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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빌려주는 수상한 전당포
고수유 지음 / 헤세의서재 / 2024년 5월
평점 :
최근 힐링 소설들의 출간 소식이 꽤 눈에 띈다. 궁금해서 읽어본 몇권 모두 신선한 소재, 짜임새 있는 구성, 가독성까지 뭐 하나 빠트리지 않아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 책도 마찬가지였다. 가장 눈에 띄었던건 독특하고 신선한 소재. 특정 과거로 타임슬립을 가능하게 해줘서 미래를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전당포가 존재한다. 단, 이곳에서 시간을 빌리면 그 대신 꽤 많은 수명을 내주어야 한다! 그러니까 하루 24시간를 빌린다고 하면 20여년의 수명을 내주어야 한다. 과거로 돌아간다고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자칫 약속시간을 어기면 수명이 더 빠르게 소진되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시간 대출. 하지만,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기꺼이 대출을 신청한다.
대기업 취업 대신 뺑소니로 돌아가신 어머니를 살리고 싶은 대학생, 전세 사기로 자살하려던 여자, 망해가는 피트니트 센터를 감당하지 못해 자살을 결심한 대표, 취업 실패 후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 고양이들을 돌보며 살던 여자, 도둑을 도우려다 되려 뒷통수를 맞은 중국집 사장님, 대출 부적격자인 조폭, 뺑소니 사고 가해자인 암 말기 환자, 학폭 피해를 입은 여고생, 실명이 된 딸과 엄마 등 정말 다양한 사연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해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드는 것도 이 책이 가진 매력이다.

시간대출이 승인나서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미래를 바꾸려는 강한 의지가 없으면 실패하고 만다. 시간은 원래의 흐름을 유지하려는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과거로 돌아간 이가 무언가를 바꾸려 하면 다양한 방해가 끼어들어 실패를 유도하니 정말 굳게 마음을 다잡지 않으면 안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과거로 돌아가면 미래를 간단히 바꿀 수 있을거라 여기지만 절대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내 수명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는 마당에 위험을 무릎쓰고 과거로 돌아간들 바꾸고자 한 과거가 미래에 좋게 바뀌는지 아닌지도 알 수 없는게 아닌가. 그럼에도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이들의 마음은 단 하루를 살더라도 꿈꿨던, 놓쳤던, 하지 말았어야 하는 실수를 바로잡고 싶어했다. 읽으면서 그들의 간절한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만일 내게도 하루의 시간을 대출 받을 기회를 얻을 수 있다면, 아빠에게 사고가 벌어진 그 날로 돌아가 사고 자체가 일어나지 않게 하고 싶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참석하지 못했던 아빠와의 마지막 가족여행도 함께하고 싶다. 내 수명과 바꿔서라도 바꾸고 싶은 과거. 분명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다만 그 기회가 주어졌을 때 실행하느냐 아니냐는 또 다른 문제지만 말이다.

컴플레인 없는 일이 어디 있을까. 타임 전당포에도 수많은 컴플레인이 존재했다. 수명이 걸려 있는 일인만큼 계약서상 중요한 부분을 모두 설명해줘도 어기거나 예상과 다른 결과라며 우기거나 짧아진 수명에 불만을 토로했다. 전당포 할머니도 우주라는 상사가 있는 직장의 직장인일 뿐인 것을.. 아무리 컴플레인을 걸어봐야 소용없음을 알면서도 왜들 그러는걸까. 진상짓 하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해서가 아닐까? 하여튼 어딜가나 진상이 존재한다는게 참 신기할 따름이다. 너무 재미있어서 읽기 시작한 순간, 휘리릭 끝까지 단번에 읽어버렸던 소설. 드라마나 영화로 나와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