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줄 인생 명언 필사책 - 내 삶에 힘이 되는 좋은 습관
유태진 엮음 / 다른상상 / 202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좋은 문장은 이상하게 오래 살아남는다.

유행처럼 소비되는 말들은 금세 잊히지만, 수백 년이 지나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읽히고 인용되는 문장들이 있다. 『하루 한 줄 인생 명언 필사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올랐던 생각도 바로 그것이었다.

왜 어떤 문장들은 오랜 세월 동안 사라지지 않고 계속 전해질까.

책의 프롤로그는 그 이유를 잘 설명해 준다. 우리가 지금 만나는 명언들은 누군가의 성공담이나 순간적인 영감이 아니라 실패와 고통, 치열한 고민과 삶의 경험 끝에서 탄생한 말들이다. 그래서 짧은 문장임에도 묘하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은 그런 문장들을 하루에 하나씩 읽고 직접 따라 쓰며 자신의 삶 속으로 가져올 수 있도록 구성된 필사책이다. 단순히 명언을 모아놓은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생각보다 훨씬 깊은 울림을 주었다.

특히 좋았던 점은 익숙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철학자와 사상가들의 말이 필사를 통해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며 자기 무지를 깨닫는 순간이 진정한 배움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이 어떤 결과나 상태가 아니라 매일의 선택과 행동 속에서 만들어지는 과정이라고 이야기한다. 니체는 타인의 기준을 따르기보다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끝까지 밀고 나갈 때 비로소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사실 이런 문장들은 워낙 유명해서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는 내용들이다. 하지만 막상 손으로 한 글자씩 따라 쓰다 보면 단순히 ‘아는 말’에서 ‘생각하게 만드는 말’로 바뀐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문장이었다.

“외부의 사건이 문제가 아니다. 그것을 판단하는 방식이 문제다.”

살면서 우리는 종종 상황 때문에 힘들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사람은 무너지고, 어떤 사람은 다시 일어선다. 그 차이는 사건 자체보다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에 있다는 것을 이 짧은 문장이 일깨워 준다. 내면에는 언제든 다시 솟아날 수 있는 선의 근원이 있다는 말 역시 결국 스스로를 바로 세우고 삶을 바라보는 힘이 우리 안에 존재한다는 뜻으로 다가왔다.

책을 읽다 보니 흥미로운 점도 발견하게 되었다.

시대도 다르고 살아온 환경도 전혀 다른 사람들인데, 그들이 남긴 말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마리 퀴리는 두려움은 이해가 부족할 때 생긴다고 말했고, 파스퇴르는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 찾아온다고 이야기했다. 사르트르는 인간은 선택하는 존재라고 말했고, 니체는 시련이 사람을 더 단단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마이클 조던은 실패보다 시도하지 않는 것을 경계했고, 무함마드 알리는 불가능은 사실이 아니라 하나의 의견일 뿐이라고 했다. 윈스턴 처칠은 실패를 거듭하더라도 열정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고, 링컨은 느리게 갈 수는 있어도 뒤로 물러서지는 않는다고 이야기했다.

결국 이 모든 문장은 하나의 메시지로 연결된다.

삶은 완벽한 사람만이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넘어지고 실패하고 흔들리면서도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의 것이라는 사실이다.

책을 읽으며 새삼 깨달은 것은 이 문장들이 지금까지 살아남은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는 점이다.

수많은 책과 말들이 사라졌지만, 이 문장들은 세대를 넘어 계속 읽힌다.

그만큼 사람들의 마음에 닿았고, 실제로 삶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의 한 문장이 내일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런 문장들이 하루하루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생각이 바뀌고, 태도가 달라지고, 결국 삶의 방향도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하루 한 줄 인생 명언 필사책』은 단순히 글씨를 따라 쓰는 필사책이 아니다.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춰 자신을 돌아보고, 삶의 방향을 점검하며, 다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 시간에 가깝다. 좋은 문장을 좋아하는 사람, 필사를 시작해 보고 싶은 사람, 그리고 지친 마음을 다잡을 작은 계기가 필요한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ㅡ

'다른상상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014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 온다

우연은 준비된 마음에 온다
기회는 아무에게나 보이지 않는다
노력은 눈에 보이지 않게 쌓인다
어느 순간 그 모습을 드러낸다
오직 준비된 사람만이
그 기회를 붙잡을 수 있다

파스퇴르 - P3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내 인생의 배경지식 한 권 교양 - 모든 경험이 지식이 되는 질문 수업
유선경 지음 / 앤의서재 / 202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살다 보면 문득 그런 순간이 있다.

분명 많은 것을 보고 듣고 겪으며 살아왔는데, 정작 그것들이 내 안에서 어떤 의미가 되었는지는 잘 모를 때가 있다. 읽은 책도 많고 지나온 시간도 적지 않은데, 그것들을 내 언어로 꺼내 설명하려 하면 이상하게 말문이 막히는 순간 말이다. 『내 인생의 배경지식 한 권 교양』은 그렇게 지나온 기억과 경험을 다시 돌아보게 하고, 그것들을 자기만의 지식으로 연결해보게 만드는 책이었다.

작가는 자신을 ‘뒤로 걷는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앞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시선은 지나온 곳들을 향하고 있는 사람.

처음에는 조금 쓸쓸한 표현처럼 느껴졌지만 곱씹을수록 이상하게 마음에 오래 남았다.

인간은 누구나 뒤를 돌아보며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지나온 기억과 경험을 몸 안에 차곡차곡 쌓아가며 살아간다.

중요한 것은 하나의 기억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나온 경험들을 서로 이어 보며 그 안에서 나만의 의미를 찾아가는 일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한 교양 상식집처럼 느껴지지는 않는다.

역사와 문학, 예술과 신화, 자연과 인간의 감정을 하나의 질문으로 엮어낸다.

“심청은 왜 연꽃을 타고 왔을까?”, “도깨비의 정체는 무엇일까?”, “백설공주는 왜 자꾸 문을 열어줬을까?”, “천고마비는 정말 좋은 뜻일까?” 같은 질문들은 가볍게 시작되지만 읽다 보면 결국 인간의 삶과 마음으로 이어진다.

특히 심청과 연꽃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심청이 연꽃을 타고 돌아온 장면은 단순히 아름다운 장면을 만들기 위한 설정이 아니었다. 연꽃은 물 위에 피면서도 물에 젖지 않고, 더러운 진흙에서 자라면서도 스스로를 더럽히지 않는 꽃이다. 그래서 죽음을 지나 다시 세상으로 돌아오는 심청에게 연꽃은 가장 알맞은 상징이 아니었나 싶다.

심청은 연꽃을 통해 이전과는 다른 존재로 돌아온다. 아버지의 눈뿐 아니라 잔치에 모인 모든 이들의 눈까지 뜨게 하는 장면은, 고난을 통과한 사람이 누군가를 다시 살리는 존재가 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듯했다.

연꽃의 씨앗 이야기도 오래 남았다. 천 년이 지나도 다시 싹을 틔울 수 있는 생명력, 그리고 그 단단한 씨앗이 상처를 입어야 비로소 꽃을 피울 수 있다는 사실은 사람의 삶과도 닮아 있었다.

상처는 피하고 싶은 것이지만, 때로는 그 상처 때문에 새로운 삶이 시작되기도 한다.

진흙 속에서도 더럽혀지지 않고, 상처를 통해 다시 피어나는 연꽃처럼 사람도 아픔을 지나며 조금 더 깊어지고 단단해지는 순간이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며 고난이 꼭 삶을 망가뜨리기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아픔은 시간이 지나 결국 한 사람만의 향기가 되기도 하니까.

도깨비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우리가 익숙하게 떠올리던 뿔 달린 괴물 같은 모습은 사실 일본의 ‘오니‘ 이미지에 가깝고,

한국의 도깨비는 오래된 물건이나 자연물에 혼이 깃든 존재라는 설명이 새롭게 다가왔다.

특히 사회에서 버려지거나 소외된 존재들을 도깨비로 해석하는 부분에서는 전래동화가 단순한 옛이야기가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외로움과 현실을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쓸모없다고 밀려난 존재들이 오히려 괴력을 가진 존재가 되어 약한 사람 편에 선다는 설정이 묘하게 뭉클했다.

백석과 윤동주 이야기에서는 오래 마음이 먹먹해졌다.

같은 시대,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있었지만 끝내 교류하지 못한 두 사람. 백석은 이미 이름난 시인이었고, 윤동주는 백석의 시집 『사슴』을 구하지 못해 손수 필사본을 만들어 읽을 만큼 그를 좋아했다. 그런 두 사람이 모두 프랑시스 잠과 라이너 마리아 릴케를 사랑했다는 사실이 묘하게 애틋했다. 외롭고 가난한 존재들, 하늘과 바람과 별과 꽃과 당나귀를 함께 좋아했을 두 사람이 만났더라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싶었다.

특히 릴케에게 로댕이 건넸다는 “힘내라고!”라는 말이 잔잔한 여운을 남겼다. 거창한 조언이 아니라 짧은 한마디였지만, 정말 힘든 시기를 지나온 사람만이 건넬 수 있는 따뜻함이 느껴졌다. 젊은 날의 자신에게 필요했던 말을 다른 젊은 예술가에게 건네는 마음. 이 이야기를 읽으며 좋은 문장과 좋은 사람은 누군가를 조용히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설공주 이야기를 외로움의 관점으로 해석한 부분도 기억에 남는다.

백설공주가 자꾸 문을 열어준 것은 단순히 어리석어서가 아니라 외로웠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난쟁이들이 아무리 잘해주어도, 친밀한 경험을 함께 나눌 사람이 없는 일상은 충분히 외로웠을 것이다. 그래서 낯선 사람이 건네는 레이스와 빗, 사과 같은 작은 관심에도 마음이 흔들렸을지 모른다.

이 해석은 지금 시대에도 꽤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외로울 때 우리는 종종 마음의 빈자리를 소비나 낯선 관계로 급하게 채우려 한다. 하지만 외로울수록 아무거나 사지 말고, 아무거나 먹지 말고, 아무나 만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오래 남았다. 외로움은 부끄러운 실패가 아니라 지금 내 마음과 관계를 다시 살펴보라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결국 중요한 것은 빈자리를 아무것으로나 채우는 것이 아니라, 나를 해치지 않는 방식으로 나 자신과 진실한 관계를 맺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신 이야기에서는 모욕을 견디는 방식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과하지욕, 일반천금, 사면초가 같은 고사성어가 모두 한신의 삶에서 나왔다는 사실도 흥미로웠지만,

더 기억에 남는 것은 굴욕을 삶의 동력으로 바꾸어낸 태도였다.

한신은 자신을 무시한 사람들을 잊지 않았지만, 단순한 분풀이로 복수하지 않았다.

결국 자신을 증명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살다 보면 억울하고 자존심 상하는 순간이 누구에게나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견디고 어디로 끌고 가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문장은 신흠의 시였다.

“매화는 일생을 추워도 그 향을 팔지 않는다.”

곱씹을수록 참 멋진 문장이다. 여기서 말하는 향은 단순한 꽃향기가 아니라 한 사람이 끝까지 지키고 싶은 품격과 자존심처럼 느껴졌다. 춥고 외로운 시간을 지나면서도 쉽게 아부하지 않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자신을 함부로 꺾지 않는 마음. 그래서 이 문장에는 고고함을 넘어선 단단한 기개가 담겨 있었다.

추사 김정희가 제주 유배지에서 수선화를 보며 부활과 같은 생명력을 떠올렸던 이유도 결국 같은 맥락이었을 것이다. 뽑히고 또 뽑혀도 다시 피어나는 꽃처럼, 사람 역시 꺾이는 순간 속에서도 다시 살아갈 힘을 품고 있다. 결국 좋은 삶이란 늘 화려하게 피어 있는 삶이 아니라, 추운 시간을 견디면서도 자기 향을 잃지 않는 삶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교양을 단순한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바꿔주기 때문이다. 작가는 오래전부터 품어온 질문들을 통해 역사와 문학, 인간의 감정과 기억을 연결해낸다.

그래서 책을 읽고 나면 무엇을 더 알게 되었다는 만족감도 있지만,

내가 지나온 시간들 역시 언젠가는 나만의 지식과 이야기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질문은 사람을 성장하게 만든다.

그리고 좋은 질문은 삶을 조금 더 깊고 단단하게 바라보게 만든다.

『내 인생의 배경지식 한 권 교양』은 바로 그런 질문의 힘을 알려주는 책이었다.


ㅡ

"요조앤 @yozo_anne 이 모집한 서평단에 선정되어⠀

앤의서재 @annes.library 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오동나무로 만든 악기는 천 년을 묵어도 자기 곡조를 간직하고
매화는 일생을 추워도 그 향을 팔지 않는다
달은 천 번을 이지러져도 본바탕은 변치 않으며
버드나무 가지는 백 번 꺾여도 새 가지가 돌아난다
* 《야언》, 문정공 신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다정한 어른이 된다는 것 - 긴 겨울을 지나온 당신에게 건네는 봄의 위로
온벼리 지음 / 더케이북스 / 202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삶을 다시 선택할 수 있다 해도

나는 결국, 네가 있는 오늘로 돌아올 것이다.”

책을 읽으며 가장 오래 마음에 남았던 문장이었다.

처음 제목만 보았을 때는 아이를 향한 엄마의 사랑 이야기이거나,

다정함을 잃어버린 어른들에게 필요한 태도를 말하는 책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책장을 넘길수록 이 제목은 훨씬 더 깊은 의미로 다가왔다.

『다정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우며 긴 시간을 견뎌온 엄마의 기록이자,

어린 시절의 외로움과 결혼 후의 흔들림, 부모가 된 뒤의 두려움, 아이의 아픔 앞에서 무너졌던 마음을 다시 바라보는 이야기였다.

작가는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포장하지 않는다.

원망했던 시간, 후회했던 선택, 도망치고 싶었던 순간까지 솔직하게 꺼내놓는다.

그리고 그 모든 시간을 지나온 끝에 삶을 다시 미워하기보다 끌어안는 쪽을 선택한다.

그래서 이 책이 말하는 다정함은 단순히 누군가에게 친절한 사람이 되는 일이 아니었다.

후회와 원망, 무너졌던 시간들을 지나온 뒤에도 자신과 타인,

그리고 주어진 삶을 다시 품어보려는 태도에 가까웠다.

그 마음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은 아이가 아프게 된 뒤,

작가가 몇 번이고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 했던 장면이었다.

그때 그 말을 믿지 않았더라면.

조금 더 늦게 아이를 낳았다면.

다른 선택을 했다면 지금과는 다른 삶이 되지 않았을까?

누구나 감당할 수 없는 고통 앞에서는 과거를 다시 고쳐보고 싶어진다.

나 역시 살아오며 몇 번이나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그날 그런 선택만 하지 않았더라면, 그 사람만 만나지 않았더라면 지금은 달라졌을까 하고 말이다.

그런데 작가는 결국 아주 뭉클한 결론에 도착한다.

만약 삶의 방향이 달라졌다면, 지금의 아이도 자기 곁에 오지 않았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생각이 드는 순간,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보다 아이를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커졌다고 말한다.

그리고 끝내 이렇게 받아들인다.

“네가 오려고 그랬나 보다.”

그 문장을 읽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울컥했다.

삶에는 정말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는 시간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해되지 않아도, 되돌릴 수 없어도, 결국은 품게 되는 시간들 말이다.

왜 나였는지,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끝내 답을 찾지 못해도 어느 순간부터는 이유를 묻기보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존재를 끌어안게 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작가의 문장이 왜 이렇게 깊게 스며드는지 알게 된다.

그녀는 단순히 힘들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을 지나며 자신 안에서 무엇이 무너지고 또 무엇이 다시 살아났는지를 아주 솔직하게 보여준다.

어린 시절, 섬마을에서 뱃일 나간 부모를 기다리며 동생들을 돌봐야 했던 시간,

칭찬 한마디 듣고 싶어서 마당까지 쓸어놓고도 결국 아무 말 없이 지나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울던 아이기도 했다. 그 외로움은 어른이 되어서도 오래 남아 있었다.

사랑받고 싶었지만 안아달라는 말조차 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작가는 사랑받지 못한 기억이 사람 안에 얼마나 깊은 공허함을 남기는지 아주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그런데 좋았던 건, 이 책이 끝까지 누군가를 원망하는 방식으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아이를 키우며 비로소 엄마의 삶을 이해하게 되고, 지쳐서 안아줄 힘조차 없었던 엄마의 마음을 뒤늦게 헤아리게 되는 과정은 읽는 내내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건 결국 나를 풀어주는 일이 아닐까 싶었다.

미워했던 시간을 계속 붙들고 있으면 가장 오래 갇혀 있는 사람도 결국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책 속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새봄’이라는 이름에 담긴 의미였다.

작가는 장애를 가진 아이에게 화려한 이름 대신 희망이 담긴 이름을 지어 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혹독한 겨울 끝에도 결국 봄은 돌아온다는 믿음과 아무리 추운 계절을 지나도 끝내 다시 살아낼 수 있다는 희망을 담고 싶었다.

그래서 ‘새봄’은 단지 아이의 이름이 아니라,

절망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으려는 엄마 자신의 다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모진 겨울 끝에서도 끝내 돌아오는 계절처럼

너는 우리 삶에 다시 찾아온 첫 번째 봄이다.”

이 문장을 읽는데 괜히 눈물이 났다.

삶이 완전히 망가졌다고 느껴질 때조차 누군가는 다시 살아갈 이유가 되어준다는 사실이 너무 따뜻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의 챕터가 계절의 순서를 일부러 바꾸어 놓은 것도 인상적이었다.

보통 우리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순서로 삶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 책은 오히려 긴 여름과 가을, 혹독한 겨울을 지나 마지막에야 봄으로 향한다.

아마 그것이 작가가 말하고 싶은 삶의 순서였던 것 같다.

누군가의 인생에는 봄이 가장 마지막에 찾아오기도 한다는 것.

긴 겨울을 통과한 사람만이 작은 햇살 하나에도 감사하게 된다는 것.

작가는 아이의 병과 장애를 받아들이는 과정 속에서 수없이 무너진다.

신생아 중환자실 유리창 앞에 붙어 아이를 바라보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시간들,

뇌의 일부가 손상되었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세상이 무너지는 듯했던 순간들.

특히 “기다림에도 힘이 필요하다”라는 문장은 오래 남았다.

엄마라는 존재는 결국 끝없는 기다림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아이가 살아나기를 기다리고, 괜찮아지기를 기다리고, 세상 속에서 자기 몫을 해내기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사랑은 어쩌면 대단한 능력이 아니라 끝내 포기하지 않는 힘에 더 가까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책에는 이런 장면도 나온다. 노래를 좋아하는 아이가 작은 독창대회 무대에 올라 엄마만 바라보며 노래를 부르는 순간. 엄마는 눈빛과 고갯짓으로 박자를 맞춰주고, 아이는 그 시선을 따라 끝까지 노래를 불러낸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세상에는 엄마와 딸 둘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는 문장에서는 결국 울컥하고 말았다. 결과보다 더 중요했던 건, 아이가 누군가 앞에서 자기 목소리를 끝까지 내보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엄마 역시 그 순간 처음으로 깨닫는다. 아이가 느리다는 이유로, 너무 아파서, 정작 아이가 빛났던 순간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는 것을! 사람은 아픔만 기억하며 살아가지만, 돌아보면 그 사이에도 분명 작은 행복들이 숨어 있었던 건 아닐까?

이 책은 계속해서 말한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넘어지면 잠시 주저앉아 있어도 된다고.

견디는 것만으로 충분한 날들도 분명 존재한다고 말이다.

그 말들이 더 크게 와닿았던 이유는 이 책이 억지로 희망을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감사하며 살아라” 같은 쉬운 위로 대신, 실제로 무너져 본 사람이 건네는 문장들이라 더 진심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말하는 ‘다정한 어른’이란 결국 이런 사람 아닐까 생각했다.

상처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 아픈 시간을 지나왔기에 타인의 아픔 앞에서 함부로 말하지 않는 사람.

무너지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수없이 흔들렸어도 다시 살아내기로 선택한 사람.

그리고 무엇보다, 괜찮지 않은 날의 자기 자신까지도 미워하지 않을 줄 아는 사람.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작가는 말한다.

삶이 늘 봄일 수는 없다고.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낸다면 메마른 가지 끝에서도 결국 꽃은 피어난다고 말한다.

그 문장을 읽고 나니 이 책 전체가 꼭 하나의 계절처럼 느껴졌다.

긴 겨울을 통과해 마침내 봄을 발견해 가는 이야기로 말이다.

그래서 『다정한 어른이 된다는 것』은 단순한 육아 에세이가 아니다.

삶이라는 거친 계절을 지나고 있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아주 조용하고도 따뜻한 봄의 기록이다.

그리고 지금 긴 겨울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는 누군가에게, 이 책은 분명 이렇게 말해주는 것 같다.

“괜찮아요. 당신은 지금까지도 충분히 잘 살아왔어요.”

ㅡ

'이키다 서평단 '을 통해 '더케이북스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새봄‘, 그 이름은 아이만을 위한 이름이 아니었다. 나를 위한 희망의 메시지이기도 했다.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책임감’이라는 무거운 굴레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설령 큰 어려움은 없더라도 독립하지 못하는 자식을 죽을 때까지 걱정해야 하고, 죽는 순간마저 편히 눈 감을 수 없다. 그런 나에게 ‘새봄’이라는 이름은 ‘죽는 날까지 잘 키워내고야 말겠다‘는 다짐이었고, ’잘 자라게 될 것이다’는 희망 어린 위로였다. "괜찮을 거야, 아무리 두려워도 결국 이겨낼 것이고, 모진 추위에도 기어이 봄은 오고야 말 거야. 그러니, 무너지지 말고 힘내."라는 응원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주식 단타 특공대 - 9시부터 10시까지 딱 1시간, 100만원으로 시작해 수익 내는 법
윤타(윤영준)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주식을 시작하면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큰돈이 있어야 제대로 투자할 수 있는 걸까?”

“하루 종일 차트를 보고 있어야 수익을 낼 수 있을까?”

“직장인도 단타를 할 수 있을까?”

『주식 단타 특공대』는 이런 질문에 꽤 현실적인 답을 주는 책이다.

부제처럼 이 책은 9시부터 10시까지 딱 1시간,

100만원으로 시작해 수익 내는 법을 중심으로 단타 매매의 구조를 알려준다.

단타라고 하면 위험하고 자극적인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이 책은 오히려 무리한 투자를 경계한다. 처음부터 큰돈을 넣으라고 하지 않고, 최대 100만원 정도의 소액으로 시작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돈을 모두 잃는다면 멈추는 것이 낫다고 조언한다.

단타가 나와 맞는지 확인하는 비용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먼저 강조하는 점은 단타가 ‘투자’가 아니라 ‘매매’라는 사실이다.

투자가 시간과 함께 가는 일이라면, 단타는 시간과 싸우는 일에 가깝다.

그래서 저자는 단타를 인생 역전의 쉬운 방법처럼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본업이 탄탄해야 하고, 무리하게 전업을 시작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주린이인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도움을 받았던 부분은 캔들 설명이었다.

차트를 볼 때 양봉과 음봉, 꼬리와 몸통을 단순한 모양으로만 봤는데,

책을 읽으며 캔들이 결국 시장 참여자들의 심리와 힘의 방향을 보여주는 언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타는 감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원칙과 언어와 훈련이 필요한 영역이라는 말이 더 와닿았다.

책의 구성도 실전적이다. MTS와 HTS 세팅법부터 장전 종목을 뽑는 기준, 하락장 종목 선정 매뉴얼까지 알려준다. 9시부터 10시까지 집중 매매 시간에 정규장이 시작되면 무엇을 체크해야 하는지, 지수와 지수 차트를 어떻게 보고, 시장 상황에 따라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하는지도 설명한다.

또 본업이 있거나 일을 하느라 차트를 계속 볼 수 없는 사람을 위한 대응법도 담겨 있다.

하루 종일 모니터 앞에 앉아 있을 수 없는 개인투자자에게 “딱 1시간 집중하고 본업으로 돌아가라”는 방식은 꽤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매매법도 구체적이다. 대장주가 올라가는 것을 확인한 뒤 2등 주를 빠르게 매수하는 ‘쌍쌍법 매매법’, 눌림목 매매인 ‘변비타점’, 돌파매매인 ‘저돌’, 디마크를 활용한 ‘막시무스’ 등이 소개된다. 실제 사례와 함께 설명되어 있어 단순한 이론보다 이해하기 쉬웠다.

이 책에서 특히 좋았던 점은 매매 기법만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타 전용 계좌를 따로 만들고, 스윙·중장기 투자금과 단타 자금을 분리하라고 말한다.

100만원으로 시작했다면 200만원이라는 목표 금액을 달성하기 전까지 추가 입금을 하지 말라는 조언도 인상 깊었다. 100만원으로 수익을 내지 못하는 사람이 1,000만원으로 갑자기 수익을 낼 수는 없다는 말이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후반부에서 가장 강하게 남은 메시지는 ‘리밸런싱’이었다.

수익이 나면 그 돈을 계속 계좌에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일부를 덜어내야 한다.

저자는 복리는 이상이고, 인출은 현실이라고 말한다.

아무리 잘하는 사람도 언젠가는 실패할 수 있기 때문에, 수익금을 덜어내고 현금흐름을 만드는 자산으로 옮기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 책을 읽으며 단타에서 중요한 것은 빠른 손놀림이나 운이 아니라,

결국 자신을 통제하는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익이 났을 때 더 욕심내지 않고 덜어낼 줄 아는 태도,

손실이 났을 때 더 큰돈을 넣지 않고 멈출 줄 아는 태도,

본업을 지키면서 무리하지 않는 태도가 결국 오래 살아남는 힘이 되는 것 같다.

주식은 돈을 버는 기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욕심을 다루는 훈련이기도 하다.

『주식 단타 특공대』는 단타를 쉽게 돈 버는 방법으로 포장하지 않고,

시장에서 오래 버티기 위해 필요한 기준과 태도를 알려주는 책이었다.

그래서 단타를 처음 공부하는 사람뿐 아니라 수익을 내고도 다시 잃는 패턴을 반복했던 사람에게도 도움이 될 만한 책이라고 느껴졌다.

ㅡ

'동양북스 서포터즈 2기‘ 활동을 통해

‘동양북스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주식투자로 자신의 주식투자 그릇이 넘쳐나면 ‘리밸런싱Rebalancing’을 통해서 부동산, 채권, 금, 비트코인과 같은 우상향 자산으로 돈을 옮깁니다. 이때부터 ‘자본소득’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자본소득을 불로소득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자산’을 한 번도 가져보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임대인만 되더라도 임차인과 국가정책, 그리고 세금과의 전쟁입니다.
그리고 세상을 지배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정신노동’을 통해서 부를 쌓아왔습니다.
자본주의가 발달할수록 정신노동 소득과 자본소득으로 인해서 양극화는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
양극화와 빈부격차는 자본주의가 가지는 고유 특성입니다.
같은 종목이라도 누군가는 손해를 볼 수 있고, 누군가는 10억 원 이상의 수익을 볼 수 있습니다.
시장은 불평등으로만 이루어져 있습니다.
돈이 돈을 만드는 시기까지는 고물입의 정신노동을 연속성 있게 해야만 시장에서 살아남아 꾸준히 수익을 낼 수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토지 17 - 박경리 대하소설, 5부 2권
박경리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토지 17』은 해방을 앞둔 시기의 조선 사람들을 다룬다.  

하지만 이 책 속 인물들은 아직 해방이 올 줄 모른다.  

독자는 곧 일본이 패망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작품 속 사람들은 여전히 전쟁과 공출, 징용, 감시와 불안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틴다.  


그래서 이 권은 더 먹먹하게 다가온다.  

끝이 가까워졌다고 해서 고통이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일본의 패망이 가까워질수록 세상은 더 거칠어지고, 사람들의 삶은 더 깊이 흔들린다.


이번 권에서는 친일에 기대어 세력을 얻으려는 사람들, 전쟁 속에서 무너져가는 사람들, 사랑과 조국 사이에서 고통받는 사람들, 그리고 끝까지 마음속 불씨를 지키는 민초들의 모습이 함께 그려진다.  


“말단 말직, 실속 없는 명예직이라도 하나 얻어 걸치고 보면 세력의 판도는 여지없이 뒤집히는 현실”이라는 문장은 당시 사회의 뒤틀린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허울뿐인 자리 하나에도 사람의 태도가 바뀌고, 권력의 끄트머리에라도 매달리려는 모습은 씁쓸하게 다가왔다.  

친일은 거창한 신념이 아니라, 때로는 욕심과 비겁함에서 시작되기도 했다.


환국과 순철의 대화도 오래 남았다.  

“바보처럼 웃고 살자. 광대가 되지 않으면 살 수가 없어.”  

이 말에는 웃음조차 생존의 방법이 되어버린 시대의 슬픔이 담겨 있다.  

진심으로 웃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웃어야 하는 시대.  

그 뒤에는 공포와 허무, 무력감이 가득했다.


전쟁을 바라보는 환국의 시선은 특히 날카롭다.  

그는 일본 군국주의가 만들어낸 집단의 광기를 비판한다.  

모두가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을 단결이라 부르지만, 그 방향이 파괴를 향할 때 그것은 가장 무서운 폭력이 된다.  

“창조 없는 곳에선 파괴뿐이고 사람이 짐승으로 전락하지.”  

이 문장을 읽으며 전쟁이 왜 인간을 망가뜨리는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마음이 빠진 질서는 결국 모두를 무너뜨릴 뿐이다.


이번 권에서 가장 마음이 쓰였던 인물은 홍이였다.  

송관수의 죽음 이후 홍이는 깊은 외로움과 의욕 상실을 느낀다.  

주변 사람들은 흩어지고, 생사조차 알 수 없다.  

만주도 조선도 온전히 그의 자리가 되어주지 못한다.  


그런 홍이가 보연의 금 문제에 얽혀 조선으로 압송되는 과정은 더욱 안타깝다.  

전시하에서는 개인이 금을 소유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국가가 금을 회수하고, 모든 것이 전쟁을 위해 동원되는 시대였다.  

한 사람의 작은 판단도 전쟁이라는 거대한 압박 속에서는 큰 사건이 되어버린다.  

보연의 물정 모름은 결국 홍이의 삶까지 흔들어놓는다.


홍이, 영광, 영호, 휘가 함께하는 장면도 인상 깊었다.  

용이의 아들 홍이, 관수의 아들 영광, 한복의 아들 영호, 강쇠의 아들 휘.  

이들은 서로 다른 삶을 살아왔지만 부모 세대의 상처와 시대의 비극으로 깊이 연결되어 있다.  

『토지』를 읽다 보면 한 사람의 인생은 결코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개인의 삶은 가족의 역사와 이어지고, 가족의 역사는 다시 시대의 역사와 맞물린다.


유인실과 오가타 지로의 만남은 이번 권에서 가장 아프게 남은 장면이었다.  

인실은 일본인 오가타를 사랑했지만, 그 사랑을 마음껏 선택할 수 없는 시대를 살았다.  

그녀에게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었다.  

조선인이라는 정체성, 독립운동가로서의 책임, 일본인을 사랑했다는 죄의식이 모두 뒤엉켜 있었다.


“인실 씨는 사람을 사랑한 것뿐입니다.”  

이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인실은 사람을 사랑했을 뿐인데, 그 사랑은 시대 속에서 배신과 죄책감의 이름으로 돌아왔다.  

사랑조차 자유로울 수 없었던 시대가 얼마나 잔인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오가타 역시 단순히 일본인이라는 이름으로만 볼 수 없는 인물이었다.  

그는 인실을 사랑했지만 조선인에게도, 일본인에게도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그의 절망은 식민지 현실 속에서 개인의 진심이 얼마나 쉽게 짓밟힐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정의라는 이름으로도 사람이 비인간화될 수 있는가.  

작품은 쉽게 답을 주지 않고, 그 질문을 독자에게 남긴다.


환국의 내면도 눈에 들어왔다.  

그는 시대를 날카롭게 바라보고 창조와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지만, 정작 자신의 사랑 앞에서는 망설이고 두려워한다.  

해숙을 향한 연민, 소림과의 엇갈림을 보며 환국 역시 완전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누군가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사랑의 시작일 수 있지만, 그 마음이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하면 결국 또 다른 외로움이 된다.


『토지 17』은 거대한 역사만 보여주지 않는다.  

병든 귀남을 다독이는 말, 김두만을 향한 영팔노인의 분노, 해도사와 연학의 대화처럼 작은 장면들 속에서도 삶의 결이 살아 있다.  

“사람이란 살다 보면 병도 나고 험한 꼴도 보고, 그기이 사는 거 아니겠나.”  

이 투박한 말 한마디가 오히려 큰 위로처럼 다가왔다.  

사는 일은 늘 반듯하지 않고, 때로는 아프고 험하지만 그래도 살아내야 하는 것이라는 뜻처럼 들렸다.


범석의 말은 『토지』라는 제목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겉으로는 조용해 보여도 민중의 마음속에는 꺼지지 않은 불씨가 있다.  

복종하는 듯 보여도 결코 섬기지 않고, 두려워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모멸하는 사람들.  

그들이야말로 조선의 대지이며 생명이라는 말이 깊게 남았다.


『토지』에서 땅은 단순한 재산이 아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터전이고, 빼앗겨도 마음속에서 끝내 놓지 않은 조국이며, 이름 없는 사람들이 지켜낸 생명이다.  

이동진이 떠올린 고향도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척박한 땅이었다.  

그 땅 위에 사람들이 있었기에 산천은 조국이 되고, 조국은 다시 민족의 삶이 된다.


『토지 17』은 아프지만 단단한 권이었다.  

전쟁은 사람의 삶을 동강내고, 권력은 진실을 허구로 덮으려 하며, 시대는 개인의 사랑과 선택마저 짓밟는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사람들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무너지고 흔들리면서도 다시 살아가고, 기억하고, 사랑하고, 분노하고, 버틴다.


이 권을 읽고 나니 결국 삶이란 무엇을 지키며 버티는가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환국은 진실과 창조를 말했고, 송관수는 배고프고 핍박받는 사람이 없는 세상을 꿈꾸었으며, 인실은 사랑과 조국 사이에서 자신을 찢어야 했다.  

홍이는 돌아갈 곳 없는 외로움 속에서도 다시 길을 걸어야 했고, 민초들은 복종하는 듯 보이면서도 마음속 등불을 꺼뜨리지 않았다.


그래서 『토지』는 오래전 역사 속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의 우리에게도 묻는 작품처럼 느껴진다.  

나는 무엇을 믿고 살아가는가.  

내가 딛고 선 땅은 무엇인가.  

흔들리는 시대 속에서도 끝까지 잃지 말아야 할 인간다운 마음은 무엇인가.


ㅡ

#채손독 을 통해 #도서협찬 받았습니다.

@chae_seongmo

@dasanbooks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하야간에 두만이 그놈 멀잖을 기구마. 자식 놈이 그 꼬라진데 무신 장로(장래)가 있을 기고. 말짱 헛공부 시킨 기라. 그 불쌍한 어미를 떠다밀고 논문서를 강탈해가질 않나 삼촌을 들고 패질 않나 하는 짓이란 주색잡기, 살림이 빠질라 카믄 하루아침이다. 세상이 아무리 변했다 캐도 물이 높은 곳으로 흐르는 법은 없인께. 지은 죄가 어디로 가노? 조존구 그놈을 봐라. 최참판댁에서 뺏은 그 많은 재산, 동전 한 푼 건사하지 못하고 알거지가 돼서 버린 자식 집에 기어들어왔다 안 카나? 하기사 그놈이 벌을 받을라 카믄, 어림없제. 멀었다, 멀었고 말고. 개과천선을 해도 그 죄를 못다 갚을 긴데 머라? 자식한테 호통을 치믄서 수발을 받는다꼬? 불로초를 구해오라 하면서 지랄발광을 한다고?" - P8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