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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피에르 바야르 지음, 김병욱 옮김 / 가디언 / 2024년 11월
평점 :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할 수 있다니…정말 가능한걸까?
피에르 바야르의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이라는 책 제목을 처음 봤을 때 약간의 반감이 들기도 했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도대체 어떻게 말한다는 걸까? 어떤 내용일지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니 이 제목이 단순히 낚시성 문구가 아니라 꽤 설득력 있는 주장이라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물론 그의 주장이 사람들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을 것 같지만 나에겐 어느 정도 설득이 되었다.
이 책 내용 중에서 개인적으로 특히 공감하고 와닿았던 부분은 몽테뉴의 경험을 예로 들며 이야기했던 ‘기억’에 관한 부분이었다. 읽은 책의 내용을 자세히 기억할 수 없었던 경험들로 고민이 많았던 시기였는데 몽테뉴의 이야기는 안도의 한숨을 쉬게 해주었고 많은 위로를 주었다.
특히나 “읽기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어쩔 수 없는 망각의 흐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또한 독서다.”라는 문장에서 큰 위로가 되었다.
또한, 기억에 남는 부분으로 다독이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다독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의 책 속에 파묻히게 될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고 말한다. 자신이 창작자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런 위험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신만의 생각을 덧붙이지 않고 작가의 의도나 사고를 비평없이 그대로 받아 들이는 것은 독창성을 앗아가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그러한 독서는 오래 기억되기도 힘들뿐 아니라 독서를 통한 사고의 확장도 이루어질 수 없다. 비판 없는 독서의 위험성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책의 내용 전체를 읽지 않아도 심지어 한 번도 손에 들어보지 않은 책이라도 그 책에 대해 말할 수 있다는 저자의 주장은 조금 과감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설명은 나름 합리적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대화 중에 책을 읽은 적 없는 사람과도 책 이야기를 종종 나누곤 한다.
그 대화만으로도 그 책의 대략적인 주제나 느낌을 알 수 있다.
이런 경험은 사실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과정을 4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1. UB(Unknown Book) : 전혀 접해보지 못한 책
2. SB(Skimmed Book) : 대충 뒤적거려 본 책
3. HB(Heard Book) :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알게 된 책
4. FB(Forgotten Book) : 읽었지만 내용을 잊어버린 책
저자는 이러한 방식으로도 충분히 책에 대해 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꼭 모든 페이지를 다 읽어야만 책을 이해하거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의 주장을 듣고 나면 책을 읽는 방식이 굉장히 자유로워진다. 책을 완독하지 못했다고 해서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고, 읽는 방식도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다. 꼭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것만이 독서가 아니며 책이 가진 맥락과 아이디어를 이해하는 것도 충분히 의미 있는 독서라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독서 습관도 돌아보게 되었다. 완독하지 않은 책이 책장에 잔뜩 쌓여 있는데 항상 그 책들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들곤 했다. 그런데 바야르는 그런 죄책감을 버리라고 말한다. 책을 읽는 목적은 단순히 책을 읽는다는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책을 통해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사고를 확장시켰는지에 있다.
책을 읽다 보면 저자가 책을 읽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는 책과 독자가 맺는 관계를 더 넓고 유연하게 보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고전 문학을 읽지 않았더라도 그 작품에 대한 사회적 담론이나 문화적 맥락을 알고 있다면 그 책에 대해 충분히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결국, 독서는 꼭 종이를 넘기는 행위로만 정의되지 않는다. 책의 내용을 알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확장하거나 타인과 대화하는 과정도 독서의 일부다.
이 책은 우리에게 독서란 정해진 방식이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완독하지 않아도 괜찮고 책의 전체 내용을 알지 못해도 대화는 가능하다. 중요한 건 책을 통해 얻는 영감과 새로운 시각이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은 단순히 책을 읽지 않아도 된다는 허가증을 주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책을 새로운 방식으로 즐기라고 권한다. 바야르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독서는 각자의 방식대로 즐기는 것이며 정답은 없다. 책을 읽는 데 죄책감 따윈 필요 없다. 그저 책과 대화를 나누고 그것을 통해 나만의 독서 경험을 만들어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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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채손독)'를 통해 도서 협찬을 받아서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인스타 #하놀 @hagonolza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읽은" 책과 대충 훑어본 책 사이에는 범주를 그렇게 따로 구분해야 할 정도의 큰 차이는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진중하고 완전한 독서도 곧바로 개략적인 검토가 되어버리거나 대충 훑어 보는 것으로 탈바꿈해버리는 만큼, 발레리가 자신이 거론하는 책들을 그저 뒤적거려보는 것이나 바스커빌이 책을 펼쳐보지도 않고 논평한다고 해서 터무니없다고만 할 수는 없다. 이는 독서라는 행위에 많은 이론가들이 간과하는 차원, 즉 시간이라는 차원을 덧붙여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독서는 단순히 어떤 텍스트를 인식하는 것, 혹은 어떤 지식을 습득하는 것만은 아니다. 읽기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어쩔 수 없는 망각의 흐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또한 독서다. -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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