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소스토무스를 위시한 안디옥 학파가 일차적으로 성경의 저자나기록자의 목적과 의도에 관심을 집중한 반면, 오리게네스로 대표되는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주로 독자와 독자에게 미치는 텍스트의 효과에 집중했다.
- P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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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스와 고든 피(Gordon Fee)와 나는 더 넓은 컨텍스트를 관망하는 이러한 방법론을 지지한다. 45 도드는 바울과 다른 신약 저자들이 구약을 인용하면서 자신들 고유의 컨텍스트로 옮겨와 사용했다고 주장한다.
-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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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대교 내에는 절대적으로 우세한 한 가지 해석의 방법론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2) 일찍이 1세기부터 (아니면 더 이른 시기부터) 히브리어 성경의 해석에 관한 여러 쟁점들이 떠올랐으나 이 쟁점들은 보편적으로 승인되는 해결책을 발견하지 못했으며, 현재에도 보편적 승인을 요구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유대교는 한 번도 하나의 통일된 형태로 나타난 적이 없다. 현대 유대교는 자치하고라도 랍비 유대교,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유대교, 쿰란 공동체(사해 사본을 만들어낸 공동체), 소위 묵시적 유대교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를 볼 때특히 그러하다. 랍비 유대교 또한 단일한 그룹이 아니다.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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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발돋움
헨리 나우웬 지음, 이상미 옮김 / 두란노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영적 발돋움. 헨리 나우웬. 두란노.

헨리 나우웬은 이 책에서 성령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 밝히는데, 외로운 삶에서 고독한 삶으로 향하는 사람, 적대감을 내려놓고 이웃을 환대하는 사람, 자신의 환상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 영적인 삶을 사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각 챕터의 제목이 ‘자아를 향한 발돋움’, ‘동료 인간을 향한 발돋움’, ‘하나님을 향한 발돋움’인데, 우리 안에 있는 양 극단의 모습(죄와 하나님)을 인식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움직이는 것을 두고 ‘발돋움’으로 표현했다.

먼저 첫 번째 발돋움은 지나치게 삭막한 관계 혹은 지나치게 큰 기대에 얽매여 살아가는 사람들이 혼자 있는 시간을 지속해서 가지면서 자신이 얼마나 바쁘고 지쳐 있는지를 발견하는 것이다. 치유는 그것을 직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데, 바로 그 순간부터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내면의 공간을 비로소 가질 수 있다. 두 번째 발돋움은 낯선 사람을 위해 자유로운 공간을 만들어 놓는 것이다. 항상 바쁘고 무언가로 채워야 할 것 같은 압박을 받는 세상에서 누군가를 위한 빈자리를 마련해 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자리가 없다면 세상은커녕, 자기 자신조차 바꿀 기회를 가질 수 없다. 환대는 타인을 위한 것이지만 동시에 자신의 구원이 연결된 중요한 것이기도 하다. 세 번째 발돋움은 오직 하나님의 선물로 가능한 기도로의 움직임이다. 물론 기도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가능하지만, 배우고 익혀야 하는 것이 또 기도이기도 하다. 우리는 기도하는 가운데 영광스러운 하나님을 뵐 수도 있겠지만, 모욕당하신 주님의 모습을 마주칠 수도 있다. 하나님의 임재와 부재를 구별하기 어려운 순간에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 이러한 긴장과 혼란을 경험할지라도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그리스도와 연합되고자 하는 불타는 바람을 반드시 주시며 만물이 기다리는 그날을 기다릴 수 있도록 함께 하실 것이다.

오랜만에 읽는 헨리 나우웬. 그는 두꺼운 책을 쓰진 않았지만, 하버드, 예일 등에서 가르칠 정도로 뛰어난 지식과 빈민촌, 장애인 공동체에서의 경험이 어우러져 절대 가볍지 않은 글을 쓴다. 이 책은 그가 예일대학에서 한창 가르치던 시기인 1975년에 쓴 글인데, 50년 가까이 지났음에도 현실을 바라보는 그의 인식이 여전히 날카롭게 느껴지고 그런 상황에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주는 권면 역시 가볍거나 엉뚱하지 않다. 그렇다고 뻔하지도 않다. 영적인 삶이 무엇인지, 성령 안에 살기 위해 우리가 노력할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잘 보여주었다. 하나님을 향한 그의 개인적인 갈망, 지식을 넘어 사람을 향하는 그의 시선이 느껴졌다. 영적인 삶에 대한 갈망을 함께 느낄 수 있도록 돕는 좋은 책이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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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 - 현대인이 잃어버린 안식의 참 의미를 말하다
아브라함 J. 헤셸 지음, 김순현 옮김 / 복있는사람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아브라함 조슈아 헤셸. <안식>. 복있는 사람.

<안식>의 저자 아브라함 조슈아 헤셸은 유대교 사상을 공부한 것에서 그치지 않고 실천적인 학자, 종교인으로 살았다. 특히 구약성서에 나오는 예언자들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그런 관심을 현실에 적용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적극적으로 여러 시민 인권 운동을 이끌거나 참여했고, 종교 간의 대화에도 힘을 썼던 다양한 이력을 가진 유대교 신학자이다.

<안식>은 <예언자들>과 함께 한국의 개신교회들에 가장 많이 알려진 저자의 책인데, 유진 피터슨, 마르바 던과 같은 영성 신학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분량은 많지 않아도 그만큼 성서가 담고 있는 안식(일)의 개념을 응축하여 현대인들에게 잘 소개하는 책이라 할 수 있다.

그가 이 책에서 말하는 바는 ‘시간의 건축술로서의 안식일’이다. 탁월한 비유다. 문명을 세운 모든 인류가 공간을 차지하고 물질을 풍성하게 얻는 것에 중요한 가치를 두었지만, 성서는 그보다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주장이다. 이 말은 공간과 물질을 폄훼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공간과 물질의 가치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을 통해서 회복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안식일을 지키면서 공간과 물질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생명이라는 것을 기억할 수 있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다. 우리가 안식일을 통해 생명과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우리의 존재가 평일이 아닌, 안식일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성경은 시간의 중요성을 보여 주는데, 특히 안식일을 강조한다. 성경에서 처음으로 거룩하다는 개념이 사용된 것은 다름 아닌 안식일이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들은 선했으나, 안식일을 복되게 하셨고 거룩하게 하셨다.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집보다 하나님의 날에 대해서 외쳤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에게 수여될 수 있는 유일한 날이다. 하나님의 집은 예루살렘에 있었으나 신성함이 장소에 매이지 않는다.

저자가 말한 것들 중에 “안식일에는 수고와 피로를 삼가야 한다. 심지어 피로를 느낄 만큼 하나님을 섬기는 행위도 삼가야 한다.”는 말이 특이 인상적이었다. 주일에 너무 많은 봉사로 지치는 성도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일주일 내내 공간과 물질에 치여 고생한 성도들중에 상당수가 주일에도 쉬지 못하고 소모만 된다고 느낀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하여 비대면 예배를 드리면서 적지 않은 분들이 진짜 안식을 경험한다고 말하는데, 저자가 책에서 말하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과 성도들의 이야기가 엮이며 코로나 이전의 교회 모습을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공간과 물질을 더 많이 갖기 위해 시간을 쪼개는 사람들에게 단 하루, 그 순서를 과감하게 바꾸는 날이 안식일이다. 일주일에 단 하루이지만, 반복해서 그날을 지키는 가운데 우리는 시간 가운데 영원한 집이 이미 세워지고 있음을 보게 될 것이고, 그것에 더욱 비중을 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읽어도 새롭고, 빠르게 읽을 수 없었던 책이다. 아마도 또다시 읽어야 할 것 같다. 그만큼 내가, 그리고 섬기는 교회가 저자가 말하는 안식의 상태 혹은 안식일을 지키는 모습과 거리가 멀어 보이기 때문이다. 모르긴해도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분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아직 읽어보지 못한 분, 코로나 이후의 교회에 대해 고민이 많은 분에게 특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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