도 개봉이 된 소설이었다. 영화가 소설 속 이야기를 그대로 따라 만들어졌을지, 책에서 보는 이야기와 영화로 보는 이야기의 느낌은 얼마만큼 다를지 궁금해진다. 하지만,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도 본다고 해놓고 여태 보지 못했던터라 이 영화는 언제 챙겨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이런 영화가 있다는걸 알았으니 기억은 해둬야겠다. 여주인공 아미의 행보는 참 놀라웠고, 또 부러웠다. 나도 진작에 세상을 여행할 용기를 가졌다면 어땠을까. 지금의 내 세상이 조금 달라져 있었을까? 알 수 없지만, 분명한건 젊은 시절에 경험했다면 좋았을 여행에 대한 아쉬움이 이렇게 많이 크지 않을 것 같다는 것 하나는 알겠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생각만 할 뿐 실천하지 못했던 나에 비해 여주인공 아미는 4년의 대학시절 내내 두 개의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여행 경비를 모아 '세상의 끝'을 찾는 여행을 시작했다. 여주인공의 용기와 꿈을 항한 노력, 진짜 대단하고 멋있다.

"청춘 18은 정말 대단한 티켓이에요. 저한테 자유를 줬거든요. 경로를 미리 정할 필요도 없고, 느낌과 직감에 기대어 여행을 할 수 있어요. 그러면서 여행 중간에 만나는 예상치 못한 일들이 제일 멋지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여행지를 정해놓고 다녔다면 아마 그런 뜻밖의 경험은 하지 못했을 거예요. 인생도 그런 것 같아요. 물론 계획대로 정해진 길을 가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길을 걷다가 마음을 더 흔들어 놓는, 더 끌리는 풍경을 만나면 경로를 좀 바꿔도 괜찮지 않을까요?" - P. 68-69
청춘18. 참 독특한 티켓이다 싶어서 찾아봤다. 이 티켓, 1982년에 처음 등장한 티켓으로 춘계/하계/동계 휴가 기간에 발매하고 있는 꽤 유서깊은 티켓이었다. 일본 JR 그룹이 발행하고, 보통열차 자유석을 무제한 이용이 가능한 교통 패스의 한 종류라 한다. 일본은 열차 이용이 왜 이렇게 복잡한건지.. 국가가 좀 정리를 해서 통일할 필요가 있지 않나. 쉽진 않겠지만. 암튼 왜 하필 뒤에 18이라는 숫자가 붙은건지도 참 궁금하다. 이름만 보면 그 나이대만 가능한 티켓 같아 보이지 않은가. 그런데 젊은층 대상인건 맞지만 연령 제한은 없다고 한다. 그런데 이 티켓 왜 청춘이라는 이름이 붙은건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방방곡곡 웬만한 도시는 다 갈 수 있다지만, 서울에서 부산까지 시내버스만 갈아타면서 이동하는 것보다 조금 쉬운 난이도의 여정이란다. 일례로 도쿄~오사카 구간은 10시간 정도 걸리고, 후쿠오카나 삿포로에서 도쿄까지는 이틀 정도 걸린다니.. 3일/5일 패스를 끊을 수 있고 비용을 생각하면 그닥 효율적이진 않다 생각되는 티켓이다. 암튼, 대략 이런 티켓으로 아미가 여행을 시작한 거였다. 그녀에게 이 여행은 큰 의미였다.

"사요나라. 아, 지미짱. 그거 알아요? 노래방에서 일할 때 대다수의 손님이 노래를 다 하고 집에 갈 때 저한테 '사요나라' 하고 인사했거든요. 그런데 사실 일본에서는 오랫동안 보지 못할 때나 영원히 헤어질 때만 '사요나라' 하고 인사해요. 그래서 어느 날 '사요나라'라고 인사하고 간 손님이 이튿날 또 오길래 '아, 대만 사람들은 이 말의 진정한 의미를 잘 모르는구나' 하고 알게 됐어요. 하지만 우리는 이제 오랫동안 못 볼 거니까. 사요나라. 상대방이 '사요나라'라고 하면 똑같이 '사요나라' 하고 말하는 거예요, 지미짱." - P. 135-136
찌질하고 서툴고 못난 모습들이 참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마냥 서툴기만 한 그 모습들이 어쩐지 감정을 툭툭 건드리는 것 같았다. 그냥 용감하게 직진 한번 해보지 싶다가도 그래 짧지만 아름다운 인연으로 남기는 것도 나쁘지 않지 싶은 생각이 왔다갔다 했다. 어쩌면 서툴기만 했던 시절에 만나 더 아름다웠던 기억으로 남았던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각자의 꿈을 위해 잠시 마음을 접어두고 앞으로 달려간 두 청춘의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했다. 끝까지 영원한 첫사랑으로 남겨진 기억, 그래서 지미가 작곡한 <세상의 끝>이 어떤 노래였을지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잔잔한 사랑의 감성으로 힐링하고 싶다면, 이만한 책이 또 있을까? 우리나라에도 '청춘 18'과 같은 티켓이 판매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혹시 아는가. 지미와 아미처럼 여행 속에서 인연을 만나게 될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