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대의 책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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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순간, 독자가 더 이상 독자가 아니게 되는 책이 있다. <나는 그대의 책이다>는 바로 그런 책이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이 작품에서 소설도, 에세이도, 자기계발서도 아닌 독특한 형식을 선택한다. 책은 조용히 읽히는 대상이 아니라, 독자에게 직접 말을 걸고 질문을 던지는 ‘존재’가 된다. 그리고 그 질문은 언제나 하나의 방향을 가리킨다. 지금 이 책을 읽고 있는 ‘그대 자신’에게로.


이 책의 인사말은 분명하다. 좋은 책이란 독자를 다른 인물로 도피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다시 만나게 해주는 거울이다. 이 책은 스스로를 사물에 불과하다고 말하면서도, 사물이 의식을 지닌 존재를 도울 수 있다고 덧붙인다. 종이에 적힌 기호들이 문장이 되고, 그 문장이 독자의 지각을 흔들 수 있다면, 결국 변하는 것은 책이 아니라 독자 자신이며, 그 변화에 따라 세상도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이다.

다만, 이 책은 책임을 대신 지지 않는다. 모험을 제안하는 것은 책이지만, 그 여행을 실현시키는 힘은 오로지 독자에게 있다고 말한다.


『나는 그대의 책이다』는 공기, 흙, 불, 물이라는 네 개의 원소 세계를 따라 진행된다.

각각의 세계는 내면의 상태를 상징하며, 색지와 글자체의 변화까지 포함해 독서 자체를 하나의 체험으로 만든다. 공기의 세계에서는 인간의 본성과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펼쳐진다. 사람들이 함께 모이면 다투기 쉽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그럼에도 언젠가 서로 사이좋게 살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인간의 바탕에는 결국 선량한 무언가가 있다고 믿는다.

이 세계에서 특히 화산 장면은 유독 오래 남는다. 화산의 입구를 ‘입’이라 하고, 그곳에서 쏟아지는 용암을 ‘지구의 피’라 부르는 순간, 풍경이 아닌 살이 있는 존재로 인식하게 한다. 특히 ‘피’라는 단어가 붙자 용암은 장엄함이 아니라 경고 신호가 된다. 지금 심각하다, 더는 버티기 어렵다는 말을 붉은 이미지로 눈앞에 들이미는 듯하다. 책은 길게 설명하지 않고, 지구가 피를 토하는 장면 하나로 우리가 만든 균열과 고통을 몸으로 먼저 알아차리게 만든다.


공기의 세계는 또한 정신의 비행을 둘러싼 오해를 짚는다. 마약, 종교적 고행, 기술적 환각처럼 값비싼 대가를 요구하는 수단들은 결국 도피에 가깝다고 말한다. 책이 제안하는 대안은 의외로 단순하다. 아무 대가를 치르지 않고도 상상력만으로 충분히 날 수 있다는 것. 책은 독자가 도움을 원할 때만 도움을 줄 수 있으며, 진짜 변화는 외부 자극이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한다.


흙의 세계로 들어서면 시선은 보다 안정된 내부로 향한다. 이곳에서 책은 내밀한 안식처를 이야기한다. 정신 속에만 존재하지만 그 어느 곳보다 안전한 장소, 언제든 돌아가 힘을 회복할 수 있는 공간이다.

또한 정신세계의 서재를 정돈하듯 생각과 감정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가장 핵심적인 개념은 ‘개인적인 상징’이다. 인간에게는 육체의 오감뿐 아니라 감정, 상상력, 직관, 의식, 영감이라는 정신의 오감이 있으며, 상징은 그것들을 조율해준다. 이를 통해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직관을 신뢰하며, 자기 생각의 주인이 되는 상태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한다.


불의 세계는 고통과 투쟁의 영역이다. 체제와의 싸움, 질병과의 싸움, 불운과의 싸움,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이어진다. 이 책이 특별한 점은 언제나 이기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진정한 전사는 질 줄도 알아야 하며, 실패와 불운은 삶을 발전시키는 요소 중 하나일 뿐이라고 말한다. 때로는 공격보다 후퇴가, 섬멸보다 보존이 필요한 순간도 있다는 현실적인 조언이 담겨 있다.

마지막 물의 세계는 회복과 휴식의 시간이다. 돌고래가 깨어 있으면서도 동시에 꿈을 꾸듯, 인간 역시 현실에 있으면서 꿈의 세계를 여행할 수 있다는 은유는 독서 경험 그 자체를 설명한다. 책을 읽는 동안 우리는 현실에 있으면서도 내면의 깊은 곳을 여행한다. 이 세계의 끝에서 책은 사랑에 대해 말한다. 사랑은 소유가 아니며, 가장 훌륭한 증거는 자유를 주는 것이라고. 오는 사람을 막지 않고, 가는 사람을 붙잡지 않는 태도야말로 성숙한 관계라는 메시지다.


『나는 그대의 책이다』는 답을 주는 책이 아니다. 대신 질문을 남기고, 고요한 시간을 건네며, 독자가 자기 삶을 다시 써 내려가도록 이끈다. 독서를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자기 인식의 과정으로 되돌려 놓는 책이다. 이 책은 내 삶이라는 책에 지금 어떤 문장이 쓰이고 있는지, 그리고 그 문장을 고쳐 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끝내 생각하게 만든다. 그 책임은 언제나, 독자 자신에게 있다.



'열린책들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저것이 바로 화산이다.
저 뜨겁고 불그스레한 용암을 통해서
가이아 여신. 즉 지구의 피를 느껴 보라.
그대의 행성은 살아 있고,
마그마로 된 피가 끓고 있다.
원한다면 더 가까이 다가가도 된다.
이 화산이 거대한 입처럼 보이지 않는가?
그 입을 통해서 지구가 그대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
지구가 장중한 연속음을 발하고 있는데,
그대는 알아듣지 못하는가 보다.
너무 낮고 미묘한 소리라서
아무래도 그대가 이해하기는 어렵지 싶다.
그대 행성과의 이 첫번째 만남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셈이다.
하지만, 첫 만남부터 모든 걸 다 이해하게 되리라고
기대했던 건 아니지 않은가?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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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를 철학하다 - 삶은 어떻게 글이 되고, 글은 어떻게 철학이 되는가
이남훈 지음 / 지음미디어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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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평 먼저]

글쓰기와 관련 된 책 중 밀도가 높은, 기존의 생각을 뒤집는 그런 책 같다.

개인적으로 너무 도움이 되는 책이었고, 글쓰기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무조건 한번 이상은 읽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다. 추천한다~!

[본문 리뷰]

글을 읽다 보니 어떤 문장에서 정말 머리를 한 대 크게 얻어맞은 듯 멈춰 서게 됐다.

“글쓰기는 나의 머리에 담겨 있는 생각의 조각들을 한 움큼 푹 덜어내서

종이 위에 멋있게 플레이팅하는 작업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예전에 내가 글쓰기를 얼마나 가볍게 생각했는지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초반에는 ‘글이야 그냥 쓰면 되지’라고 쉽게 말하곤 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건 자신감이라기보다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가능했던 객기에 가까웠다.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글을 쓰는 행위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의 말처럼 글쓰기는 특정 사안을 두고 끊임없이 해석하는 과정이며, 그중에서도 독자가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의미 있는 해석을 골라내는 일이다. 결국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은 자신을 ‘무한한 해석의 바다’에 풀어놓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 오래 남는다. 편하게 쓰려는 습관을 내려놓고, 익숙한 결론에 기대지 않겠다는 결심이야말로 이 책이 독자에게 처음으로 요구하는 태도처럼 느껴졌다.


이남훈 저자는 글쓰기의 어려움을 기술 부족으로 돌리지 않는다. 오히려 글의 방향을 결정하는 건 철학이라고 말한다. 철학이 있는 글은 쓰는 중간에 길을 잃어도 다시 돌아올 수 있지만, 철학이 없는 글은 문장만 매끈할 뿐 마음에 오래 남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은 ‘잘 쓰는 법’을 가르치기 전에 ‘왜 쓰는가’를 먼저 묻는다.

저자가 한때 글쓰기를 ‘전쟁터의 북소리’라고 정의했던 대목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삶이 전쟁터라면 글은 단지 예쁘게 포장된 문장이 아니라 사람의 심장을 울리고 전투력을 끌어올리는 ‘북소리’여야 한다는 믿음이다. 힘없이 처진 어깨를 다시 세우게 하고, 좌절한 사람에게도 희망을 건네 결국 다시 뛰게 만드는 힘이다. 그래서 그런 글에는 화려한 미사여구나 감성적인 장식이 끼어들 틈이 없다. 결론을 빙빙 돌려서 말할 이유도 없고, 독자의 고민을 향해 주저 없이 직진해야 한다.


이 철학이 자리 잡자 저자의 문장 역시 자연스럽게 달라졌다고 한다.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핵심으로 곧장 들어가는 방식으로. 그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나 역시 비슷한 장면들이 떠올랐다. 문장을 예쁘게 만들겠다는 마음이 앞설수록 정작 전달해야 할 메시지는 흐려지고, 글의 본질은 뒤로 밀려나곤 했다. 결국 글의 힘은 무엇을 살리고 무엇을 덜어낼지 끝까지 선택하는 결심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책의 중반부에서 가장 강하게 남는 문장은 당신의 글쓰기는 당신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말이었다. 창의적인 삶을 살아본 적이 없는데 창의적인 글을 쓰고 싶고, 상식을 의심해 본 적이 없는데 도발적인 문장을 쓰고 싶어 하는 욕심을 저자는 단호하게 끊어낸다. 그래서 제시되는 방법이 ‘자기 파괴’다. 낡은 자신을 부수지 않으면 새로운 생각은 들어올 자리가 없다는 말을 전한다. 낯선 공간에 몸을 던지고,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의 세계관 안으로 들어가 보고, 혼란을 견디는 과정 속에서 사고는 확장된다. 글이 막힐 때 필요한 건 더 많은 표현 기술이 아니라 더 넓은 삶의 반경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어지는 ‘해석’의 장은 글쓰기의 본질을 다시 짚는다. 글은 생각을 옮기는 일이 아니라 해석을 선택하는 일이다. 단일한 진리에 매달리는 순간 글은 진부해지고, 세계의 복잡성을 담지 못한다. 그래서 저자는 정반대의 입장에서 글을 써 보는 훈련을 권한다. 스스로의 신념을 잠시 내려놓고 다른 논리를 끝까지 따라가 보는 경험은 불편하지만, 그 불편함이 사고를 유연하게 만든다. 다만 해석이 다양하다고 해서 제멋대로해서는 안된다. 독자에게 실제로 도움이 될 가치 있는 해석만이 글로 남을 수 있다는 점을 저자는 분명히 한다. 이 부분을 읽으며 좋은 글이란 결국 정답을 강요하는 글이 아니라 독자의 사고를 넓혀 주는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반부에서 다루는 ‘전제’의 이야기는 특히 오래 남는다. 긍정과 행복을 만능 열쇠처럼 사용하는 글쓰기의 위험성에 대한 지적이다. 모두가 동의하기 쉬운 전제에 기대면 글은 편해지지만 결론은 얕아진다.

삶에는 자연스러운 우울과 침잠이 함께 존재하고, 그것을 지운 채 쓰인 위로는 어딘가 부자연스럽다.

저자는 자신의 세계관 바닥에 깔린 대전제를 점검하라고 말한다. 그 전제가 바뀌는 순간, 글의 관점과 말하는 방식도 함께 달라진다. 결국 글쓰기란 문장을 다듬는 일이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틀을 계속 재조정하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이 장이 또 한 번 확인시켜 준다.


마지막 ‘저항’의 장에서는 글은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라고 이야기한다. 상식과 집단의 흐름에 무비판적으로 순응하지 않고, 처음 떠오르는 쉬운 생각을 한 번 더 의심하는 태도를 가지라고 말한다.

집단 지성이 언제든 집단 착각으로 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끊임없이 경계해야 한다. 카프카의 말처럼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여야 한다는 믿음은 이 책을 관통하는 문장처럼 느껴진다. 글은 누군가를 흔들기 전에 먼저 작가 자신을 흔드는 작업이며 그 불편함을 통과할 때 비로소 새로운 문장이 나온다.


결국 『글쓰기를 철학하다』가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글을 잘 쓰는 길은 예뻐 보이는, 있어 보이는 미사여구를 덧붙이는 일이 아니라, 나를 확장하고 다시 세우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저자가 말하듯 글은 누군가를 각성시키기 위해 먼저 나 자신이 깨어 있는 상태에서 시작하고, “당신의 글쓰기는 당신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한계를 인정한 뒤, 낡은 자신을 부수고 재구축하는 훈련으로 나아간다. 그 과정에서 글쓰기는 생각을 건져 올리는 일이 아니라 해석의 바다에서 의미 있는 해석을 선택해 배치하는 일이 되고, 나도 모르게 굳어진 대전제—예컨대 긍정과 행복 같은 만능 전제—를 점검하며, 상식과 무리에 휩쓸리지 않으려는 저항의 태도까지 요구한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면 “어떻게 써야 하지?”보다 “나는 어떤 전제로 세상을 보고 있지?”라는 질문이 먼저 떠오른다. 글이 흔들릴 때마다 돌아갈 기준은 문장 기술이 아니라, 끝내 놓치지 말아야 할 글쓰기의 철학이라는 사실이다. 바로 그 점이 이 책이 독자에게 남기는 가장 큰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럽맹서평단 @luvv_mang’을 통해

'지음미디어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세월이 흐르면서 단일한 해석과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작가에게는 독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만약 하나의 신념을 너무 완고하게 믿고 지켜나가게 되면, 그 사람의 글은 천편일률적인 해석의 틀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된다. 그러면 세상의 다양한 현상이 오히려 작가의 해석에 끼워 맞춰지고, 결과적으로 사물이나 현상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본질을 다채롭게 서술할 수가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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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기반 뼈 때리는 팩폭, 돈의 인문학
조던 김장섭 지음 / 트러스트북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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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등 미국 기업에 투자하자”

“돈은 찍어낼 수 있지만, 일자리는 그렇지 않다”

『돈의 인문학』을 읽으며 가장 인상적으로 읽었던 부분이라 공유해볼까 한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미국이 왜 이렇게까지 돈을 풀까’라는 질문을 단순히 인플레이션이나 금융정책의 문제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13장 〈일자리 빼앗아 오는 나라에 투자해야 하는 이유〉를 읽으면서 관점이 완전히 바뀌었다. 저자가 말하는 핵심은 명확했다. 미국이 노리는 것은 돈의 가치가 아니라, 자국 내 일자리라는 것이다.

책에서는 미국의 반도체 정책, 특히 칩스법IRA법을 예로 들며 이 흐름을 설명한다. 겉으로 보면 중국 견제, 기술 패권 경쟁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인 목적은 세계 최상위 기업들의 공장과 고용을 미국 땅으로 끌어오는 것이다. 반도체 회사들에게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주는 이유도 결국 미국 내에서 생산하고, 미국 사람을 고용하게 만들기 위함이라는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특히 인상 깊었던 대목은 “달러는 연준이 찍어내면 되지만, 일자리는 그렇지 않다”는 논지였다. 돈을 과도하게 풀면 화폐의 신뢰가 무너질 수 있지만, 미국은 단순히 돈만 푸는 것이 아니라 돈이 실물 경제와 연결되도록 설계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장을 세우고, 생산을 하고, 사람이 일하게 만들면서 달러의 위상을 오히려 더 강화하고 있다는 분석은 단순한 투자 이야기를 넘어 경제 구조 전체를 이해하게 만든다.

책은 여기서 과거 사례를 끌어온다. 1970년대 오일 쇼크 이후 일본 자동차가 미국 시장을 빠르게 잠식했을 때, 미국은 관세를 때리기보다는 수출 자율규제라는 방식을 택했다. 일본은 적은 물량으로 더 많은 이익을 남기기 위해 고급차 전략을 선택했고, 그 결과가 렉서스였다. 이후 혼다는 아예 미국 현지에 공장을 세웠고, 결국 일본 자동차 기업들은 미국 내 일자리를 창출하는 존재가 되었다. 규제는 사라졌지만, 일자리는 미국에 남았다.

이 흐름 속에서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일본의 물량 제한 틈을 타 현대차가 미국에 진출했고, 반도체 산업에서도 비슷한 구조가 반복됐다. 책에서는 마이크론과 삼성전자의 관계를 예로 들며, 경쟁과 공존 속에서 산업 생태계가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설명한다. 단순한 기업 서열이나 점유율 문제가 아니라, 누가 어떤 위치에서 어떤 역할을 맡느냐가 중요하다는 메시지가 분명하게 전달된다.

이 장의 결론은 GDP와 GNP의 차이로 이어진다. 과거에는 한 나라 국민이 어디에서 돈을 벌든 상관없이 GNP가 중요했지만, 지금은 국내에서 얼마나 많은 일자리가 만들어지느냐가 핵심이 되었다는 것이다. 외국에서 돈을 벌어 쓰는 것보다, 국내에 공장을 세워 고용을 창출하는 것이 훨씬 중요해졌다는 설명은 지금의 미국 정책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힌트를 준다.

그래서 저자는 단호하게 말한다. 이제 미국은 단순히 달러로 상품을 사는 나라가 아니라, 글로벌 기업의 일자리까지 흡수하는 나라가 되었다고. 그리고 투자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결국 일자리가 늘어나는 나라에 투자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이 말은 미국 주식이나 자산을 무조건 사라는 의미가 아니라, 돈이 어디로 흐르고 어떤 나라가 실물과 고용을 장악하고 있는지를 보라는 조언처럼 들렸다.

이 책을 덮으면서 느낀 건, 『돈의 인문학』이 단순히 “미국에 투자하라”고 말하는 책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책은 돈이 움직이는 이유, 정책이 만들어지는 배경, 그리고 그 모든 선택의 중심에 있는 ‘일자리’를 끝까지 놓치지 않는다. 그래서 숫자를 쫓기보다 구조를 이해하게 만들고, 단기 수익보다 장기 흐름을 보게 만든다.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채손독)을 통해‘

'트러스트북스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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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대한민국, 중국 등은 남을 따라하는 전략을 쓴다. 인건비가 낮은 나라에서 베끼기를 통해 선진국의 기술을 훔쳐오거나 도입해 격차를 좁히는 전략이지 새로운 기술을 창조하는 전략은 아니란 얘기다.
19세기에 이미 열강 반열에 올랐고, 1980년대 미국을 따라잡겠다던 ‘경제동물’ 일본이 20세기 들어와 인률르 발전시킨 발명품이 하나라도 있었가" 일본의 발명품으로 알고 있던 워크맨도 사실은 독일 과학자가 만든 것을 베낀 것에 불과하다. 이미 만들어진 과학 기술을 융합해 개선은 잘해도 창조를 한 적은 없었다. 대한민국이나 중국 또한 마찬가지다. 20세기 문든 과학시술은 서양에서 나왔다. -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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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3 - 박경리 대하소설, 4부 1권
박경리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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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3권』은 4부 1편은 1929년 조선. 3·1운동 이후 품었던 희망이 현실의 쓰라림과 체념으로 기울어가던 무렵이다. 원산 총파업과 광주학생항일운동 같은 움직임이 다시 일어났다는 사실은 분명 굵직한 역사이지만,

이 권에서 더 오래 남는 건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안의 사람이야기다.


이 책은 도입부부터 분노를 건드리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조선인은 게으르다”, “조선에는 웬 거지가 이리 많으냐” 같은 말이 아무렇지 않게 흘러나오는 장면은, 무례한 개인의 발언을 넘어 약탈과 착취로 만들어진 결과를 조선인에게 책임지우는 식민 권력의 논리처럼 느껴졌다.

더 화가 나는 건, 그들의 폭력은 늘 ‘정당한 조치’처럼 포장되고, 그 결과로 생기는 피해는 조선인에게 고스란히 전가되는 분위기다. 그런 공기 속에서 강쇠는 길에서 시비가 붙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상대가 일본인이라는 사실 하나 때문에 가해자로 둔갑해 유치장에 갇힌다.

이런 부당함이 반복될수록 사람은 점점 말을 잃는다. 억울함을 설명할수록 더 불리해지는 세계에서, 분노는 밖으로 터지지 못하고 안쪽으로 쌓여 마음을 곪게 만든다.


13권이 인상적인 건 주요 인물뿐 아니라 스쳐 지나가는 작은 인물에게도 각자의 서사를 붙여,

식민지 조선인의 삶을 다각도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살인자의 자식이라는 꼬리표를 달고도 고향을 떠나지 못한 채 멸시를 견디던 한복이,

학생운동으로 잡혀간 아들 때문에 영웅의 아비라는 이름을 얻는 아이러니.

가진 것이 무거워 죄의식을 느끼는 환국,

나라를 위해 뭔가 해야 한다는 조급함 속에서 방황하는 윤국,

평생 되찾아온 최참판댁의 집과 재산이 아들들이 원하지 않는다는 걸 직감하며 마음이 흔들리는 서희.

여기에 종교를 붙들고도 한계를 실감하는 전도부인 여옥,

일본인으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 살고 싶어 하는 오가타 지로,

그를 사랑하면서도 일본인과 결혼할 순 없다며 스스로를 끝까지 조선인으로 세우는 인실

ㅡ 같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삶의 온도는 다르지만,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시대가 만들어 놓은 한계와 부딪치며 살아간다.


그중에서도 환국의 내면은 13권이 던지는 질문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는 자신을 “남보다 더 가졌기 때문에 죄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고백은 단순히 ‘특권층의 반성’으로만 정리되지 않는다. 환국이 느끼는 감정은 부유함에서 오는 여유보다,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다는 고립감에 더 가깝다. 우월감을 누리기보다는 소외감을 더 많이 느꼈다는 말 속에는, 특권이 삶을 편하게 만들면서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오히려 벌려 놓는 역설이 담겨 있다. 그래서 읽는 나는 자연스럽게 질문하게 된다.

죄의식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출발점일까? 아니면 스스로를 갉아먹는 감정일까?

『토지』는 이 질문에 쉽게 결론내리지 않는다. 환국이 죄의식 때문에 더 단단해지는지, 혹은 더 약해지는지 판단을 독자에게 남겨 둔 채, 그의 흔들림과 고민을 끝까지 따라가게 만든다.


토지가 불편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이쯤에서 또렷해진다. 이 소설은 선과 악을 “강자는 악, 약자는 선”처럼 간단한 구도로 정리해주지 않는다. 그런 도식은 읽는 사람에게 빠른 판단과 편안함을 주지만, 『토지』는 그 편안함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13권에서 환국과 장서방 등이 주고받는 대화에는 이런 질문이 깔려 있다. 힘을 가진 쪽이 언제나 악한가, 반대로 약한 쪽이 언제나 정의로운가. 소설은 ‘빼앗고 빼앗기는’ 관계에서는 강자가 악처럼 보이지만, ‘이룩하고 다스리는’ 과정에서는 책임을 지고 질서를 세우는 강자가 선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반대로 약자라고 해서 모두 선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노력에 기대어 기생하거나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태도는 악이 될 수 있다고도 한다.

이 대목이 불편한 건, 우리가 흔히 쓰는 판단의 프레임을 흔들기 때문이다. 정의감이 강할수록 세상을 단순하게 나누고 싶어진다. 그런데 『토지』는 “누가 강자냐, 누가 약자냐”가 아니라, 무엇이 사람을 살리고 공동체를 세우는가, 무엇이 사람을 소모시키고 공동체를 망가뜨리는가를 기준으로 다시 보라고 요구한다. 읽는 동안 마음이 자꾸 불편해지는데, 그 불편함이 오히려 내가 가진 판단의 틀을 점검하게 만든다.

여옥의 고백을 따라가면, 이 질문은 종교의 문제를 넘어 공동체 전체의 문제로 넓어진다.

여옥은 전도부인으로서 ‘봉사’와 ‘희생’이 진심이라 믿고 달려왔지만, 현실에서는 교회가 순수한 믿음의 자리로만 남지 않는 장면들을 목격한다. 사람이 모이고 조직이 커지면서, 신앙은 어느새 계층과 체면을 확인하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같은 ‘좋은 말’을 입에 올리더라도, 누군가는 그 말을 삶의 기준으로 삼아 행동하고, 누군가는 말로만 체면을 세운 채 아무 일도 바꾸지 않는다.

그래서 여옥의 고백은 단순한 신앙의 회의가 아니라, 이런 질문으로 이어진다.

공동체 안에서 ‘옳은 말’이 힘을 가질수록, 우리는 더 냉정하게 물어야 한다.

그 말은 사람을 살리고 있는가? 아니면 보기 좋게 포장하고 있을 뿐인가?

『토지』는 이 문제를 ‘교회’라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여주지만,

읽고 나면 자연스럽게 우리 주변의 조직과 관계로 확대된다.

학교든 회사든 모임이든, 말이 화려해질수록 더 중요해지는 건 그 말이 실제로 사람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말 아래에서 누가 소외되고 있는지를 살피는 일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가장 오래 시선을 붙잡은 건 길상과 용이었다.

길상은 이 권에서 직접 등장하는 분량이 거의 없는데도, 그의 ‘부재’가 사람들의 선택과 마음을 계속 움직인다.

존재감이란 행동의 총합이 아니라, 타인의 삶에 남기는 방향성으로 결정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반대로 용은 영웅도 지도자도 아니다. 그저 농사짓고 가정을 지키고 이웃을 돕는 평범한 사람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의 삶이 남겨진 사람들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는 것 같다.

거대한 정의의 언어보다, 도리를 지키는 매일의 반복이 더 현실적인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용을 통해 조용히 보여준다. 사회를 버티게 하는 건 때때로 거창한 결단이 아니라, 작은 약속과 반복된 책임이라는 사실이다.


서희의 변화는 시간이 사람을 어떻게 바뀌는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모습이다.

젊은 날의 서희가 투쟁과 집념으로 버텼다면,

이 권의 서희는 장성한 아들들 앞에서 더 이상 예전처럼 모든 것을 붙잡아 둘 수 없다는 현실을 마주한다.

아들들이 각자의 길로 멀어질수록, 어미로서의 외로움은 더 또렷해진다.


최참판댁의 집과 땅은 서희에게 삶의 뿌리이자 기억이 쌓인 자리다.

하지만 동시에, 지키기 위해 끝없이 마음을 소모해야 하는 짐이 되기도 한다.

무엇인가를 손에 넣는다는 건 그만큼 잃을 가능성도 함께 떠안는 일이라는 사실을,

서희는 점점 더 선명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소유는 흔히 안정이라고 믿고 싶다.

그러나 『토지』는 소유가 때로는 책임이 되고, 어떤 순간에는 상실로 이어지는 길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무엇을 지키기 위해 소유했는지, 또 무엇을 소유했기 때문에 잃게 되는지—서희가 흔들리는 장면들은 그 역설을 과장하지 않고 담담하게 드러낸다.


『토지 13권』은 사건보다 사람들의 삶을 통해 시대를 보여준다.

강쇠의 억울함, 환국의 흔들림, 용의 성실함처럼 이름 없는 사람들의 작은 삶이 겹겹이 쌓여 비로소 한 시대의 진짜 모습이 만들어진다. 결국 이 소설은 역사를 만든 힘이 사건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끝까지 살아내려는 인간의 선택과 책임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채손독 을 통해 #도서협찬 받았습니다.

@chae_seongmo

@dasanbooks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사람들은 복락을 얻기 위하여 산다. 하지만 인간이 인간인 한에서는 복락은 축복이 아니다. 개인이나 민족을 막론하고 간악한 곳에 복락이 있었으니 말이야. 어찌하여 악한 자가 복락을 누리며 착한 자가 바람 부는 벌판에서 울어야 하는가, 참 많은 사람들이 내게 던진 질문이었다. 내가 나에게 던진 질문이기도 했어. 과연 하나님은 계신가. 옛날 오선권이 내 가슴에 비수를 꽂아놓고 갔을 때 밤마다 하나님은 계신가 하고 울부짖었다. 잃은 사랑 때문에 아니었어. 하나님은 계신가, 그것은 진실이 있는가 영혼이 있는가 그 물음이었다." - P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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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는 외롭고 함께는 괴로운 당신에게 - 외로움과 우정, 사이의 철학
엄성우 지음 / 21세기북스 / 2025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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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는 외롭고 함께는 괴로운 당신에게』를 읽는 동안 가장 자주 떠올랐던 생각은 “이 책은 외로움을 쉽게 다루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외로움을 느끼면 대개 빨리 벗어나고 싶어 한다. 누군가를 만나고, 관계를 늘리고, 혼자 있는 시간을 줄이면 이 감정도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라 기대한다. 하지만 이 책은 그 기대가 왜 자주 실패하는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하게 알려준다. 외로움은 단순히 혼자 있기 때문에 생기는 감정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도 얼마든지 깊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여러 각도에서 보여준다.


들어가는 말에서 저자가 제시하는 “고립과 연결, 혼자와 함께 사이의 균형”이라는 문장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처럼 느껴졌다. 홀로 있는 시간을 견디는 힘과, 타인과 건강한 관계를 맺는 능력은 서로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길러야 할 감각이라는 주장이다. 이 문장을 읽으며 외로움을 느끼는 순간마다 관계 쪽으로만 해답을 찾으려 했던 나 자신의 태도를 돌아보게 되었다. 혼자 있는 상태를 무조건 결핍으로만 인식해왔던 것은 아닐까 하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1부 「나는 내가 왜 외로운지 몰랐다」에서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보다 명확하게 정의하는 작업이 이루어진다. 특히 ‘외로움이라는 착각’이라는 장은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부분 중 하나였다. 누군가와 함께 산다고 해서 외로움이 저절로 해소되지는 않으며, 오히려 관계의 질에 따라 혼자 있을 때보다 더 외로워질 수도 있다는 설명은 경험적으로도 쉽게 공감할 수 있었다. 외로움을 물리적인 고립 상태가 아니라 ‘함께함의 부재를 자각할 때 생기는 감정’이라고 하는 이 책의 글에서 내가 느껴왔던 막연한 허전함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저자는 실존적 외로움과 관계적 외로움을 구분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안고 살아가는 근원적인 고독과 달리, 관계적 외로움은 바람직한 관계가 부재할 때 생기는 감정이라는 설명은 외로움을 지나치게 개인의 성격 문제로 생각하지 않게 해준다. 특히 외로움이 분노나 공포처럼 즉각적으로 드러나는 감정이 아니라 서서히 스며드는 감각이기 때문에 스스로 인지하기 어렵다는 부분은, 외로움을 느끼면서도 그것이 외로움인지조차 몰랐던 순간들을 떠올리게 했다. 이 책은 단순히 외로움의 느낌을 줄이려 애쓰기보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고 말한다.

‘누구나 외로움을 안고 태어난다’ 부분에서는 인간이 사회성과 개별성을 동시에 지닌 존재라는 점을 강조한다. 관계는 본질적으로 시간과 불편함을 필요로 하지만, 우리는 점점 즉각적인 만족과 효율성을 중시하며 관계마저 인스턴트처럼 소비하고 있다는 지적이 인상 깊었다. 관계가 깊어지기까지 필요한 과정은 줄이고, 친밀감의 결과만 빠르게 얻으려는 태도가 오히려 외로움을 키운다는 설명은 지금의 인간관계를 돌아보게 만든다.


2부 「외로움을 해소하는 친밀한 관계에 대하여」에서는 관계가 외로움을 완전히 없애줄 수는 없지만, 어떻게 하면 외로움을 덜어주는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특히 ‘나와 남의 경계가 옅어질 때 얻는 것들’에서 제시되는 관점은 이 책을 읽으며 오래 남았다. 저자는 삶의 의미가 완전한 자급자족 상태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의미 있게 해주는 과정에서 생겨난다고 말한다. 서로가 서로의 의미가 되어줄 때, 홀로 있을 때는 느끼기 어려웠던 삶의 방향성이 생긴다는 설명은 관계를 부담이 아닌 가능성으로 다시 보게 만든다.

이 책에서 우정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특히 “괜찮아, 그대로도 충분해”라는 한 마디가 주는 힘에 대한 설명은 깊은 여운을 남겼다. 가까운 사람과 우정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외로움은 크게 덜어질 수 있으며,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어도 정서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이 얼마나 큰 안정감을 주는지를 저자는 반복해서 강조한다. 결국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봐주고 인정해줄 단 한 사람만 있어도 다시 세상 앞에 설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은 담담하게 보여준다.


3부 「나와 너, 사이의 철학」에서는 관계를 대하는 태도에 대한 보다 깊은 성찰이 이어진다. 특히 우정의 가치를 ‘노리는 것’과 ‘누리는 것’을 구분하는 대목은 관계를 맺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혹은 필요할 때 도움을 받기 위해 관계를 맺는 순간 이미 다른 목적이 앞서게 된다는 지적은 불편하지만 중요하다. 이 책은 관계가 어떤 결핍을 채우기 위한 수단이 될 때, 그 관계가 얼마나 쉽게 왜곡될 수 있는지를 조용히 보여준다.

‘좋은 사이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장에서는 우정의 덕목으로 특수성, 특별성, 의존성이 제시된다. 같은 사람이 누구에게는 좋은 친구일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설명은 관계를 획일적인 기준으로 평가하려는 태도를 경계하게 만든다. 또한 나쁜 친구의 다양한 유형을 소개하는 부분에서는 타인을 가려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나에게는 이런 모습이 없을까’라는 물음은 이 책이 관계를 다루는 방식이 얼마나 자기성찰 중심적인지를 잘 보여준다.


4부에서는 우정을 삶에 채우기 위해 필요한 태도와 실천이 보다 구체적으로 다뤄진다. 특히 자기공개에 대한 설명이 인상 깊었다. 깊은 우정을 위해 필요한 자기공개는 아무에게나 자신의 모든 정보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쉽게 드러내지 않는 내밀한 부분을 자발적으로 나누는 행위라는 점이 강조된다. 이는 상대에 대한 신뢰이자, 관계를 향한 용기라는 설명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우정은 완벽한 모습으로 존경받는 관계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들여지는 경험 속에서 자란다는 문장은 이 책이 지향하는 관계의 방향을 잘 드러낸다.

『혼자는 외롭고 함께는 괴로운 당신에게』는 인간관계를 쉽게 만들어주는 책은 아니다. 대신 외로움과 관계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정직하게 점검하게 만든다. 혼자 있음과 함께함 사이에서 어느 한쪽을 선택하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다만 그 사이에서 균형을 배우는 일이 왜 중요한지를 끝까지 일관된 시선으로 보여준다. 관계로 인해 지쳐 있거나, 외로움을 느끼면서도 그 이유를 정확히 설명하지 못했던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보다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21세기북스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가까운 사람과 우정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외로움은 크게 덜어진다.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어도 든든함을 주는 존재, 그것이 친구이며 우정은 외로움을 치유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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