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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때까지 나를 다스린다는 것 - 인생이라는 파도에 휩쓸리지 않는, 명상록 읽기
기시미 이치로 지음, 김지윤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9월
평점 :
‘죽을 때까지 나를 다스린다는 것’ 책은 교토대학교 대학원 문학연구과 박사과정을 수료한 철학자 ‘기시미 이치로’가 쓴 책이다. 약 2천 년 전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그때그때의 사색을 담아 쓴 <명상록>이란 책이 있는데, 그 책을 오랜 기간 읽으며 써온 노트를 바탕으로 쓴 책이다. 저자는 해당 책을 읽고 남긴 글을 다시 읽어 보면서 자신이 상상 이상으로 아우렐리우스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명상록>은 잘 정리된 철학서가 아니기에 결코 읽기 수월한 책은 아니다. 넓게 구분하자면 이 책은 인생론에 가깝다. 오늘날 인생론은 철학이라고 말할 수준이 아니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저자는 인생론이야말로 철학의 근간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인간에게 행복이란 무엇인가 등의 물음은 고대 그리스 이래 철학의 중심 주제였다. 아우렐리우스에게도 그랬다.
저자는 죽음의 문 턱에 선 어머니를 보며 어머니처럼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의식까지 잃었을 때에도 인간에게 삶은 의미가 있는지, 인간에게 삶의 가치와 의미가 도대체 무엇인지’와 같은 문제를 자신의 문제, 자신의 삶의 방식의 문제로까지 깊이 생각했다.
어머니가 쓰러지시기 전에는 막연하게 앞으로 살아갈 나의 미래를 생각하고 있었지만, 분명 모든 것이 부질없고,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나는 어머니를 돌보던 날들도, 어머니도, 언젠가 잊어 버릴 테고, 그런 나도 죽고 나면 모두에게서 잊힐 텐데, 그게 인생이라면 산다는 것은 과연 의미가 있는 것인가 하며 아우렐리우스의 문장을 조금 읽다가 멈추고, 생각하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머지않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대학원에 복귀했지만, 내 앞에 펼쳐져 있다고 생각해왔던 인생의 레일이 사라지고 인생에서 탈선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한마디로 ‘성공’을 포기하게 되었다. 대학교수가 되면 돈과는 인연이 없는 인생이 될 거라는 건 각오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교수가 되고 싶다는 야망을 품었었는데 그 마음조차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어머니의 죽음을 극복하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인생을 살 결심을 하게 되었는데 여기에 철학이 큰 도움이 되었다. 내 죽음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죽음을 눈앞에 두고, 인생의 끝에 죽음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더는 그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때까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던 것, 예를 들어 돈이나 명예 따위에는 전혀 가치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눈 앞에 깔려 있던 인생의 레일이 사라진 것처럼 느꼈던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도, 즐거운 춤을 방해하는 어둠이라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차라투스트라는 ‘나의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나의 상록 나무숲 아래서 장미 비탈길을 발견할 것’이라고 말했다. 춤을 멈추지 않아도 된다. 춤추는 사람은 인생의 끝자락에 죽음이 만반의 준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다 하더라도 ‘지금,여기’에서 계속 춤을 추면 된다고 말한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 어떻게 계속 춤을 출 수 있는가? 아우렐리우스도 그랬지만 저자도 계속해서 생각했다고 한다. 아우렐리우스가 같은 이야기를 몇 번씩 반복해서 쓰고, 끊임없이 묻는 이유는 죽음뿐 아니라 많은 문제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주로 플라톤을 연구했지만, 어머니가 입원해 계시던 동안 읽었던 <명상록>이 플라톤보다 훨씬 인생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해주었다고 한다. <명상록>은 죽음을 둘러싼 사색을 기록한 문장이 많다. 그렇기에 <명상록>을 읽으면서 죽음에 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한국 작가 김연수는 번역이 가장 ‘깊이 있는 독서’라고 말한다. 번역을 하려고 하면 아무리 짧은 문장이라도 대체 왜 이야기가 이렇게 흘러가는지 질문을 던져야만 하기 때문이다. 저자도 <명상록> 책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 그리스어로 된 원문을 직접 번역하였다.
우리는 평소 번역된 문장만 읽더라도 천천히 곱씹다 보면 질문이 얼마든지 생기기 마련이다.
“문학에는 정답이 없기에 반복해서 질문을 던지다 보면 어떤 깨달음을 얻을 때가 있다. 그런 식으로 숨겨진 의미를 알게 된다.”
저자는 <명상록> 역시 요약할 수 없는 책이라고 이야기 하면서, 아우렐리우스가 남긴 노트를 찬찬히 읽어 나가는 수 밖에 없다고 이야기 한다. 그가 남긴 문장을 천천히 사유하면서 인생을 고찰할 수 있는 계기로 삼을 수 있길 바란다.
아우렐리우스도 때로는 죽음을 두려워하고, 모든 것이 덧없는 이 인생의 의미를 탐구하는 데 지쳐서 황제로서의 일을 하는 것으로 도망치려 했던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공동체를 위한 실천은 반드시 협의의 일은 아닐지 모르지만, 황제는 노트를 향해 무심코 일이 휴식이라고 자기 속마음을 적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철학의 궁극적인 문제, 즉 인간은 죽어야 할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왜 살아야 하는지,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려면 아우렐리우스가 말하는 것처럼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렇다고 내면을 들여다보고, 자기 밖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무관심한 채 마음의 평정을 얻으면 되는 것도 아니다. 저자의 고등학교 윤리 사회 선생님은 첫 수업에서 내면만 들여다보다가 어느새 쇠사슬에 묶여 자유를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내면을 들여다 본다는 것은 일상생활에 쫓기느라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보이지 않을 때 먼저 그 상황을 파악하고 나서야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기 위해 멈춰 서는 것을 말한다. 현상을 추인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실천의 철학은 동시에 관조의 철학이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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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앤프리'를 통해 도서 협찬을 받아서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인스타 #하놀 @hagonolza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아우렐리우스는 누군가에게 자기 의견을 피력하거나 설교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고, 자기 행동을 반성하고, 자신을 타이르기 위해 글을 썼습니다.
저 역시 그날 한 일을 노트에 적어둘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저 누구를 만났다는 객관적인 사실뿐 아니라 그 사람과 만났을 때 어떤 생각을 했는지, 그 사람에 대해 어떻게 느꼈는지를 쓰려고 하면 아무도 내가 쓴 것을 잃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괜히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더군요. 남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쓰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나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쓰기를 주저하게 됩니다. 그런데 아우렐리우스는 생각한 대로, 느낀 그대로를 쓴 것처럼 보입니다. 아우엘리우스가 어떤 식으로 썼는지 들여다 봅시다.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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