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에게 언어를 주자
김명순 외 지음, 이루카 엮고 옮김 / 아티초크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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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에게 언어를 주자』는 기원전 2300년경의 엔헤두안나부터 사포, 허난설헌, 에밀리 디킨슨, 나혜석, 김명순에 이르기까지

세계 여성 시인 100인의 삶과 시를 한 권에 담은 시선집이다.

시대와 언어, 국경은 서로 다르지만 이들이 남긴 시에는

사랑과 상실, 고독과 분노, 가난과 차별을 견뎌야 했던 여성들의 목소리가 공통으로 흐른다.

옮긴이 이루카는 이 책을 만드는 동안 혼자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나치에 체포되기 전 스무 살 무렵 엘레나 쉬르만이 쓴 “고통에 몸을 굽히고, 분노로 치솟아 오를지언정”이라는 구절을 옮기다가 손을 멈추었고,

그 순간 시인이 같은 방 안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서로 다른 언어로 쓰인 작품을 옮기기 위해 검증된 번역본과 여러 연구자의 도움을 받으며 그는 “번역은 언제나 여럿의 일”임을 깨닫는다.

누군가 먼저 언어의 첫 번째 다리를 놓았고, 옮긴이는 그 끝에서 독자에게 이어지는 두 번째 다리를 놓은 셈이다.

초판 한정 양장본의 덧표지에 실린 데이비드 인쇼의 〈배드민턴 게임〉도 이 책의 의미와 닿아 있다.

황혼 무렵 정원에서 배드민턴을 치는 두 여성의 이름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셔틀콕은 공중에 머물러 있고 시간마저 정지한 듯하다.

수많은 여성 작가의 이름 또한 전해지지 않았겠지만, 그들이 살아간 자리에는 자신을 지탱한 언어가 있었을 것이다.

옮긴이는 이름 없이 사라진 이들, 원고를 스스로 불태운 이들, 이름이 있었음에도 잊힌 시인들에게 감사를 건네며 마지막에 말한다.

“이 목소리들은 이제 당신의 것이다.”

책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엔헤두안나는 인류 역사상 이름이 기록된 최초의 작가로 알려져 있다.

정치적 격변으로 여사제의 지위를 빼앗기고 추방당했던 그는 「이난나와 신성한 정수」를 통해 무너진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세우고자 했다.

여신을 향한 찬미는 곧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언어였다.

사포의 「내 눈에 그는」은 사랑과 질투가 인간의 몸을 어떻게 장악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 준다.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순간 목소리가 잠기고, 혀가 갈라지며, 눈앞의 빛이 사라지고 온몸이 떨린다.

반면 고대 로마의 술피키아는 「드디어 사랑이 찾아왔습니다」에서 사랑을 숨기는 일이 오히려 부끄럽다고 선언한다.

그는 남들의 시선을 피해 가면을 쓰기보다 자신의 감정을 당당하게 드러낸다.

알칸사는 세상을 떠난 오빠를 향해 “눈물을 쏟아라, 절대로 멈추지 마라”라고 말한다.

슬픔을 빨리 극복하라고 재촉하는 대신 충분히 울도록 허락한다.

남편을 잃은 크리스틴 드 피장 역시 「홀로됨에 관하여」에서 “나는 홀로이고”라는 문장을 반복한다.

그 반복은 외로움의 깊이를 보여 주면서도 자신의 상실을 지우지 않겠다는 의지처럼 들린다.

이 책에는 오노노 코마치와 무라사키 시키부, 황진이와 허난설헌, 에밀리 디킨슨과 브론테 자매,

요사노 아키코,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나혜석과 김명순 등 익숙한 이름들도 등장한다.

그러나 이 책의 의미는 유명한 여성 문인을 다시 소개하는 데만 있지 않다.

역사에서 밀려나거나 지워졌던 목소리를 다시 불러내 여성들의 사랑과 노동, 분노와 슬픔 역시 기록될 가치가 있는 삶의 역사였음을 보여 준다.

슬픔에게 언어를 준다는 것은 슬픔을 없애는 일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잃었고 왜 아픈지를 말함으로써, 그 고통이 분명히 존재했음을 인정하는 일이다. 말이 된 슬픔은 여전히 아프지만 더 이상 이름 없이 마음속을 떠돌지는 않는다.

『슬픔에게 언어를 주자』는 괜찮아질 것이라는 가벼운 위로보다 아픔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정직한 문장을 건넨다.

이 책은 자신의 감정을 설명할 말을 찾지 못한 사람, 오래된 상실을 충분히 애도하지 못한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누군가의 슬픔을 읽는 일은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삶과 목소리가 사라지지 않도록 기억하는 일이다.

100인의 시를 따라가다 보면 혼자라고 여겼던 슬픔 곁에 이미 수많은 목소리가 함께 서 있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아티초크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엔헤두안나
기원전 2300년경

인류 역사상 이름이 기록된 최초의 작가이자 메소포타미아를 최초로 통일한 아카드 제국의 공주였다고 전해진다.
그녀에게 이난나는 단순히 멀리 있는 여신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내밀한 감정과 고통을 쏟아낼 수 있는 유일하고도 뜨거운 영적 동반자였다.
그녀가 쓴 시들은 신을 향한 찬미를 넘어, 한 개인이 신성(神性)과 나누는 깊은 유대와 사랑의 고백이기도 하다.
정치적 격변기에 여사제의 지위를 박탈당하고 사막으로 쫓겨났던 엔헤두안나는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이 시를 쓰며 자신의 존재 증명을 시도했다. 신성한 권능을 상징하는 ‘정수(精髓)’를 여신의 몸에 단단히 결속시키는 묘사는, 무너진 자신의 정체성을 재건하고 다시 세상의 중심에 서고자 했던 그녀의 강인한 의지와 자기애를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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