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의 말 낭독 x 필사책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임재성 편저, 정서우 낭독 / 유노북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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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일 수많은 문장을 읽으며 살아간다.

스마트폰과 책, 뉴스와 SNS를 오가며 마음에 드는 문장을 저장하고 밑줄을 긋는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문장을 만나도 삶은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다.

문장의 뜻을 이해하는 데는 익숙하지만, 그 문장을 삶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충분히 머무는 시간은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괴테의 말 낭독×필사책』은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괴테의 문장을 눈으로 읽는 데서 끝내지 않고, 소리 내어 낭독하고 손으로 옮겨 쓰며 문장을 자기 삶 안으로 가져오도록 이끈다. 낭독은 문장을 소리로 깨우는 일이고, 필사는 문장을 손으로 붙드는 일이다. 눈으로 읽을 때 지나치기 쉬운 운율과 호흡은 입술을 통과하며 살아나고, 자신의 목소리로 들은 문장은 다시 마음속으로 돌아온다. 이어 한 글자씩 천천히 옮겨 쓰는 동안 독자는 문장의 뜻에 더 오래 머물게 된다.

괴테가 남긴 “먼저 뜻을 깨닫고 그 뜻에 어울리는 말을 천천히 고르겠다”라는 말은 필사의 태도와도 맞닿아 있다. 필사는 글씨를 그대로 베껴 쓰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다. 문장 안에 담긴 삶을 느끼고, 그 문장이 지금의 나에게 무엇을 묻는지 생각하는 시간이다. 손의 속도가 생각의 속도를 늦추면서 문장은 지식이 아니라 자신의 호흡과 태도로 스며든다.

이 책에는 괴테의 방대한 저작에서 길어 올린 100개의 문장이 담겨 있다.

젊은 날의 격정에서 나온 문장도 있고, 오랜 사유와 삶의 마지막에서 건져 올린 문장도 있다.

특히 아픔과 불안, 고통과 성장에 관한 문장들은 오늘을 살아가는 독자의 마음을 정확하게 건드린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본 적 없는 사람”은 삶의 참맛을 알기 어렵다고 말하는 첫 번째 글은 고통을 단순한 불행으로만 보지 않는다. 눈물과 외로움의 밤을 견딘 사람만이 살아 있다는 것의 무게와 의미를 알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나 자신에게서도 도망치고 싶은 날」에는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고 자기 자신에게서조차 벗어나고 싶은 불안이 담겨 있다. 하지만 결국 인간을 붙드는 것은 외부의 상황만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매달린 마음일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숨이 막히는 순간도 은총이다」에서는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을 삶에 비유한다.

숨을 들이쉴 때 가슴이 눌리고 내쉴 때 다시 편안해지듯, 인생도 답답한 순간과 풀리는 순간이 함께 어우러져 완성된다는 것이다. 압박받는 시간조차 삶의 일부라면 우리는 고통이 영원히 지속되리라 단정할 필요가 없다.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글은 「아직 오지 않은 불행을 먼저 슬퍼하지 말 것」이었다.

근심은 집의 문제와 세상의 일, 사람의 얼굴과 아이의 모습 등 끊임없이 새로운 가면을 쓰고 찾아온다.

때로는 불처럼 다가오고, 물처럼 밀려오며, 독처럼 마음속으로 스며든다.

결국 사람은 아직 잃지 않은 것을 두고도 이미 잃은 것처럼 슬퍼하며 살아간다.

이 문장은 실제로 닥친 고통보다 일어나지 않은 미래를 상상하며 현재를 잃어버리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이 책이 일반적인 명언 필사책과 다른 점은 문장 사이사이에 괴테의 삶과 문학을 해설하는 에세이가 실려 있다는 것이다. 열 개의 문장마다 한 편씩 이어지는 에세이는 괴테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떠한 사랑과 방황과 고통을 통과해 그 문장에 도달했는지를 들려준다.

덕분에 문장을 단편적인 명언으로 소비하지 않고, 한 인간의 긴 생애와 함께 이해할 수 있어 읽을거리가 한층 풍성하다.

괴테는 문학가에만 머문 인물이 아니었다.

시인과 소설가, 극작가이자 사상가였으며 식물과 빛, 색채를 탐구한 과학자이기도 했다.

행정가로 현실 정치와 국가 운영에 참여했고 예술과 자연과학 전반으로 관심을 끊임없이 확장했다.

스물다섯 살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유럽 문학의 중심에 섰지만, 젊은 날의 성공에 머물지 않았다. 『빌헬름 마이스터』 연작에는 50여 년을, 색채 연구에는 40년을, 『파우스트』에는 약 60년을 바쳤다.

그의 위대함은 단숨에 완성된 천재성보다 평생 자신을 고치고 빚어 간 성실함에 있었다.

괴테는 인간을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되어 가는 존재’로 보았다.

사랑 앞에서 흔들리고, 선택 앞에서 방황하고, 고통 속에서 자신을 의심하면서도 다시 배우고 나아가는 존재로 이해했다. “나는 사랑했노라. 괴로워했노라. 그리고 배웠노라”라는 고백은 그의 생애와 문학 전체를 압축한다.

「꽃은 어느 날 갑자기 피지 않는다」라는 글은 괴테의 세계관을 가장 따뜻하면서도 깊이 있게 보여 준다. 특히 꽃이 피기 전, 대지 아래에서 보이지 않는 시간들이 먼저 움직인다는 표현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우리는 눈앞에 드러난 변화만을 성장이라 여기기 쉽지만, 삶의 중요한 변화는 대부분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곳에서 시작된다. 흔들리면서도 무너지지 않으려 애쓴 시간, 답을 찾지 못한 채 오래 고민한 시간, 아무런 성과가 없는 것처럼 보여도 묵묵히 하루를 견딘 시간이 땅속의 뿌리처럼 한 사람을 붙들어 준다. 꽃이 피지 않았다고 해서 자라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니다. 겉으로는 제자리에 머문 듯한 시기에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새로운 삶을 감당할 힘이 조금씩 만들어지고 있다. 뜨거운 계절을 견디기 위해 뿌리가 말없이 제 몫을 다하듯, 사람 역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을 살게 하는 힘을 길어 올리며 자란다. 그러므로 아직 눈에 보이는 결실이 없다고 해서 자신의 시간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 견디고, 생각하고, 다시 살아내려 했던 모든 날이 결국 한 사람을 피워 내는 밑거름이 된다. 이 문장은 지금 당장 달라지지 않는 자신을 조급하게 다그치기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미 움직이고 있는 삶의 힘을 믿어 보라고 말하는 듯하다.

『괴테의 말 낭독×필사책』은 빠르게 읽고 덮는 책이 아니다.

하루 한 문장씩 천천히 읽고, 소리 내고, 손으로 쓰며 그 문장이 태어난 삶과 지금의 나를 함께 바라보는 책이다. 반복해 쓰는 동안 조급했던 마음은 잠시 멈추고, 흔들리던 마음은 한 문장 안에서 다시 중심을 찾는다.

괴테의 문장을 따라간 끝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은 괴테가 아니다.

사랑하고 괴로워하면서도 다시 배우고 조금 더 깊고 단단해진 자기 자신이다.

이 책은 좋은 문장을 수집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문장을 삶으로 옮기며 천천히 자신을 변화시키고 싶은 사람들에게 조용하지만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독서의 시간을 건넨다.

'유노북스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11 꽃은 어느 날 갑자기 피지 않는다

나는 요란한 삶을 바라지 않는다.
시름이 깊은 날에도
그 이유를 남에게 묻지 않는다.

그저 고요히 견디다 보면
시름이 머문 자리에서
나라는 존재가 새하얀 꽃처럼
다시 피어나는 것을 느낀다.

꽃은 어느 날 갑자기 피지 않는다.
봄기운이 차오른 대지 아래에서
보이지 않는 시간들이 먼저 움직인다.

뜨거운 여름이 찾아와도
그 열기를 견디기 위해
땅속의 수많은 뿌리는
말없이 제 몫을 다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겉으로는 고요해 보여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을 살게 하는 힘을
조용히 길어 올리며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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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
앨런 레비 지음, 노지양 옮김 / 오팬하우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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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레비의 장편소설 『테오』는 미국 남부의 작은 도시 골든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노신사 테오가 도착하면서 시작된다.

봄이 막 피어나기 시작한 골든은 층층나무와 철쭉꽃이 만개하고, 강물 위로 옅은 안개가 리본처럼 드리워지는 곳이다.

테오는 이 도시에서 꼭 1년을 살아간다. 길다고 할 수 없는 시간이지만,

그가 자신만의 조류를 만들고 주변 사람들을 그 안으로 끌어들이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포르투갈에서 태어난 테오는 어린 시절 도루강 옆에서 뛰어놀았고,

젊은 시절에는 센강에서 추억을 만들었으며 은퇴한 뒤에는 허드슨강을 걸었다.

골든에 도착해서도 자연스럽게 옥스보우강 근처에 머문다. 강은 이 소설에서 테오의 삶을 닮은 상징처럼 다가온다.

수많은 굽이를 지나면서도 끝내 바다를 향해 흐르는 강처럼, 테오는 깊은 상실을 안고서도 삶을 멈추지 않는다.

골든에서 온전히 하루를 보내는 첫날, 테오는 목적지도 정하지 않은 채 거리를 천천히 걷는다.

오래된 건물의 장식과 역사 안내판을 읽고, 작은 새에게 말을 걸며, 길에 떨어진 빈 병을 주워 쓰레기통에 넣는다.

주머니에서 루페를 꺼내 철쭉꽃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무엇이든 쉽게 지나치지 않고 자세히 바라보는 사람이었다.

이러한 태도는 훗날 그가 골든 사람들의 얼굴뿐 아니라 그 얼굴 안에 담긴 삶까지 들여다보게 되는 출발점이 된다.

테오는 카페 첼리스에서 벽을 가득 채운 92점의 연필 초상화를 발견한다.

연령과 인종, 표정이 모두 다른 얼굴들이다. 화가 애셔 글리슨은 “모든 얼굴은 이야기를 한다”는 어머니의 말을 떠올리며 이 그림들을 그렸다.

그러나 훌륭한 작품인데도 대부분 팔리지 않은 채 카페 벽에 걸려 있다.

테오는 그림을 감상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초상화는 그 얼굴의 주인이나 그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면서 한 점씩 구입해 실제 주인에게 선물하기 시작한다.

첫 번째 초상화의 주인인 미넷 프렌티스에게 테오가 편지를 보내는 장면은 특히 기억에 남았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노인이 자신의 초상화를 선물하겠다며 만나자고 한다면 누구라도 의심부터 할 것이다.

미넷과 남편 데릭 역시 편지의 의도와 발신인의 정체를 여러 방향으로 추측한다.

스토커일 수도 있고 장난일 수도 있으며, 위험한 목적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일상에서 좀처럼 겪기 어려운 사건이 생겼다는 사실에 호기심과 설렘도 느낀다.

부부가 편지를 함께 읽고 흥미진진한 대화를 나누는 시간도 그 자체로 소중해 보였다.

이 장면을 읽으며 중학생 때 잡지의 펜팔 코너에 신청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잡지를 구독하던 또래 친구들에게 편지를 받고, 한 번도 만나지 않았으며 얼굴조차 모르는 사람과

이야기를 주고받고 작은 선물을 보내던 시절이 있었다.

상대가 어떤 사람일지 상상하며 답장을 기다리던 설렘과,

특별한 목적 없이 그저 대화를 오래 이어가고 싶었던 순수한 마음이 테오의 편지를 통해 되살아났다.

테오의 편지는 정중하고 세심하다.

낯선 사람의 연락이 무례하게 느껴질 수 있음을 먼저 사과하고,

자신을 수상한 사람으로 여기지 않도록 나이와 옷차림, 만날 장소를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자신을 “선한 의도만 있는 이빨 빠진 사자”라고 소개하는 대목에는 위트도 있다. 상대가 느낄 불안까지 미리 헤아린 문장이다.

SNS와 짧은 메시지로 소통하는 일이 익숙해지면서 손으로 편지를 쓸 기회가 거의 사라졌지만,

자신의 필체로 천천히 적은 편지에는 말만으로는 전하기 어려운 사람의 온도와 태도가 담기는 것 같다.

테오의 편지는 정중한 편지가 어떻게 상대를 배려하면서도 진심을 전달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현대에는 사람에게 상처받은 경험 때문에 마음에 높은 경계를 세우고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

누군가 이유 없이 호의를 베풀면 고마워하기 전에 목적부터 의심한다.

그것은 지나친 냉소라기보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익힌 태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서는 누구보다도 자신의 이야기를 꾸밈없이 털어놓고, 판단받지 않은 채 들어주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가까운 가족이라고 해서 언제나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랜 세월을 함께하지 않은 사람, 세대 차이가 날 만큼 나이가 다른 사람과도 진실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오히려 이해관계가 적은 낯선 사람에게 오래 묻어둔 이야기를 고백하며 마음을 치유받기도 한다.

이런 힘은 혼자서는 얻기 어렵다. 나를 제대로 바라봐 주는 타인을 통해서만 자신을 새롭게 발견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테오는 질문을 잘하고 그보다 더 잘 듣는 사람이다.

상대의 눈을 바라보며 말을 재촉하지 않고, 위트와 예의를 잃지 않으며 사소한 표정의 변화까지 알아차린다.

무엇보다 그의 관심은 상대에게 진심으로 전달된다.

진심 어린 칭찬 한마디는 자신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던 사람의 생각을 바꿀 수 있다.

누군가가 발견해 준 좋은 점을 통해 비로소 자기 안의 가치를 믿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칭찬은 한 사람에게서 끝나지 않는다. 칭찬받은 사람은 다시 다른 사람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된다.

진심 어린 칭찬은 또 다른 칭찬을 남긴다.

테오의 다정함이 단순히 타고난 낙천성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소설은 더 깊어진다.

그는 음주 운전 사고로 사랑하는 딸과 아내를 모두 잃었다.

아내가 운전한 차에서 딸과 아내가 함께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은 그에게 견디기 어려운 죄책감과 후회를 남겼다.

그는 그 슬픔에 빠져 익사하지 않기 위해 걸었다. 가만히 있으면 자신을 덮칠 생각들이 두려워 매일 혼자 걷고 또 걸었다.

초라하고 분노한 채, 위로받을 수 없는 상태로 절박하게 걸었다.

그러나 가장 암울한 순간에도 자연은 계속 아름다웠다.

프랑스의 어느 4월 저녁, 해가 지기 직전부터 황혼의 첫 별이 떠오르기까지의 짧은 시간에 테오는 “세상은 참 아름답구나”라는 사실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산산이 부서진 영혼의 치유가 그때부터 아주 조금씩 시작된다.

치유는 완전한 회복도, 슬픔의 삭제도 아니었다. 앞으로도 전진과 후퇴를 반복할 것이며 슬픔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따라올 것이다.

그럼에도 삶은 계속되어야 했다.

이 부분에서 테오의 다정함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슬픔을 모르는 사람이어서 다른 사람에게 친절했던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적어도 한 번은 누군가를 온 존재로 사랑했고, 그 사랑을 잃은 뒤 무너져 본 사람이었기에 타인의 슬픔을 알아볼 수 있었다.

상처가 언제나 사람을 다정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상처를 오래 들여다본 사람은 다른 이의 아픔 앞에서 함부로 말하지 않는 법을 배우기도 한다. 테오는 상대를 고치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곁에 앉아 듣고, 그 사람의 슬픔이 존재해도 괜찮다고 알려준다.

초상화는 그러한 만남을 가능하게 하는 매개다. 그림의 가치가 뛰어난 묘사력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초상화 속 얼굴 뒤에는 살아온 시간과 사랑, 후회, 상실, 말하지 못한 사연이 있다.

테오는 그림을 주인에게 돌려주는 동시에 그 사람에게 자신의 삶을 다시 바라볼 기회를 돌려준다.

예술은 현실을 잊게 하는 장식이 아니라 잊고 있던 자신과 타인을 기억하게 하는 힘이 될 수 있다.

한 사람의 초상화는 결국 “당신은 자세히 바라볼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메시지가 된다.

작은 도시 골든도 이 소설의 중요한 주인공이다.

첼리스 카페와 분수대 옆 벤치, 강변 산책로와 서점에는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주민들이 모인다.

테오가 한 사람씩 만나 이야기를 듣는 동안 개인의 변화는 관계의 변화로 이어지고, 관계의 변화는 공동체 전체에 잔잔한 파문을 만든다.

강물의 작은 흐름들이 하나로 모여 바다로 향하듯 테오의 작은 친절도 사람과 사람을 이어준다.

세상을 바꾸는 일은 반드시 거창한 선언이나 영웅적인 행동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듣고 한 사람에게 필요한 초상화를 돌려주며 눈앞의 존재를 함부로 지나치지 않는 일에서 시작될 수 있다.

작가 앨런 레비의 실제 삶을 살펴보면 테오와 겹쳐 보이는 부분도 적지 않다.

그는 미국 조지아주 콜럼버스에서 성장해 조지아대학교에서 영문학과 법학을 공부했다.

변호사로 일하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대학교에서 스코틀랜드 문학을 공부했으며,

이후 다시 법률가로 활동하다가 1996년부터 전업 싱어송라이터이자 이야기꾼의 길을 걸었다.

20장이 넘는 음반을 발표했고, 판사로 일한 경력도 있다. 또한 2012년 세상을 떠난 동생 게리와의 우정을 기록한 회고록도 출간했다.

『테오』의 직접적인 출발점 역시 작가의 실제 경험이었다.

앨런 레비는 고향의 한 카페에서 벽에 걸린 92점의 초상화를 보다가 “누군가 이 그림을 모두 사서 주인에게 돌려주면 어떨까”라고 생각했다.

그는 실제로 그날 초상화 네 점을 구입했고, 집에서 그림 속 인물의 사연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다만 소설 속 테오의 행적 전체가 실화인 것은 아니다.

작가는 처음부터 특정 인물을 모델로 삼지는 않았지만, 이야기를 써갈수록 사람을 사랑하고 충만하게 살았던 동생 게리가 테오 안으로 들어오고 있음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작가와 테오에게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두 사람 모두 천천히 바라보고, 걷고, 이야기를 듣고, 작은 공동체 안에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

앨런 레비는 가족의 땅을 돌보며 지역사회 활동에 참여하고, 휴대전화와 인터넷이 없는 숲속 작업실까지 걸어가 손으로 글을 쓴다.

그는 테오가 완성된 자신의 모습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도 테오처럼 살고 싶어 이 인물을 썼다고 설명했다.

사회의 큰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려 하기보다 각자가 이름 없이 행하는 작고 지속적인 친절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작품에 담겨 있다.

음악가로 오래 살아온 경력도 소설의 문체에 스며 있다.

장면은 계절과 빛, 강물과 새, 사람들의 목소리를 따라 음악처럼 완급을 조절한다.

작가는 집필할 때 수백 곡의 영화음악을 들었고, 장면과 음악이 하나로 합쳐지는 순간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그래서 『테오』는 사건을 빠르게 밀어붙이기보다 여러 인물의 사연을 하나씩 쌓아 올리고,

후반부에 이르러 흩어진 음들이 하나의 선율이 되는 듯한 울림을 만든다.

앨런 레비는 이 작품을 3년 반 동안 쓰면서도 출간할 생각이 없었다.

완성된 원고를 서랍에 넣어두려 했지만 대학 시절 친구들이 읽은 뒤 반드시 세상에 내놓아야 한다고 권했다.

그는 거의 일흔이라는 나이가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지만 조카와 함께 2023년 자비 출판을 선택했다.

목표는 천 부 정도를 판매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광고보다 독자의 추천과 북클럽의 입소문을 통해 판매량이 늘었고,

2025년 ‘하얀 책’이라 불리며 출판계의 예상 밖 화제작이 되었다.

2026년 6월에는 누적 판매량이 250만 부를 넘어섰다.

이 데뷔 과정 역시 소설의 메시지와 닮았다.

테오의 친절이 한 사람에서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며 골든을 변화시킨 것처럼,

『테오』라는 책도 한 독자가 다른 독자에게 건네면서 세계로 퍼져나갔다.

작가가 거의 일흔에 시작한 첫 장편소설이라는 사실은 새로운 시작에 정해진 나이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랫동안 법과 음악, 가족의 상실과 돌봄, 지역사회에서의 관계를 경험한 시간이 있었기에 이러한 이야기를 쓸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테오』를 읽고 난 뒤 가장 오래 남은 것은 화려한 사건이나 반전만이 아니었다. 사람을 바라보는 테오의 태도였다.

우리는 매일 많은 얼굴을 보지만, 그 얼굴 안에 한 사람의 진짜 삶이 있다는 사실을 자주 잊는다.

테오는 초상화 앞에서 멈추었고, 그 사람을 궁금해했으며,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얼굴을 바라보는 일은 그 사람을 안다고 착각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내가 모르는 이야기가 있음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생에서 테오 같은 사람을 만난다면 큰 행운일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런 사람을 기다리는 데서 멈추지 말고, 내가 누군가에게 테오 같은 사람이 될 수 있는지도 묻는다.

누군가의 말을 조금 더 오래 들어주는 것, 진심으로 좋은 점을 발견해 말해주는 것,

가까운 사람의 얼굴을 익숙하다는 이유로 무심히 지나치지 않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고작 1년이었다. 하지만 테오는 골든 사람들의 마음에 하나의 조류를 만들었다.

그 물에 떠가던 사람들은 어느 순간 함께 노를 저었고, 마침내 하나의 물살이 되어 바다를 향했다.

『테오』는 한 사람의 진심이 다른 사람의 삶에 얼마나 오래 남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소설이다.

슬픔을 없애주지는 못하더라도 함께 살아갈 힘을 건네는 사람,

상처 입은 얼굴에서 여전히 남아 있는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사람,

대가 없이 친절을 선택하는 사람이다.

책을 읽고 나면 테오의 이름이 한 인물의 이름을 넘어 우리가 닮고 싶은 마음의 이름처럼 남는다.


‘이키다서평단 @ekida_library’을 통해,

'오팬하우스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아니요. 슬픔은 여러 모습일 수 있지만, 슬픔이 한심한 경우는 드뭅니다.
좋은 슬픔은 언제나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무언가를 말해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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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츠바이크의 위대한 투자 원칙 - 40년간 시장을 이긴 월스트리트 전설의 투자법
마틴 츠바이크 지음, 송미리 옮김 / 이레미디어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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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투자를 하다 보면 매일 새로운 정보를 찾아보게 된다.

금리와 환율, 기업 실적, 증권사 보고서, 유튜브와 뉴스까지 확인할 것이 끝도 없다.

정보를 많이 알수록 투자가 쉬워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판단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어떤 사람은 지금이 매수 기회라고 하고, 또 다른 사람은 큰 하락이 시작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마틴 츠바이크의 위대한 투자 원칙』을 읽으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투자에서 중요한 것은 정보를 많이 모으는 일이 아니라, 그 정보를 어떤 기준으로 해석하느냐는 것이었다.

지금은 누구나 비슷한 시간에 뉴스와 주가를 확인할 수 있다.

츠바이크는 전쟁의 승패가 무기의 성능보다 그것을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듯, 주식시장에서도 같은 정보를 어떻게 활용하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정보가 부족해서라기보다 너무 많은 정보에 흔들려 자신이 세운 기준을 잃을 때 잘못된 결정을 내린다.

결국 투자자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정보 하나가 아니라 수많은 정보 속에서도 판단을 지켜줄 단단한 원칙인지도 모른다.


마틴 츠바이크는 투자 심리를 측정하는 풋·콜 비율을 개발하고 “연준과 싸우지 말라”는 원칙을 널리 알린 월스트리트의 투자 전략가다.

그는 수십 년 동안 자신의 지표와 원칙을 실제 시장에서 반복해 검증했다.

하지만 자신을 미래를 정확히 맞히는 예언자로 설명하지 않는다.

“나는 확신이 아닌 확률을 다룬다”는 그의 말이 책을 읽는 내내 기억에 남았다.


츠바이크는 바닥과 꼭대기를 정확히 맞히려 하지 않는다.

가장 낮은 가격이 아니더라도 상승 가능성이 커졌을 때 사고, 꼭대기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하락 위험이 커지면 시장에서 나온다.

조금 덜 벌더라도 크게 잃지 않는 선택을 통해 오래 시장에 머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철학은 1987년 블랙 먼데이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당시 다우지수는 하루 만에 22.6% 폭락했다.

츠바이크는 높은 주가 수준과 금리 인상, 과거 폭락 직전과 비슷한 가격 흐름, 투자자들의 지나친 낙관을 발견했다.

그러나 시장이 반드시 무너진다고 단정하지 않고 자신이 틀릴 가능성까지 고려해 주식의 손실을 제한하고 일부 자금을 풋옵션에 투자했다.


시장이 상승하면 작은 비용만 부담하고, 폭락하면 풋옵션 수익으로 주식 손실을 방어하는 전략이었다.

실제로 폭락이 발생하자 보유 주식의 손실을 상쇄하고도 포트폴리오는 블랙 먼데이 당일 9% 상승했다.


진짜 실력은 미래를 완벽하게 맞히는 능력보다 예상이 빗나갔을 때 무너지지 않도록 준비하는 능력에서 드러난다.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는 없지만 최악의 순간에 나를 지킬 방법은 미리 정해둘 수 있다.


츠바이크 투자법의 첫 번째 축은 연준의 정책과 금리, 유동성을 살피는 것이다.

금리가 내려가고 시중에 돈이 풀리면 주식시장에 유리한 환경이 만들어진다.

반대로 긴축이 시작되고 금리가 오르면 기업의 자금 조달 부담이 커지고 주식시장도 약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좋은 종목을 찾기 전에 시장 전체의 환경부터 확인해야 하는 이유다.


두 번째 축은 가격과 거래량으로 확인하는 모멘텀이다.

츠바이크는 상승·하락 종목의 수와 거래량, 가격 변화 속도를 통해 자금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는지 살핀다.

그는 “테이프와 싸우지 말라”고 강조한다.

기업의 전망이 좋아 보여도 주가가 계속 약해진다면 자신의 생각보다 시장의 움직임을 우선해야 한다는 뜻이다.


츠바이크는 하락하는 종목을 싸다는 이유로 매수하는 행동을 공중에서 떨어지는 금고를 받아내는 일에 비유한다.

금고 안에 귀중한 것이 들어 있어도 떨어지는 순간에 받으려 하면 크게 다칠 수 있다.

바닥에 떨어진 뒤 움직임이 안정되는 것을 확인하고 다가가도 늦지 않다.


나 역시 많이 하락한 종목을 보면 충분히 싸졌다는 생각부터 할 때가 있다.

하지만 많이 떨어졌다는 사실만으로 상승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싸게 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살아 있는 추세를 사는 일이다.

가격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기회가 되는 것은 아니며, 다시 상승할 힘이 확인되어야 비로소 좋은 기회가 된다.


개별 종목을 고를 때는 기업의 이익 성장과 P/E, 재무 상태 같은 펀더멘털과 주가의 상대 강도를 함께 살핀다.

좋은 기업을 찾는 것과 좋은 매수 시점을 선택하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종목을 고른 뒤에는 손실 관리가 중요하다.

츠바이크는 매수할 때 현재 주가보다 10~20% 아래에 스톱 가격을 정하고, 그 가격이 무너지면 자신의 판단을 합리화하지 않고 매도한다.

주가가 상승하면 스톱 가격도 올려 이미 얻은 수익을 지킨다.


모든 매매에서 수익을 낼 수는 없다.

야구의 3할 타자도 열 번 중 일곱 번은 아웃된다.

투자 역시 손실은 작게 제한하고 수익이 나는 종목을 오래 보유한다면 성공 비율이 높지 않아도 전체적으로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다.


손실을 인정하는 것은 실패를 확정하는 일이 아니라 더 큰 실패를 막는 결정이다.

틀린 선택을 오래 붙잡는 것이 끈기는 아니다.

때로는 빠르게 놓아주는 것이 자본과 다음 가능성을 지키는 가장 용기 있는 행동이다.


츠바이크는 성공적인 투자자에게 자제력과 유연성,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모든 공에 방망이를 휘두르지 않고 치기 좋은 공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타자처럼, 투자자도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이 만들어질 때까지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마틴 츠바이크의 위대한 투자 원칙』은 단기간에 큰돈을 버는 비결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다.

연준의 정책을 살피고, 가격과 거래량이 보여주는 추세를 따르며, 예상이 틀리면 손실을 제한하라고 말한다.


책을 덮고 나니 투자에서 가장 어려운 상대는 시장이 아니라 내 감정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장에서 오래 살아남는 사람은 언제나 정답을 맞히는 사람이 아니라 틀렸을 때 자신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다.


좋은 투자는 미래를 완벽하게 맞히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변화한 상황에 맞게 자신의 판단을 수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결국 츠바이크가 남긴 위대한 투자 원칙은 시장을 이기려 하지 말고 시장과 함께 움직이라는 것이다.

시장의 흐름을 존중하고 확률이 유리할 때 참여하며, 상황이 달라지면 미련 없이 전략을 바꾸는 것.

투자 기준과 손실 관리 원칙을 세우고 싶은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이레미디어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그렇다면 이 책을 읽고 있는 당신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나는 기본적으로 ‘매수 후 유지’는 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전략은 그릇되었다고 본다. 앞으로 10년 동안에는 약세장이 더 많이, 더 길게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위험을 낮추려고 주식과 채권 시장 투자를 거두어들여야 할 기간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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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경 5미터 세계사 - 방구석에 누워만 있었는데 역사 천재가 되어버렸다
히스토리카 지음, 김효진 옮김 / 더퀘스트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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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에는 방 안에 놓여 있거나 자주 사용하는 물건들을 유심히 바라본 적이 없었다. 유리컵은 물을 마시는 컵이었고, 책상 위에는 읽다 만 책과 메모지가 놓여 있을 뿐이었다. 의자에 걸린 옷과 창가의 커튼, 벽에 걸린 시계도 늘 그 자리에 있는 익숙한 풍경이었다.


너무 익숙한 나머지 존재조차 의식하지 않았던 물건들. 그런데 『반경 5미터 세계사』를 읽고 나니 그 평범한 물건들이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 책은 왕과 영웅, 전쟁과 왕조를 중심으로 세계사를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유리, 세라믹, 종이와 책, 직물, 나무, 시계처럼 생활 반경 5미터 안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물들을 통해 세계사의 흐름을 들려준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물건들이 어디에서 시작되었고 어떤 기술과 교역, 사람들의 삶을 거쳐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는지를 하나씩 따라가게 만든다.


가장 먼저 만난 것은 유리였다. 지금은 너무 흔해서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지만, 유리는 자연 속에서 먼저 만들어졌다. 리비아 사막에서는 운석 충돌로 생성된 천연 유리가 발견되었고, 투탕카멘의 무덤에서는 그 유리로 만든 장식품도 출토되었다. 이후 인간은 유리를 직접 만들기 시작했고,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로마를 거치며 귀한 교역품이자 생활용품으로 발전해 왔다.


유리컵을 보며 운석 충돌이나 고대 문명을 떠올리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평범한 유리컵 하나에도 수천만 년의 자연과 수천 년의 문명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한 번쯤 떠올리게 되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종이와 책의 역사였다. 우리는 글은 당연히 종이에 쓰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최초의 문자는 점토판과 파피루스, 거북 등딱지와 짐승의 뼈 위에 기록되었다. 종이가 등장한 뒤에도 곧바로 널리 사용된 것은 아니었다. 채륜이 기존 제지법을 개선해 생산성을 높였고, 종이는 동아시아를 넘어 유럽으로 전해지며 인쇄술과 만나 세상을 바꾸기 시작했다.


활판 인쇄술은 성서를 더 많은 사람이 읽게 만들었고, 지식은 소수의 것이 아니라 대중의 것이 되기 시작했다. 산업혁명 이후 종이가 대량 생산되면서 신문과 책은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들어왔고, 생각과 정보는 훨씬 빠르게 퍼져나갔다. 얇은 종이 한 장이 사회와 역사를 움직이는 힘이 되었다는 사실이 무척 흥미롭게 다가왔다.


책은 기술만 발전했다고 문명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함께 보여준다. 같은 금속활자를 가지고도 조선과 유럽이 다른 길을 걸었던 이유처럼, 기술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회와 사람들, 시장이 함께 갖춰질 때 비로소 큰 변화를 만들어낸다는 점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유리와 종이 외에도 이 책은 토기와 자기, 직물, 나무, 시계를 통해 또 다른 세계사를 펼쳐 보인다. 중국 자기를 둘러싼 유럽의 기술 경쟁, 산업혁명을 이끈 직물 산업, 숲의 감소가 가져온 에너지의 변화, 정확한 시계가 항해와 지도를 바꾼 이야기까지 어느 하나 지루할 틈이 없다. 하나의 물건을 따라가다 보면 예상하지 못한 역사 속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책을 다 읽고 방 안을 둘러보니 책에서 만났던 물건들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유리컵과 책, 종이, 커튼, 시계는 여전히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 평범한 물건들이 오랜 시간 동안 기술과 교역, 사람들의 삶을 거쳐 지금의 모습으로 이어져 왔다는 사실을 한 번쯤 떠올리게 된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세상이 완전히 달라지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은 일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지는 데 있는 것 같다. 익숙해서 아무 의미 없이 지나쳤던 물건 속에도 수천 년의 역사와 수많은 사람들의 고민, 기술의 발전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평범한 일상도 이전보다 훨씬 깊고 흥미롭게 다가온다. 지식은 특별한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늘 곁에 있었지만 보지 못했던 이야기를 발견하게 해주는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경 5미터 세계사』는 역사를 암기해야 할 정보가 아니라 일상 속에서 발견하는 이야기로 바꾸어주는 책이다. 눈앞의 평범한 물건 하나를 보며 "이것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순간 자연스럽게 세계사의 문이 열린다. 방 안에서 책을 읽었을 뿐인데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베네치아와 산업혁명의 현장을 함께 여행한 기분이 들었다. 평범한 일상을 가장 흥미로운 역사 여행으로 바꾸어주는 교양서였다.


'더퀘스트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파피루스도, 종이도 없었던 유럽에서는 어떻게 책을 만들었을까?
이 시기 등장한 것이 바로 양피지다. 유럽에서는 동물가죽을 방부 처리한 뒤 얇게 펴서 종이 대신 사용했다. ‘양피‘라고는 하지만, 양뿐 아니라 염소나 소 등 구하기 쉬운 가축의 가죽이 재료로 사용되었다. 양피지는 종이가 아닌 가공된 가죽 제품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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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에게 언어를 주자
김명순 외 지음, 이루카 엮고 옮김 / 아티초크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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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에게 언어를 주자』는 기원전 2300년경의 엔헤두안나부터 사포, 허난설헌, 에밀리 디킨슨, 나혜석, 김명순에 이르기까지

세계 여성 시인 100인의 삶과 시를 한 권에 담은 시선집이다.

시대와 언어, 국경은 서로 다르지만 이들이 남긴 시에는

사랑과 상실, 고독과 분노, 가난과 차별을 견뎌야 했던 여성들의 목소리가 공통으로 흐른다.

옮긴이 이루카는 이 책을 만드는 동안 혼자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나치에 체포되기 전 스무 살 무렵 엘레나 쉬르만이 쓴 “고통에 몸을 굽히고, 분노로 치솟아 오를지언정”이라는 구절을 옮기다가 손을 멈추었고,

그 순간 시인이 같은 방 안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서로 다른 언어로 쓰인 작품을 옮기기 위해 검증된 번역본과 여러 연구자의 도움을 받으며 그는 “번역은 언제나 여럿의 일”임을 깨닫는다.

누군가 먼저 언어의 첫 번째 다리를 놓았고, 옮긴이는 그 끝에서 독자에게 이어지는 두 번째 다리를 놓은 셈이다.

초판 한정 양장본의 덧표지에 실린 데이비드 인쇼의 〈배드민턴 게임〉도 이 책의 의미와 닿아 있다.

황혼 무렵 정원에서 배드민턴을 치는 두 여성의 이름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셔틀콕은 공중에 머물러 있고 시간마저 정지한 듯하다.

수많은 여성 작가의 이름 또한 전해지지 않았겠지만, 그들이 살아간 자리에는 자신을 지탱한 언어가 있었을 것이다.

옮긴이는 이름 없이 사라진 이들, 원고를 스스로 불태운 이들, 이름이 있었음에도 잊힌 시인들에게 감사를 건네며 마지막에 말한다.

“이 목소리들은 이제 당신의 것이다.”

책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엔헤두안나는 인류 역사상 이름이 기록된 최초의 작가로 알려져 있다.

정치적 격변으로 여사제의 지위를 빼앗기고 추방당했던 그는 「이난나와 신성한 정수」를 통해 무너진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세우고자 했다.

여신을 향한 찬미는 곧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언어였다.

사포의 「내 눈에 그는」은 사랑과 질투가 인간의 몸을 어떻게 장악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 준다.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순간 목소리가 잠기고, 혀가 갈라지며, 눈앞의 빛이 사라지고 온몸이 떨린다.

반면 고대 로마의 술피키아는 「드디어 사랑이 찾아왔습니다」에서 사랑을 숨기는 일이 오히려 부끄럽다고 선언한다.

그는 남들의 시선을 피해 가면을 쓰기보다 자신의 감정을 당당하게 드러낸다.

알칸사는 세상을 떠난 오빠를 향해 “눈물을 쏟아라, 절대로 멈추지 마라”라고 말한다.

슬픔을 빨리 극복하라고 재촉하는 대신 충분히 울도록 허락한다.

남편을 잃은 크리스틴 드 피장 역시 「홀로됨에 관하여」에서 “나는 홀로이고”라는 문장을 반복한다.

그 반복은 외로움의 깊이를 보여 주면서도 자신의 상실을 지우지 않겠다는 의지처럼 들린다.

이 책에는 오노노 코마치와 무라사키 시키부, 황진이와 허난설헌, 에밀리 디킨슨과 브론테 자매,

요사노 아키코,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나혜석과 김명순 등 익숙한 이름들도 등장한다.

그러나 이 책의 의미는 유명한 여성 문인을 다시 소개하는 데만 있지 않다.

역사에서 밀려나거나 지워졌던 목소리를 다시 불러내 여성들의 사랑과 노동, 분노와 슬픔 역시 기록될 가치가 있는 삶의 역사였음을 보여 준다.

슬픔에게 언어를 준다는 것은 슬픔을 없애는 일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잃었고 왜 아픈지를 말함으로써, 그 고통이 분명히 존재했음을 인정하는 일이다. 말이 된 슬픔은 여전히 아프지만 더 이상 이름 없이 마음속을 떠돌지는 않는다.

『슬픔에게 언어를 주자』는 괜찮아질 것이라는 가벼운 위로보다 아픔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정직한 문장을 건넨다.

이 책은 자신의 감정을 설명할 말을 찾지 못한 사람, 오래된 상실을 충분히 애도하지 못한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누군가의 슬픔을 읽는 일은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삶과 목소리가 사라지지 않도록 기억하는 일이다.

100인의 시를 따라가다 보면 혼자라고 여겼던 슬픔 곁에 이미 수많은 목소리가 함께 서 있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아티초크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엔헤두안나
기원전 2300년경

인류 역사상 이름이 기록된 최초의 작가이자 메소포타미아를 최초로 통일한 아카드 제국의 공주였다고 전해진다.
그녀에게 이난나는 단순히 멀리 있는 여신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내밀한 감정과 고통을 쏟아낼 수 있는 유일하고도 뜨거운 영적 동반자였다.
그녀가 쓴 시들은 신을 향한 찬미를 넘어, 한 개인이 신성(神性)과 나누는 깊은 유대와 사랑의 고백이기도 하다.
정치적 격변기에 여사제의 지위를 박탈당하고 사막으로 쫓겨났던 엔헤두안나는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이 시를 쓰며 자신의 존재 증명을 시도했다. 신성한 권능을 상징하는 ‘정수(精髓)’를 여신의 몸에 단단히 결속시키는 묘사는, 무너진 자신의 정체성을 재건하고 다시 세상의 중심에 서고자 했던 그녀의 강인한 의지와 자기애를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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