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란 믿음보다 더 가늘지만 질긴 것이지.' 그는 머리 위로 희미하게 소리없는 번갯불이 번쩍이는 가운데 방 안을 걸어 다니며 생각했다. 모름지기 좋은 시절에는 삶을 믿지만 나쁜 시절에는 오직 희망을 가질 뿐. 하지만 믿음이나 희망이나 본질은 같다. 마음이 다른 마음들과, 세계와, 그리고 시간과 맺어야만 하는 관계들. 믿음이 없어도 사람은 살지만, 그것은 사람다운 삶이 아니다. 희망이 없으면 사람은 죽는다. 관계가 존재하지 않을 때, 손을 뻗어 닿을 수 있는 것이 없는 곳에서 감성은 텅 비어 오그라들고 지성은 말라붙는다. 사람들 사이에 남는 연결 고리는 오직 주인과 노예, 혹은 살해자와 피해자의 그것뿐이다.-200쪽