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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키지
정해연 지음 / 황금가지 / 2020년 11월
평점 :

최근 아동학대와 관련된 뉴스를 빈번하게 접한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 관련 뉴스를 접할 때마다 분노가 치미곤 한다. 어떤 면에서는 나 역시 학대자일 수도 있다. 말로 안되면 매를 드는 편이기 때문이다. 가끔은 내가 잘못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는 한다. 그래서 매를 들고나면 매번 가정교육과 양육 방법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하게 된다. 잘 키우고 있는게 맞는지, 무엇이 잘못된건지, 어떻게 해줘야 할지... 정답이 있는 문제가 아니라 나와 아이에게 맞는 답을 스스로 찾아야 하다보니 매 순간이 고비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슬기롭게 잘 넘어갈 수 있을까를 고민은 했어도 필요 이상의 훈육은 해보지 않았다. 놀다 넘어져서 작은 상처만 나도 속이 상한데, 아이에게 상처를 입힐 생각은 어찌 하겠는가. 그런데 예상 외로 너무 많은 학대가 가정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아동 학대의 발생 장소는 가정이 79.5%, 학대행위자의 75.6%가 부모라는 통계도 있다. 게다가 부모에 의한 학대 중 계부모나 양부모가 아닌 친부모에 의한 학대 비율이 95.7%에 달한단다. 이 얼마나 놀라운 수치란 말인가. 그런데 이 수치가 수긍이 될 정도로 요즘 너무 많은 학대 관련 뉴스가 쏟아진다. 아이가 대체 무슨 죄를 얼마나 지었다고..... 분노와 한숨이 절로 내뱉어지는 소식이 너무 많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가슴 한쪽에선 불편한 감정이 사라지지 않았다. 충분히 현실에서 벌어질 수 있는, 아니 더한 일도 벌어질 수도 있는 일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이야기다.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데, 도무지 정리가 되지 않는다. 그만큼 묵직한 메세지를 던져주는 이야기라고 해야할까? 아이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져야 마땅한 인물들 모두가 죄의 댓가를 받지 않았으나, 그게 현실적으로 맞는 결론일 수밖에 없음을 인정 해야 한다는 게 모래를 씹는 듯한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모든 것을 밝히는 순간, 또 다른 아이의 인생 또한 망가질 수 있으니 말이다. 때론 적당히 감춰져야 하는 진실이 있는 법이다. 그게 비록 찜찜함이 남는 결말이 될지언정, 다른 인생을 보호할 수는 있으니 어쩌겠나.
아이가 죽었다. 차가운 관광버스의 짐칸에서 남의 가방에 쑤셔 박힌 채 발견되었다. 하지만 같이 버스를 탔던 사람들에게는 피해보상이나 환불이 우선이다. 어쩔 수 없었다. 그것이 현실이었다. 싸구려든 아니든 내 주머니에서 나간 돈은 피해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었다. 그렇다면 누군가의 죽음은? 그것은 현실이 아닌가? - P. 46
아마 여행사 측에서 승객의 휴게 시간 중 정차하는 동안 자리를 비우지 말라는 업무 지시가 있었겠지만, 기사는 그것을 어겼을 것이다. 흔한 일이었다. 현실을 무시한 행정과, 그 행정을 무시해 아주 쉽게 규칙을 어기는 일쯤. - P. 54
담임 선생의 입이 꾹 다물렸다. 박상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할 수 있었다. 교사도, 직업이었다. 아이가 가정폭력을 당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혹은 그저 의혹일 뿐이었다. 아이가 아무 말도 없이 평소와 같은 행동을 하고, 한여름에도 긴팔을 입는다든가 하는 이상한 행동을 보이지 않는 이상 몸을 검사할 수 없을 터였다. 만약 그랬다가 폭행의 흔적이 보이지 않을 경우 학부모의 엄청난 항의를 대면해야 할 테니. 그런 면을 생각하면서 다시 보니 아이에게 느꼈던 이상한 점들은 하나도 이상한 것 같지가 않았을 것이었다. - P. 93
아이가 너무 어렸을 때 떼어 놓고 간, 한참이나 모자라고도 나쁜 엄마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면서까지, 아이의 죽음은 부정하고 싶은 것이었다. 사실 아이의 저 얼굴을 보고도 부정하고 싶지 않다면 거짓말일 터였다. 부정하고 싶을 만치 너무나 잔인한 학대였다. - P. 135
죄인에게서 태어난 아이가 그 죄를 물려받기라도 한 것처럼. 아이는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지만 태어난 것 자체가 원죄였다. - P. 207
정말 진실을 밝히는 것만이 옳은 것일까. - P. 305
쇼핑 코스를 의무적으로 반드시 들려야 하는 싸구려 패키지 여행. 이 여행에 싸늘한 분위기의 아버지와 아들이 합류한다. 사람들은 쉽게 볼 수 없는 조합의 패키지 여행객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두 사람 때문에 여행이 강제 종료 되어버릴 줄은 당연하게도 꿈에도 생각지 못한다. 첫번째 휴게소를 들러 휴게 시간을 가질 때 아버지와 아들 일행이 사라졌고, 얼마 후 한 여행객의 가방에서 아이 토막 시체가 발견된다. 범인은 말할 것도 없이 아이의 아빠. 너무나 명백한 범행. 대체 아이의 죽음에는 어떤 이유가 숨겨져 있는 걸까? 아예 대놓고 범인이 정해져 있는 사건이었다. 그리고 아이의 아빠는 또 다른 범행을 저지른 현장에서 바로 체포되었다. 보통 사건은 범인이 잡히면 종결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사건은 범인의 체포 이후부터가 진짜였다. 아이의 죽음을 둘러싼 치졸하고 이기적인 부모의 행태가 치를 떨게 만든다. 그리고 주변의 무관심이 결국은 아이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것을 알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