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지음, 야나 렌조바 그림, 이한음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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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늘 인간이 중심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이 나의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불멸의 유전자』를 읽고 나니 그 믿음에 균열이 생긴다. 생명은 유전자의 생존 전략이라는 시각이다. 인간이라는 존재도 사실은 그 전략을 수행하기 위한 임시적인 생존 기계라는 설명은 낯설고, 때로는 불편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그 불편함 속에서 진화에 대한 가장 생생하고 근본적인 질문들을 만나게 된다.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를 통해 이미 유전자의 주체성을 강조한 바 있다. 『불멸의 유전자』는 그 논리를 더 넓고 깊게 확장한 책이다. 특히 ‘표현형 확장’이라는 개념을 통해, 유전자의 영향력이 단순히 생물의 몸속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새가 만든 둥지, 비버가 만든 댐, 심지어 인간이 만든 예술작품이나 문화까지도 유전자가 환경과 상호작용한 결과물일 수 있다는 시각은 경이롭다. 생명은 더 이상 개별 개체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유전자와 환경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개념은 ‘사자의 유전서(The Genetic Book of the Dead)’였다. 하나의 동물이 가지고 있는 유전자는 단지 그 개체의 정보가 아니라 그 조상이 어떤 환경에서 살아남았는지를 기록한 기술서라는 것이다. 그 유전체는 마치 겹겹이 쓴 양피지처럼 과거의 환경, 생존 전략, 생물학적 선택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자벌레가 고목을 흉내 내는 능력, 뻐꾸기 새끼가 둥지 안에서 울새에게 먹이를 받아먹는 장면 모두가 그 유전서에 기록된 조상 세계의 설계도인 셈이다.

저자는 여기서 가상의 미래 과학자 ‘SOFT(Scientist Of the Future)’를 종종 언급한다. 이 미래 과학자는 과거 환경을 이해하기 위해 현재 유전체를 분석한다. 각 생물체가 가지고 있는 유전자는 과거 생존에 적합했던 전략들의 기록이며 이는 현재 환경과 연결된 단서가 된다. 지금 눈앞에 있는 동물의 형질 하나하나가 조상 시대의 생존 해법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 자연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진다.

이 책의 강점은 개념만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진과 그림, 도식이 풍부하게 수록되어 있어, 복잡한 이론도 시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돕는다. 예를 들어 뻐꾸기 새끼가 둥지 안에서 다른 종의 어미 새에게 먹이를 받는 장면은, 이타성과 기생, 본능과 진화가 교차하는 강력한 시각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런 사례들은 머리로만 이해하던 유전자 이론을 좀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

도킨스는 이 책에서 수렴 진화(convergent evolution) 개념도 강조한다. 서로 전혀 다른 계통의 생물이지만 비슷한 환경에 놓일 경우 유사한 생존 전략을 택하게 된다는 것. 조류의 다양한 부리 형태는 모두 환경에 맞춰 진화한 결과이며, 유전자의 세계가 얼마나 유연하고 적응적인지를 보여준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신경과 혈관, 인대와 뼈의 배치는 단순한 ‘디자인의 결과’가 아니라, 수천만 년의 발생 과정을 통해 형성된 생명의 지도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더 나아가 ‘학습’조차 유전자 수준에서 선택될 수 있다는 내용도 등장한다. 유전자는 뇌가 어떤 것을 더 쉽게 학습하게 만들지, 어떤 정보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만들지를 미리 준비시킬 수 있다. 즉, 생물의 학습 능력조차 진화의 일부라는 것이다. 우리는 자유롭게 사고하고 선택한다고 믿지만, 어쩌면 그 자유조차 유전자라는 구조물 위에서 가능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나는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로 생각하게 된다. 저자는 ‘당신은 득실거리고 뒤섞이며 시간여행을 하는 바이러스들이 빚어낸 위대한 협력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이 책 전체를 압축적으로 설명해주는 구절이라 생각한다. 유전자는 협력하며 복제되고 그 과정에서 생명은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찾아간다.

『불멸의 유전자』는 읽기 쉬운 부분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읽기 쉬운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한 장 한 장 곱씹으며 읽다 보면 그 보상은 생각보다 훨씬 크게 다가온다. 생명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고, 나를 둘러싼 자연과 인간, 문명까지도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이 책은 그냥 과학책이 아니라, 유전자의 언어로 쓰인 철학이고 생명의 역사이며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이다. 『이기적 유전자』와 함께 읽는다면, 우리는 이 복잡한 생명의 체계를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지금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수억 년의 생존 전략 위에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 유전자의 세계는 경외의 대상으로 다가온다. 이 책을 추천한다면 과학을 좋아하고 자연과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내용이 다소 어려울지라도 도전해 볼 가치가 있는 책인 것 같다.

'을유문화사'를 통해 도서 협찬을 받아서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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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의 유전성는 조상이 살던 세계들에 관한 메시지를 동물의 몸과 유전체에 숨긴 팰림프세스트다. -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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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뇌
마수드 후사인 지음, 이한음 옮김 / 까치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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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우리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이 책은 이와 같은 질문으로 시작한다. 우리는 흔히 자아를 형성하는 요소로 가정 환경이나 교육, 사회적 배경, 또는 우리가 속한 집단을 떠올린다. 그러나 저자는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에 주목한다. 바로 ‘뇌’다. 우리의 자아는 뇌가 만들어낸 하나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철학자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말했지만, 이 책의 저자이자 신경과학자인 마수드 후세인은 묻는다. “생각한다는 건 무엇인가? 그리고 그 생각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는 우리가 사고하고 느끼고 판단하는 모든 과정이 뇌의 특정 기능들이 정교하게 협력한 결과라고 말한다. 우리의 말투, 기억, 감정, 유머 감각, 도덕성까지—그 모든 것은 뇌가 유기적으로 작동할 때만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그 작동이 멈추거나 어긋나는 순간, 우리는 예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간다.

이 책에는 언어를 잃어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2장 ‘단어를 떠올리지 못한 남자’ 파트에 있는 부분으로, 우리는 마이클이라는 인물을 만난다. 그는 60대 후반의 지적이고 품위 있는 남성이다. 말하기에 어려움을 겪으며 병원을 찾은 그는, 대화를 하다 말문이 막히는 자신에게 좌절과 당혹을 동시에 느낀다고 털어놓는다. 어릴 적 자신이 잘하던 럭비 경기의 기본 용어인 ‘스크럼’이라는 단어조차 기억해내지 못한다. 그가 겪고 있는 문제는 단순한 건망증이 아니었다. 그는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고 개념화하는 능력, 즉, 의미 기억(semantic memory)을 점점 잃어가고 있었다.


마이클은 여전히 자신의 과거, 가족, 여행지 같은 일화적 기억은 또렷하게 기억한다. 하지만 일상적인 개념, 농담의 맥락, 단어의 의미 같은 지식은 점점 사라져간다. 그의 아내는 “예전의 남편이 아니에요. 유머를 이해하지 못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어색해졌어요.”라고 말한다. 마이클은 더 이상 예전처럼 농담을 던지는 사람이 아니고, 친구들 또한 그를 피하기 시작했다. 말과 웃음이 사라지자, 관계도 사라졌다. 결국 그는 ‘의미 치매(Semantic Dementia)’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이는 언어와 개념을 담당하는 뇌 부위가 점진적으로 손상되며 사람의 내면의 사전이 무너지는 병이다.

이 책은 마이클만을 다루지 않는다. 뇌의 손상으로 인해 ‘자신’을 잃어가는 수많은 사례들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 데이비드는 바닥핵이 손상되어 감정이 거의 사라진 ‘병적인 무관심 상태(아파시)’에 빠졌다. 한때 사랑과 공감을 표현하던 그는 이제 주변의 기쁨이나 슬픔에 무반응한 존재가 되었고, 그의 가족은 정서적 관계의 붕괴를 견뎌야 했다.


트리시는 알츠하이머병으로 일화 기억이 무너져내리는 과정을 겪고 있다. 남편과 나눴던 대화, 가족의 얼굴, 소중한 추억들이 하나둘 지워지면서 그녀는 더 이상 자신의 과거를 통해 자아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 기억이 사라지자 그녀의 존재감도 옅어져갔다.

와히드는 시각 착시에 시달렸다. 신경 손상으로 인해 그는 현실을 오인하고, 주변 사람들을 기이한 방식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의 세상은 더 이상 타인과 공유되지 않았고, 그는 현실과 자신 사이의 경계를 잃어버렸다.

윈스턴은 집중력이 무너진 사례다. 뇌의 주의 조절 기능에 이상이 생기며 일상적인 대화조차 유지하기 힘들어졌고, 사회적 상황에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는 능력이 흐려졌다. 그는 말하자면, 사회의 ‘속도’와 ‘리듬’을 놓쳐버린 사람이었다.

수 라일런드, 이른바 ‘카우걸’은 전두엽 손상 이후 충동을 제어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타인에게 해가 되는 말과 행동을 반복하면서도 멈출 수 없었고, 스스로를 조절할 수 없다는 인식은 그녀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자신의 사회적 자리를 유지하지 못하게 되었고, 점점 더 외부인으로 밀려났다.


마지막으로 애나는 신체 자기 인식의 상실을 경험한다. 뇌졸중 이후, 그녀는 자신의 팔과 다리가 어디에 있는지 느낄 수 없었고, 심지어 자신의 몸 일부를 타인의 것으로 착각하기도 했다. 몸의 경계가 사라지자, 그녀는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확신할 수 없게 되었다.

이들의 이야기는 단순히 병리학적 현상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다. 감정, 언어, 기억, 공감, 집중, 충동, 신체 감각—이 모든 뇌 기능들은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나’를 구성하는 축이다. 이 중 하나만 어긋나도 우리의 자아는 흔들리고, 사회 속 위치 역시 불안정해진다.

우리가 어떤 집단에 속하는가, 누가 우리를 내부인 혹은 외부인으로 간주하는가는 단지 인종이나 언어, 국적 때문만이 아니라, 그 사람이 사회적 기대를 어떻게 수행하고 있는가와 깊은 관련이 있다. 이 책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자기 자신’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정교하고, 동시에 얼마나 깨지기 쉬운 구조 위에 놓여 있는지를 명료하게 보여준다.


이 책의 저자 또한 외부인의 경험을 몸소 겪었다. 방글라데시 출신의 유색인으로서 영국에 정착해 신경과학자가 된 그는, 억양, 외모, 피부색, 이름 모두에서 ‘다르다’는 시선을 받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어느 집단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다는 실감을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뇌와 타인의 뇌, 그리고 그 뇌들이 만들어내는 정체성을 연구하며, 그 질문에 대한 과학적 대답을 찾아간다. 속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언제 ‘우리’이고, 언제 ‘그들’이 되는가.


『아웃사이더』는 결국 자아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뇌의 섬세한 작용과 사회적 관계 속에서 지속적으로 구성되고 해체되는 존재임을 말한다. 우리는 감정이 사라질 수도 있고, 기억을 잃을 수도 있으며, 자신의 몸조차 낯설게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변화는 단지 생물학적 현상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 속에서 나를 정의하고 이해하는 방식마저 뒤흔든다. 자아란 타인의 시선과 기대, 그리고 나 자신의 뇌 작용이 만나는 접점에서 태어난다. 이 책은 우리 모두가 언제든 ‘아웃사이더’가 될 수 있으며, 그 경계에 선 사람들을 이해하고 품는 일이야말로 가장 절실한 공동체적 과제임을,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전하고 있다.


'까치글방 서포터즈 3기' 활동을 통해 '까치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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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일에는 단순한 정보 교환이상이 필요하다. 관계가 즐거워야 하며, 즐겁게 어울리려면 서로가 무엇에 재미를 느끼는지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깔깔거리는 웃음은 사회적 유대에 필수적이며, 더 나아가 우리의 집단 소속감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진화적 구조일 수도 있다. 유머의 공유는 우리에게 사람들과 계속 접속하도록 동기를 부여한다. 그러나 그런 유머는 우리가 쓰는 표현들과 관련된 더 폭넓은 의미론을 공통적으로 이해하고 있어야 가능하다. 마이클이 이제 확실히 느끼듯이, 그런 유머를 상실하면 우정을 유지하기가 힘들어질 수 있다. -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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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같은 방 둘이서 2
서윤후.최다정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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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의 방에서 시간을 보내며 쌓은 감정, 읽고 쓴 책, 지어 먹은 밥 들이 모여 지금과 같은 모양의 나에게로 도착했다. 만약 내가 다른 주소의 방에 살았더라면 지금 나는 다른 표정과 말투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됐을 것이다. 스무 살 이후로 혼자 옮겨 다닌 방들은 시절마다의 언어였다. 단 하루를 묵었든 몇 년을 살았든, 지금까지 머물렀던 각양각색의 방들은 모두 나름의 문장으로 각인되어 삶의 서사에 일부분 기여했다. 한동안 내 집이라고 불렀던 주소로 다시 더듬어 찾아가면 금세 그 방문을 열고 그 시절로 입장하게 된다.

p9. 프롤로그 내용 중

그동안 살아왔던 방들.. 반지하 단칸방, 고시원, 작은집 월세살이를 하면서도 머무르던 공간에서의 삶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면서도 이렇게 서정적이고 낭만으로 표현한 책이 있을까?란 생각을 하며 읽게 된 책


『우리 같은 방』은 한 사람의 방이 아닌 우리 모두의 방에 대한 이야기다.

저마다 다른 공간에서 살아온 우리가 누군가의 방 이야기를 읽으며 울컥하고, 어떤 문장 앞에서 오래 머무는 건 그 방이 나의 기억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방을 넘어 시간이 스며든 장소, 감정이 접힌 구석, 그리고 말하지 못한 기억들이 눌려 있는 자리를 바라보게 만든다.

프롤로그에서 최다정 작가는 ‘방’이라는 단어 하나로 지난 시절의 수많은 장면들을 되짚어낸다. 감정을 쌓고, 책을 읽고, 밥을 해 먹으며 혼자 보낸 그 시간들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고백한다. 방 문을 하나 열었을 뿐인데 그때의 공기, 온기, 분위기가 한꺼번에 떠오르는 느낌?이랄까. 마치 오래된 기억이 그대로 되살아난다. 저자의 말처럼, 한동안 ‘집’이라고 불렀던 공간은 여전히 기억의 문장으로 남아 있다.


그녀는 이사를 앞두고 짐을 정리하며, 지난 방들과 재회한다. 일부러 외면했던 장면들, 서랍 안에 차곡차곡 접어 넣고 덮어두었던 감정들이 다시 고개를 든다. 예쁘게 잘 정리해 떠나지 못했던 어떤 방은 뒤늦게 억지로라도 써보려 할 때, 오히려 더욱 아프게 다가온다. 방은 곧 내가 살아온 방식 자체였다. 그래서 그 안에 남아 있던 감정이나 기억들을 아무렇게나 지워버릴 수 없었고, 결국은 구석구석 숨어 있던 마음들을 하나씩 마주해야 했다.

이 책은 그런 진심에서 시작되었다. 지나온 방들, 그 방 안의 시간과 감정을 정면으로 들여다보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했다. 그 용기는 결국 글이 되었고, 그 글은 그 방으로 안내한다. 담담한 문장으로 꺼내 놓는 지난 시간들은 결코 특별하거나 거창하지는 않지만, 솔직하고 조심스러우며 깊다.

“살았던 시절의 우리를 닮은 방에서 우리는 제일 안전한 사람이 될 수 있다.”

프롤로그의 이 마지막 문장은, 이 책을 설명하는 가장 정확한 말이다. 그 문장처럼 이 책은 누군가의 방을 구경하는 일이 아니라 나의 방을 천천히 열고, 들여다보고, 조심스럽게 정리해 나가는 과정이다.

나 역시도 어떤 방에선 슬픔이 가득했고, 어떤 방은 떠나기 싫어 다시 돌아가고 싶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또 어떤 방은 쉽게 들여다보지 못한 방도 있다. 그 방들에는 아직 말로 꺼내지 못한 감정들이 눌려 있다. 이 책은 그런 마음의 조각들을 부드럽게 건드린다.

“괜찮아요, 그런 방 하나쯤 누구에게나 있어요.” 하고 말하듯이.

최다정 작가는 과거의 자신이 살았던 방들을 차근차근 되짚는다. 그 방은 때론 낯설고, 때론 따뜻하고, 때론 서늘하다. 하지만 결국, 그 모든 방들이 지금의 자신을 만든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다시 바라보며 한 문장씩 꺼내놓을 수 있었던 건, 스스로를 안전하다고 느끼게 해주는 기억이 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우리가 어딘가에서 머무른다는 건, 잠시 그 공간에 머물렀다는 뜻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지냈던 나의 모습, 함께했던 감정, 지나간 계절들이 함께 어우러져 지금의 나를 만든다는 의미일 것이다.

『우리 같은 방』은 다양한 모습을 따뜻하게 풀어낸다. 한때 집이라 불렀던 공간, 다시 돌아갈 수 없어도 여전히 마음 한쪽에 남아 있는 장소, 그리고 그 방 안에 있던 나를 천천히 꺼내어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을 꼽으라면, ‘의자’에 관한 묘사였다. 방 안의 의자는 단순한 가구가 아니라, 쉼과 각성을 동시에 품은 존재다. 책상 앞 의자에 앉아 있던 시간들이야말로 가장 깨어 있었던 시간이라는 것! 저자는 누군가의 생일날 “편하게 앉아 너를 축하할 수 있는 오늘이 되길”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의자 사진을 받았다고 했다. 나 자신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의자같은 존재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책의 문장들은 조용하다. 크게 말하지 않지만 멀리 퍼진다.

아마도 그것은 이 글이 누군가를 위로하려고 쓰인 글이기보다는 스스로를 솔직하게 꺼내 보이기 위해 쓰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더욱 진심이 전해지고, 그래서 더욱 읽는 사람의 마음에 오래 남는다.


『우리 같은 방』은 결국 방에 대한 이야기이자 나를 이해하고 껴안는 이야기다.

혼자만의 방에서 보낸 시간, 다시 돌아가기 어려운 방, 여전히 마음속 한 켠에 자리 잡은 방. 그 모든 방은 우리의 일부였고, 우리가 잠시 머물렀던 세계였다. 마음속 방 하나를 아직 닫아두고 있다면, 이 책이 그 문을 여는 첫 열쇠가 되어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 방을 떠나든, 다시 들여다보든, 어쩌면 더 단단한 마음으로 오늘의 방에 머물 수 있게 될 것 같다.




월마다 정해진 날짜에 값을 치르면 최대 2년간은 내 방이라 부를 수 있는 보금자리가 생겼다. 혼자인 도시에서 세를 내고 잠시 빌린 방들을 전전해 오며 여태껏 나를 무사히 지켰다. 들어갈 때보다 한뼘이라도 더 자란 모습으로 나올 때면, 어느새 방은 지나온 시절의 대명사가 되어 있었다.
얼마 전에도 이사를 했다. 또 한 마디 시절의 문을 닫고 월셋집을 떠나면서 눈에 밟혀 자꾸 돌아보았던 건 책을 읽고 글을 썼던 나의 공부방이다. 작은 옷방, 부엌, 화장실이 딸린 집에서 사는 동안 이 공부방에 제일 깊은 자국을 남겼다. 언젠가 마침내 떠나게 될 방이란 걸 늘 염두에 두고 살았지만, 이 방이 영원히 내 방이길 바란 적이 많았다. 여러 낮과 밤의 나를 안아 주고 덮어 주었던 고마운 방과 헤어지며, 이 공간의 새로운 세입자에게 내 방이었던 방을 살뜰히 사용하는 비법을 남겨 둔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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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낙원에서 만나자 - 이 계절을 함께 건너는 당신에게
하태완 지음 / 북로망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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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힘들고 외로울 때, 곁에서 위로해줄 사람 하나 없어서 서글프고 공허할 때 마음을 토탁여줄 위로 에세이!
어설픈 몇명보다 글 한자, 한 문장이 더 위로가 되는 순간이 있다. 바로 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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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알고, 바로 쓰는 빵빵한 어린이 한국 전설 우리 아이 빵빵 시리즈 9
현상길 지음, 박빛나 그림 / 유앤북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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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알고, 바로 쓰는 빵빵한 어린이 한국 전설』(현상길 글, 박빛나 그림)은 제목 그대로 “바로 알기”와 “바로 쓰기”라는 두 가지 목표를 품고 기획된 어린이용 전설책이다. 아이들이 전설을 단순히 옛날이야기로만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상상력과 교훈, 때로는 불편한 진실까지도 바르게 이해하고 풀어낼 수 있도록 돕는다. 우리가 오래도록 들어온 전설들을 새롭게 비틀어보고 지금 시대에 맞춰 다시 질문하게 만드는 흥미로운 구조로 되어 있다.


이 책에는 금강의 곰나루터, 남해 금산의 상사바위, 땀 흘리는 비석, 왜적을 물리친 용감한 두꺼비들, 버선꽃으로 피어난 여인, 바위가 되어 버린 오백 형제, 바보의 아내가 된 공주, 학이 맺어 준 외딴섬의 사랑 등 우리가 잘 몰랐던 새로운 전설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다. 내려오는 전설을 이야기로 접하면서 글을 이해하는 능력과 비판적 사고, 윤리적 판단력까지 아우를 수 있도록 만들었다.


책의 서두에서는 ‘설화’란 무엇인지를 먼저 짚어준다. 설화는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 이야기로, 글로 된 소설과는 달리 말로 전달되며 시대에 따라 변화해 온 이야기다. 문학에서는 이러한 설화를 ‘구비문학’이라고 부른다. 이야기 전체를 정확히 기억해 그대로 전달하기보다는 핵심 줄거리 중심으로 전승되어 왔기 때문에, 믿음·무가·판소리 등과도 구분되며, 후에는 문서로 기록되기도 했다.


설화는 크게 신화, 전설, 민담의 세 종류로 나뉜다.

신화 : 신성한 존재와 세계의 시작을 다룬 이야기로, 단군신화나 주몽 신화처럼 신 또는 초월적 존재가 주인공이다.

전설 : 특정한 시공간을 배경으로 하여 실제 있었던 일처럼 믿어진 이야기로, 실제 지형지물이나 인물과 관련된다.

민담 :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상상력과 교훈을 중심으로 꾸며진 이야기로, ‘방귀쟁이 며느리’, ‘자린고비’처럼 익숙하고 익살스러운 이야기들이 많다.

이러한 분류 기준을 바탕으로 책 속 전설들을 보면, 이야기 하나하나가 단순히 재미를 주는 데 그치지 않고, 신화인지, 전설인지, 민담인지 자연스럽게 구분할 수 있는 교육적 흐름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인상 깊었던 전설 중 하나는 바로 ‘금강의 곰나루터’ 이야기다. 일반적으로 곰이 등장하는 설화라고 하면 단군신화를 떠올리기 쉽지만, 이 이야기는 전혀 다른 전개로 독자의 예상을 뒤엔다. 깊은 굴속에서 외롭게 살아가던 암곰이 잘생긴 나무꾼을 보며 반하게 되고, 그를 하늘이 점지해준 짝이라 여겨 굴로 납치해 신랑으로 삼는다. 나무꾼은 본래 사랑하는 아내가 있었지만 도망치지 못한 채 암곰과 함께 지내며 아이 셋을 낳는다. 그러던 중 나무꾼은 굴에서 빠져나올 기회를 얻고, 집으로 도망친다. 남편을 찾아 따라나선 암곰과 아이들은 그를 쫓다 금강에 빠져 죽고 만다.

이 이야기를 읽고 난 뒤 마음이 복잡해졌다. 암곰과 아이들의 죽음은 안타깝지만, 나무꾼의 인생 또한 너무나 비극적이다. 사랑하는 아내가 있음에도 강제로 납치당해 살아야 했던 그의 마음은 얼마나 괴로웠을까. 이처럼 이야기 속 인물이 단순히 선하거나 악한 것이 아니라, 여러 감정과 입장을 품고 있다는 점이 어린이 독자들에게도 중요한 윤리적 질문을 던진다.


또 하나 깊은 인상을 남긴 전설은 ‘남해 금산의 상사바위’ 이야기다. 한 섬마을 부잣집 외동딸을 짝사랑한 하인 돌쇠는 그녀에게 고백하지만 거절당하고, 상사병으로 시름시름 앓다 끝내 세상을 떠난다. 그런데 돌쇠의 죽음 이후, 아가씨의 방에 거대한 뱀 한 마리가 나타나 그녀를 감싸며 아내로 삼으려 한다. 이 모습을 본 어머니는 그 뱀이 돌쇠의 혼령일 것이라 생각하고, 산신령의 꿈을 계기로 딸을 데리고 남해 금산의 큰 바위 앞에서 기도한다. 기도의 힘으로 뱀이 떨어져 나가고, 그 바위는 이루지 못한 사랑을 상징하는 상사바위가 되어 오늘날까지도 전해진다. 지금도 이 바위는 짝사랑이나 이루지 못한 사랑을 간직한 이들이 기도하러 오는 장소로 남아 있다고 한다.

이 이야기 또한 단순한 비극이 아닌, 사랑의 간절함과 죽음 이후에도 이어지는 감정의 무게를 보여준다. 감정이 지나치게 집착으로 변해버릴 수 있음을 알려주며, 동시에 타인의 마음을 억지로 돌릴 수 없다는 교훈도 담고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각 이야기를 읽은 뒤 아이들이 그저 웃고 넘기거나 무섭다고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생각이 드는지?”, “각 인물의 행동이 옳았는지?”, “이 이야기를 통해 내가 얻은 교훈은 무엇인지?”를 자연스럽게 고민하게 된다는 점이다. 더불어, 이 책은 설화의 개념부터 종류까지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어 아이들이 각 이야기의 유형(신화, 전설, 민담)을 구분하는 훈련도 가능하다. 단지 흥미로운 옛날이야기를 읽는 데 그치지 않고 이야기의 구조와 문화적 의미까지 학습할 수 있는 구조로 설계된 점은 교육적 가치가 매우 크다.


『바로 알고, 바로 쓰는 빵빵한 어린이 한국 전설』은 아이들에게 옛이야기의 재미를 알려주는 책인 동시에, 생각하고 느끼고 표현하는 힘을 길러주는 책이다. 이야기 속 인물들의 행동을 도덕적으로 판단하고, 교훈을 스스로 찾아내며, 감정을 입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이 책은 가정에서 부모와 함께 읽고 토론하며 활용하면 더욱 좋다. 재미와 교육을 동시에 잡은 이 책은, 그야말로 이름처럼 ‘빵빵한’ 전설책이라 할 수 있다.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채손독) @chae_seongmo'를 통해

'유앤북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충청남도 공주시 ‘곰나루(고마나루)’
충청남도 공주시의 옛 이름은 ‘웅진‘인데, 우리말로는 ’곰나루(고마나루)’라 부르지.
지금도 금강에는 고마나루터가 남아 있어.
넘 슬픈 이야기예요. 암곰과 아이들이 불쌍해…
곰이 먼저 사람을 납치한 거잖아!
옛날 사람들은 동물도 사람처럼 생각과 감정이 있다고 믿기도 했어.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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