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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부를 전하며 - 헤르만 헤세 x 빈센트 반 고흐 ㅣ 세계문화전집 1
헤르만 헤세.빈센트 반 고흐 지음, 홍선기 옮김 / 모티브 / 2026년 4월
평점 :

『세계문화전집 1 『안부를 전하며』』를 읽으면서 처음 든 생각은,
왜 하필 헤르만 헤세와 빈센트 반 고흐였을까 하는 것이었다.
한 사람은 글로 유명한 작가이고, 한 사람은 그림으로 뒤늦게 발견된 화가다.
살아 있는 동안 받은 인정도, 세상과 맺은 관계도, 남긴 흔적의 방식도 달랐다.
그런데 이 책은 그 둘을 한 권 안에 나란히 세워둔다.
읽다 보니 헤세와 고흐를 왜 한 권 안에 묶었는지 알 것 같았다.
이 책은 비슷한 고통을 지나온 두 사람이 어떻게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삶을 견뎌냈는지를 보여준다.
헤세는 문장과 편지로 사람들에게 다가가며 세상과 연결되려 했고,
고흐는 색과 그림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 자기 안의 외로움을 버텨냈다.
둘 다 끊임없이 안부를 전했지만, 그 안부가 향한 방향은 달랐다.
그래서 이 책에서 말하는 안부는, 힘든 순간에도 끝내 세상과 완전히 끊어지지 않으려는 마음처럼 느껴졌다.
헤세와 고흐는 의외로 닮은 점이 많았다.
둘 다 신학자의 아들이었고, 아버지와 가문이 기대한 길에서 벗어났다.
둘 다 정신적으로 깊은 위기를 겪었고,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한 시간도 있었다.
헤세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자원입대했지만 심한 근시로 전투 부적합 판정을 받고 전쟁 포로 복지 활동에 배치되었다.
그곳에서 전쟁의 참혹함을 마주한 그는 전쟁의 광기를 비판하는 글을 발표했고,
이후 독일 언론과 독자들에게 배신자처럼 낙인찍혔다.
친구들은 등을 돌렸고, 서점은 그의 책을 거부했으며, 원고도 외면당했다.
그 시기의 헤세에게는 개인적인 불행도 한꺼번에 밀려왔다.
1916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막내아들 마르틴은 중병에 걸렸고,
아내 마리아의 정신 상태도 급격히 악화되었다.
세상도, 가정도, 마음도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던 시기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헤세의 새로운 문학은 바로 그 무너진 자리에서 시작된다.
헤세는 루체른 근교 요양원에서 카를 구스타프 융의 제자인 요제프 베른하르트 랑을 만나고,
꿈을 그림으로 표현해보라는 권유를 받는다.
이것이 헤세가 수채화를 시작하는 계기가 된다.
또 랑을 통해 영지주의 세계관과 아브락사스의 상징을 접하게 되는데,
이것은 곧 『데미안』의 핵심 사상으로 이어진다.
영지주의는 아주 쉽게 말해 세상을 선과 악으로 단순하게 나누지 않고,
인간 안에 있는 빛과 어둠을 함께 바라보는 사상에 가깝다.
아브락사스는 선과 악을 동시에 품은 존재로, 착한 모습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불안과 욕망, 어두운 감정까지 마주해야 비로소 진짜 자기 자신을 만날 수 있다는 의미였다.
1917년 헤세는 단 3주 만에 『데미안』을 썼고, 자신의 이름 대신 에밀 싱클레어라는 가명으로 발표했다.
전쟁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배신자라 불리던 시기였으니, 자신의 이름을 감추고 싶었던 마음도 이해가 되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제1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 젊은이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고, 가명이었던 싱클레어는 신인 문학상인 폰타네상까지 받게 된다. 뒤늦게 정체가 밝혀진 뒤 헤세는 그 상을 반납한다.
그 이후의 삶도 평탄하지 않았다.
1919년, 정신적으로 심각한 어려움을 겪던 아내와 별거하고 스위스 남부 몬타뇰라로 이주했다.
1922년에는 『싯다르타』를 출간했고, 1923년에는 이혼과 함께 독일 시민권을 포기하고 스위스 시민권을 취득했다.
1924년 두 번째 결혼을 했지만 오래가지 못했고, 그 어둠 속에서 『황야의 이리』가 태어났다.
1931년 미술사가 니논 돌빈과 세 번째 결혼을 하며 마침내 긴 안정을 얻는다.
니논은 어린 시절 헤세의 책을 읽고 감동해 편지를 보냈던 독자였고,
이후 헤세 곁에서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31년을 함께했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그리고 12년에 걸쳐 완성한 『유리알 유희』가 이 시기의 작품이다.
이런 흐름을 알고 나니, 헤세가 평생 써 내려간 편지들이 더 다르게 보였다.
세상이 그를 배신자라 불렀을 때도, 건강이 나빠져 손이 떨릴 때도,
그는 독자들에게 답장을 쓰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에 더 놀라게 된다.
현존하는 편지만 44,000통에 이른다고 하니,
그것은 단순한 친절이라기보다 헤세가 세상과 끊어지지 않기 위해 선택한 방식처럼 느껴졌다.
모든 것이 최악으로 기울어질 때에도 그는 사람들에게 안부를 보냈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들었던 생각은,
사람은 정말 힘들 때 세상과의 연결을 먼저 끊고 싶어지지 않을까?란 생각이었다.
그런데 헤세는 오히려 가장 무너진 시기에 더 오래 쓰고, 더 많이 답하고, 더 멀리 안부를 보냈다.
그래서 편지는 단순한 안부 이상의 의미로 다가왔다.
누군가를 위로하기 위한 문장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자기 자신이 세상과 완전히 단절되지 않기 위해 붙잡고 있던 마지막 연결처럼 느껴졌다.
반면 고흐의 안부는 훨씬 좁고 깊은 곳으로 향했다.
그는 주로 동생 테오에게 편지를 썼고, 생활비와 물감을 부탁하는 문장 끝에 조심스럽게 안부를 덧붙였다. 세상이 그를 외면했을 때 헤세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편지를 보냈다면 고흐는 점점 더 자기 안쪽으로 들어갔다. 별이 소용돌이치는 밤하늘도, 해바라기가 타오르는 들판도, 카페 테라스의 불빛도 그의 눈과 손을 통과하는 순간 완전히 고흐만의 세계가 되었다.
고흐를 생각하면 안부라는 말이 조금 다르게 들린다.
그에게 안부는 넓은 세상으로 보내는 인사가 아니라,
제발 나를 잊지 말아달라는 작고 간절한 신호에 가까웠던 것 같다.
누군가에게는 한 사람만 있어도 버틸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그 한 사람마저 멀어질까 두려워 예술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게 된다.
이 책에서 또 기억에 남는 부분은 서명의 가치 부분이었다.
헤세는 살아 있는 동안에도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고,
수많은 사람들과 소통했기 때문에 사인본을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위대한 작가의 서명임에도 희귀성은 덜한 편이다.
반대로 고흐는 살아 있을 당시 그에게 사인을 요청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남아 있는 그의 서명은 결국 자신이 그린 그림 위의 이름뿐이다.
『해바라기』, 『별이 빛나는 밤』, 『감자 먹는 사람들』, 『카페 테라스』 같은 작품이 경매에 나온다면
상상하기 어려운 금액이 될 거라는 이야기도 그래서 더 묵직하게 다가왔다.
고독했기에 천문학적인 액수가 된 서명.
다정했기에 더 흔하게 남은 서명.
이 문장으로 두 사람의 생애가 한순간에 대비되는 것 같았다.
한 사람은 살아 있는 동안 계속 사람들에게 닿으려 했고,
한 사람은 살아 있는 동안 거의 닿지 못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뒤, 가장 외롭게 남겨진 이름이 가장 비싼 서명이 되었다.
이 글을 읽으며 가치라는 것이 참 이상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누군가가 손을 붙잡아주는 사람이 많지 않았는데,
세상을 떠난 뒤 남겨진 서명에는 천문학적인 가격이 붙는다.
어쩌면 고흐에게 정말 필요했던 것은 거대한 명성이나 돈이 아니라,
자신의 그림을 진심으로 바라봐주는 몇 사람의 이해와 인정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그런데 세상은 너무 늦게 그의 이름을 알아보았다.
그래서 고흐의 서명 이야기는 그저 놀라운 일화로만 끝나지 않았다.
살아 있는 동안 그의 재능을 조금 더 일찍 알아봐주었더라면,
그는 조금 더 오래 버틸 수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조금은 덜 외롭고, 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오래 남았다.
그리고 이 책이 특별하게 느껴졌던 건, 헤세의 대표작 대신 『헤르만 라우셔』를 실었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왜 『데미안』이나 『싯다르타』가 아닐까 싶었지만, 읽다 보니 그 선택이 이해가 되었다.
『헤르만 라우셔』는 헤세가 스물셋 무렵 쓴 극히 초기 작품이고,
신학교를 도망친 뒤 서점에서 일하던 젊은 헤세의 불안과 예민함이 그대로 배어 있다.
‘라우셔’가 ‘듣는 사람’이라는 뜻이라는 설명도 좋았다.
아직 세상에 크게 말하기보다 먼저 듣고 흔들리고 기록하던 청년 헤세가 그 이름 안에 들어 있는 것 같았다.
특히 『헤르만 라우셔』에는 헤세의 생애 주기에 따라 세 번의 서문이 존재한다.
23살의 헤세, 30살의 헤세, 56살의 헤세가 같은 작품을 다시 바라보며 다른 말을 남긴다.
23살의 헤세는 허구적인 장난처럼 라우셔의 죽음을 이야기하고,
30살의 헤세는 젊은 날의 자신을 부끄러워하면서도 쉽게 지우지 못한다.
56살의 헤세는 감정이 지나간 자리를 차분히 바라본다.
한 사람이 자신의 젊은 날을 여러 번 다시 읽는 장면 같아서 좋았다.
초판 서문에서 헤세는 라우셔라는 인물을 통해 자신의 불안과 고독을 거의 숨기지 않는다.
늘 슬프고 쓸쓸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고,
죽음의 예감을 품은 듯한 젊은 시인의 모습은 문학적 장식이라기보다 헤세 자신의 내면에 더 가까워 보였다.
마지막에 죽은 벗의 고독한 사유와 고통을 세상에 내놓는 일을 용서해달라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헤세가 문학을 쓴다기보다 자기 안의 어둠을 조심스럽게 바깥으로 옮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책은 유명한 작품을 먼저 보여주는 대신,
그 작품들이 생겨나기 전의 떨림을 보여준다.
완성된 문장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문장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이 견뎌낸 시간일 수 있다.
『헤르만 라우셔』를 읽는 일은 헤세의 대표작으로 곧장 들어가는 일이 아니라,
그가 왜 끝내 작가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천천히 따라가보는 일에 가까웠다.
그래서 『안부를 전하며』라는 제목이 더 깊게 남는다.
안부는 단순한 인사가 아니라, 내가 아직 여기 있다는 표시이기도 했다.
헤세에게 안부는 세상으로 열어둔 문이었고,
고흐에게 안부는 무너지지 않기 위해 붙잡은 마지막 끈이었다.
고흐는 끝내 세상에 닿지 못한 채 그림 위에 이름을 남겼고,
헤세는 끝까지 사람들에게 편지를 보내며 자신의 이름을 나누었다.
두 사람의 안부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흘렀지만, 결국 같은 질문으로 돌아온다.
나는 누구에게 닿고 싶은가?
그리고 나는 어떤 방식으로 나의 안부를 남기고 있는가?
이 책을 읽고 나면 예술가의 삶보다 나와 나의 주변을 먼저 떠오르게 된다.
연락 한번 해보겠다고 여러번 생각을 하면서도 답장하지 못한 사람들,
그리고 사실은 내가 먼저 안부를 받고 싶었던 순간들까지도.
좋은 책은 결국 멀리 있는 거장을 보여주는 데서 끝나지 않고,
지금 내 마음의 방향을 조용히 바꾸어놓는다는 걸 다시 느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 많은 내용들 중에서도
유독 가슴에 남는 반 고흐의 말이 있어서 이 말을 남기면서 마무리해본다.
만약 네 안의 무언가가
“넌 화가가 아니야”라고 말한다면….
바로 그때 그리는 거야.
그래야만 그 목소리가 잠잠해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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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맘수련서평단'을 통해
'모티브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그림을 그려야 했던 대문호, 헤르만 헤세
자신을 구원하고자 글을 써야 했던 불멸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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