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어른이 된다는 것 - 긴 겨울을 지나온 당신에게 건네는 봄의 위로
온벼리 지음 / 더케이북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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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다시 선택할 수 있다 해도

나는 결국, 네가 있는 오늘로 돌아올 것이다.”

책을 읽으며 가장 오래 마음에 남았던 문장이었다.

처음 제목만 보았을 때는 아이를 향한 엄마의 사랑 이야기이거나,

다정함을 잃어버린 어른들에게 필요한 태도를 말하는 책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책장을 넘길수록 이 제목은 훨씬 더 깊은 의미로 다가왔다.

『다정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우며 긴 시간을 견뎌온 엄마의 기록이자,

어린 시절의 외로움과 결혼 후의 흔들림, 부모가 된 뒤의 두려움, 아이의 아픔 앞에서 무너졌던 마음을 다시 바라보는 이야기였다.

작가는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포장하지 않는다.

원망했던 시간, 후회했던 선택, 도망치고 싶었던 순간까지 솔직하게 꺼내놓는다.

그리고 그 모든 시간을 지나온 끝에 삶을 다시 미워하기보다 끌어안는 쪽을 선택한다.

그래서 이 책이 말하는 다정함은 단순히 누군가에게 친절한 사람이 되는 일이 아니었다.

후회와 원망, 무너졌던 시간들을 지나온 뒤에도 자신과 타인,

그리고 주어진 삶을 다시 품어보려는 태도에 가까웠다.

그 마음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은 아이가 아프게 된 뒤,

작가가 몇 번이고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 했던 장면이었다.

그때 그 말을 믿지 않았더라면.

조금 더 늦게 아이를 낳았다면.

다른 선택을 했다면 지금과는 다른 삶이 되지 않았을까?

누구나 감당할 수 없는 고통 앞에서는 과거를 다시 고쳐보고 싶어진다.

나 역시 살아오며 몇 번이나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그날 그런 선택만 하지 않았더라면, 그 사람만 만나지 않았더라면 지금은 달라졌을까 하고 말이다.

그런데 작가는 결국 아주 뭉클한 결론에 도착한다.

만약 삶의 방향이 달라졌다면, 지금의 아이도 자기 곁에 오지 않았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생각이 드는 순간,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보다 아이를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커졌다고 말한다.

그리고 끝내 이렇게 받아들인다.

“네가 오려고 그랬나 보다.”

그 문장을 읽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울컥했다.

삶에는 정말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는 시간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해되지 않아도, 되돌릴 수 없어도, 결국은 품게 되는 시간들 말이다.

왜 나였는지,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끝내 답을 찾지 못해도 어느 순간부터는 이유를 묻기보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존재를 끌어안게 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작가의 문장이 왜 이렇게 깊게 스며드는지 알게 된다.

그녀는 단순히 힘들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을 지나며 자신 안에서 무엇이 무너지고 또 무엇이 다시 살아났는지를 아주 솔직하게 보여준다.

어린 시절, 섬마을에서 뱃일 나간 부모를 기다리며 동생들을 돌봐야 했던 시간,

칭찬 한마디 듣고 싶어서 마당까지 쓸어놓고도 결국 아무 말 없이 지나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울던 아이기도 했다. 그 외로움은 어른이 되어서도 오래 남아 있었다.

사랑받고 싶었지만 안아달라는 말조차 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작가는 사랑받지 못한 기억이 사람 안에 얼마나 깊은 공허함을 남기는지 아주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그런데 좋았던 건, 이 책이 끝까지 누군가를 원망하는 방식으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아이를 키우며 비로소 엄마의 삶을 이해하게 되고, 지쳐서 안아줄 힘조차 없었던 엄마의 마음을 뒤늦게 헤아리게 되는 과정은 읽는 내내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건 결국 나를 풀어주는 일이 아닐까 싶었다.

미워했던 시간을 계속 붙들고 있으면 가장 오래 갇혀 있는 사람도 결국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책 속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새봄’이라는 이름에 담긴 의미였다.

작가는 장애를 가진 아이에게 화려한 이름 대신 희망이 담긴 이름을 지어 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혹독한 겨울 끝에도 결국 봄은 돌아온다는 믿음과 아무리 추운 계절을 지나도 끝내 다시 살아낼 수 있다는 희망을 담고 싶었다.

그래서 ‘새봄’은 단지 아이의 이름이 아니라,

절망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으려는 엄마 자신의 다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모진 겨울 끝에서도 끝내 돌아오는 계절처럼

너는 우리 삶에 다시 찾아온 첫 번째 봄이다.”

이 문장을 읽는데 괜히 눈물이 났다.

삶이 완전히 망가졌다고 느껴질 때조차 누군가는 다시 살아갈 이유가 되어준다는 사실이 너무 따뜻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의 챕터가 계절의 순서를 일부러 바꾸어 놓은 것도 인상적이었다.

보통 우리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순서로 삶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 책은 오히려 긴 여름과 가을, 혹독한 겨울을 지나 마지막에야 봄으로 향한다.

아마 그것이 작가가 말하고 싶은 삶의 순서였던 것 같다.

누군가의 인생에는 봄이 가장 마지막에 찾아오기도 한다는 것.

긴 겨울을 통과한 사람만이 작은 햇살 하나에도 감사하게 된다는 것.

작가는 아이의 병과 장애를 받아들이는 과정 속에서 수없이 무너진다.

신생아 중환자실 유리창 앞에 붙어 아이를 바라보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시간들,

뇌의 일부가 손상되었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세상이 무너지는 듯했던 순간들.

특히 “기다림에도 힘이 필요하다”라는 문장은 오래 남았다.

엄마라는 존재는 결국 끝없는 기다림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아이가 살아나기를 기다리고, 괜찮아지기를 기다리고, 세상 속에서 자기 몫을 해내기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사랑은 어쩌면 대단한 능력이 아니라 끝내 포기하지 않는 힘에 더 가까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책에는 이런 장면도 나온다. 노래를 좋아하는 아이가 작은 독창대회 무대에 올라 엄마만 바라보며 노래를 부르는 순간. 엄마는 눈빛과 고갯짓으로 박자를 맞춰주고, 아이는 그 시선을 따라 끝까지 노래를 불러낸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세상에는 엄마와 딸 둘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는 문장에서는 결국 울컥하고 말았다. 결과보다 더 중요했던 건, 아이가 누군가 앞에서 자기 목소리를 끝까지 내보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엄마 역시 그 순간 처음으로 깨닫는다. 아이가 느리다는 이유로, 너무 아파서, 정작 아이가 빛났던 순간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는 것을! 사람은 아픔만 기억하며 살아가지만, 돌아보면 그 사이에도 분명 작은 행복들이 숨어 있었던 건 아닐까?

이 책은 계속해서 말한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넘어지면 잠시 주저앉아 있어도 된다고.

견디는 것만으로 충분한 날들도 분명 존재한다고 말이다.

그 말들이 더 크게 와닿았던 이유는 이 책이 억지로 희망을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감사하며 살아라” 같은 쉬운 위로 대신, 실제로 무너져 본 사람이 건네는 문장들이라 더 진심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말하는 ‘다정한 어른’이란 결국 이런 사람 아닐까 생각했다.

상처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 아픈 시간을 지나왔기에 타인의 아픔 앞에서 함부로 말하지 않는 사람.

무너지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수없이 흔들렸어도 다시 살아내기로 선택한 사람.

그리고 무엇보다, 괜찮지 않은 날의 자기 자신까지도 미워하지 않을 줄 아는 사람.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작가는 말한다.

삶이 늘 봄일 수는 없다고.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낸다면 메마른 가지 끝에서도 결국 꽃은 피어난다고 말한다.

그 문장을 읽고 나니 이 책 전체가 꼭 하나의 계절처럼 느껴졌다.

긴 겨울을 통과해 마침내 봄을 발견해 가는 이야기로 말이다.

그래서 『다정한 어른이 된다는 것』은 단순한 육아 에세이가 아니다.

삶이라는 거친 계절을 지나고 있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아주 조용하고도 따뜻한 봄의 기록이다.

그리고 지금 긴 겨울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는 누군가에게, 이 책은 분명 이렇게 말해주는 것 같다.

“괜찮아요. 당신은 지금까지도 충분히 잘 살아왔어요.”

'이키다 서평단 '을 통해 '더케이북스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새봄‘, 그 이름은 아이만을 위한 이름이 아니었다. 나를 위한 희망의 메시지이기도 했다.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책임감’이라는 무거운 굴레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설령 큰 어려움은 없더라도 독립하지 못하는 자식을 죽을 때까지 걱정해야 하고, 죽는 순간마저 편히 눈 감을 수 없다. 그런 나에게 ‘새봄’이라는 이름은 ‘죽는 날까지 잘 키워내고야 말겠다‘는 다짐이었고, ’잘 자라게 될 것이다’는 희망 어린 위로였다. "괜찮을 거야, 아무리 두려워도 결국 이겨낼 것이고, 모진 추위에도 기어이 봄은 오고야 말 거야. 그러니, 무너지지 말고 힘내."라는 응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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