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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같은 방 ㅣ 둘이서 2
서윤후.최다정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5월
평점 :

혼자의 방에서 시간을 보내며 쌓은 감정, 읽고 쓴 책, 지어 먹은 밥 들이 모여 지금과 같은 모양의 나에게로 도착했다. 만약 내가 다른 주소의 방에 살았더라면 지금 나는 다른 표정과 말투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됐을 것이다. 스무 살 이후로 혼자 옮겨 다닌 방들은 시절마다의 언어였다. 단 하루를 묵었든 몇 년을 살았든, 지금까지 머물렀던 각양각색의 방들은 모두 나름의 문장으로 각인되어 삶의 서사에 일부분 기여했다. 한동안 내 집이라고 불렀던 주소로 다시 더듬어 찾아가면 금세 그 방문을 열고 그 시절로 입장하게 된다.
p9. 프롤로그 내용 중
그동안 살아왔던 방들.. 반지하 단칸방, 고시원, 작은집 월세살이를 하면서도 머무르던 공간에서의 삶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면서도 이렇게 서정적이고 낭만으로 표현한 책이 있을까?란 생각을 하며 읽게 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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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같은 방』은 한 사람의 방이 아닌 우리 모두의 방에 대한 이야기다.
저마다 다른 공간에서 살아온 우리가 누군가의 방 이야기를 읽으며 울컥하고, 어떤 문장 앞에서 오래 머무는 건 그 방이 나의 기억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방을 넘어 시간이 스며든 장소, 감정이 접힌 구석, 그리고 말하지 못한 기억들이 눌려 있는 자리를 바라보게 만든다.
프롤로그에서 최다정 작가는 ‘방’이라는 단어 하나로 지난 시절의 수많은 장면들을 되짚어낸다. 감정을 쌓고, 책을 읽고, 밥을 해 먹으며 혼자 보낸 그 시간들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고백한다. 방 문을 하나 열었을 뿐인데 그때의 공기, 온기, 분위기가 한꺼번에 떠오르는 느낌?이랄까. 마치 오래된 기억이 그대로 되살아난다. 저자의 말처럼, 한동안 ‘집’이라고 불렀던 공간은 여전히 기억의 문장으로 남아 있다.
그녀는 이사를 앞두고 짐을 정리하며, 지난 방들과 재회한다. 일부러 외면했던 장면들, 서랍 안에 차곡차곡 접어 넣고 덮어두었던 감정들이 다시 고개를 든다. 예쁘게 잘 정리해 떠나지 못했던 어떤 방은 뒤늦게 억지로라도 써보려 할 때, 오히려 더욱 아프게 다가온다. 방은 곧 내가 살아온 방식 자체였다. 그래서 그 안에 남아 있던 감정이나 기억들을 아무렇게나 지워버릴 수 없었고, 결국은 구석구석 숨어 있던 마음들을 하나씩 마주해야 했다.
이 책은 그런 진심에서 시작되었다. 지나온 방들, 그 방 안의 시간과 감정을 정면으로 들여다보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했다. 그 용기는 결국 글이 되었고, 그 글은 그 방으로 안내한다. 담담한 문장으로 꺼내 놓는 지난 시간들은 결코 특별하거나 거창하지는 않지만, 솔직하고 조심스러우며 깊다.
“살았던 시절의 우리를 닮은 방에서 우리는 제일 안전한 사람이 될 수 있다.”
프롤로그의 이 마지막 문장은, 이 책을 설명하는 가장 정확한 말이다. 그 문장처럼 이 책은 누군가의 방을 구경하는 일이 아니라 나의 방을 천천히 열고, 들여다보고, 조심스럽게 정리해 나가는 과정이다.
나 역시도 어떤 방에선 슬픔이 가득했고, 어떤 방은 떠나기 싫어 다시 돌아가고 싶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또 어떤 방은 쉽게 들여다보지 못한 방도 있다. 그 방들에는 아직 말로 꺼내지 못한 감정들이 눌려 있다. 이 책은 그런 마음의 조각들을 부드럽게 건드린다.
“괜찮아요, 그런 방 하나쯤 누구에게나 있어요.” 하고 말하듯이.
최다정 작가는 과거의 자신이 살았던 방들을 차근차근 되짚는다. 그 방은 때론 낯설고, 때론 따뜻하고, 때론 서늘하다. 하지만 결국, 그 모든 방들이 지금의 자신을 만든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다시 바라보며 한 문장씩 꺼내놓을 수 있었던 건, 스스로를 안전하다고 느끼게 해주는 기억이 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우리가 어딘가에서 머무른다는 건, 잠시 그 공간에 머물렀다는 뜻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지냈던 나의 모습, 함께했던 감정, 지나간 계절들이 함께 어우러져 지금의 나를 만든다는 의미일 것이다.
『우리 같은 방』은 다양한 모습을 따뜻하게 풀어낸다. 한때 집이라 불렀던 공간, 다시 돌아갈 수 없어도 여전히 마음 한쪽에 남아 있는 장소, 그리고 그 방 안에 있던 나를 천천히 꺼내어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을 꼽으라면, ‘의자’에 관한 묘사였다. 방 안의 의자는 단순한 가구가 아니라, 쉼과 각성을 동시에 품은 존재다. 책상 앞 의자에 앉아 있던 시간들이야말로 가장 깨어 있었던 시간이라는 것! 저자는 누군가의 생일날 “편하게 앉아 너를 축하할 수 있는 오늘이 되길”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의자 사진을 받았다고 했다. 나 자신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의자같은 존재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책의 문장들은 조용하다. 크게 말하지 않지만 멀리 퍼진다.
아마도 그것은 이 글이 누군가를 위로하려고 쓰인 글이기보다는 스스로를 솔직하게 꺼내 보이기 위해 쓰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더욱 진심이 전해지고, 그래서 더욱 읽는 사람의 마음에 오래 남는다.
『우리 같은 방』은 결국 방에 대한 이야기이자 나를 이해하고 껴안는 이야기다.
혼자만의 방에서 보낸 시간, 다시 돌아가기 어려운 방, 여전히 마음속 한 켠에 자리 잡은 방. 그 모든 방은 우리의 일부였고, 우리가 잠시 머물렀던 세계였다. 마음속 방 하나를 아직 닫아두고 있다면, 이 책이 그 문을 여는 첫 열쇠가 되어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 방을 떠나든, 다시 들여다보든, 어쩌면 더 단단한 마음으로 오늘의 방에 머물 수 있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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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마다 정해진 날짜에 값을 치르면 최대 2년간은 내 방이라 부를 수 있는 보금자리가 생겼다. 혼자인 도시에서 세를 내고 잠시 빌린 방들을 전전해 오며 여태껏 나를 무사히 지켰다. 들어갈 때보다 한뼘이라도 더 자란 모습으로 나올 때면, 어느새 방은 지나온 시절의 대명사가 되어 있었다. 얼마 전에도 이사를 했다. 또 한 마디 시절의 문을 닫고 월셋집을 떠나면서 눈에 밟혀 자꾸 돌아보았던 건 책을 읽고 글을 썼던 나의 공부방이다. 작은 옷방, 부엌, 화장실이 딸린 집에서 사는 동안 이 공부방에 제일 깊은 자국을 남겼다. 언젠가 마침내 떠나게 될 방이란 걸 늘 염두에 두고 살았지만, 이 방이 영원히 내 방이길 바란 적이 많았다. 여러 낮과 밤의 나를 안아 주고 덮어 주었던 고마운 방과 헤어지며, 이 공간의 새로운 세입자에게 내 방이었던 방을 살뜰히 사용하는 비법을 남겨 둔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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