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버퍼링 - 나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들 ㅣ 단비청소년 문학
송방순 지음 / 단비청소년 / 2022년 6월
평점 :

가온이에게 16세가 되던 해는 참 가혹했다. 복지가 잘된 중격 철강기업에서 20년 가까이 근무를 했던 아빠가 과장을 달며 주식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친구가 건넨 깡통 정보에 돈을 날려버린 후 분노 조절 장애까지 생겼다. 엄마와 아빠의 다툼은 잦아졌지만, 이미 벌어진 일. 다시 정신을 차린 듯한 아빠가 퇴직금으로 횟집을 차렸다. 초반엔 가족이 똘똘 뭉쳐 가게가 자리를 잡을 때까지 힘을 내자며 으샤으샤 했지만 얼마 되지 않아 평화가 깨졌다. 노로바이러스로 인해 손님을 급격히 줄어들었고, 임대료는 치솟았던 것이다. 갈수록 악화되는 상황에 아빠는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반병쯤 되던 양은 계속 늘어가기만 했다. 그리고.. 이즈음 가정 폭력도 시작되었다. 뺨 한대로 시작했던 폭력도 날이 갈수록 늘어갔다. 한번은 뜨거운 팬으로 엄마를 때리려는 아빠를 가온이가 막다가 등에 화상을 입은 일도 있었다. 그 일 이후 가온이는 아빠의 폭력 앞에 두려움을 느끼며 외면하게 되었고, 악화되어 가는 형편과 부부관계에 엄마는 지쳐만 갔다. 그렇게 어느날, 가게는 회복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고, 엄마는 집을 나갔다.
아이를 두고 집을 나가야만 했던 엄마의 심정, 아빠를 홀로 감당하게 둔 엄마에 대한 원망과 결국엔 엄마를 가출하게 만든 아빠에 대한 원망을 가슴 가득 담게 된 가온, 가족에게 좀더 안락하고 편안한 미래를 주고 싶어 애를 쓴다는게 뜻대로 되지 않자 폭음, 폭력으로 오히려 가족을 위기에 빠뜨려버린 아빠. 평범했던 한 가정이 무너지는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무엇이 이 가족을 이렇게 만들어 버린걸까. 가족과 함께할 그저 좀더 나은 미래를 꿈꾸려다 도박과도 같은 주식에 빠져버린 아빠를 원망하자니 가족의 행복만을 바라던 초반의 그 마음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가족의 해체는 아빠가 자처한 일이 맞았다. 아내와의 다툼과 만류가 이어지던 그때라도 그만두었더라면 최악의 상황까지는 맞이하지 않았을테니까. 부모가 각자 자기 자신을 추스르기에도 힘들다보니 매번 부모의 다툼과 이어지는 폭력을 지켜봐야 했고, 급기야 엄마의 빈자리를 견뎌야 했을 가온이의 마음까진 헤아려주질 못했다.
가온이가 사람과의 관계맺기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이런 가정 환경이 한몫을 했을 터였다. 그래도 반장 수아 덕분에 친구 관계에 변화가 생긴다. 정작 가온이에게 변화를 이끌어낸 수아는 얼마 후에 멀리 이사를 가버렸지만. 참 여러모로 가온이에겐 가혹하다 싶은 일들이 자꾸 생겼다. 하지만, 결국엔 스스로 문제의 해답을 찾아가는 모습에 착잡하기만 했던 마음이 슬쩍 풀렸다. 이렇게 성장하는구나 싶어 기특하기도 했고. 굴곡없는 살을 살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 굴곡을 어떻게 넘어가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이 달라지기도 한다. 한참 성장통을 겪는 아이들이 슬기롭게 굴곡 구간을 지나갔으면 좋겠다. 문제가 많은 세상이지만, 그만큼 정답도 많은 세상이니까.
"너희들, 왜 버퍼링이 생기는 줄 아니?"
수아가 물었지만 현규와 난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송수신도 제대로 못 하고 상대와 속도도 맞추지 않고 일방통행하려고 했을 때 생기는 충돌이잖아. 음..... 예를 들면, 저마다 삶의 속도가 다른데 어른들 마음대로 우리를 조이거나 다그칠 때 생기는 불협화음 같은 거랄까."
이럴 때 수아의 말솜씨는 진짜 누나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어른들하고도 그렇지만 버퍼링은 친구들 사이에서 더 많이 발생하는 것 같은데."
나는 내 생각을 덧붙였다.
"맞아. 앞뒤 생각 안 하고 일부러 부딪히는 걸 즐기는 애들도 있으니까. 그럴 땐 충돌을 완화하기 위해 잠시 그 자리를 떠나 생각할 시간을 갖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나도 그렇게 생각해. 어떤 문제든 멀리서 바라볼수록 생각의 폭이 넓어지는 것 같아." - P. 2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