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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스 호텔 ㅣ 스토리콜렉터 101
에밀리 세인트존 맨델 지음, 김미정 옮김 / 북로드 / 2022년 5월
평점 :

이 책은 <폰지사기>가 무엇인지 미리 알아본 후에 읽으면 좋다. 그 사건을 모티브로 한 소설이기 때문이다. <폰지게임>이라고도 불리는 폰지사기는 1920년대 찰스 폰지라는 이탈리아인이 벌인 사기 행각에서 유래되었다. 국제우편 요금을 지불하는 대체수단인 국제우편쿠폰으로 사업을 구상한 찰스 폰지는 45일 후 원금의 50%, 90일 후 원금의 100%에 이르는 수익을 지급할 것을 약속하고 투자자를 모집했고, 투자자들은 실제로 수익금이 지급되자 재투자 및 주변 지인들을 2차 투자자로 소개하는 등 미국 전역으로 알려지게 된다. 하지만 실제로 이 사업은 나중에 투자한 사람의 돈으로 먼저 투자한 사람의 수익을 지급하는 금융피라미드로 이를 알지 못한 투자자들이 몰려 몇 달 만에 막대한 규모의 돈이 찰스 폰지에게 흘러들어 간다. 그러다 일부 투자자들의 의혹이 불거지며 투자금 회수로 이어졌고, 사업은 순식간에 몰락해 찰스 폰지는 결국 파산신고를 한다.
이어 사기혐의로 구속되었다가 보석으로 풀려나기도 했던 그는 이후 플로리다주에서 유령회사를 차려놓고 같은 방법의 사기 행각을 벌이다 체포되어 징역 9년형을 받는다. 이로부터 폰지는 금융피라미드의 원조로 언급되며, 폰지사기는 다단계 금융사기를 가리키는 말로 통용되게 된다. 한참 뒤인 2008년 12월 미국 나스닥증권거래소 회장을 지낸 버나드 매도프는 1960년 자신의 이름을 딴 증권사 버나드매도프를 설립한 뒤 20년 가까이 신규 투자자의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수익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최대 650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폰지사기 행각을 벌였다. 그가 금융사기로 미국연방수사국(FBI에)에 체포되어 150년형을 선고받고 수감될때까지 많은 피해자들을 낳았고, 사람들은 폰지사기를 떠올리게 된다. (네이버 백과사전 참고)
바로 이 사건을 기반으로 한 이야기가 바로 이 소설이다. 꽤 많은 등장인물들과 자주 바뀌는 시점을 통해 돈을 쫓는 욕망과 허망하게 끝나버린 욕심을 보여준다. 5성급 카이에트호텔에서 일을 하게 된 이복남매 빈센트와 폴. 폴은 야간 청소 관리인으로, 빈센트는 바텐더로 일을 한지 3개월즈음 누군가가 호텔 유리창에 낙서를 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런데 사건의 범인으로 폴이 지목 되었고, 폴은 억울하게 해고를 당하고 만다. 반면 빈센트는 호텔의 주인인 조너선 알카이티스의 호감을 얻게 되었고, 그의 트로피 와이프가 된다. 33살의 나이차이는 남들 눈에도 충분히 그렇게 보였을 터였다. 단숨에 달라진 빈센트의 삶은 이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풍요로워졌다. 돈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전혀 없었고, 돈이 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주었으니까. 언제나 돈에 쪼들려 살아야 했던 그녀였기에 이렇게라도 가난에서 벗어난 삶을 살아보고 싶었던 마음을 이해 못하는건 아니지만, 하필 그녀가 펑펑 써댔던 돈은 다른 누군가가 피땀흘려 모았던 돈이었다는게 문제였다.
신기루를 경험했던 것처럼, 풍요롭기만 했던 빈센트의 삶은 한순간에 사라지게 된다. 사실 빈센트도 어느순간부터 느끼고 있었다. 지금의 자신의 삶이 언제고 터질 위태로운 줄 위에 놓여있음을 말이다. 단단한 것처럼 보여도 한순간에 깨질 수 있는 유리처럼 아슬아슬 했던 조너선의 다단계 사업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그가 체포되어 170년형을 선고 받으며 막을 내린 그의 사기 행각의 여파는 예상했던 것보다 더 어마어마 했다. 믿을만하다 생각되는 사람의 추천, 혹은 부자들의 투자에 대한 믿음, 그리고 입소문으로 전재산, 여유자금, 은퇴자금 등 각자의 사정에 따라 투자를 했던 피해자들이 속출했던 것이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만해도 이런 사기 사건을 보면 '대체 왜 속는걸까' 하는 생각을 먼저 하고는 했다. 그런데 지금은 '충분히 속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좀더 여러 경험치가 쌓였고, 아이로 인해 생각의 틀이 변한 까닭인 듯하다. 이게 아니라 사실만 놓고 봐도 거대한 덫을 놓은 사기꾼에 수많은 사람들이 투자자로 있었으니 누가 가짜라 생각할 수 있었을까.
그런데 만일 내가 저런 투자를 알게 되었다면, 아마 내 성향상 투자를 했을 것 같지는 않다. 아무리 괜찮은 투자라 해도 투자는 투자일 뿐, 위험부담은 오롯이 내 몫이지 않은가.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반면, 모두 잃을 수 있는 선택지도 있는 것이다. 물론, 투자란 위험부담을 안고 하는거고, 투자를 결정할 땐 대범해야 한다고 하지만, 안전자산을 더 선호하는 내 성향과 투자는 맞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코로나 터지기 전, 꽤 큰 수익이 보장되며 높은 확률로 성공 가능성이 있다는 투자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약간의 흔들림이 있긴 했었으나, 어차피 그럴만한 자금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썩 내키는 것도 아니어서 그냥 넘어갔었는데 얼마 뒤에 코로나가 터졌다. 그때 그 투자가 어떻게 되었는지 들은 얘기는 없지만, 투자 하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던 기억이 있다. 누군가는 대출을 받아서 투자했다고 하던데,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던 사업이 맞았을까? 모를 일이다. 다만, 큰 수익을 약속하는 일은 수상하고 위험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머릿속에 새기게 되었다.
이 작품의 작가 에밀리 세인트 존 맨델의 전작 <스테이션 일레븐>을 만난 적이 있다. 현재 왓챠에서 10부작 드라마로 볼 수 있다고 하는데, 하필 우리집은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만 구독 중이라 드라마로 만나보지는 못했다. <스테이션 일레븐>은 사람에게 초점을 맞춘 종말 이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꽤 독특하고 여운이 남는 작품이었다. 그런데 이번 작품은 생각해 볼 거리를 던져주는, 꽤 쉽지 않은 작품이다. 온통 탐욕, 죄책감, 방관, 외면, 이기심, 거짓에 뒤엉켜 자신들이 만들어낸 허황된 세상을 진실이라 떠벌리던 사람들의 끝이 마치 종말을 맞이한 사람들의 모습과 겹치는 것 같았다. 안전함보다 위험이 따르는 일에 좀더 쉽게 유혹되는건 대체 왜일까? 한번 깊이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